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를 지나자마자 나오는 나들목이 송악 IC다. 여기서부터 농어촌기반공사의 휴양 단지가 있는 도비도까지 약 40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한진, 안섬, 성구미,장고항, 왜목 등 5개의 고만고만한 포구들을 스치게 된다. 송악 IC에서 4차선으로 뚫린 38번 국도를 따라 3분만 달리면 한진리에 이른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각 지방의 특산물이 몰려들어 북적이던 항구다. 그러나 이제는 옛 명성의 기억만 간직한 채 작은 어촌으로 남아 있다. 이곳 경치의 압권은 약 7킬로미터 길이의 서해대교 너머로 벌어지는 일출 광경이다. 두툼한 갯벌 위에 내리꽂히는 새벽 햇살도 기억하고픈 감동이다. 포구에는 쉴 만한 횟집들이 줄지어 있다. 다시 38번 국도로 나와, 현대제철 등 고대공단의 거대한 공장들에 눈길을 주며 10분쯤 달린다. 4차선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회전해 ‘성구미’ 이정표를 보고 산모롱이를 두어 번 돌아 꾸역꾸역 비좁은 동네 안으로 들어가면 간제미회(표준어는 홍어회이며 간재미회라고도 부른다)로 유명한 성구미 포구가 나온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당진군 송산면 가곡리인데 ‘간제미회’ 덕분에 옛 지명이 훨씬 더 알려져 있다. 간제미는 간자미의 사투리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갱개미라고도 한다. 성구미 포구는 워낙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횟집과 노점상, 관광객, 갈매기 들까지 합세해 주말이면 상당히 복잡하다. 시끌시끌, 바글바글,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가을 김장철이면 새우젓을 사러 온 사람들로 선창가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반팔 입을 철이 오면 선창가의 모래밭까지 차량이 빼곡하다. 뻘건 고무통마다 우럭, 광어, 간제미 등의 횟감이 퍼덕이며 부두에 진을 치고 있는 아줌마들도 많다.
“차량이 바닷물에 잠기고 있으니 속히 차를 빼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도 심심찮게 들린다. 회를 먹다 말고 선창가 모래밭으로 뛰쳐나가 ‘반신욕을 하고 있던 차량’을 황급히 빼내는 광경도 드물지 않다. 성구미 인근의 석문방조제는 국내 최대의 둑으로 길이가 약 10.6 킬로미터다. 방조제를 지날 때 분뇨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풀밭에 사철 방목하는 양 떼 때문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넓은 갈대밭과 호수를 감상하며 방조제를 통과하면 실치회로 소문난 장고항이 나온다. 실치는 뱅어의 새끼다. 뼈와 내장이 아직 생기지 않아 실처럼 보들보들해 실치라고 한다.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하고 비린내가 거의 없는 담백한 횟감이다. 실치회는 장고항과 그 인근에서만 먹을 수 있다. 말간 실치에 깻잎, 당근, 양배추 등의 채소를 넣고 초장에 버무린 것이다.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 끼니 걱정을 해야 했던 가난한 어부들은 내장이 아직 생기지 않은 말간 뱅어 새끼를 그릇에 담아 고추장에 비벼서 후루룩 마시듯 먹었다고 한다. 실치회는 3~4월이 제철이고 늦어도 5월 중순 이전까지만 먹을 수 있다. 그 이후에는 뼈가 단단해져 뱅어포 만드는 데 쓰인다. 다 자란 뱅어에 시금치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맛깔스러운 실칫국 또한 5월에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실치회와 달리 간제미회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간제미회를 먹기에는 사람들로 번잡스러운 성구미보다 장고항이 낫다. 간제미는 바다로 약 30분간 배를 타고 나가 주로 낚시로 잡아온다. 싱싱한 간제미를 뼈째 썰어 채소 양념과 함께 새콤달콤하게 버무린 것이 ‘간제미회’다. 싱싱함과 알싸함, 달콤함이 절로 느껴지며 뼈가 물러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장고항 사람들은 최근 관광객을 더 불러 모으기 위해 마을 과 해안에서 공사를 벌이고 있다. 통통배의 엔진 소리와 바닷새 울음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해변의 뙈기밭에서 깨꽃이 피던 옛 정취가 사라지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깨끗한 바다와 해변, 수시로 잡아오는 별미는 일상에 지친 도시 나그네를 포근히 맞아줄 것이다. 장고항 인근에는 일출 마을로 소문난 ‘왜목마을’이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 해가 뜨는 것을 정작 볼 수 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겨울이 아니면 ‘각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방값과 음식값이 무척 비싼 편이다. 고운 모래밭 해변을 감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게 낫다. 대호방조제가 일직선으로 뻗다가 굽어지는 곳은 도비도이다. 이곳에는 농어촌기반공사가 운영하는 휴양 단지가 있다. 바닷물로 목욕을 하고 머드팩을 즐길 수 있는 대호암반해수탕과 횟집, 숙박동 외에 넓은 갯벌 체험장을 앞에 두고 있으니 가족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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