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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빛나는 꿈의 계절이길
정신과 의사인 이나미 선생의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한국인을 괴롭게 만드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분석한 책입니다. 책에 의하면 해마다 3, 4월이 되면 정신과 환자들의 외래방문이나 입원건수가 급증한다고 합니다. 환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생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일에 있어서 정신적인 에너지가 많이 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을 예로 들자면 4월은 부활의 절기입니다. ‘부활과 함께 삶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면서 이전에 느끼지 못하던 삶의 희열을 맛보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은 굴뚝같은데 막상 새로워지려는 실천은 하기가 싫고, 이런저런 핑계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건 아닐까요. 혼란스러운 정치와 위태로운 경제와 외교 등로 새로움을 향한 기지개가 잘 켜지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4월은 새 출발의 꿈으로 가득찬 계절입니다. 박목월 시인은 노래합니다.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부디 4월은 빛나는 꿈의 계절, 부활의 계절이길 두 손 모아 빕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그리스도인의 이름
서울에 아주 유명한 떡볶이 골목이 있답니다. 골목 첫 번째 집은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입니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이지요. 세 번째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입니다. 그렇게 떡볶이집이 즐비한 맨 끝에 허름한 집이 있습니다. 그 집은 ‘이 골목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집’입니다. 내로라하는 거창한 이름에 결코 주눅 들지 않는 참 당당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 2:9, 새번역) 사도 베드로가 불러준 그리스도인의 이름입니다. 예루살렘 함락 후 그리스도인은 로마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 나그네처럼 떠돌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거대한 제국의 힘 앞에 의기소침한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당당한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택하심 받은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며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 이름답게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기쁨의 선택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영국 언론인 다니엘 튜더는 이 책을 통해 지난 50년 동안 한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분석합니다. 불가능의 기적을 이루고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도 정작 국민 안에는 만족감과 기쁨을 잃어가는 정서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 기뻐할 수 있을까요. 부활절부터 성령강림절까지의 50일을 ‘기쁨의 50일’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자들은 그 사실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고 노래했던 하박국 선지자나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했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기쁨을 회복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기뻐할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기쁨을 선택하고 누리십시오. 기쁨이 습관이 될 것이고, 점점 기뻐할 일이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삶의 변화는 습관적인 일상의 선택들을 통해서 옵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공동체를 위한 적용
큐티나 성경공부를 할 때 주로 ‘개인적으로 적용하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용하는 개인적 적용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개인적(personal), 실재적(practical), 실천 가능한(possible) 적용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개인에게 주신 책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와 신약 교회에게 주신 책입니다. 모세오경은 단순히 개인의 윤리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주셨습니다.
신약성경도 한 교회에 주신 책이 아니라 여러 교회가 성경을 읽고 적용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저서 ‘기독교 교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적용되지 않으면 아직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개인에게만 적용돼야 하는 책이 아닙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적용해야 합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 속에서 이제는 개인적 적용을 넘어 공동체적 적용을 배워가야 합니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부흥의 길을 걷다
개척교회에서 사역하던 시기에 부흥을 원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부흥의 역사가 크게 일어났던 사도행전을 집중적으로 묵상했습니다. 묵상하다 보니 초대교회 안에 세 가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입니다. 교회가 세워질 때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세워졌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할 때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는 금과 은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부활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더 나아가 부흥을 위해 제자들과 교회가 갖춰야 할 두 가지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씀의 흥왕은 교회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선교와 구제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이 시대를 보면서 성경이 원하는 부흥을 하려면 리더는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교회가 되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으로 성숙해질 것입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성장하는 사람
누가 행복한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성장은 단순히 능력치의 확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신선함을 가져다주는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이 하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성장을 고려할 때 자신이 무엇인가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자신의 학습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학습 대상으로 인식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정작 자신이 성장해야 할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착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장을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가 허사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성장시켜야 하는가’와 ‘성장시키는 나만의 방법과 실행 도구가 있는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지하게 ‘나는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인가’라고 질문하면서 해답을 찾아간다면 보다 나은 나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내 삶 속의 부활
지난 부활주일,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부활인사를 받았습니다. “인간은 죽는다. 혼자 죽는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안 죽는 사람 없다. 그러므로 죽음 그것은 나의 것이다.”
부활절 아침에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궁금해졌습니다. 죽음이 자기의 것이라면 다시 사는 부활도 자기의 것인데, 왜 죽음은 구체적인 현실로 받아들이는데, 부활은 그다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부활이라는 단어는 즐겨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패자부활전의 부활입니다. 이미 탈락이 기정사실화한 패자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성경이나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과는 꽤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부활이 삶 속으로 성큼 들어온 느낌을 줍니다. 작년부터 우리 교회는 부활절에 ‘부활계란’ 대신 ‘부활꽃’을 선물로 드립니다. 활짝 핀 꽃을 받으며 모든 성도들이 기뻐합니다. 부활절을 뜻하는 영어단어가 이스터(Easter)입니다. 해뜨는 곳이라는 어원을 가졌습니다. 목사로서 바람은, 꽃이 피든 해가 뜨든 부활이 삶 속에서 새 생명을 추구하는 진리로 자리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렵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나는 신이 아니다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행 14:11, 새번역)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한 말입니다. 바울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그에게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는 큰소리로 일어나 걸으라 말했지요.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두 사도에게 제사까지 드리려 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행 14:15, 새번역) 바울이 그들에게 외친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이 사도들을 신이라고 생각하면 완전히 신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복음 전파도 훨씬 수월하게 성공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바울은 옷을 찢으며 군중 가운데 뛰어들어가서 나는 신이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까닭은 사람을 신이라고 믿는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나는 신이다’ 하고 말하는 자는 한낱 괴물 짐승에 불과할 뿐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부활의 능력
부활초(復活草)를 아십니까. 부활초는 다년생 가시목으로 평소에는 완전히 말라버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식물입니다. 공처럼 몸을 말고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다니다가 물을 만나면 몸체가 펴지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립니다. 부활초는 겉으로는 완전히 죽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물을 만나거나 비가 오면 다시 살아납니다. 그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무려 100년이 넘어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부활초 안에 감춰진 생명의 씨앗과 수분이 주는 생명이 만나니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 안에 생명의 씨를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생명의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 몸은 변화돼 다시 살아나게 될 겁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비를 기다리는 부활초처럼 믿음과 인내로 끝까지 참으십시오. 100년이 되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초처럼 사망의 승리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살리실 줄 믿습니다. 이런 부활의 능력, 생명의 소망을 갖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힘들지만 영광스러운 인생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고통 없는 사회’에서 오늘날 사회를 ‘좋아요의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SNS의 좋아요는 단순히 소셜 미디어의 표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고통이 줄 수 있는 모서리나 귀퉁이, 갈등이나 모순을 없애야 하는 사회이며 고통이 성숙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회”라고 통렬히 비판합니다.
팀 켈러 목사도 현대인은 어려움 앞에 더 무기력한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서구 문화가 가져온 세속적 관점 때문이라 말합니다. 행복을 안겨주는 삶을 세상의 물질세계만으로 축소해 생각하기 때문에 고난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부분 정도로 취급됩니다.
신앙이란 힘들지 않은 삶이 아니라 힘들지만 영광스러운 삶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고난과 순종을 통해 온전하게 되셨습니다. 힘들지 않은 인생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힘들지만 영광스러운 소명의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고상섭 목사(그사랑교회)
그게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삶’은 아닐 것 같은데요!”
샬롬! 지난밤 평안히 잘 쉬셨는지요? 3월 28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약 없이 고혈압을 치료하는 비법’ 그 세 번째는 ‘허브 섭취’입니다. 파슬리, 바질, 계피와 같은 허브는 ‘혈액동맥을 이완하고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서, 항산화제와 비타민 C가 풍부하다고 하네요.
세상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회사에 갈 때 즐겁고 재미있으면 입장료를 내야 할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입장료를 내는 대신 월급을 받습니다. 그 댓가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 회사에 계속 다니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일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일에 질질 끌려 다니는 피해자’가 되고 말 겁니다. 하지만, ‘내가 해주는 거다’라고 마음먹고서 ‘하기 싫은 일’을 빨리 해치우면, 나머지 시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여행을 다닐 수 있고, 원하는 취미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에게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스스로를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낍니다. 그런데, 그럴 때도, ‘그 사람이 원해서 웃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상황을 원만하게 넘기기 위해서 웃어주자!’라고 마음먹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의 주체(主體)를 나 자신으로 가져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회식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상사의 농담’에 ‘죽어도 웃어주는 짓은 못하겠다.’는 환자에게도,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까짓것 웃어주면 어때요.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결코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사 때문에 화를 내고, 상사를 볼 때마다 불편해하고, 그에 맞춰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데 당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게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삶은 아닐 것 같은데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사의 농담에 웃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비굴한 느낌을 쉽게 지울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사를 탓하고만 있으면, 문제가 더 꼬일 뿐입니다. 설령 그 사람 때문일지라도, 문제의 원인을 확인하는데 치중하지 말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것을 해결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 정신분석 전문의)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일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월급이나 진급 때문에,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면 ‘먹고사는 일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억지로 마지못해서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면, 그것처럼 비극적인 일은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글쓴이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 의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로 당신이 원하는 삶은 아닐 것 같은데요!’라고, 내담자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일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물맷돌)
[내 백성에게도 온갖 선물을 풍성하게 주어, 모두가 만족한 인생을 살도록 하겠다. 내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보장해주겠다.(렘31:14중하, 현대어) 너희가 단순히 내 말에 복종한 것을 가지고, ‘너희 자신이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너희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했기 때문이다.(눅17:10,현대어) 내가 이들을 위하여 내 자신을 바치는 것은, 이들도 진리를 위해서 자신을 바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17:19,현대어)]
전투는 ‘송이’가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됩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은 ‘아침편지’를 시작한지 3333번째가 되는 날입니다. 현재, 휴대폰 18대를 가지고 3천여 독자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느 권사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소개함으로써 오늘의 ‘아침편지’를 시작합니다. “목사님, 아침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이 청주의 작은 교회 성도들, 30명 넘는 친정식구들, 20명 안 되는 시댁식구들, 30명쯤 되는 저의 단톡방 식구들까지 해서 100명은 족히 됩니다. 매일아침 저는 토스만 하는데, 감사인사는 제가 받습니다. 늘 수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제 자식이라도, 모든 순간이 사랑스럽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마냥 평화로운 순 없습니다. 귀여움이 한창 물오른 21개월 ‘송이’와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전쟁까지는 아니어도 전투에 가까운 장면이 많습니다.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면서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투는 송이가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됩니다. 아내와 저는 대체로 송이보다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잠에 취한 상태로 하루의 초장부터 무참히 패배합니다. 어떤 날은 새벽 6시쯤 송이가 깨자마자 외칩니다. “맘마! 맘마!” 사이렌 소리인지, 아침밥을 달라는 소리인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간혹 제가 식사준비를 더디게 하거나 늦어지면, 송이는 이내 심통을 부립니다. 가끔은 ‘이유 없는 잠투정’이란 생각도 듭니다.
‘어린이집 등원준비’는 아이를 가진 대부분의 부모들이 맞닥뜨리는 전투상황일 겁니다. 기분 좋은 날이면 곱게 집을 나서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추운 겨울날, 대뜸 ‘외투를 입지 않겠다거나 양말을 신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속이 터집니다. “밖은 추워, 너 지금 콧물 흘리고 있잖아?” 결국 우리는 아이를 울리고 맙니다. 억지로 내복과 외투를 갈아입히고 등원시킨 날이면, 오전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고, 이내 자괴감이 듭니다. ‘만일 내가 복직하게 되면, 이처럼 아이가 떼를 써서 출근이 늦어질 땐 어떻게 하지? 예전처럼 맑은 정신으로 일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오전에 하루치 에너지를 이미 다 쓴 날이면, 두 가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우리 아이는 왜 저럴까?’ 그 와중에도 ‘자아를 잃지 않겠다.’고 애쓰는 저 자신도 싫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아빠들과의 단톡방, 전 국민의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유튜브 채널 등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이 육아전투가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혹시, 저처럼 육아전투 중에 있다면, 아무쪼록 쉽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출처; 샘터, 손 현 / 작가)
제가 가끔 고백하는 내용입니다만, 저는 한 때 ‘가족이 없는 가톨릭의 신부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한창 피가 끓어 넘치는 젊은 시절, 가족이 없는 신부들은 가족걱정 하지 않고 정부를 맘껏 비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키우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어느 정도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톨릭의 신부들도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이를 양육하면서 부모인 우리 자신이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스승노릇을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를 양육하면서 이것저것 깨닫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물맷돌)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여호와를 받들어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너희에게 가르치겠다.(시34:11,현대인) 부모들에게도 한마디 당부하겠습니다. 자녀들을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또, 잔소리를 늘어놓아 반항심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품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훈계와 조언과 충고로 키우십시오.(엡6:4,현대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도 괜찮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3월의 네 번째 주말아침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약 없이 고혈압을 치료하는 비법’으로 그 두 번째는 ‘대시식단 4원칙’인데, 그건 이렇습니다. ①채소·과일·유제품을 많이 먹는다. ②단백질은 닭고기 같은 사육조류와 생선을 통해서 보충한다. ③지방·단당류·설탕이 포함된 식품은 제한한다. ④조리할 때 소금을 줄인다.
저는 돈 욕심을 내려놓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며 내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진짜 나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돈이 나를 좇아오게 하는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경주마처럼 달렸다면, 지금도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삶을 되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안정적인 삶을 꿈꾸지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늘 불안정한 삶속에서 안정감을 찾기 위하여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스스로 잠시 멈추고, 불안감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늘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집과 좋은 차, 그리고 높은 연봉을, 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살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물질적인 풍요는 마음의 공허함만 만든다.’는 것을, 6개월간의 쉼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잠시 쉬었다가 가려고 합니다. 잠시 쉬는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분들이 제가 뛸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저도 ‘누군가가 포기하려고 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멈추고 싶은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쉬어도 괜찮습니다. 세상이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거나 답답하기만 하다고 느껴질 때면, 잠시 쉬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의 당신을 돌아보면 ‘꽤 괜찮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러기에는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고, 그리고 그 시간은 머물러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구보다 행복한 2023년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출처; 월간 에세이, 한성국 / 마케터)
그렇습니다. 잠시 멈춰서 쉴 틈을 갖는 것,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가 현재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살펴볼 틈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내비가 알려주는 대로 충실히 따라가면 됩니다. 하지만, 내비 설정을 잘못 했을 경우가 있습니다. 설정이 올바르게 되어 있는지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인생목표가 올바로 설정되어 있는지? 내 삶의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땐, 반드시 거울이 필요합니다. 성경말씀은 인생의 거울입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옛 성현들의 말씀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 책 이름이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아무쪼록, ‘성경’이라는 거울에다가 수시로 자신의 삶을 비춰봄으로써 ‘되도록 후회가 적은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물맷돌)
[여러분이 주님의 길로만 걸어가고, 주님의 계명과 명령과 규정을 모두 지키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면, 주께서도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오늘 약속하셨습니다.(신26:17,현대어) 누구든지 자기를 자랑하거나 업적을 내세우는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주께서 인정하시는 사람만이 참으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고후10:18,현대어)]
열심히 해도,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샬롬! 어젯밤도 편히 잘 쉬셨는지요? 3월 24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부터는 ‘약 없이 고혈압을 치료하는 비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물론, ‘고혈압이 심할 경우는 약을 복용해서 혈압을 낮춰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혈압은 약 없이도 치유가 가능한 병이랍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발마사지’입니다. 발과 종아리를 마사지하면, 혈액이 하체에서 상체로 밀려 올라가면서 혈액 순환이 원활해진답니다. ‘수시로 발마사지를 하면 고혈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지나고 보니, ‘왜, 그렇게 매일 무언가에 쫓기듯 일했는지?’하고 자문(自問)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행복을 위해서 빠른 성공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벌고, 그것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일념으로, 뭔가에 홀린 듯이 일만 했던 것 같습니다.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옆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지치는 것은 당연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제 인생이 불행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열심히 해도,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주변을 돌아보니 ‘나로 인하여 행복해야 할 가족이 오히려 불행해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갉아먹고 있던 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잘못된 삶을 살아온 것일까? 대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들, 돈을 좇아가지 말고 돈이 널 좇아오게 해야 해!”
이게 무슨 말인지 20대 초반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성공을 위하여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만이 ‘돈을 벌고 성공하는 길’이라는, 치기어린 마음으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을 누군가에게 가급적 빨리 증명해보이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서 인정받고자, 쉬는 날에도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습니다.
‘돈이 나를 좇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나는 얼마가 있어야 행복할까?’ 그러다가 지금 저의 삶을 영위하려면 꼭 필요한 돈을 역으로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고, 돌아보니 지금 저의 삶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서 ‘생각보다 괜찮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출처; 월간 에세이, 한성국 / 마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물론,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자랑하면서 뽐낼 경우, 사람들이 조금은 부러워할지 몰라도 마음속 깊이 부러워하거나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은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에게도 ‘나를 드러내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조금 깊이 알게 된 이후로는 ‘모든 게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갈6:14)”고 했듯이, 저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돈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돈은 어디까지나 삶의 수단일 뿐입니다.(물맷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강한 자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며, 부자는 자기의 부요함을 자랑하지 말라.”(렘9:23,현대인) 내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십자가 때문에 나는 오래전에 세상의 온갖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이 세상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갈6:14,현대어)]
그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3월 23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저녁금식을 하는 것 외에, 아침과 점심에 ‘간(肝) 해독식품’을 섭취하면, 저녁금식의 효과를 더 크게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간 해독에 도움이 되는 음식에는 ‘마늘, 자몽, 호두, 브로콜리가 있다’고 하네요. 특히, 브로콜리는 ‘항암작용과 함께 간에서 해독효소를 증가시켜서 독소를 배출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웃이 본 것은 ‘저의 딸이 도서관 식당에서 친구들과 김치볶음밥을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얼굴에 스쳐간 실망을 느낀 이웃이 가볍게 책망했습니다. “시험 때에 도서관에 가기라도 하는 것이 얼마나 기특해요? 놀더라도 도서관에서 놀면 예쁘지요. 그런 딸이라면, 나는 매일 업고 다니겠네요.”
그날의 대화로, 저는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책상에 책을 펴놓고 앉아있는 겉모습만을 보고 공부로 여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공부의 기준’은 매우 엄격해서, ‘반드시 열람실 책상에 앉아 연필을 쥐고 있는 모습’이어야 했습니다. 서 있어도 안 되고 책을 읽어서도 안 됩니다. 반드시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어야만 합니다. 또 하나는, 꿀짱아(글쓴이 딸의 별칭)가 했던 것처럼,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 간다.’는 그 행동은 똑같은데, ‘각 가정의 평가는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가더라도 식당에 있는 것만으로는 칭찬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저의 이웃은 ‘그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어린시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장혀’가 생각났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언제든지 ‘장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재밋거리 책들을 뒤적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도 ‘장하다’고 하시곤 했습니다. 그 시절 제가 즐겨 읽던 흥미 위주의 책들은, 요새로 치면 웹툰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할머니는 그저 ‘장하다’고 하셨습니다. 다소 후하게 받은 칭찬에 좀 머쓱하기도 했고, ‘할머니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고 속으로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할머니께서는 제 노력과 열심에 대한 기준이 정말 낮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우리집에 계셨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할머니는 꿀짱아에게 틀림없이 ‘장하다’고 하셨을 겁니다. 도서관 식당 김치볶음밥의 빨간 재료를 입가에 남긴 꿀짱아는, 할머니가 ‘장하다’고 하는 말을 머쓱해하면서도 무척 기분 좋게 받아들였을 겁니다.(출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소설가)
사실, 그렇습니다. 부모(특히 엄마)의 기준은 엄격한 반면, 그 자녀는 부모의 기준이 좀 느슨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 자녀도 부모가 되면 그 기준이 엄격해지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과거 어릴 적 형편은 어떠했든지, 지금 자신의 자녀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성적도 우수해야 합니다. 자신은 과거에 그 부모의 마음을 흡족 시키지 못했을망정, 지금의 자녀는 부모인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런 태도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과거 모습과는 너무 차이가 나게끔 그 자녀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아무튼, 지금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과 격려입니다. 아주 쬐끔이라도 칭찬할 만한 게 있으면, 그걸 근거로 자꾸 칭찬해야, 그나마 있는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물맷돌)
[그들의 후손은 세계 만민들에게 알려져서 존경을 받고, 그들을 만나는 이들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복 받은 백성이다.’라고 칭찬할 것이다.(사61:9,현대어) 그대 스스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선한 사람이 되도록 힘쓰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십시오.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서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딤후2:15,쉬운성경)]
혼자여도 좋지만, 둘이어서 더 좋고, 셋이라서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샬롬! 밤새 안녕하셨는가요? 3월 22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아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 가시길 기원합니다. 저녁 한 끼만 꾹 참고 한 달간 먹지 않으면, 생리통과 두통 등의 통증이 개선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혀에 백태가 끼거나 새벽에 속이 쓰린 증상도 나아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저녁 금식을 시도하기 전에 먼저 몸의 증상들을 체크해본 뒤, 한 달 동안 저녁금식을 하고 몸의 증상들을 비교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그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하며, 무엇이든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좋은 것과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혼자서 그것을 경험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아마도 재미있는 장면을 보고 엄마를 부르는 동물은 우리 인간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타인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굉장히 의외의 장소였습니다.
학회 참석 차, 스페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워낙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그날도 혼자서 편안한 복장으로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신경 쓸 사람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이, 그냥 제가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니까 재미있었습니다. ‘이래서 혼자 여행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 어느 성(城)의 망루에 올라 석양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름답게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벅차 “아, 참 좋다! 그치?”했는데, 그러나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맞다. 내가 혼자 온 거지?’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아, 참 좋다! 그치?”라고 말하면 “그러게, 진짜 좋다!”라고 맞장구 쳐줄 사람이, 그리고 “이거 너무 맛있지 않니?”하고 물으면 “응, 진짜 맛있다”라고 답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혼자만의 경험과 느낌은 기억 속에서 색이 바라져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한 기억은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그와 나 사이의 공간에 저장되어 의미를 부여받고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둘만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 되어 언제든지 그 추억을 불러올 수 있게 됩니다.
혼자여도 좋지만, 둘이어서 더 좋고, 셋이라서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치이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면, 그래서 애써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줄 사람이 전혀 없어도 정말 좋은지?’말입니다.(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정신분석전문의)
2012년 8월 어느 날, ‘현대어성경’으로 시편1편을 소리내어 읽다가, 새삼 ‘너무 좋다’는 느낌이 들어서 몇몇 지인들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응답이 왔습니다. ‘참 좋다’고, ‘은혜가 된다.’고 말입니다. 그 다음날도, 은혜가 되는 성경구절을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침편지’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있는데, 때로는 혼자만 읽고 덮어두기엔 아까운 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편지’를 통해서 그런 글들을 공유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보낸 ‘아침편지’를 또다시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물맷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그 무엇이 부족하리오. 편히 쉬라고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고이 쉬라고 시원한 시냇가로 데려가시네. 내게 생기 불어넣으시고 똑바른 길로만 이끌어주시니, 주님이 아니고서야 주님의 이름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리. 나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깊은 골짜기 지난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가리라. 주께서 내 곁에 함께 계시니, 목자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와 막대기처럼 인도하여 주시니, 하고 많은 시름 사라져 버리고, 이 마음 이렇듯 든든하여라. 원수들 두 눈 뜨고 쳐다보는데, 보란 듯 이것 앞에 잔칫상 차려주시고, 귀한 손님 대접하듯 기름 발라주시며, 잔이 흘러넘치라 하고 부어주시네. 아, 그 누가 이렇듯 행복하리오. 이처럼 포근하리오. 주님의 손길 살아생전 끊이지 않으리니, 이 목숨 살아 숨 쉴 동안에 주님의 집에서 영원히(오래도록) 살리라.(시편23편, 현대어성경)]
저의 삶속에 포진해있던 ‘똥 덩어리’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3월 21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녁 한 끼만 꾹 참고 한 달간 먹지 않으면 큰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혈액이 맑아지고 소화관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어, 섭취하는 음식을 약(藥)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아침과 점심식사 때 ‘과식’을 피해야 한다고 합니다. 과식하면, 같은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그것을 ‘독’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소식(小食)으로 꼭꼭 씹어 먹으면 ‘약’의 효능을 볼 수 있답니다.
저의 의식(意識)문제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끊임없이 ‘비틀어진 시각’으로만 바라봤습니다. 저에게 세상이란, ‘좋은 것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나쁜 것만 존재하는’ 부조리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똥밭에서 굴러다니는 삶을 살게 된 이유는, 그런 ‘부조리한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세상을 마구 욕하면, 세상은 제가 욕한 딱 그만큼씩 나빠졌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저는 더 망가져갔습니다.
돈이 없다고 화를 낼수록 재정 상태는 나빠졌고, 우울하다고 생각할수록 우울증은 더 깊어져갔습니다.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고 말하다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없이 악화되어갔습니다. 말하자면, 현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바라보는 시각과 사고방식을 입력하면, 현실은 프린터처럼 제 생각을 고스란히 출력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즉, 현실은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였습니다. 프린터가 뽑아내는 결과물이 엉망이라면, 컴퓨터에서 원인을 제거해야 증상이 사라집니다.
‘결핍’이란 다름아닌 ‘저 자신의 인식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세상의 해로운 면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저의 인식문제를 하나씩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저의 삶 속에 포진해있던 ‘똥 덩어리’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왜곡된 생각을 제거해나가자, 살아가면서 ‘술을 마실 이유’도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알코올 중독을 근본부터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기술)입니다.
무언가에 의존하는 증상은 단순히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의지의 시발점(발원지), 즉 지금 이 순간의 ‘인식의 샘’이 맑은지 탁한지 돌아보고, 그 샘을 정성들여 아주 깨끗이 청소해나감으로써 극복할 수 있습니다.(출처;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 키슬(한국여성), 출판; 월간 좋은생각)
위의 글에서 ‘제가 계속해서 세상을 마구 욕하면, 세상은 제가 욕한 딱 그만큼씩 나빠졌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저는 더 망가져갔습니다.’라는 내용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다고 화를 낼수록 재정 상태는 나빠졌고, 우울하다고 생각할수록 우울증은 더 깊어져갔습니다.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고 말하다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없이 악화되어갔습니다.’라는 내용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글인 듯합니다. 또한, ‘현실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라는 말도,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물맷돌)
[나 지혜(말씀)에게는 상황에 알맞게 일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좋은생각이 있다네. 나 지혜에게는 ‘세상의 이치가 어떠한 것인지?’ 그 깨달음이 있다네. 또,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잘해낼 수 있는 힘도 있다네.(잠8:14,현대어)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와 곤경에 처했을 때도, 그것들이 가져다 줄 좋은 결과를 생각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시련은 오히려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고, 인내는 강인함을 길러주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희망과 믿음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롬5:3-4)]
지구의 온도가 2°C 오르면, 생명다양성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3월 20일 월요일 아침입니다. 아무쪼록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점심은 왕자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식이조절을 할 때, ‘아침과 점심에는 많이 먹되, 저녁은 적게 또는 금식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활동량이 적은 저녁시간에는 지방 축적률이 아침이나 낮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저녁 금식이 가져오는 몸의 변화에는,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놀라운 ‘건강의 변화’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어느 TV채널에서 다큐멘터리 ‘세 개의 전쟁’을 방영했는데, 그 중에서 3부는 ‘인류 최후의 전쟁, 기후 위기’가 주제였습니다. 지구 최북단 ‘스발바르제도’가 주(主) 무대입니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빙하가 녹아내리면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합니다. 빙하동굴 하나는 지붕이 무너져서 하늘이 보였습니다. 빙하가 털썩 쏟아져 내리는 장면을 거듭 방영하는데, 정말 두려웠습니다. 스발바르에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일컫는 ‘씨앗보관시설’이 있습니다. 최후의 인류를 위해서 모든 유용한 씨앗의 샘플을 보관하려면, 온도와 습도가 다 맞아야 합니다. 그것은 빙하 속에 묻혀있는데, ‘빙하의 일부가 녹기 시작해서 씨앗보존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지구의 온도가 2°C 오르면, 생명다양성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이 세상에 생존하는 종(種)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게다가 끔찍하게도 인류의 멸망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첨단의 문명을 누리면서, 바로 그 문명이 낳은 이기(利器)들 때문에 머지않은 미래에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내용들을 담은 해설은 가슴 떨리게 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이면, 아이들이 모입니다. 우리 부부까지 다섯 식구입니다. 큰 아이가 휴대폰을 들고 음식주문을 합니다. 아이들은 모이면 꼭 음식을 주문합니다. 저도 못이기는 척 넘어갑니다. 음식이 도착하면 펼쳐놓고 먹습니다. 대체 이 식탁에 널린 플라스틱 용기가 몇 개냐? 시켜 먹으니까, 한두 종류로 그치지 않습니다. 먹고 싶은 걸 조금씩 다 시킵니다. 돈가스, 떡볶이, 비빔국수, 잔치국수, 회초밥이 왔습니다. 그것들을 담은 큰 그릇들과 갖가지 자료를 담은 작은 종지들이 식탁을 가득 채웁니다. 잘도 먹으면서 뭔가 켕겨서 변명 같은 말들을 합니다. “단테가 우리를 어디로 보낼 것 같니?”
“플라스틱 지옥에~”
탄소중립, 어렵습니다. 기업과 국가, 그리고 세계가 할 일이 따로 있겠지만, 개개인이 할 바는 너무나 뻔합니다. 더도 덜도 말고, 오직 ‘생활쓰레기를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출처; 그린에세이, 허창옥 / 수필가)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드려야겠지만, 더욱 중요하고 참된 예배는 실생활에서 드려야 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거짓 없이 진실하게 해야 하고, 의식주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예전(禮典)과 형식(形式)에 속한 것이고, 그 내용(內容)은 우리의 실생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는 형식은 그야말로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릇(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그릇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 지구환경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물맷돌)
[내가 바다에 사는 물고기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땅 위에 기어 다니는 온갖 짐승들을 다스릴 권한을 너희에게 주마. 너희는 그것들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여라.(창1:28,현대어)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요4:23,표준)]
“해 봤자, 안 될 게 뻔합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3월의 세 번째 주말아침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영양제를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건강염려증이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런데, 몸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양제를 다량 섭취하면 간의 해독이 어려워지기에,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고 하네요. 그 보다는, 저녁 한 끼만 꾹 참고 한 달간 먹지 않으면 더 큰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업에 실패한 뒤, 무기력의 늪에 빠져서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기는 ‘그냥 실패자일 뿐이다’라고 한탄하는 40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째려보면서 ‘네가 무슨 말을 하나 보자!’하는 식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는 ‘죽어라고 일했는데, 그 결과가 참담한 것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 스스로를 포기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처럼 상담이 계속 제자리를 맴돌던 어느 날,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 당신처럼 자라서 지금 당신의 위치에 있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해주고 싶으세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아들한테는 그렇게 말해 줄 거라면서, 왜 정작 자신에게는 가혹한가요? 당신이야말로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잖아요. 잘해오다가 잠시 일이 안 풀려서 어려운 것뿐인데….” 그리고 저는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칭찬해주라’고 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이니, 그냥 좀 쉬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너무 많이 일해서 에너지가 바닥났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으니, 우선 쉬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하라’고 권했습니다.
자신에게 너무 엄격해서 스스로에게 잘했다는 칭찬 한 마디 없이 살아왔던 그는, 그 뒤 충분히 쉬면서 자신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을 ‘실패자’라고 하지 않았으며, 몇 달 뒤에는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상황은 바뀐 게 없지만, 그는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무기력증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인생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그가 “해 봤자, 안 될 게 뻔하다”라는 말을 멈춘 것입니다.(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 정신분석전문의)
우리가 잘 아는 사자성어 중에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城事在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 몫이지만, 그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이 성공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일이 실패했어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요컨대, 일이 실패했다면, 그 원인이 인간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결과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게끔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일이 끝난 후에는 그 결과를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만, 그러나 속으로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글쓴이가 내담자에게 그런 식으로 권했더니, ‘내담자는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무기력증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인생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말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실패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경험입니다.(물맷돌)
[나(여호와)는 처음부터 일의 결과를 말하였으며, 오래 전에 벌써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였고, 내 계획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행할 것이라고 말하였다.(사46:10,현대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덕분에 온 세상이 풍성한 복을 받았다면,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때에는 얼마나 더 큰 복을 누리겠습니까?(롬11:12,현대어)]
카페에서 식사를 해도 물 한 잔 공짜로 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3월 17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행복하시길 빕니다. 엊그제는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유튜브에 떴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잉꼬부부로 알고 있을 최수종 하희라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가짜뉴스였습니다. 유튜버들이 돈 벌 욕심으로 가짜뉴스를 올려놨던 겁니다. 조회수가 많이 올라갈수록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뉴스로 띄웠다고 합니다.
지난여름, 저는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있는 동생네를 방문할 겸, 가족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습니다. 빈에 짐을 풀고 난 후, 막냇동생과 함께 이제껏 말로만 듣던 파리로 향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과 다섯 살짜리, 조카 둘을 데리고 기차로 14시간을 달려 파리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기차 화장실이 너무 좁고 불편해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처럼 생긴 곳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헤매다가 넓은 역사를 가로질러 가서야 겨우 화장실 표시를 찾았는데, 반가운 마음도 잠시, 입구에 조그만 전화 부스 같은 것이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상도 하지, 저 사람은 왜 하필이면 화장실 앞에서 기차표를 팔까?’ 의아해하면서, 저는 급한 대로 화장실 손잡이를 잡아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놀라 뛰어나오더니, 눈까지 부라리며 뭐라고 핀잔조로 말했습니다. 한참만에야, 저는 ‘그 사람이 화장실 지킴이고, 우리 돈으로 약 500원을 내고 토큰 비슷한 것을 사서 넣어야 화장실 문이 열리게끔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부자가 더 무섭다더니, 가난한 나라도 아니고 돈 많은 나라에서, 그것도 커다란 기차역에서 화장실 이용료를 받는다는 것은, 저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가방을 동생에게 맡기고 갔던 터라, 저는 다시 역을 가로질러 가서 돈을 가져와서야 겨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돈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간다는 것 아닙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인데, 화장실 앞을 지키고 앉아서 돈을 받다니, 그처럼 치사한 일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화장실 못지않게 치사한 것은 먹는 물이었습니다. 카페에서 식사를 해도 물 한 잔 공짜로 주는 일이 없고, 작은 물병 하나에 우리 돈으로 4,500원이나 받았습니다.(출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 서강대교수로 재직 중에 암으로 57세에 작고)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옛날, 화장실 입구에서 사람이 지키고 있다가 ‘화장실이용료’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를 가든지 자유로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여행하다가도 주유소를 찾아서 들어가면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 여행 왔던 외국인들은 ‘한국인만이 한국이 얼마나 잘 사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죠? 사실, 그렇습니다. 가만히 정신 차려서 잘 살펴보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의 생활정도는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어떻든지 간에, 아파트(임대)에서 살면서 자가용(프라이드)까지 굴리고 있으니, 진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사치스럽다고 할 정도이지 않습니까? 아무튼,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조금은 더 절제하고 절약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나는 나그네를 길거리에서 자게 한 일이 없으며, 길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 집 문을 항상 열어두었다.(욥31:32,현대인) 만일 남을 섬기는 은사를 받았거든 성의를 다해 남을 섬기고, 남을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거든 훌륭하게 가르치십시오.(롬12:7,현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