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불사(智異山七佛寺) /전통사찰
- 경남 하동군 화계면 범왕리
가락국 시조왕(김수로왕) 60년(101) 왕자 일곱이 가야산에서 이곳으로 와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수도.
가락국 시조왕 62년 8월 15일 일곱 왕자가 동시 성불(成佛)함.
신라 경덕왕(742~764)대 옥보고(玉寶高)가 이곳서 거문고를 전공, 50년만에 신조(新調) 30곡을 작곡, 속명득(續命得)에게 전함.신라 효공왕(897~911)대 담공선사(曇空禪師)가 아자방(亞字房, 일명 碧眼堂)을 건립하였다.
『칠불선원사적기』에는 신라 지마왕 (祗摩王, 112~134) 8년 己未(119)에 건립하였다고 함.
고려 때는 정명선사(靜明禪師)가 칠불사에서 수도함.
1534년(조선 중종 29) 西山(休靜)大師가 칠불암(七佛庵)에 와 대웅전을 번와(飜瓦/기와를 새로 깔음)하고 낙성시(落成詩) 지음.
光海君(1608~1622)대 서산대사 법제자 부휴선수( 浮休堂 善修)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옥(寺屋)을 보수. 73세로 입적함.
1828년(순조 28) 대은선사(大隱禪師)가 영암 도갑사에서 스승인 금담(錦潭)과 칠불사에 와서 『범망경(梵網經)』에 의지하여 용맹기도를 하여 서상수계(瑞祥受戒)하여 해동계맥을 수립하였다.
순조 30년(1830) 보광전(대웅전), 약사전, 설선당, 벽안당아자방), 미타전, 칠불각, 보설루, 요사 등이 소실(燒失)된 것을
1831년 대은과 금담이 전국 사찰의 협조로 복구함.
1948년 12월 여순 사건과 6.25 전란으로 국군이 불태워버림(작전상). 단지 아자방 온돌의 원상(原狀)만 남음.
1962년 10월 향산(香山. 속명 강성래/姜聲來)이 칠불사 주지가 됨.
1965년 2월 통광(通光. 속명 우춘성/禹春成)이 아자방 위 칠불각터에 기도실을 짓고 칠불사 복원을 위한 천일 기도를 시작함.
1965년 7월 혜광(慧光. 속명 최정석/崔正石) 주지로 옴.
1966년 2월 문교부 문화재관리국 영선계(營繕係) 공무원이 아자방 실태 조사. 현지를 답사함.
1967년 3월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에서 칠불암을 칠불사로 승격(昇格)함.
1971년 4월 통광(通光)이 주지로 부임함.
1976년 12월 아자방지(亞字房址)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44호로 지정함.
1978년 문수전을 시작으로 대웅전, 설선당, 요사채를 복원함. 1983년 아자방을 복원함.
1994년 초의선사(草衣禪師) 다신탑비(茶神塔碑)를 건립. 1995년 칠불사 사적비(寺蹟碑)를 건립. 1995년일주문 공사를 착공, 1996년 일주문 건립. 2009년 선다원(禪茶院) 건립함. 경내에 부휴선수선사의 부도(승탑)이 있다.
(칠불사 홈페이지 칠불사 연혁을 가지고 와 내용을 정리함)
칠불사는 오랫동안 내게 숙제였다. 대성골도 여러 차례 들어갔지만 가까이 있는 칠불사를 이제 찾아 든다.
칠불사는 가야 불교와 인연한 절로 내겐 마지막 절이다.
가야 때 불교가 들어 왔다. 남방 불교 전래설, 이 주장은 아직까지 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할 자료나 유물이 없다.
장유화상이니 김수로왕의 왕자 열 명, 공주 두 명, 왕자 일곱은 외삼촌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 동시에 성불하였다.
김해 은하사와 장유사는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
김해 모은암, 자은암(현재 존재하지 않음), 밀양 부은암 등은 수로왕이 지었거나 아님 아들인 거등왕이 지었다.
밀양 만어사도 수로왕이 건립하고 왕자들과 인연이 있다.(삼국유사 내용, 고려 때 창건하였다고 밝히고 있음)
사천 와룡사(지금은 절터만 있음)도 일곱 왕자와 장유화상 전설이 있다.
장유화상과 왕자, 공주 등이 나타나는 기록이 언제 만들어졌을까? 내가 학자가 아니니 추적하기 어렵다.
만들어진 이야기는 많다. 오랜 세월 때가 묻어 사실인 것처럼 받아졌을 뿐이다. 이게 내 생각이다.
초의선사다신탑비(草衣禪師茶神塔碑), 일주문 앞에 있다.
초의선사탑비 옆에 오래된 부도 한 점이 있다. 상부는 근래 만들어 올린 것 같아 보인다.
문수동자탑, 칠불사 홈페이지에 자세한 이야기가 있다.
일주문, 1996년 건립함.
오른편, 제월당 통광대선사 비
왼편, 칠불사 사적기 / 가야산 동곡당 일타가 짓고, 청관거사 윤효석 쓰고, 보광거사 김한열 새기다.
왼편 두 기는 조선시대 부도 같고, 오른편은 제월당 통광대선사 부도이다.
부휴 선수선사 부도를 보지를 못 하였다. 들리기 전 이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왼편 백암 성총(1631~1700)선사 부도이다.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운데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 않다. 이끼를 없애고 본다면 글을 읽을 수 있겠다. 벽안 각성 부도일까?
복원한 아자방을 올해 안에 볼 수 있을까? 공사기간은 벌써 지났지만 아직 공사 중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공사차벽에 붙은 사진을 찍었다.
제월당 통광대선사
1940년 의신마을에서 출생, 범어사 덕진 여환을 은사로 출가, 명허에게 사미계를 받음. 범어사 동산에게 구족계를 받음.
동국대학교 역경원 수려, 탄허대선사 강맥을 이어 받음.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칠불사 복원에 공덕을 드림.
쌍계사 주지와 승가대학장 역임, 칠불사 회주와 주지 역임. 2013년 9월 칠불사 아자방에서 입적.
보설루엔 그림 전시회를 하고 있다.
아자방 복원이 끝나면 다시 칠불사에 와야겠다. 아자방도 보고 부휴 선수선사 부도도 꼭 봐야겠다.
2023년 5월 11일 오후
왼편, 칠불사 사적기 / 가야산 동곡당 일타가 짓고, 청관거사 윤효석 쓰고, 보광거사 김한열 새기다.
사적기엔 장유화상과 왕자 열 명과 공주 두 명 이야기가 '삼국유사' 기록에 따른다고 적혀져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삼국유사'엔 허왕후가 아유타국에서 왔고 신하 두 명 이름이 적혀져 있을 뿐이다.
장남은 왕위 계승, 아들 둘은 김해 허씨 시조, 아들 일곱은 외삼촌을 따라 출가하였다는 기록은 언제부터지 나는 모른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가야에 왕명으로 절이 지어진 것은 왕후사로 8대 질지왕 (재위 451~491)때이다.
왕후사 건립 500년 뒤 장유사가 지어졌다. 가야 관련 불교 전래와 사찰 건립 시기 등을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너무 많다.
제월 통광대선사 임종게(臨終偈)
生本無生何好生(생본무생하호생)
滅本無滅何惡滅(멸본무멸하오멸)
生滅好惡寂滅處(생멸호오적멸처)
法身光名遍法界(법신광명변법계)
살아도 본래 삶이 없는데 어찌 삶을 좋아 할 것이며
죽어도 본래 죽음이 없는데 어찌 죽음을 싫어 할 것인가
나고 죽음과 싫고 좋음이 적멸한 곳에
법신광명이 법계에 두루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