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295(황궁무고)-4
촛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벌써 인시가 넘어 묘시(05~06)가 다 되었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와 함께 무고로 가야 한다. 그는 천려실의 열매를 찾기 위해 왔다. 그가 천려실의 열매를 찾는 이유는 모른다. 명운이가 설명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무고에 천려실의 열매가 있을까? 혹시 없다면 실망하지 않을까? 그가 실망하는 모습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 보다 더욱 걱정되는 일은 설혹 천려실의 열매를 찾는다 해도 그가 바로 떠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에게 자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마운 사람. 그 의미 밖에 없는 것일까? 그를 따르는 여인들이 많다. 무림에서 제법 이름 높은 사사천교의 교주와 천마마련주의 손녀가 그의 여인이라고 한다. 또한 제갈세가주의 딸과 장강수로십팔채주의 딸도 그의 여인이라고 들었다. 한 마디로 바람둥이 같은 놈이다. 그런데 그 바람둥이 자식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존심 상하고 분하며, 마음을 빼앗긴 자신이 한심하고 바보 같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을 향하는 마음은 자꾸만 켜져만 간다. 이대로 끝내자. 잊어야 한다. 상대는 자신을 여인으로 보지도 않는다.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여 기회만 있으면 도망치는 놈이다. 그에게 자신은 그저 고마운 사람이상의 의미는 없다. 혼자서 사랑하고 아파하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벌써 여명(黎明)이 밝아오고 있다. 오늘은 그와 함께 황궁무고로 가야 한다.
풍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조그만 있으면 황궁무고에 간다. 그곳에 천려실의 열매가 있다고 확실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의의 말대로라면 가장 확률이 높다. 그리고 천려실의 열매를 찾았다하여 아라와 수혜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또 어떤 난관(難關)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려실의 열매가 필요하다. 이제 날이 밝았다. 무림에 관한 걱정은 잠시 접어 두어야한다. 무고에 들어가 천려실의 열매를 찾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른 아침에 풍운과 연희가 아침상을 같이하고 있었다. 명운이는 어제 밤에 급한 일이 있다고 악양원을 떠났다고 한다. 젓가락질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조용한 식사다. 연희는 머리를 올려 봉황장식으로 멋을 내고 붉은색의 화려한 궁장을 입고 있다. 귀엽고 앙증맞기만 하던 연희에게 연인의 향기가 느껴진다. 풍운은 어제 연희가 마련해준 화려한 청색 의복을 입고 있었다. 본래는 시녀로 위장(僞裝)하려 했지만 연희의 노력으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조용한 식사가 끝나자 두 사람은 마차에 올랐다.
창문을 바라보는 연희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보인다. 답답하다. 가끔 억지를 부려 당황스럽게도 하지만 항상 밝고 명랑하던 연희의 모습이 아니다. 마차가 황궁정문을 통과하여 무고 앞에 도착했다. 군사들이 문을 열어주자 먼저 연희가 내리고 풍운이 뒤따라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공주님을 모시게 된 중장군(中將軍) 금이입니다.”
연희에게 황금갑옷을 입은 장군이 깍듯하게 인사한다. 풍운은 장군을 보고 고개를 돌린다. 바로 림산전투에서 만났던 구문대도독부의 금이장군이었기 때문이다.
“금이 장군께서 승차를 하셨군요. 축하드려요!”
중장군(中將軍)이라면 구문제독부에 속한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 중 서열 1위에 해당하는 장군이다. 다시 말해 금이가 구문제독부에서 2인자가 된 것이다.
“공주님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입니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혹시........?”
금이도 풍운을 알아본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자네가 언제부터 의원이 되었나?”
“누가 의원과 함께 들어갔다고 했어요. 제가 원하는 물건을 알고 있는 사람과 함께 들어가겠다고 했죠?”
풍운대신 연희가 톡 쏘아붙이자 금이는 피식 웃고 만다. 금이도 공주의 성격을 알기에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오시죠. 입구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금이을 따라 거대한 문을 지나니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본래는 저도 공주님과 함께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뒤에 있는 친구와 함께 들어가시겠다고 하시니 저는 여기까지만 안내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연희는 품속에서 황금색의 열쇄를 꺼내 문에 달린 구멍에 넣고 돌렸다.
“쿠쿠쿠쿵”
광음과 함께 문이 열리며 횃불이 일렁거리는 기다란 복도가 나타났다.
“무고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들었네. 공주님을 잘 보호해주게.”
연희가 먼저 들어가고 풍운이 따라가려하니 금이가 당부한다.
“잘 알겠습니다.”
풍운이 들어가자 입구가 서서히 본래대로 닫히고 이젠 연희와 단둘이 남겨 되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풍운의 말에 연희는 대답도 없이 앞만 보고 간다. 풍운은 할 수 없이 연희의 뒤를 따라가는데 복도가 끝나고 거대한 광장이 나타났고, 광장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책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연희는 책들이 빼곡한 길을 따라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풍운은 주위를 책들을 살펴보며 연희를 따라가다가 ‘무림십대기병(武林十代奇兵)과 삼대신병(三代神兵)’이라는 책 앞에 멈추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연희는 책을 펼치는 풍운을 보고 책장에 등을 기댄다. 풍운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무림십대기병은 현원자가 가지고 있는 청명검, 사사천교의 설비, 천마마련의 참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막사검, 이막수가 가지고 있는 용천검, 남궁세가의 벽력신검, 이렇게 6가지다. 책에는 무림십대기병이 만들어진 시기와 내력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아직 풍운이 보지 못한 십대기병은 현현환(玄玄幻), 혈혈마검(血血魔劍), 낙일검(落日劍), 환오일궁(煥烏日弓)이라고 한다. 현현환은 팔각형의 고리 모양이지만 검도편창(劍刀鞭槍) 등 각종 무기로 변한다고 하며, 혈혈마검은 핏빛의 검(劍)으로 만인(萬人)의 저주(詛呪)가 서려있어 검(劍)의 주인을 마인(魔人)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환오일궁은 하늘의 태양도 솟아 떨어 틀리 수 있다는 전설의 궁(弓)이라고 한다. 풍운은 다음 편을 읽어보았다. 무림삼대신병(武林三代神兵)은 배화교의 성화령, 북해빙궁의 혈선빙백검 그리고 영혼기병이라는 풍혼(風魂)이다. 풍운은 성화령과 혈선빙백검에 대해 알고 있느니 풍혼에 대해 읽어보았다.
‘풍혼은 특별한 형체(形體)가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잠재능력(潛在能力)이 무기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전설(傳說)상의 무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풍혼을 보았다는 기록은 없다.’
풍혼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간략했다. 한 번도 무림에 등장하지 않았으니 자세한 기록이 없는 것이다.
“자기도 무림인이라고 무기에 관심이 많군.”
풍운이 책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연희도 궁금해서 책을 살펴본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다시 가시죠.”
풍운이 책을 내려놓으니 연희는 다시 서고(書庫)를 지나 복도를 따라간다. 다음에 나타난 광장에는 각종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동안 길을 가던 연희가 걸음을 멈추었다.
“예쁘다.”
연희는 생각 없이 붉은 보석이 박힌 환(環)을 집었다.
“파파파팍~”
“챙그랑”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침들이 연희를 향해 날아오고, 깜짝 놀란 풍운이 소매바람으로 침들을 날리고 연희의 앞을 막았다.
“아야~”
연희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가슴을 붙잡는다. 풍운의 대응도 빨랐지만 침들이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되어 모든 침들을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공주님. 괜찮으세요.”
풍운의 물음에 연희는 대답도 못하고 격한 숨만 몰아쉰다. 가슴과 아랫배를 칼로 도려내는 고통에 대답도 못하는 것이다. 풍운은 급한 마음에도 연희가 떨어트린 환(環)이 있던 자리를 살펴보았다.
‘단심환(丹心環), 춘주전국시대 이난정이라는 장인이 만든 암기로 환(環)에 숨겨진 침에는 십보단혼산이라는 독(毒)이 바라져 있다. 단심환은·········<중략>’
“십보단혼산! 이럴 수가?”
예전에 곽지향에게 십보단혼산에 대해 들었다. 십보단혼산는 십보(十步)를 옮기기 전에 죽는다는 치명적인 극독(劇毒)이다. 마음이 급해진 풍운은 연희의 뒤에 앉아 등에 손을 붙이고 극양(極陽)의 수라기(修羅氣)를 밀어 넣었다. 몸에 펴지기 시작한 독(毒)을 수라기로 태워버리기 위해서다.
“음~ 아악~”
연희는 등을 통해 열화(熱火)와 같은 기(氣)가 밀고 들어오자 온몸이 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연희의 혈을 타고 온몸으로 펴지던 십보단혼산이 극양(極陽)의 수라기(修羅氣)에 의해 타들어간다. 예전의 풍운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신성체(神聖體)가 되어 몸의 모든 선천강기를 흡수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희의 고통까지 막아줄 수는 없다. 연희의 몸이 불덩이처럼 변하며 독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풍운은 수라기로 연희의 전신경락을 일주천해보고 더 이상 불온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수라기를 거두었다.
“헉헉헉~”
풍운이 손을 거두자 연희가 바닥에 쓰려지며 거친 숨을 몰아쉰다. 풍운은 쓰려진 연희를 어찌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다. 비록 몸에 펴진 독(毒)을 제거했지만 침에 남아있는 독(毒)이 다시 펴질 수 있으니 어서 빨리 침을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연희의 옷을 벗겨야 한다. 침이 워낙 작아서 옷을 입은 상태에서는 어디에 박혔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헉헉헉~ 아파.........아음~”
연희가 가슴을 부여잡고 경련한다. 풍운도 더 이상 고민만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풍운은 장삼을 벗어 바닥에 깔고 연희를 위에 눕혔다.
“공주님. 잠시 결례(缺禮)를 하겠습니다.”
풍운은 탄지신통으로 가슴에서 출발하는 경략(經略)을 막아 독(毒)이 펴지는 것을 차단했다.
“헉~ 헉~ 뭐..........뭐하려는 거야.”
“독(毒)에 중독되셨습니다. 급한 대로 전신(全身)에 펴진 독(毒)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몸에 박힌 침들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경스럽게도 잠시 공주님의 의복을 벗겨야 합니다.”
“시........싫어! 하지 마.”
연희는 고개를 흔들며 앞섬을 잡는다.
“침을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잠시만 참으세요.”
“다........닫쳐. 당신 앞에서........헉~ 헉~ 그런 꼴을..........헉~ 헉~ 싫단 말이야.”
연희의 비명에 가까운 애원에 풍운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어찌해야 하는가? 연희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중에 무슨 벌을 받더라도 그녀가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풍운이 연희의 혼수혈를 점혈하니, 연희가 힘없이 쓰려진다. 땀에 젖은 연희를 보니 물에 빠진 참새처럼 가여워보인다. 풍운은 떨리는 손으로 앞섬을 풀었다.
“사르르~”
앞섬이 좌우로 벌어지며 하얀 속옷이 보인다. 풍운이 망설이지 않고 속옷까지 벗기자 가슴을 가리고 있는 연분홍색 천이 나타났다. 상의를 완전히 벗기고 살펴보니 배와 가슴에 미세한 침들이 반짝거린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슴 사이에도 침이 박혀있다. 풍운은 먼저 눈에 보이는 침들을 제거하고 연분홍색 천을 벗겼다. 한손에 잡힐 정도로 작고 아담한 젖가슴과 봉우리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분홍색 유실이 보인다. 풍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젖가슴 사이에 박힌 침들을 제거하고 가슴에 손을 올렸다. 다시 독(毒)이 퍼졌을 수도 있으니 여독(餘毒)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수라기(修羅氣)가 다시 연희의 경략(經略)을 타고 흐르며 탁한 혈을 풀어주고 남아있던 독(毒)을 제거한다.
연희는 꿈속에서 무시무시한 악마를 만났다. 악마는 자신을 한입에 삼키려 했다. 그때 풍운이 천신(天神)처럼 나타나 악마를 물리치고 자신을 구해주었다. 연희는 풍운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풍운은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풍운의 가슴은 태양처럼 뜨거워 숨쉬기도 거북할 정도다.
온몸이 타는 느낌에 연희가 정신을 차려보니 풍운이 담담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희가 급히 일어나 자신의 몸을 살펴보니 칼로 찌르는 것 같던 고통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의복도 깔끔하다.
“괜찮으세요.”
“어떻게 된 거지.”
“치료를 하긴 했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치료! 당신이!”
연희는 가슴을 만져보고 풍운을 노려본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옷을 벗겨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치료가 끝났다고 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연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휘청거린다. 치료과정에서 급속히 쇠약해진 것이다. 풍운이 얼른 연희의 팔을 잡아주었다.
“제가 부촉해 드리겠습니다.”
연희는 말없이 풍운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한걸음 걷다가 쓰려진다.
“공주님! 공주님!”
풍운이 얼른 잡아주자 연희가 힘없이 풍운의 품에 쓰려진다.
“헉헉~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치........치료를 했습니다.”
“헉~ 헉~ 그래. 그런데 왜 이 모양이야.”
“독(毒)이 정화하는 과정에서 기력(氣力)이........!”
“그걸 묻는 게 아니야. 옷을 입히려면 똑바로 입히던가? 너무 조여서 가슴이 답답하단 말이야.”
풍운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 그것이..........”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 내가 잘못도 있으니, 하지만 기분 나빠............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부담스러운 거야.”
“죄송합니다.”
“됐어. 당신의 뜻은 잘 알았으니까? 그만 놔~”
연희가 풍운을 밀치고 쓰려지려는 몸을 벽에 기댄다.
“공주님!”
“공주라는 말도 듣기 싫어. 그만 됐으니 가란 말이야.”
“공주님을 두고 어떻게 혼자 갑니까?”
“내가 죽던 말든 무슨 상관이야. 당신과 상관없는 사람이니 그만 가란 말이야.”
등줄기에 식은땀에 난다. 쌍마(雙魔)와의 대결에서도 이렇게 진땀이 나진 않았다. 이 대책 없는 꼬마아가씨를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연희를 설득해야 한다.
“공주님. 명운에게 공주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낮은 목소리다.
“잠깐의 열병입니다. 나중에 공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멋진 남자가 나타날 겁니다.”
“열병이라고?.........그러니까? 그만 잊으라고.........그게 아니면? 어떻게 할 건데?”
“휴~ 공주님! 저에게는 이미 많은 여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녀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너는 안 된다. 어린년이 주체 파악도 못하고 당신한테 매달리는 거구나?”
“그게 아닙니다. 왜 공주님이 소인 같은 놈을 사랑합니까? 저 같이 하찮고 미천한 놈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또 제가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진정으로 공주님만을 사랑해주시는 분이 나타날 겁니다.”
“난........난.........당신을 원하는 거야. 정말 모르겠어.”
연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가엽다. 안타깝다. 왜 자신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일까?
“음~~.......그렇게 말해도 모르겠습니까? 소인이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랑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지금 천려실의 열매를 찾는 이유가 뭐지 아세요. 바로 사랑하는 여인들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소인 같은 놈을 사랑하시겠습니까?”
“알고 있어. 그래서 잊으려 했어. 그런데 안 돼. 당신을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는 걸 어떻게.”
눈물이 가득한 연희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떨어진다. 연희의 눈물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쉽게 포기할 연희가 아니다. 여기서 끝까지 거부하다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을 지도 모른다. 연희에게 상처를 주긴 싫다. 풍운이 눈물을 닫아주니 연희가 손을 잡는다.
“알겠습니다.........공주님은 사랑스러운 여인입니다. 저도 공주님 좋아해요.”
“정말이야.”
“진심입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그 대신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마세요.
“몰라. 지금 당신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야. 그리고 닫치지도 않는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고 싶지는 않아.”
풍운은 연희를 포근히 안아주었고, 연희도 거부하지 않고 풍운의 품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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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서성 합양(合陽)을 지난 혁린강일행이 산서성 태원(太原)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공자님! 일마(一魔)님과 삼마(三魔)님이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어찌 할까요?”
“먼 길 달려오셨으니 일단 쉬라고 하세요.”
화려한 마차에 타고 있는 혁린강에게 무사가 달려와 보고 했다.
“참~ 팔마(八魔)님께는 아직 연락이 없는 겁니까?”
현재 점창파를 초토화시킨 칠마(七魔), 개방으로 향하던 오마(五魔)와 벽력세가로 가던 구마(九魔)에게도 연락이 왔다. 그런데 제갈세가를 담당했던 팔마(八魔)에게만은 소식이 없다.
“저기..........팔마(八魔)님께서는 현재 악양에 계신다고 합니다.”
벽안환요가 무사 대신 대답한다.
“악양? 팔마(八魔)님께서 왜 그곳에 계시는 겁니까?”
“이걸 보시죠.”
환요가 시안의 보고서를 혁린강에게 전해 주었다.
“음~ 흑풍대와 혈영대 대부분이 전멸(全滅)하고 팔마(八魔)님도 혼수상태라..........제갈세가가 그렇게 무서운 놈들이었던 말인가?”
“시안의 보고에 의하면 그곳에 마수마랑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마수마랑? 그놈은 군산에 있지 않았습니까?”
“저희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대체 시안은 뭐하는 놈들입니까?”
“마수마랑은 천(千)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놈입니다. 시안으로써도 추적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휴~ 시안만 탓할 수 없겠군요.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팔마(八魔)님을 빙궁이 보호하고 있다?”
“얼마 전에 빙궁의 본진이 악양근교에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년들이 운중산에 왔다가 팔마(八魔)일행을 구해 악양으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그래요. 시안에 연락해서 사상자를 수습해서 본교로 보내고 팔마(八魔)를 성심을 다해 치료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공자님. 빙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엇이 심상치 않다는 말씀입니까?”
“그년들이 웅중산에 무슨 일로 가겠습니까? 분명 제갈세가를 노리고 가지 않았을까요?”
“빙궁도 야심(野心)이 대단한 곳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죠?”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예! 무슨 말씀이죠?”
“본교에 적극 협조하는 흑독애와는 달리 빙궁은 본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십이사(十二四)를 돕고 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주님이나 대공자님께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계십니다.”
“포탈랍궁도 본교에 비협조적이지 않습니까?”
“그건 이야기가 틀리죠. 포탈랍궁은 달라이라마 때문에 쉽게 움직이기 힘들지만 본교의 요청이 있다면 언제라도 돕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빙궁은 본진이 악양까지 진출해 있으면서도 전혀 본교를 돕지 않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본교가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중원을 혼란에 빠트린 사이 자기들 잇속만 챙기겠다는 심산이 아닙니까?”
“그래서 해서 빙궁이 무엇을 얻겠습니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잇속은 누가 챙긴다고...........나중에 본교가 중원 무림 정복에 성공하면 가만히 앉아서 잇속만 챙기던 빙궁이 자기들 몫을 주장할 것이 뻔합니다.”
“빙궁이 그만한 활약을 했다면 그 만큼의 몫을 챙겨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공자님. 지금까지 빙궁이 본교를 도와 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녀들에게 무슨 이익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잠마동과 천무연무를 만드는데 빙궁의 역할이 컸죠. 또한 지금까지 시안과 더불어 본교의 눈과 귀가 되어 주지 않았습니까?”
“그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막말로 빙궁도 본교의 도움을 받아 천려빙백강시과 빙백강시를 완성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상부상조(相扶相助)하고 있지 않습니까?”
“공자님.........50년 전을 모르세요. 빙궁은 그저 본교의 이용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년들이 주제도 모르고 본교와 맞서려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환요님.......전 빙궁을 욕하고 싶지 않아요. 빙궁도 나름대로 야심(野心)이 있습니다. 그걸 부정하려 하지 마세요.”
“공자님께서는 빙궁의 야심을 인정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니죠. 다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말입니다.”
대체 혁린강의 속마음을 모르겠다. 오만방자한 빙궁을 인정하겠다는 말인가? 환요는 혁린강의 진심을 듣고 싶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공자님께서는 지금 빙궁의 행태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불만이 많죠.”
“그럼 뭐죠?”
“불만은 있으나............빙궁과 적(敵)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음~~~ 왜죠?”
“어머니 때문입니다.”
“주모님께서 전대빙궁주였기 때문이란 말씀인가요?”
“제가 빙궁을 적(敵)으로 만들면..........어머니도 적(敵)이 됩니다. 그건 비극(悲劇)이죠.”
“음~.........무슨 말씀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빙궁이 무슨 짓을 하던 두고 보실 거란 말인가요?”
“우리 일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만일 빙궁이 계속 십이사(十二死)를 돕는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녀들도 생각이 있다면 감히 우릴 배반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어야겠죠.”
“그 말씀은 빙궁을 적(敵)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저는 제 앞길을 막는 자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대답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혁린강이 힘주어 말하자 환요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혁린강은 결코 호락호락한 사내가 아니다. 한번 마음먹을 길을 거침없이 달려갈 사내다. 환요는 혁린강을 믿는다. 혁린강 일행이 태원에 도착하고 기다리니 구마(九魔)와 오마(五魔)일행이 도착했다. 멀리 떨어진 칠마(七魔)와 혼수상태에 빠진 팔마(八魔)을 제외하고 다시 모인 것이다. 혁린강은 하룻밤을 태원에서 보내고 곧바로 무림맹이 있는 오대산을 향해 출발했다. 무림이 혼란에 빠진 사이 배화교의 마수(魔手)가 무림맹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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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은 양 끝에 까마귀 장식이 달린 활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게 뭐야?”
풍운의 품에 안긴 연희가 물어 본다. 연희가 힘들어하니 풍운이 안고 있는 모양이다.
“환오일궁(煥烏日弓)입니다.”
“그게 뭔데?”
“무림십대기병 중 하나인데 이곳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좀 전에 보던 책에 있던 무기?”
“예! 맞습니다.”
“갖고 싶어.”
“저는 아니고...........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혹시 여자야?”
“후후후~ 제 동료 중에 활을 쓰는 친구가 있어요.”
“치~ 대답을 못하는 것을 보니 또 여자구나. 순 바람둥이”
“그 친구는 정혼자가 있습니다.”
“그래! 그럼 가져가?”
“어떻게 감히.”
“괜찮아. 황상께는 내가 말할게.”
“나중에 공주님께서.........?”
“또!.......... 공주님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그 말투도 바꾸라고 했지?”
“하하하~ 미안. 습관이 돼서 쉽게 고쳐지질 안내요?”
“바보...........또 요야?”
“알았어. 고칠게. 그런데 정말 가져가도 돼.”
“황상께서 그만한 활 하나에 연연하실 분이 아니야.”
“그럼 고맙게 가져갈게.”
“더 필요한 건 없어. 있으면 가져가?”
“필요 없어. 자~ 다시 가자.”
풍운이 성큼성큼 걸어가자 연희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풍운의 허리를 잡는다. 기나긴 복도를 한참 따라가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커다란 석문 3개가 나타났다.
‘약왕동(藥王洞), 비선동(秘仙洞), 보전동(寶錢洞)’
글만 보명 약왕동은 진귀한 약을 보관하는 곳이고, 보전동은 제물을 보관하는 곳인 모양이다. 그런데 비선동은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아버님께 듣기로 3곳 중 한곳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어.”
“비선동에는 뭐가 있어.”
“예전부터 전해오는 신비한 물건들을 소장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자세한 것은 몰라.”
“뭐~ 상관없지. 약왕동으로 가자.”
풍운이 약왕동의 문을 살펴보니 손잡이가 보인다. 풍운은 숨을 들으키고 손잡이를 돌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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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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