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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과 두향이 사랑 이야기
퇴계 이황은 1501년 연산군 7년에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이때는 정치적으로 연산군의 폭정에 조정은 물론 사색당쟁이 심화되여 사회적으로 크게 혼란한 시절인 듯하다. 아버지 이식은 진사를 지냈다. 의성김씨와 결혼하여 잠, 하, 신당부인 등 2남1여를 둔 후 부인이 죽자 재취로 춘천 박씨와 결혼해 서린 의 해 증 황 등 5형제를 낳았다. 이황은 제일 끝의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으로 태어 난지 7개월 만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부친이 별세한 후 맏형 한 분만 결혼을 했고 다른 형제는 어려서 어머니가 홀로 농사와 누에치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운 형편이였다.
이황은 23세때 성균관에 유학하였다.
이때 그는 한양으로 올라와 지금의 정동 대법원이 있었던 곳에 집을 마련한다. 그동안 학문에 몰입한 결과 27세 때 향시, 28세때 진사회시에 장원급제, 32세 때 문과별시, 33세 때 경상도 향시에 장원급제 후 조정과 경향각지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34세 때부터 벼슬에 나가기 시작했다. 가정적으론 불행한 일이 많아 평탄치 않았다. 이황 21세의 나이로 김해 허씨와 결혼했다.
그는 두 아들 준과 채를 낳고 타계한다. 20세에 결혼했던 허씨 부인은 27세 잃게 된다. 3년 후 30세 때 권씨 부인과 재혼했으나 46세 때 권씨 부인마저 세상을 뜬다. 첫 번째 부인 허씨와는 사랑이 아주 도타운 것으로 전한다. 두 번째 부인 권씨는 조부 권주가 연산군의 갑자사화로 사사되었고 부친 권질도 그 일로 거제도 유배를 가게 되었고 거기서 권씨 부인 낳는다. 그는 중종반정 이후 복권 되었으나 중종 때 기묘사화 때 다시 집안에 화가 미친다. 그때 숙부는 사사되고 숙모는 관노가 되고 권질은 아비는 다시 예안으로 귀양간다. 이러한 집안의 잇단 변고 가 그 딸이 넋이 나가 버렸다. 이황이 첫 번째 부인 허씨를 잃고 권질을 방문하였을 때
"불쌍한 나의 딸을 책임질 수 있겠나"며 권질이 이황에게 부탁해 그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는다. 정신이 흐리고 집중력이 떨어진 실성한 부인 권씨로 부터 이황은 많은 고통을 받는다. 부인 권씨가 한번은 할아버지 제사상을 차리다 덜어진 배를 치마 속에 숨겼다. 이때 이황의 큰 형수가 "이보게 동서, 제사상을 차리는데 과일이 덜어진 것은 우리들의 정성 부족한 탓일텐데... 치마 속에 감추면 어떻게 하나?고 말을 하자 많은 친지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이황이 형수에게 사과하고 부인 권씨에게 몰래 물어보았다. "먹고 싶어 숨겼다"고 대답하는 부인에게 손수 배를 깍아 먹도록 배려하였다고 한다. 그 부인 권씨마저 세상을 하직한다.
두 아내와 사별하고 2년 후에 단양 군수로 있을 때 두향을 만난다. 퇴계 이황은 매화를 끔직이도 사랑했다. 매화를 노래한 그의 시가 1백수가 넘는다. 매화는 퇴계 이황이 그토록 사랑하였던 두향이다. 두향이 바로 매화인 것이다. 퇴계가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냈다.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본 퇴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다. 그녀는 어느 날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퇴계가 돌아가셨다고 느낀다.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갔다. 그렇게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은 단양의 관기였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한 48세 때 그녀를 만났다.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 눈에 퇴계에게 반한다. 그는 당시 두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다. 퇴계는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는 경상도 풍기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두향아, 왜 그리 얼굴이 어두운 게냐." "아닙니다." "내가 갈 날이 얼마 아니 남아서 그런 것이냐." "……." 두향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한 후 그의 곁에서 말없이 뒷바라지를 해온 두향이다. 그는 퇴계가 풍기 군수로 임지를 옮겨야 한다는 소식에 눈물이 솟았다. 참아야했지만 솟구치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가슴속으로 울음을 삭이기엔 너무나 큰 슬픔이었다. 눈물을 먹은 듯이 잠시 투명해졌다가 이내 윤기 나는 검은 빛으로 돌아왔다. 두향은 붓을 들어 먹을 묻혔다. "준비가 되었사옵니다" 왼손으로 오른쪽 소매 끝을 살짝 끌어올렸다. "어떻게든 울음을 보여선 아니 된다" 머릿속으로는 되뇌었지만 가슴은 머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다시 떨어진 눈물이 흰 화선지에 번졌다. 퇴계는 두향의 울음을 애써 외면했다. 부임지로 관기를 데려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다독거린다 한들 두향의 마음을 풀어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관기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밖엔 두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이었다. 두향이에게는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며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를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와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그 님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가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는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는 두향을 보듯 매화를 애지중지했다.
"매형(梅兄)에게 불결하니, 마음이 절로 미안하구나"
퇴계는 병세가 위중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옷을 입은 채로 설사를 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 경황없는 중에도 매형에게 불결한 냄새를 맡게 해서 미안하니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명하고 있다. 다음은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의 기록이다. "12월8일. 아침에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이 날은 날씨가 맑았다. 오후 다섯 시 쯤 갑자기 흰 구름이 집 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 남짓 내렸다. 조금 뒤 선생님께서는 누운 자리를 정돈하라고 하셨다. 부축하여 일으키자 앉으신 채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이 걷혔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이황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헤어지는 마지막 날 밤에 두사 람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고 하지요 이황선생이 먼저 붓을 들어,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
두향이 뒤를 이어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며 어느 듯 술 다하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라고 이별의 아픔을 표현했다 합니다. 이러한 이별은 끝끝내 재회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1570년 이황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 만난 적이 없다고 하며, 두향은 이황선생과 이별 후에 관기를 그만두고, 장회나루 터 인근 남한강가에서 움막을 짓고 평생 이황선생을 그리워하며 살게 됩니다.
퇴계 이황의 매화시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 퇴계 이황의 "매화시첩"중에서- 다음은 이황이 두향에게 보냈던 시라고 해요.
"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속에서 성현을 대하면서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비어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 매화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보니 莫向瑤琴嘆絶絃(막향요금탄절현)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말라
말년을 보낸 이황이 몸담아던 곳, 도산서원 가면 이황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두향이를 기리는 행사는 매년 단양에서 5월5일 두향제가 열린다. 남한강에 자리한 두향이의 묘소는 매년 이황의 후손들이 성묘를 한다고 한다.
-단 양 팔 경- 권윤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