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불원천 불우인 하학이상달 지아자 기천호)
논어 ‘헌문’편 37장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늘을 원망하지 말며,
사람을 탓하지 말라.
다만 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인가 보다.
( 결국 하늘이 알아줄 텐데 조급하게 뭔가 이루려고 안달하거나 ,
조금 이루었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뜻을 이루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不學而上達 = 아래로 배워서 위로 통달한다.)
전주의 (강암 송성용(剛庵 宋成鏞) 선생은
풍죽 그림에 쓴
‘抱節不爲霜雪改 成林終與鳳凰期(포절불위상설개 성림종여봉황기)’라는 화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처음 품었던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를 영원히 변치 말고,
대업을 이루었다 해도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이상을 향해 나아가라’는 뜻이다.
강암은 자신의 자식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송하진 전북지사는 강암의 4남인데
'지기추상(持己秋霜) 대인춘풍(待人春風)'으로 자신이 받은 가정교육을 요약했다.
'자기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워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자기 잘못에는 한없이 너그럽고 타인의 조그만 실수를 쫀쫀하게 따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가정교육을 잘 시켜서 그런 것인가.
강암은 자식농사도 잘 지었다.
장남은 관선 전주시장을 지낸 송하철이고,
2남은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을 지낸 송하경이고,
3남은 고려대 문과대학장을 지낸 송하춘이다.
이들 형제들도 아버지로부터 "우리 집은 삼시 세 끼 밥만 먹고 살면 된다.
직책을 맡으면서 돈을 모으면 절대 안 된다"는 당부를 수시로 들었다.
전주 교동 한옥마을의 강암이 살던 집 아석재(我石齋)의 편액 글씨는
당대 명필 소전(小筌) 손재형(孫在馨)이 썼고,
남취헌(攬翠軒)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글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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