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마 1:1
본문 마1:1은 마태복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말씀이요, 신약과 구약을 연결시켜 주는 선언적인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다윗은 나름대로 메시야와 깊이 관련되어 있고 메시야를 강력히 예표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해 쓴 책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정말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인가에 대해 매우 궁금해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예언된 메시아임을 증거 하고자 마태복음을 썼습니다.
이를 증거하기 위해서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1장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제 구약에서 그들의 독특한 위치를 생각하며 그들이 메시야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본 족보의 목적이라고 할 때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브라함을 만민 중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함으로써 나타났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믿음으로만 이루어지게 되므로,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을 선택하심은 그로부터 이루어질 신앙 민족의 선택임을 뜻하며, 이 신앙 민족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언약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창17:6),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22:18)라고 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인 열왕의 혈통을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함은 바로 이러한 섭리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창세기 11장 후반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아브라함의 소명과 그의 믿음의 연단과정, 그리고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 바치기까지의 그의 일생은 우리에게 믿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인 성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구원이나 성숙한 믿음 역시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친히 양육하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친히 불러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불어넣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깊은 연관을 갖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이방민족에서 하나님께 선택된 자였지만 온 인류의 대표자로 세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류의 대표자로 이 땅에 오셨으며 친히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열국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3) 아브라함은 축복의 근원이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으로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축복의 근원이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역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순종하여 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왔고, 길이요 진리가 되셔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둘째 : 다윗의 자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1절), 즉 “왕으로서의 그리스도”가 본서의 주제입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마태는 족보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족보의 근간은 아브라함-유다-다윗입니다. 그리고 이 족보는 아브라함-다윗-예수그리스도로 이어집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 왕의 가계를 이어받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또는 '메시야' 즉 '구세주'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기름부음' 받은 사람은 세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 직분을 다음과 같은 섭리로 선택하셨습니다. 왕의 직분은 이스라엘 12지파중 유다지파에서, 제사장 직분은 레위지파에서, 선지자 직분은 어느 특정 지파 없이 선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 직분을 다 가지신 분으로서 그의 왕직은 육적 혈통인 유다 지파 다윗 왕의 자손이 되심으로써,
그리고 그의 제사장직은 레위(아론)의 반차를 좇지 아니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되심으로써(히7:11-17),
그의 선지자직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음으로써 소유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완성으로서 만왕의 왕으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오늘도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어떠한 자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품에 있어서 그는 메시야를 강력히 예표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이후에 메시야를 좀더 구체화 시킨 중간적 상징 인물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성품에 있어서 메시야를 잘 예표하였는데 성경에 나타난 많은 인물 중에 성품에 있어서 다윗 만큼 메시야의 성품을 잘 나타내 주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그는 완벽하지 못하였더라도 매우 의로왔으며, 신실했고, 평화를 사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 당시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그리워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그들은 불의하고 불공평한 이방의 통치와 진실이 사라져버린 암담하고 우울한 사회 속에서 다윗과 같은 성품을 소유한 메시야가 나타나 자기들을 다스려 주기 원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그처럼 의로우면서도 신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온유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기쁘게 여기셨으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니므이 마음에 합한 자였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린 자였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모형이었습니다.
3) 다윗의 왕국은 영원한 메시야 왕국을 예표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미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의 성품에 의한 정의롭고 공평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정치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건서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후손에게서 메시야를 날 것이라는 계시를 받음으로써 후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메시야의 왕국을 그가 다스리던 강력한 나라로 생각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말씀 속에서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이제까지 다윗의 왕국을 꿈꾸어 오던 사람들에게 본문은 전혀 새로운 영적인 메시야를 계시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제까지 사람들이 생각해 오던 대로 메시야가 다윗의 왕국과 같은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 왕국이 메시야 왕국을 예표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말하는 구속사와 세계사의 주제는 다윗이나 그의 왕국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이라는 것이 본문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예언과 약속 속에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때가 되매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셋째 :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1) 생명의 고리
출산을 의미하는 '낳고'라는 낱말은 사람의 이름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고리'로서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손이 되고 민족이 되고 인류가 되는 것은 이 생명의 고리에 의해서입니다.
본문의 족보 역시 이 고리에 의해 연결되어졌습니다. 거기에는 영광스러운 이름과 욕된 이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리는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욕망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로는 율법에 합당하게, 때로는 율법을 초월해서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동원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출산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출산의 고리이며,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2) 하나님의 목적
이렇듯 생명의 고리에 의해 이어져 내려 생명의 맥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마태복음의 족보의 마지막에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족보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있는 것이며, 이는 인류 역사가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족보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있으며, 모든 생명(인류)은 구주를 만나는 데 그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죽음에서 태어나 생명(구주)을 얻는 것, 이것이 족보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삶의 의미이며 하나님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