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말이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때이다. 겨울빛은 완연하고 묵은해에 대해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본능처럼 가고 싶은 곳이 있다. 해넘이와 해돋이 장소다. 달리 말해 일몰과 일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많이 봐서 식상도 할 법한데, 한해를 보내면서 어김없이 해의 지고 뜨는 장관을 보고 싶은 마음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가보다.
순천만으로 발길을 돌렸다. 순천만은 고흥반도와 여수반도의 시작 지점으로, 동편으로는 해룡면 와온마을부터 서편으론 별량면 구룡마을까지 해안선 길이만도 100리가 넘는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서로 감싸 안은 형상이어서 마치 거대한 호수같이 평온하다. 무엇보다 순천만은 일몰과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인 곳이다. 여기에다 드넓은 갈대밭과 갯벌, 그 사이로 날아오르는 수많은 철새의 날갯짓, 천연기념물 흑두루미의 한바탕 춤사위 모습은 자연이 그려내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 속에 서면 우리는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묻히고, 자연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
때마침 순천만에서 올해 12월부터 '흑두루미 새벽 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순천만에서 월동하는 흑두루미를 포함한 겨울 철새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다.
'겨울 진객' 머무르는 한반도 유일 월동지
우아한 자태, 황홀한 군무에 감탄사 연발
용산전망대서 바라본 일몰 풍경 장관
광활한 갈대밭 사이 은빛 수로 반짝반짝
거차마을·화포해변은 뜨는 해돋이 명소
■고고한 흑두루미의 날갯짓에 감탄사 연발 1991년 어느 날, 순천의 한 초등학생이 들판에서 다리를 다친 흑두루미를 발견했다. 이 학생은 자신의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선생님과 함께 다친 흑두루미를 학교 새 사육장으로 데려갔다. 치료도 해주고, 먹이도 주면서 정성껏 보살폈다. 하지만 흑두루미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학생은 졸업하고 말았다. 이후 흑두루미는 학교 학생들에게 '두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다른 평범한 새처럼 그저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새의 존재로 사육될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2001년이 되었다. 환경보호단체 회원들이 우연히 학교 새장에 갇혀 지내는 흑두루미를 발견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두리 귀환 프로젝트'가 시작됐던 것. 마침내 두리는 1년여의 재활과정을 거쳐 다른 흑두루미 친구들과 함께 고향인 러시아 시베리아로 돌아가게 됐다.
"두리 귀환 프로젝트는 순천만 습지 복원 사업의 불씨가 됐습니다. 순천과 흑두루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죠. 흑두루미는 2007년 순천의 시조로 지정될 정도로 이젠 순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습니다." 순천시청 황선미 주무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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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활동 중인 흑두루미 무리. 순천시청 제공 |
흑두루미는 전 세계적으로 15종, 1만 2천여 마리만이 관찰되고 있을 정도로 귀한 존재다. 우리나라에선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흑두루미는 순천만에서 그 개체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근년 들어 4대강 개발사업 여파로 다른 곳에서는 흑두루미의 자취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최근 들어 흑두루미들이 시베리아에서 서해안을 거쳐 순천만으로 이동하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사실상 순천만이 한반도에서 흑두루미의 유일한 월동지가 된 셈이다. 지난해에는 모두 871마리의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검은목두루미가 순천만에서 월동했다. 올해의 경우 지난 10월 22일 92마리가 처음 날아들었다. 지금까지 흑두루미 746마리와 재두루미 10마리, 검은목두루미 1마리가 관찰됐다. 그 개체 수는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날개를 펴면 2m 가까이 되는 커다란 몸집의 흑두루미들이 우아한 날갯짓으로 유유히 하늘을 나는 모습이 순천만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얀 머리와 목을 제외한 몸 전체가 검은색을 띤 흑두루미는 정수리에 연한 붉은색 무늬를 한 화룡점정의 자태를 뽐낸다. 암수와 새끼 두 마리 정도의 가족이 무리 지어 생활한다. 수명은 25~30년, 해마다 2개 정도의 알을 낳아 기른다. 일부일처를 고집해 원앙과 함께 금실 좋은 부부의 상징으로 불린다. 행운과 행복, 가족애의 상징이기도 하다. 밤에는 갯벌과 같은 사방이 트인 안전하고 넓은 장소를 잠자리로 삼아 집단으로 잠을 자고 낮에는 들판에서 먹이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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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탐조 프로그램 진행 모습. 순천시청 제공 |
'겨울 진객' 흑두루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순천만 새벽 탐조 프로그램은 내년 3월까지 4개월간 이어진다. 매주 일요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된다. 참가비는 1인당 1만 원. 매회 선착순 20명을 모집한다. 전문 해설사가 인솔해 자연생태관에서 걸어서 탐조대로 이동해 탐조활동과 먹이 나누기 체험을 하게 된다. 지난 14일과 21일 두 차례 진행됐다.
"새벽 탐조에 참가하면 통제를 받기 때문에 대개 처음에는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주 가까이서 망원경으로 흑두루미의 모습을 보고 나면 모두 감탄사를 남발합니다. 어떤 분들은 행운의 상징, 흑두루미를 봐서 내년에는 운이 좋을 것 같다며 행복해합니다." 4년 전부터 흑두루미에 푹 빠져 전문해설사가 된 강나루(56)씨는 "흑두루미는 매우 예민해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해가 뜨기 직전 잠에서 깨어나 날기 시작하는 모습을 탐조대에서 감상하게 되면 황홀하기까지 합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탐조대에선 운이 좋을 때는 100~150m까지 접근해 오는 흑두루미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흑두루미는 긴 다리를 내디디며 펼치는 고고한 몸짓이 압권이다. 순천만에 가면 예로부터 '학'으로 불리며 '고고하다'는 형용사를 지닌 흑두루미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일몰과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는 곳, 순천만
해 질 녘 갈대밭과 갯벌, 수로, 잔잔한 바다를 검붉은 도화지로 물들이는 순천만의 일몰과 일출 풍경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순천만 일원을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하는 한 장의 거대한 색 도화지로 만들어 버린다. 멋진 일몰과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은 순천만이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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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 순천시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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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해변에서 본 일몰. 순천시청 제공 |
일몰 모습은 용산전망대와 와온해변에서 볼 수 있다. 대대포구에서 갈대숲 탐방로를 지나 용산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순천만의 해 질 녘 풍경은 유명하다. 기울어진 붉은 햇살 아래 갈대밭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S'자로 구불거리는 수로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때마침 겨울철새들이 비행하고, 아래로 작은 배 하나가 물살을 가르며 지나게 되면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지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해룡면 와온해변은 바로 앞바다에 떠 있는 사기도라는 솔섬이 일몰 배경을 제공하면서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해변을 거닐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일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올해의 경우 오는 31일 오후 1시부터 순천만 해넘이 행사가 와온해변 행복마을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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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해변 일원을 장식하는 일출 장면. 순천시청 제공 |
일출 장소로는 순천만 서쪽 해안에 위치한 별량면 학산리 화포해변과 마산리 거차마을이 있다. 동해안의 어느 바닷가 못지않게 멋진 해돋이를 구경할 수 있다. 수평선 위로 불끈 치솟는 동해안의 일출만큼 장엄하지는 않지만 갯벌과 수로, 하늘을 붉은빛으로 찬찬히 물들이며 해가 떠오르는 모습은 훨씬 낭만적이고 서정이 넘친다. 거차마을의 일출은 광대한 갯벌과 해수면을 온전하게 돋보이도록 한다. 거의 평면상으로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거차마을에서는 매월 음력 보름 때가 되면 서쪽으로 일몰을 보면서 동쪽으로는 월출을 거의 동시에 볼 수 있다. 여기에다 다음날 일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해와 달이 만들어내는 3가지의 장관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거차마을이다. 순천만의 해맞이 행사는 화포마을에서 오는 31일 오후 5시부터 펼쳐진다. 송대성 선임기자 sds@busan.com
TIP
■교통편 자가용을 이용하면 남해고속도로 광양 IC에서 나와 목포 순천만IC 방면으로 향한다. 이어 세풍교차로서 우측으로 2번 국도를 타고 가다 영암순천고속도로 순천만 IC에서 빠져나와 순천만 표지판을 따라간다. 인월사거리를 만나 좌회전, 4~5분 거리를 따라 순천만길을 달리면 순천만 생태공원 주차장이 나온다.
시외버스를 이용할 경우 2시간 30분가량 소요.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1577-8301)을 이용하면 된다. 오전 6시 30분 첫차, 오후 10시 막차 출발, 요금 1만 1천700~1만 7천100원. 순천종합버스터미널(061-744-8877)에서 순천만행은 66, 67번 버스를 타면 된다. 25분가량 걸린다.
■먹을 곳
순천만자연생태공원 바로 앞에 음식점이 모여 있다.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강변장어집(061-742-4233)을 추천한다. 짱뚱어탕(사진)과 짱뚱어전골, 양념장어정식 등을 주메류로 내놓는다. 특제 육수를 넣어 추어탕처럼 끓여낸 짱뚱어탕은 방아잎과 들깨를 넣어 비린내가 없고 구수하며 국물맛이 시원하다. 3~4인 기준 4만 원. 순천만 흑두루미가든(061-741-7544)과 순천만 정문식당(061-746-1800) 등도 걸쭉하게 끓인 짱뚱어탕이 일품이다. 1인당 1만~1만 2천 원.
■잘 곳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한옥형 유스호스텔인 에코촌( 061-722-0800)이 있다. 예약필수. 4만~5만 원.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앞에는 순천만 풍경, 순천만 정문펜션 등 민박과 펜션이 많다.
■여행 문의
탐조 프로그램 참가신청은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홈페이지(www.suncheonbay.go.kr)에서 하면 된다. 문의는 순천시 순천만보전과(061-749-6083), 순천만자연생태공원 (061-749-6052), 관광진흥과(061-749-3328). 송대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