2025년 3월 13일 목요일
[(자)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는 기도를 바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 에스테르기의 말씀입니다. 4,17(12).17(14)-17(16).17(23)-17(25)
그 무렵 17(12)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였다.
17(14)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의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17(15)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17(16)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조상들 가운데에서 저희 선조들을 영원한 재산으로 받아들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17(23)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임금님, 모든 권세의 지배자시여!
17(24)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17(25)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청하는 아들에게 돌을 주는 아버지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주의해야 합니다. 자칫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를, 빵을 청하면 거저 빵을 주시는 분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청한 것을 무조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좋은 것을 더 많이 주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 좋은 것을 우리가 바라지 않거나 피하고 싶은 방식으로 주실 때도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제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전날 발목을 삐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병원에 간 저는 간단한 약 처방만을 바랐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제 발목에 깁스를 하고, 저에게 이틀에 한 번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으라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더 좋은 처방을 준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는 오랫동안 저를 괴롭혀 온 만성 염증을 관리하려면 발목 건강에 가장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실 수 있으셨던 것은 비록 십자가 죽음을 피하시고 싶었을지라도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믿음의 표본을 따라, 청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일상에서 키워 가야 합니다.(한창현 모세 신부)
우리가 매일 바치는 기도에도 성장과 쇄신이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지난 세월 돌아보니, 정말이지 헛되고 부질없는 것, 청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임없이 청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또 전혀 의미 없는 노력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죽기 살기로 청하는 과정에서 응답없음으로 인해 절망하고 탄식하던 중에, 아, 내 청원이 그릇된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그 이후 다가온 작은 배움 하나는 정말 간절히 청해야 하는 바는 이 세상 그 너머의 것, 보다 이타적인 것, 보다 보편적인 것, 보다 공동체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바치는 기도의 폭이 넓어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청을 흔쾌히 들어주실뿐더러, 그 외의 작은 청들도 덤으로 들어주신다는 것을 자주 체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간절히 바치고 있는 기도의 질과 수준은 어떠합니까? 물론 절박한 현실에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청도 아버지이신 주님께 열정적으로 청해야 마땅합니다. 나와 가족,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과 안녕, 평화와 성공도 열심히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오로지 그 방향으로 쏠리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기도 안에 함몰되어 있다면 많이 부족한 기도입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상태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기도에도 성장과 쇄신이 필요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의연히 견뎌내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모습, 정말이지 성숙한 기도 생활입니다.
희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의 시선이 늘 주님을 향해 있고, 부단히 절망 속에서도 희망한다면, 기도 잘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3년간 있었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끝은 언제나 비극입니다. 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고 다쳤습니다. 도시는 폐허가 되고, 경제는 망가지고, 재건이라는 명목으로 외국의 기업들이 들어올 겁니다. 전쟁에 큰 비용을 제공했던 미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큰 이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참된 평화가 오면 좋겠습니다. 손자병법에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한국도 지난 3개월간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몸은 멀리 미국에 있지만 마음은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였습니다. 국회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해제를 결의했고,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습니다. 국회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결의했고, 대통령은 탄핵당하였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도 비상계엄의 진통을 넘어서 새로운 도약을 향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에스테르 왕비의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스테르 왕비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디언들의 기도는 꼭 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디언들은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가 오지 않아서 ‘기우제’를 드릴 때도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린다고 합니다.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보다는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험한 파도를 헤쳐 나가는 배를 생각합니다. 노를 젓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이 하고 싶을 때 노를 젓는다면 배는 험한 파도를 뚫고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배는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난파할지도 모릅니다. 파도가 거셀수록 함께 힘을 모아 같은 방향으로 호흡을 맞추어서 노를 저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자동차가 달리는 데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방향’입니다. 방향이 틀리면 빠른 속도로 갈지라도 목적지와는 멀어질 뿐입니다. 우리가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향’입니다. 나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청한다면, 타인의 재물과 명예를 억지로 빼앗으려고 한다면, 국가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국민을 도탄에 빠트릴 수밖에 없는 문을 열려고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들어 주시지 않을 겁니다. 설령 목적을 이룬 것처럼 보일지라도 끝은 늘 비극이 될 겁니다. 지향도 중요하지만 ‘인내’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 가지 원칙을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우리가 청하고, 찾고, 두르려야 할 것들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재물과 장수를 청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지혜를 청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재물과 장수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들은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님 없이는 저희가 있을 수 없사오니 저희에게 성령의 힘을 주시어 언제나 올바른 것을 생각하고 힘껏 실천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이 백성이 바라던 자비를 베푸시고 천상 은혜를 내리시어 청해야 할 것을 올바로 알고 또한 청한 것을 얻게 하소서.”
<당신께 문을 두드리고 찾고 청합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당신께
문을 두드립니다
당신께서
여실 수 있는 문을
당신께서
여시고픈 문을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홀로가 아니라 함께의
밀침이 아니라 스밈의
죽임이 아니라 살림의
당신께
찾습니다
당신께서
지니실 수 있는 것을
당신께서
지니고픈 것을
가짐이 아니라 베풂을
가름이 아니라 이음을
버림이 아니라 품음을
누름이 아니라 세움을
당신께
청합니다
당신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을
당신께서
주시고픈 것을
무응답이 아니라 믿음을
무기력이 아니라 희망을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을
무모함이 아니라 용기를
오늘 의 성인
성녀 크리스티나(Saint Christin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페르시아(Persia)
활동연도 : +연대미상
성녀 크리스티나는 페르시아의 처녀로 채찍에 맞아 순교하였다.
성녀 에우프라시아 (Euphrasia)
활동년도 : 382-412년
신분 : 동정녀
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같은 이름 : 에우쁘라시아, 에우프라씨아, 유프라시아
콘스탄티노블 출신인 그녀가 일곱 살 때, 그녀의 홀어머니가 중부 에집트의 타베니시에 살도록 하였다.
소녀 때 그녀의 소망은 동정생활을 하는 공동체에서 지내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성취되어 그녀는 수녀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녀는 남은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세속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자신이 사는 공동체의 내부 일이 너무나 힘이 들어서 뛰쳐 나오려는 유혹에 수 없이 직면할 때마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등의 온갖 고행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그녀는 이런 노력으로 보여주는 인내심으로 인하여 동료들로부터 위대한 성녀로높은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