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그리고 느리게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수원시미술전시관 마당 한켠에 자리 잡은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인데요, 이곳은 단순한 책방의 개념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문화공간이자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의 이야기를 수원미술전시관 기획운영팀장 조두호님과 큐레이터 김상미님께 들어보겠습니다.
Q.<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은 2009년도에 경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배영환 작가의 ‘내일을 여는 책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경기도 지역에 총 5개의 작은 이동식 도서관이 설치된 것인데, 그 중 1호점인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이 수원시미술전시관 앞마당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난 4년간 운영을 평가 받아 얼마 전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소유권을 양도받은 상태입니다. 현재 수원시의 후원을 받아 수원미술전시관 기획팀에서 기획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책방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에이블 아트(able art)로 특화된 공간이자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참여 가능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책방을 다양한 네트워크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 에이블아트 : Disable(불가능성)이라는 단어만 들어온 장애인들에게 예술 활동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able(가능성)에 도달하게 하여 표현된 예술세계 및 예술장르를 말합니다.
Q. 도서관의 이름을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나요?
바쁘게 돌아가는 동시대 생활에서 찌든 우리에게 조금은 천천히 느리게 생각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또한 에이블 아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는 공간임을 나타내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의 일상의 속도가 무서우리만큼 폭력적인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느리게 읽는’이라는 수식어가 탄생했습니다.
Q.<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은 일반인에게도 평일 운영과 상시프로그램을 통해 개방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전문안내자에 의해 운영되며 토요일 수화교실, 일요일은 영화상영(손끝시네마의 제작 영상)이 진행됩니다. 평일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자원봉사자에 의해 개방되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주로 소모임이나 동아리에게 예약을 접수받고 있으니 많은 시민들이 이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지난 11월, 손끝을 통해 글을 읽고 세상을 보는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만드는 단편영화제작프로그램인 ‘손끝 시네마’가 마무리되고 2014년도 새 프로그램을 준비 중입니다. 관심 있는 장애인, 비장애인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라고 있습니다.
Q.시각장애인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2013 손끝 시네마 프로그램 처음 공간을 기획할 때부터 지금까지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 적은 없습니다. 예술점자책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장애청소년들과 예술가가 협업하는 회화, 조형물, 설치예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했었습니다. 지체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 등 모든 장애의 구분 없이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지난 4년간 진행됐었는데요, 그러던 중 ‘많은 예술 분야를 경험할 때, ‘본다’라는 행위가 불가능한 시각장애인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불가능에 도전하는 ‘에이블 아트’의 가능성을 믿고 무모한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올해 시각장애인 단편영화제작프로그램인 ‘손끝시네마’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Q.<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책방에서 진행된 모든 프로그램이 에이블 아트를 구현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이기도 합니다. 예술작품의 결과 보다는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만드는 과정에 중점을 두게 됩니다. 예술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자는 거창한 슬로건 따위는 없습니다. 예술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비장애인이 바라보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불편한 시선이 느리더라도 한걸음 좋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의 존재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요?
Q.<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의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장애인을 위한 이벤트 성격의 일시적 교육프로그램이나, 전시 등을 반복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성과위주의 운영이라 생각합니다. 기존에 진행했던 인식개선사업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자 합니다. 비장애인이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개선뿐만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가 예술을 매개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획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 중 입니다. 2013년에 시각장애인이 영화감독이 됐다면, 다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장애로 그어진 경계를 허무는 작업, 모두가 함께 소통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지향적 에이블 아트를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2 힐링캠프 촉촉 프로그램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그리고 느리게 책을 읽는 분들의 손을 잡아주는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
장애인들에게는 더 많은 문화예술 활동의 기회를, 비장애인들에게는 편견을 없애주면서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느리게 읽는 미술책방>의 활동이 더 많은 지역으로 퍼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