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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를 돌아보며>
일행은 청산도를 일찍 출발해서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았다. 어제 점심을 먹은 완도연안여객선터미널 앞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기본반찬, 생선구이, 국 등과 밥이 나왔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배가 고픈 김에 빈 그릇만 남겼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행 대부분이 밥을 먹고 나서는 커피 한 잔씩 마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나는 집에서는 커피를 줄때만 먹는 스타일이지만, 밖에 나와서 남들이 마시는 것을 보면 나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모두 간단히 아침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일행은 아침을 먹고 나서 휴식을 취한 다음, 식당 앞에 있는 버스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남해안은 섬이 많은 다도해지역이라 바다가 대체적으로 잔잔하고, 어떤 곳은 넓은 강으로 착각할 정도로 좁은 곳도 있었다. 일행이 탄 버스는 어제 오던 길을 되짚어 나가다 남해안을 달렸다. 버스는 “보성녹차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여수로 향했다. <일행이 휴식을 취한 "보성녹차휴게소"> 일행은 여수시내에 진입해서 여수세계박람회장 앞에서 하차했다.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릴 때는 저곳에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는 이곳이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곳으로, 지구촌에 단 하나 뿐인 스카이타워, 엑스포기념관, 아쿠아플라넷, 해양레저스포츠 체험코스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이 거의 없어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월드컵, 올림픽, 엑스포 등은 행사할 당시는 그 지역에 엄청난 발전이 금방 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앞으로는 행사가 끝난 다음에, 그 시설물 관리에 애를 먹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 여수해상케이블카승강장으로 걸어갔다.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여수 “자산공원”에서 바다를 건너 “돌산공원”을 잇는 1.5km 구간의 국내 첫 해상케이블카이다. 해상케이블카승강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계박람회장 앞에서 스카이타워를 타야했다. 스카이타워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입구에는 관리자가 있어서 타는 사람은 오른쪽에 서고, 내리는 사람은 왼쪽으로 내렸다. 엘리베이터에 내려온 사람이 모두 내린 다음, 올라가는 사람이 탔다. <여수 자산공원 해상케이블카승강장> 스카이타워를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서, 건물 밖 허공중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갔다. 그리고 자산공원에 닿자, 다시 해상케이블카승강장으로 가는 계단이 있어 그리로 올라갔다. 승강장에서 내려다보니 “오동도”가 잘 보였다. 그러나 세계해상박람회를 하면서 오동도로 건너가는 도로를 넓게 만들고 방파제를 쌓아 그것이 좁을 때보다는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3,4월이면 동백꽃으로 붉게 물들이는 섬이 지금은 검푸른 빛을 띠고 있어, 섬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케이블카승강장에서 본 "여수해양엑스포장" 풍경> <케이블카승강장에서 본 "오동도" 풍경> <케이블카승강장에서 본 "스카이타워"와 허공중에 놓은 다리 풍경> <케이블카승강장에서 본 "오동도" 및 정자가 있는 풍경> 해상케이블카는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으로 된 5인승이 있다고 했지만, 일행은 일반 캐빈으로 된 8인승을 타고 돌산공원승강장으로 향했다. 자산공원승강장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케이블카는 해상을 건넜다. 왼쪽에는 “거북선대교”와 그 너머에 “오동도”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이순신광장”과 바다 중간에 있는 “장군도”가 보였다. 거북선대교 밑으로는 배 한 척이 유유히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얼마 타지 않은 것 같은데, 경관을 보며 함께 탄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하였기 때문인지 벌써 돌산공원승강장에 닿았다. <여수해상케이블카를 타고가면서 본 거북선대교 풍경 1> <여수해상케이블카를 타고가면서 본 거북선대교 풍경 2> 돌산공원승강장에서 내려 전망대로 향했다. 역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그만이었다. 전망대 왼쪽에는 돌산공원과 그 뒤에 돌산대교 윗부분이 조금 보였다. 앞에는 장군도가 바로 눈앞을 가로막았고. 멀리 여수시가지와 이순신광장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거북선대교와 바다를 항해하는 각종 배들이 바닷길을 오가고 있었다. <돌산공원승강장에서 본 "장군도" 풍경> <돌산공원승강장에서 본 "이순신광장" 방향 풍경> <돌산공원승강장에서 본 "여수시가지" 풍경> <돌산공원승강장에서 본 "돌산공원"과 "돌산교" 풍경> 제일 먼저 도착한 우리의 뒤를 이어 일행이 모두 도착해서 각자 나름대로 풍광을 구경했다. 또한 끼리끼리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겼다. 여기서는 오래 구경할 것이 없었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나서 일행이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출발한 자산공원으로 돌아왔다. <돌산공원승강장에서 본 "거북선대교" 방향 풍경> <돌산공원승강장에서 추억을 남기고> 일행의 당초계획은 여수 향일암을 보고 점심을 먹은 후, 남해의 “보리암”과 “독일마을”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여수에서 점심을 먹은 후, 향일암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남해지역은 시간관계상 가지 않고, 하동의 “이병주문학관”을 보고나서 통영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기로 했다. 여수세계박람회장 앞에서 버스를 탄 일행은 전망대에서 본 이순신광장과 돌산대교를 경유해, 점심을 먹을 여수의 식당으로 갔다. 이 식당은 간장계장이 주 메뉴이고 유명하다고 했다. 그러나 간장계장은 짜고, 먹을 것이 별로 많지 않으면서도 손과 입이 분주하므로 4명은 갈치조림을 시켰다. 대부분의 일행은 간장계장을 시켜먹었다. 음식을 직접 만들기도 잘하고, 맛을 아는 하서선생님이 갈치조림을 먹어보더니, 이 갈치는 국내산이 아니고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라서 맛이 적다고 했다. 이 정도로 큰 갈치는 국내산이라면 한 마리에 거의 10만원 가까이 할 텐데, 1인당 15,000원짜리는 어쩔 수없이 외국산을 쓰는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배가 고픈 탓에 밥을 반 그릇이나 더 먹었다. 점심을 먹은 일행은 버스로 돌산읍의 제일 남단에 있는 향일암주차장에 도착(14:30)했다. 버스기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금의 시간을 말하면서 가능하면 1시간 후에 돌아오라고 했다. 하서선생님은 전에 보았다며 주차장에서 쉬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급경사의 도로를 따라 향일암으로 향했다. 가는 길 양쪽 가게에는 급경사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특산물과 막걸리 등을 팔았다. 일행은 올라가는 길이라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향일암매표소”가 있는 곳에서 잠시 기다리자, 총무가 올라왔다. 이곳은 만65세 이상이면 무료여서 주민등록증을 내 보이고 그대로 올라갔다. 아마 65세 이하인 회원은 총무가 확인하여 입장권을 사서 올라왔으리라. 매표소에서 얼마 올라가지 않아서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급경사의 계단을 오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빙 돌아가서 거리는 멀지만 오르기 쉬운 길이었다. <향일암 매표소 풍경> 나는 망설이다가 급경사의 계단 길을 택했다. 일행은 둘로 나눠졌다. 계단을 따라 조금 오르니, 돌 거북이 위에 비신을 세운 것으로, 전서로 제목을 쓴 “여천돌산금오(麗川突山金鰲)”비(碑)가 있었다. 아마 돌산면은 전에 여천군에 속했던 것 같았다. 조금 더 계단을 오르자, “금오산향일암일주문(金鰲山向日庵一柱門)이 계단을 가로질러 서있었다. <향일암을 오르는 계단> <향일암의 "여천돌산금오" 비> <금오산 향일암 일주문> 조금 더 위로 오르자, 계단중앙에 불언(不言), 불문(不聞), 불견(不見)이라고 쓰고, 돌로 만든 스님이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것은 나쁜 말을 하지도 나쁜 말을 듣지도 나쁜 것은 보지도 말라는 것으로, 인도 “아메다바드”에 “마흐트마 간디”가 세운 “사바르마띠 아쉬람”에도 이와 같은 그림과 글씨가 있었다. <향일암을 오르는 계단에 만들어 놓은 "불언(不言)"> <향일암을 오르는 계단에 만들어 놓은 "불문(不聞)"> <향일암을 오르는 계단에 만들어 놓은 "불견(不見)"> 이어서 “등용문(登龍門)”이 보였다. 용문(龍門)은 중국 황하 상류 협곡의 이름인데, 물살이 매우 급하여 큰 물고기도 여기에 오르기 어려우나 한번 오르기만 하면 용(龍)으로 승천(昇天)한다는 전설이 있다. 따라서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입신양명의 길에 오르게 되는 것을 등용문이라 했다. 이처럼 등용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가는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성공에 이르고자하는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향일암 가는 길의 "등룡문"> 등용문을 지나 불이문을 경유하니, 향일암에 오르는 좁은 바위틈새가 있었다. 여수 “향일암(向日庵)”은 설악산 “봉정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의 하나이다. 전국최고의 일출장소인 향일암은 ‘해를 향한 양지’라는 뜻으로, 무성한 동백나무 숲과 아열대식물이 울창하게 펼쳐진 금오산 및 탁 트인 바다가 멋진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향일암 가는 길의 좁은 바위 틈 길> <향일암 가는 길의 좁은 바위 틈 길에서 추억을 남기고> 바위틈새를 지나니 바로 향일암 “원통보전(向日庵 圓通寶殿)”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곳은 금오산 기슭에 있는 급경사에 석축을 쌓아 지은 사찰이었다. 앞뒤에는 바위가 버티고 있어, 그 틈새를 빠져나가 조금 넓은 공간만 있으면 건물을 한 채씩 지었다. 같이 계단을 올라온 몇 명은 불자들이라, 원통보전에 들어가 절을 100배나하고 금일봉도 불전 함에 넣었다. 원통보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에는 “의상조사 법성게”가 쓰여 있었다. 원통보전 동남쪽에는 범종각(梵鐘閣)이 날렵한 몸매로 서 있었다. 또한 이곳은 높은 곳이라,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나무와 바다풍경이 장관이었다. <향일암 "원통보전" 전경> <향일암 "원통보전" 현판> <향일암 "원통보전" 내부 모습> <향일암 "원통보전" 문에 쓴" 의상조사 법성계"> <향일암 "범종각" 전경> <향일암 "범종각" 아랫부분 모습> <향일암 "원통보전" 에서 본 풍경 1> <향일암 "원통보전" 에서 본 풍경 2> 나는 원통보전 북쪽 바위 위에 웅크리고 있는 “삼성각(三聖閣)”을 찾았다. 그곳에는 스님이 상주하지 않고, 불상 없이 그림만 모시고 있었다. 삼성각 앞은 좁은 곳이고 아래가 급경사의 낭떠러지라 담장을 쳤는데, 담장 지붕 역할은 돌 거북이 여러 마리가 대신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오직 원통보전과 연결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 없는 막다른 곳이었다. <향일암 "삼성각" 현판> <향일암 "삼성각" 내부 모습> <향일암 "삼성각" 담장의 돌거북이> 향일암에서 유명한 “관음전(觀音殿)”은 원통보전 위쪽이며, 건물 중 제일 위에 있었다. 원통보전에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게 좁은 바위틈을 빠져나가야 했다. 길이 끊어진 것 같은데, 그곳에 다다르면 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관음전은 작은 건물이지만, 좁아서 전체를 찍을 수 없었다. 어쩔 수없이 현판과 관음전 안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았다. 건물 왼쪽으로 돌아가니, 연꽃 위에 돌로 만든 관음보살 전신상이 야외에 서 있었다. 관음전 앞의 비스듬한 바위는 좀 넓었는데, 여기는 “원효스님 좌선대”란 표지판이 있었다. <향일암 "관음전" 가는 길의 좁은 바위 틈 길 1> <향일암 "관음전" 가는 길의 좁은 바위 틈 길 2> <향일암 "관음전" 현판> <향일암 "관음전" 내부 모습> <향일암 "관음전" 옆의 "관음보살" 야외 전신 상> <원효대사 좌선대> 원통보전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이었다. 여기도 좁기는 마찬가지여서 겨우 건물 현판을 찍고, 안에 모신 천수관음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범종각 뒤에 있는 약수는 바위틈에서 나오는데, 옆에는 돌로 된 호랑이를 탄 산신령이 지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물을 떠먹는 바가지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고, 물이 미지근해서 어딘가 이곳 풍경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향일암 "천수관음전" 현판> <향일암 "천수관음전" 내부 모습> <향일암 "천수관음전" 에서 본 풍경> <향일암 "약수 터" 모습> 내려오는 길은 빙 도는 길을 택했다. 몇 명이 같이 내려왔는데, 그곳에도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용의 모습으로 만든 물길을 따라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받아먹는 약수가 있었다. 우리는 내려오다 커피를 사 마시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일행이 다 내려오지 않아 좀 기다리다 주차장을 출발(15:30)해서 이병주문학관으로 향했다. <향일암에서 내려오는 길의 약수>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다음 기회가 잇으시면 남해 보리암을 찾아 보세요
이성계가 약관 20에 장수로서 남해를 지킬때 이 보리암에 백일불공을 뎌렸다는 곳으로
산의 운치와 주변경관이 아름답습니다.
후세백작님 오랫만이네요. 잘계시죠.
남해 보리암에는 3번이나 갔다와서 이성계가 기도하던 곳도 가보았어요.
그러나 이번에 가려다가 못 가니 약간 서운하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