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빈집
류윤
잘라내도 잘라내도
되살아나는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
망연한 시선을
수평선이 아주 가져가 버린
빈집
철지난 남루를 걸치고
바람 부는 날이면
휘휘한 바람이 되고
비 오는 날이면
직립으로
장대비에 고스란히 못 박히는 ,
가학적인 빈집
허망한 빈것ㅇ로 가득한
빈집
고작 삼립 빵하나 우유 한 팩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갈수록 소심해해지는 빈집
사는 일보다
차라리 죽는 일이 더 어려울
빈집
공원 벤치, 지하도에서
달랑 신문지 한 장 덮고
잠을 청하는 노숙의,
식탁위의 단란을 잃어버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손목 놓아버린
뼈아픈 실패가
간단없이 달려와
발치에 스러지는 파도처럼
가슴에 물거품 만져지는
말 못할 사연이라도.
오늘도 하염없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다
눈물 젖은 등짝으로
허청허청
정처가 없을,
내재적 접근론으로도
내부를 속속들이 읽어 낼 수는 없는
이 세상의 모든
걸어다니는 빈집
게으른 독서
류윤
스마트폰에 혼을 빼고
헛되이 살다 보니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모처럼
교외로 드라이브 나선 길
자연의 책을 펼쳐
게으른 독서나 해볼까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봄비 촉촉
자연의 책갈피 펼쳐
아껴 읽다보면
비발디의 사계
음표들 뽀족뾰족 돋아나고
씀바귀 냉이 지칭개
지난 혹한을
어금니 악물고 이겨낸
미약한 신음소리 들리네
종횡 무진의 들판을 잇대고
두르르
재봉틀 소리로 박아놓은
초원의 책갈피 펼치는
발로 읽어내는
게으른 독서
하늘이 버려져있다
류윤
하늘이 버려져 있다
부질없는 빗물이 고여
깨진 조각 거울처럼
버려진 하늘
지난 날 저 하늘을
열병식 하듯
눈 시리게 채우던 그린벨트
찌는 듯한 여름밤이면
고요에 발을 빠뜨리던
엉마구리 떼 우는 소리
임 향한 일편단심들은
백골이 진토가 되었을까
벼포기들을 매만지던
마디 굵은 손길들
거머리에도 아랑곳없이
둥둥 걷어부친
흔한 장정들의
단단한 장딴지들
비 한방울 내려주지않는
하늘을 우러러
원망하던 눈길들
오랜 가뭄을 해갈하는
장대 비에
파안의 미소를 짓던
주름진 얼굴들
그 단순한 소망들
하늘에 묻어버린
수많은 농부들의
기쁨과 낙담
한숨과 보람
어느 세월이 가져갔나
어김없이 가을은 와서
착하게 고개 숙인황금 들녘
와릉 와릉 ㅏ탈곡기 소리와 함께
차르락 차르락
하늘 곳간에 가 박히던
나락알들
습자지같은 잔설이 뒤덮이는
겨울이 오면
누구네가 논을 팔고
우리가 삿다는 귀띔에
마실 갖다오다가도
이따금 측량이라도 하듯
이쪽에서 저쪽
논의 넓이를 가늠해 보곤하며
가슴 설레이던 그 논배미들
이젠 쌀이 논보다
더 많이 나오는데가 많으니
인건비 비료 농약 값 제하면
남는 것도 없다며
가꾸는 손길이 없어
그루터기만 남은 빈 하늘
그 하늘을 맡기고
고작 직불금 몇푼 받아쥐는 ,
아! 낙동강
류윤
반도의 젖줄,
하늘에서 고공촬영을 하면
대지 위 손금처럼 새겨져있을
그리운 낙동강
그 유장한 물살 속에는
피리 갈겨니
붕어 ,모래무지 ,버들치 은어가
은장도같이 뒤채는,
성장기
여름 구십일을 강가에서 보내던
정겨운 눈망울들
이목구비를 갖추어
도시로 떠난 꿈들의
회고의 자맥질
징징 징소리를 두드려 펴서
박피로 펼쳐 놓은 것 같은
강줄기의 외피
서산이 꼴까닥 해를 삼키고나면
암담한 표정으로 자조하지만
새벽이 오면
몽환의 안개에 싸인
환상적인 비단뱀이 살아서
구불텅거리는 것 같은
눈부신 장관의
강의 옆구리에
낙락 장송을 거느리고
눈썹같은 정자를 오려붙인
진경 산수
동양화 한폭의음풍 농월과
사람 사는 마을의
고단한 서사를 이끌고
굽이 굽이 변곡점의
유장한 역사를 이루어왔다
태백산맥
강원도 황지에서 발원한
어린 물살이
이두박근 삼두박근으로 장성해
손잡고 또는 흩어지는
합종연횡의,
유장한 흐름으로
면면한 강을 이루어
흔한 벌목 장정의
강원도 뗏배를 띄워 물산을
한양으로
영남 , 호남으로 실어 보내기도
육 이오 동란 때는
동족 상잔의 비극의 현장
낙동강 전선 사수를 위한
밀고 밀리는 피아 각축전으로
강이 온통
선연한 피로 물들기도 햇다는 증언
손등 위에 불거진
돌올한 정맥 류같은
일천 삼백리
굽이 굽이
반도의 젖줄에 혀를 대고
목마른 대지는 목을 축이며
낙동강 하구언에 이르는
국토 대장정
마침내 화엄의 난바다에 이르면
끼룩 , 끼루룩
철새 떼의 군무가 반기는
이 대 서사시를
오늘은 누가 감동하여
흐르는 눈물로 읽고 가는가
탱자 울타리
류윤
탱자 불알의
혈육만은 다른 줄 알고
성장기를 보냈다
향긋한 결실을 꿈꾸었으나
동서남북
사나워진 관계들
등이 배기는
불편한 잠 속에서
곪은 생각들
카페 게시글
┌………┃류윤모詩人┃
게으른 독서
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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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19:0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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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걸어다니는 빈집....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신세인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