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감상 / 김유태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김태형
며칠 전 작은 구름 하나가 지나간 곳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풀을 뜯으러 가고 있습니다 몇 방울 비가 내린 자리에 잠시 초원이 펼쳐지겠지요 이름을 가진 길이 이곳에 있을 리 없는데도 이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물어봅니다 이름이 없는 길을 한 번 더 건너다보고서야 언덕을 넘어갑니다 머리 위를 선회하다 멀찌감치 지나가는 솔개를 이곳 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또 물어봅니다 언덕 위에 잠시 앉아 있는 검독수리를 하늘과 바람과 모래를 방금 지나간 한 줄기 빗방울을 끝없이 펼쳐진 부추꽃을 밤새 지평선에서부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별들을 그리고 또 별이 지는 저곳을 여기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어봅니다 어떤 말은 발음을 따라 하지 못하고 개울처럼 흘러가는 소리만을 들어도 괜찮지만 이곳에 없는 말을 내가 아는 말 중에 이곳에만 없는 말을 그런 말을 찾고 싶었습니다 먼저 떠나는 게 무엇인지 아름다움에 병든 자를 어떻게 부르는지 그런 말을 잊을 수 있는 곳으로 그런 말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뿌리까지 죄다 뜯어먹어 메마른 구름 하나가 내 뒤를 멀찍이 떨어져 따라오고 있습니다 지나온 길을 나는 이미 잊었습니다 누군가 당신인 듯 뒤에서 이름을 부른다면 암갈색 눈을 가진 염소가 언덕을 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김태형 육필시집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2013) .......................................................................................................................... 다르게 살고자 하는 자세는 결국 타인이 발견하지 못한 꽃 한 송이를 자신의 심부에서 틔우는 일일 것이다. 이름이 없는 길을 건너가고 이곳에 없던 말을 찾으면서 모든 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시인은 그걸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데, 자기로 존재하려는 모든 몸짓과 언행은 성패에 관계없이 아름답다. 순수한 광기에 매료되어 스스로 고독해진 그림자는 아름답다. 김유태 (시인, 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