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림자 둥지
인묵 김형식
점심도 한참 지난
초여름 석촌호수
한적한 숲 자락에 마음을 풀어놓고
그늘진 산책길 따라 조용히 걷고 있다
거위들도 졸고 있는
고요한 수면 위에
한가롭게 누워 있는 빌딩의 긴 그림자
발길 따라 가는대로 말없이 움직인다
내가 가면 따라나서고
멈춰 서면 멈추어서고
이 녀석 어쩌자고 나만 쫓아다니는가
이제 보니 아니야 이놈이 나를 끌고 다니네
내가, 그림자인가
그림자가 나인가
주인이 누구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림자의 그림자
이놈을 따라가면
탄생의 시원 있을 터
그림자 알을 까고 진리가 숨을 쉬는
호수는 그림자 둥지 하늘을 품는 그림자 둥지
2).빙그레 웃자
인묵 김형식
유심히
바라보니
벽이 그곳에 있더니
무심히 바라보니 벽은 어디로 갔는고
벽을 보고 앉아 있는 나는 또한 누구인가
한순간
놓아버린
화두를 챙기다가
툭 터진 벽 너머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이런 일도 있는 걸까 어안이 벙벙하네
터진 벽
바라보니
세상이 거기에 있어
꿈인지 생시인지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벽은 없고 온 지 사방 환하게 열려있네
걸릴 것
하나 없는
이것이 사실인데
사람들 알고 나면 고운 눈으로 보겠는가
침묵 속에 묻어두고 빙그레 웃고 살자
※시작노트:
겨울 산속은 춥다. 겹겹으로 바람을 막고 움막에 들어 앉는다 2005년 겨울 어느날 오후 양지를 깔고 앉아 면벽하고 있었다. 선정이 찾아 왔다.반개한 시야에 자주색 점 하나 점점 커지고
커지며 엷어지는 환희가 계속된다, 나에게 선정은 이렇게 찾아 오곤 한다.그날도 그랬다.얼마를 지났을까 벽이 툭 터지고, 터진 벽 너머로 보이는 낯익은 실상,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풀잎, 나무, 산, 마을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 기록해 둔 글이다.
공부인들은 이역시 마장(魔障)임을 안다.
3).만천하에 고함
=윤봉길 의사 2015년 4월 29일 상하이 의거 83주년 기념 일에 봉헌.=
인묵 김형식
윤봉길,
나 여기에
여기에 지금 서 있다
목숨 보다 더 소중한 내 조국을 선택한
젊은 피 대한의 남아가 여기에 이곳에 서 있다
9천 년
민족의 뿌리
동이의 홍산문화가
백두에서 한라를 걸어 일본 땅 열도를 삼켜버린
그 도도한 저주의 불길을 83년 전 나는 이곳에서 분명히 보았노라
우리는
싸웠노라
그러나 지키지 못했노라
보았노라
통곡했노라
나라 잃은 그 서러움을
그 누구를 원망하랴 힘없는 내 조국을 원망한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형제여 내 조국 대한민국이여
이제는 다 용서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자
당당하게 일어서서 더 넓은 곳을 향해 나아가자
세상은
변하고 있다
국력을 키워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걔들에게 자유를 가르쳐야 한다
나 윤봉길은 지켜보겠노라 남북통일의 그날을
나 윤봉길 지켜보겠노라 조국의 먼 앞날을
ㅡㅡㅡ
프로필
시인 문학평론가
고흥문학회 초대회장.송파문협 시분과위원장.불교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강문학편집위원.한국창작문학상 심사위원.대지문학상 심사위원.詩聖,한하운문학회 자문위원장, 보리피리 편집주간 역임. 한국청소년문학대상.한국창작문학대상, 제2회 시서울 문학대상 수상
시집 : [ 그림자 하늘을 품다] [오계의 대화 ] [광화문 솟대] [ 글, 그 씨앗의 노래] [인두금의 소리] [성탄절에 108배].[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