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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데이비드 무어 David Scott Moore. 1960~
「발달 및 인지 신경과학자. 피처대학 및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교수로 일한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발달. 생물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유아기의 인지 및 지각 발달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인간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 유전과 환경, 후성유전적 요인을 탐구한다. 첫 책<의존하는 유전자>는 인지발달학회 최고 저술상 후보에 올랐다.」
1부. 이것은 혁명일까
[1] 맥락의 힘
1960~1970년대에 사회심리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외부에서 지켜보는 관찰자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본 관찰자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거짓말을 했을 것이 분명할 때조차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을 성격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인격만 비판할 뿐 실제로는 맥락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류에게는 사람이 처한 맥락보다는 사람 혹은 행위 당사자의 영향력을 알아보기가 훨씬 더 쉬운 모양이다.
(본성 대 양육 대결의 종말)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는지에 관한 책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이 말을, 사람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부모 밑에서 한 경험에 따라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가 결정 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서 부모가 물려준 DNA 분자들도 우리에게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물학적 사실이 발견되었다.
<의존하는 유전자>를 쓰던 1990년대 말에 나는 아버지와 발달의 본질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후성유전학은 생물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했고, 후성유전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은 종양학, 영양학, 심리학, 철학 등 여러 다양한 학문 분야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의 DNA위에 있는 혹은 DNA에 달라붙은 뭔가(이를 후성유전적 표지라 부른다)가 실제로 존재하며, 이들이 DNA가 기능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이유로 후성유전 과정은 우리의 거의 모든 특징에 영향을 미친다. 아직은 과학자들이 후성유전적 표지에 관해 알아야 할 사실들을 막 알아가기 시작한 단계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확실히 획기적이다. 경험(그리고 우리가 처한 환경 속 여러 상황)이 일부 후성유전적 표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일란성 쌍둥이 사이의ㅐ 차이, 식생활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어머니의ㅐ 행동이 성인이 된 자녀의 스트레스 상태에 미치는 영향 등 아주 다양한 것들을 후성유전적 표지로 설명할 수 있다. 후성유전학의 이런 발견들은 본성 대 양육 논쟁을 뿌리채 뒤흔드는 데 일조했다. 요컨대 후성유전적 사건들은 DNA와 환경의 접점에서 발생하므로 이를 알면 우리의 특징들이 언제나 본성과 양육 두 가지 모두의 결과라는 것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식민지 주민들과 그들이 처한 환경 두 가지 모두가 최초의 아메리카 식민지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했던 것처럼.
(심리학과 생물학)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실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우리 몸 외부의 요인들이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우리의 생물학적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이 심리학과 생물학의 관계에 관심을 둔 지는 100년도 더 되었지만 최근에야 세포 속 DNA와 단백질, 기타 분자들이 우리의 심리적 특징에 어떻게 원인을 제공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행동 후성유전학의 통찰에는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바꿀 만한 잠재력이 담겨 있다. ~~~모든 사람이 이 지식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책에서 행동 후성유전학 이야기를 두 가지 수준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23개 장 가운데 6개장에서는 바로 앞 장의 주제를 더 심층적으로 탐구할 것이다. ~~~~나머지 17개장에서 행동 후성유전학 연구에서 나온 주요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므로, 심층 탐구 부분은 그냥 건너뛰고 읽어도 괜찮다.
(후성유전학의 혁명적 발견들)
내가 주로 집중할 분야는 후성유전학 중에서도 후성유전의 효과가 감정적 반응성, 기억과 학습, 정신 건강, 행동 같은 심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연구하는 분야인 행동 후성유전학이다. ~~~노화와 같은 주제는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일부 후성유전적 영향이 조상에서 후손으로 대물림될 수 있다는 발견, 즉 후성유전적 대물림 역시 주요 내용으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후성유전적 상태들의 대물림은 최근 후성유전학 연구 중 유독 흥미로운 동시에 논쟁적인 측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책 3부에서 이 주제를 다룰 것이다. 1부와 2부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는 경험이 후성유전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왜냐하면 이 현상은 대물림되든 아니든, 인간 본성에 관한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 DNA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DNA와 표현형의 관계)
BRCA1 유전자라는 DNA가 유방암을 유발하지 않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어떤 DNA도 단독으로는 그 어떤 질병도 유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DNA는 우리의 그 어떤 특징도 단독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이 말이 놀랍게 들릴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DNA 속 유전자들이 우리의 일부 표현형(우리의 특징이나 성격을 일컬어 생물학자들이 사용하는 단어)을 만들어낸다고 분명히 배웠으니 말이다. 표현형은 신체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눈동자색과 머리 크기부터 음악적 재능, 주의력 지속시간, 술에 잘 취하는 성향 그리고 그 사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DNA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이미 결정된 것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형질(뼈든 뇌든 눈이든 그 무엇이 특징이든)은 우리가 한 개체로서 발달하고 생을 살아가는 동안 유전적 요인과 비유전적 유인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유전자들, 즉 DNA의 분절된 단위들은 항상 맥락의 영향을 받으며, 어떤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최종적으로 그것이 나타내는 표현형 사이에 절대적인 인과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어떤 존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다. 형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비유전적 요인들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마주한 맥락의 결과이다. 의사가 우리 유전자의 구성 방식을 살펴보고 특정 질병이 발생할지 아닐지 확률 이상을 알려줄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유방암에 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래도 몇 가지 알려진 사실은 있다. 첫째로 유방암과 함께 전립선암, 결장암 등 특정 종류의 암은 때때로 가족 안에서 대물림될 수 있고, 이런 경우에는 유전 요인이 발병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 둘째, 예컨대 흡연 같은 몇몇 특정 행동은 암 발병 위험을 상당히 높인다.
현재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암 연구자들은 또 하나의 요인이 암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요인이 바로 후성유전이다.
(후성유전이란 무엇일까)
후성유전이란 단어는 시대별로 그 시대의 생물학 지식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었는데, 다음 장에서 그중 비교적 최근의 몇 가지 정의를 살펴볼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후성유전이란 다양한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유전 물질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 되는, 즉 발현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DNA는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전등 스위치처럼 작동한다고 말이다. ~~~~어떤 DNA 분절(유전자)이 얼마나 활성화되는가는 그 분절의 후성유전적 상태에 달려 있고, 그 상태는 그 분절이 처한 맥락 등의 요인에 달려 있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당신의 눈이 파란 것은 파란 눈과 관련된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후성유전의 정의에 따라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을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 유전자의 활동 정도가 다양한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DNA가 무엇을 하는지다.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질 수 있다면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 유전자를 갖니 것은 열쇠 하나를 가진 것과 비슷한 일이며, 딱 맞는 열쇠 구멍이 없다면 그 열쇠는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몬트리올의 어떤 과학자들은 아주 주목할 만한 연구에서 어미 쥐의 행동이 새끼 쥐의 스트레스 반응 조절을 담당하는 일부 유전자의 활동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끼를 핥아주고 털을 다듬어주는 데 많은 시간을 쏟은 어미 쥐는 그 행동으로 새끼 쥐의 특정 유전자들을 효과적으로 켰고, 이 유전자들이 켜진 결과 새끼 쥐는 스트레스가 심한 일에도 여유롭게 반응하는 성체 쥐로 자랐다. 헌신적이지 않은 어미 쥐의 새끼는 스트레스에 훨씬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반응했다. 사람의 신경계도 쥐의 신경계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스트레스에 반응하기 때문에 이 발견이 지닌 의미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인정된다.
당신이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에서 당신의 유전자가 무엇을 하는지 로 초점을 옮기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건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는 일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유전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진화 과정 때문이며, 진화에 의한 변화는 한 개체군의 유전체 안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나므로 이런 종류의 변화는 한 개인이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유전체의ㅐ 변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생물학자들은 발달이란 유전체가 아닌 유기체의 특성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유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지만 그들의 유전체는 성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일단 DNA의 일부가 시기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우리의 유전체가 아주 중요한 방식으로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모두 발달중인 유전체. 주위 환경의 맥락에 반응하는 유전체를 가지고 태어난다.
(모두가 행동 후성유전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상당수의 사람이 후성유전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고 아마 계속 그럴 것 같다.
[3] 발달, 세포와 맥락의 상호작용
19세기가 저물어가는 몇 십 년 동안 우세했던 이론은, 한 개였던 수정란이 두 개의 세포로 분열할 때 그 수정란에서 동물의 머리 부분이 어떻게 발달할지 지정하는 부분들은 모두 머리 쪽 세포로 몰려가고 꼬리 부분이 어떻게 발달할지 지정하는 부분들은 모두 꼬리 쪽 세포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매커니즘으로 머리와 어깨 등 상체는 몸의 위쪽 절반에 있게 되고, 다리와 성기 등 하체는 몸의 아래쪽 절반에 있게 된다고 당시 생물학자들은 생각했다.
시대를 앞서간 드리슈(1880~1890년대 독일의 생물학자 한스 드리슈)는 동물의 몸이 wdj말로 그 이론에 맞게 발달하는지 증명해보기로 했다. 그 결정적인 실험에서 드리슈는 막 분열한 성게 배아세포 두 개를 각각 분리한 다음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발생 과정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가 검증하려던 이론에 따라, 얼마 후 돌아와 보면 하나는 성게의 위쪽 절반처럼 생기고 또 하나는 아래쪽 절반처럼 생긴 두 개의 유기체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발견한 것은 완전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성계 두 마리였다(사실 이는 정확히 쌍둥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사람의 방식도 성게와 똑같다). 더욱더 놀라운 건, 성게 배아가 두 번 분열할 때까지 기다려 네 개가 된 세포를 각각 분리해도 네 개의 세포가 모두 정상적이고 건강한 세포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드리슈는 까다로운 질문에 맞닥뜨렸다. 두 개의 세포가 서로 붙은 채로 정상적이고 건강한 유기체 하나로 자라나는데, 어째서 그 두 세포를 각각 분리한 것 역시 각각 정상적이고 건강한 두 개의 유기체로 자라나는 것일까? 다시 말해서 나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는데, 그 무언가가 나뉜 각 부분이 어찌하여 나뉘지 않은 하나의 전체로 발달할 능력을 옂너히 보유하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머리를 만드는 설명서와 꼬리를 만드는 설명서가 수정란 안에 존재한다면, 그 설명서들은 세포분열 결과로 만들어지는 각각의 세포에 결코 나뉘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설명서들은 새로 만들어진 세포 가각에 온전한 형태로 들어가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만약 모든 세포가 똑같은 tfj명서들을 갖고 있다면 어째서 그에 따라 만들어진 우리의 머리는 우리의 발과 똑같아 보이지 않는 것일까? 드리슈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아직 전혀 감도 잡지 못한 상태였지만, 어쨌든 성게 배아는 잠재적으로 독립이 가능한 모든 부분이 함께 기능하여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를 형성하므로 조화동능계 즉, 조화롭고 동등한 능력을 지닌 시스템이라고 결론지었다.
(후성유전학의 등장)
새 배아가 어떻게 이렇게 작동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지만, 오늘날 우리는 드리슈가 발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후성유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선구적인 연구 이후, 우리는 아주 어린 배아의 세포들이 ‘다능성’ 세포임을 알고 있다. 즉, 이 배아세포들은 각각은 간세포, 피부세포, 뇌세포 등 몸을 구성하는 서로 무척이나 다른 다양한 세포 중 어떤 세포로도 발달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머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과 꼬리(그리고 신체적인 다른 부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 모두가 어린 배아를 이루는 모든 세포 각각에 분명히 존재하며, 이 세포들을 일컬어 이른바 배아줄기세포라고 한다.
이 세포들이 다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세포 속에서 서로 다른 DNA 분절들(발달 자원들)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됨으로써 그 각각의 세포가 결국 서로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발달하게 하는 후성유전 과정이, 생물 발생의 핵심임을 의미한다. 후성유전이 우리 몸속에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은, 처음에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 똑같은 줄기세포들이 각각 독특한 형태와 기능을 갖춰가며 다양한 세포로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드리슈의 연구에서 나온 중요한 통찰 하나를 꼽자면, 세포의 발달은 그것이 처한 맥락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똑같은 세포라도 다른 상황에 두면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발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줄기세포 하나를 그냥 두면 그것이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발달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세포를 다른 세포에 붙여 두면 예컨대 우리 뇌 속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세포인 뉴런으로 발달할 수도 있다. 태아가 자궁 속에서 발생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리의 뇌와 심장(각자 고유한 뇌세포와 심장세포들을 지녔다)은 바로 이런 식으로, 원래는 정확히 똑같았던 줄기세포로부터 분화된다.
이처럼 발달은 세포와 맥락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세포들이 하는 어떤 작용은 그 세포 속에 들어 있는 것 때문이고, 또 어떤 작용은 세포 밖에 있는 것 때문이다. ~~~내부와 외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 폴하르트가 2006년에 잘 요약한 것처럼, 세포질이라는 세포 속 물질은 환경으로부터 신호와 정보를 받는데, 이 환경에는 이웃한 세포들도 포함된다. 이 정보는 이어서 유전자로도 전달된다. 이렇듯 한 세포의 운명은 세포질과 외부 영향력 둘 다에 의존한다.
(후성유전에 관한 여러 가지 정의)
(끈질긴 생물학적 결정론)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은 양방향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현대 후성유전학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이 지성, 키, 성격 등 형질 발달을 통제한다는 해묵은 생각, 즉 생물학적 결정론은 놀랍도록 끈질기게 남아 있다.
[4] DNA란 무엇인가
생명과학 분야의 이론가들은 아직 유전자가 무엇인지에 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그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유전자 개념 사이에서 우열을 판가름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볼 부분은 세포를 채우고 있는 젤 같은 물질(세포질) 속에 떠 있는 핵이다. 인간 수정란의 핵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각각 받은 염색체라는 아주 큰 분자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수정란이 결국 수조 개의 세포로 된 성체로 발달할 때까지의 전 과정에서, 거의 모든 세포의 핵에는 바로 그 수정란 속 염색체들과 정확히 똑같은 복제본이 담겨 있다.
1950년대에 이르자 과학자들은 염색체가 주로 DNA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냈고. 1953년에는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구조가 두 가닥의 뒤틀린 나선 구조로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 책의 목적에 맞게 나는 유전자를 단백질 생산에 사용되는 정보를 품고 있는 DNA 분절들이라고 정의한다.
단백질은 실에 꿰어놓은 구술들처럼 길게 이어져 잇는 요소들의 서열로 배열되는데, 이 DNA의 서열은 단백질을 만드는 요소들의 서열에 대응한다. DNA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서열은 저장되어 있는 서열 정보를 나타내며, 이 정보를 사용하여 요소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함으로써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단백질은 요소들이 선형으로 배열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에 즐처럼 긴 모양으로 보여도, 이 줄 들은 각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고유한 방식으로 접히며 단백질이 접히는 이 고유의 방식은 보통 서열에 따라 결정된다. ~~~그 결과 각 단백질은 종류마다 고유한 삼차원 형태를 띤다. 단백질에서는 이 고유한 형태들이 중요한데, 단백질들이 우리 몸속에서 구체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형태이기 때문이다.
각 세포의 바깥 표면을 이루는 세포막에 박혀 있는 단백질들이 있는데, 바로 이 단백질들 덕분에 세포가 서로를 인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자리 잡은 단백질들은 우리의 면역계가 박테리아 등 공격해야 할 외래 세포들을 감지하게 해 준다. 또 다른 단백질들은 근육세포를 수축시킴으로써 우리가 돌아다니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다.
또 다른 단백질로는 세로토닌을 비롯한 신경전달물질도 잇는데, 세로토닌은 기분조절에서 담당하는 역할, 따라서 우울증에서 하는 역할 때문에 큰 관심을 받고 있어서 단백질계의 대스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세로토닌도 우리 뇌 속에 있는 특정한 종류의 세로토닌 수용체들과 상호작용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 수용체들 역시 단백질이며, 형태를 기반으로 세로토닌을 감지하는 능력(자물쇠가 적합한 형태의 열쇠를 감지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을 지니고 있다.
(곤경에 빠진 유전자)
[5] 심층 탐구: DNA
(꼬인 사다리, DNA의 기초)
각 염색체에는 기본적으로 아주 긴 DNA 한 가닥이 돌돌 말린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DNA 분자 하나는 아주 긴 화학적 가닥 두 개가 서로 꼬여 있는 구조인데, 이는 실 한 올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개의 섬유 가닥이 서로 휘감으며 한 가닥의 실을 이루고 잇는 것과 비슷하다.
염색체를 이루는, 엄청나게 긴 DNA 가닥을 따라가다 보면 드문드문 현재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구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구간들은 세포에서 단백질 등의 분자를 만들 때 그 일을 도울 수 있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DNA 분자 두 가닥은 뉴클레오타이드 염기라 불리는 일련의 요소들이 실에 꿴 구슬처럼 긴 가닥을 따라 늘어서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뉴클레오타이드 염기(이하 염기)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화학명의 머리글자를 따서 A(아데닌adenine), C(사이토신cytosine), G(구아닌guanine), T(티민thymine)라고 부른다.
단백질은 염색체가 있는 세포핵 안이 아니라 세포질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려면 염색체에 들어 있는 서열 정보가 핵에서 나와 세포질로 이동해야 한다. 염색체에서 서열 정보를 가져다가 세포질 속의 리보솜이라는 단백질 생산기구로 운반하는 일은 RNA라는 또 다른 분자가 맡고 있다. RNA는 한데 꿰어져 연쇄를 형성한 뉴클레오타이드 염기들로 구성된다는 면에서 DNA와 유사하지만, 단백질처럼 한 가닥으로 되어 있다. 일련의 DNA 염기를 사용하여 그에 상보적인 일련의 RNA 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전사라고 하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RNA 가닥을 전사물 이라고 한다. 바로 이 RNA 전사물이 핵 속의 DNA에서 서열 정보를 뽑아내 단백질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장소로 운반한다. 일단 RNA 전사물이 세포질 속 단백질 생산 기구에 도착하면, 단백질 생산 기구는 그 서열 정보를 사용해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데, 이 과정을 번역이라고 한다. 번역은 DNA에서 뽑아온 정보를 세포 기구가 효과적으로 읽고 그 정보를 사용하여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인 셈이다.
(단백질을 만드는 데는 1.2퍼센트만 사용된다)
인간유전체에서 발견된 모든 뉴클레오타이드 염기 중에서 뚜렷한 생물학적 기능을 지닌 단백질(혹은 다른 산물)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겨우 1.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방금 내가 우리 유전체의 기능에 관해 한 이야기는 우리 DNA의 98.8%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따라 나온다. 도대체 그 나머지 유전 물질은 무엇 때문에 존재한단 말인가?
50여 년 전, 프랑스의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와 자크 모노가 대장균 DNA 의 특정 구간이 단백질 생산을 위한 서열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쓰이지 않지만 단백질 생산을 조절하는 데는 쓰인다고 보고했다. 1965년에 그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이 발견은, 대장균의 환경 속에 라톡스라는 당이 존재할 때 단백질 생산 과정이 시작되어 라톡스를 소화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이 단백질은 대장균의 환경에 라톡스가 없을 때는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그 단백질이 필요할 때는 단백질을 부호화하는 유전자를 켜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꺼두는 식으로 환경 요인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것이 명백했다.
그러므로 촉진유전자, 작동유전자, 종결인자는 실제로 단백질을 부호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DNA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분절들인 셈이다. 대장균의 경우, 환경에 라톡스가 존재하지 않을 때는 억제인자라는 분자가 DNA의 작동유전자 부위에 달라붙는다. 억제인자는 DNA의 부호와 지역들을 읽힐 수 없는 상태로 만듦으로써, 필요하지도 않은 라톡스 소화 단백질을 만드느라 허비될 에너지를 절약한다. 하지만 라톡스가 존재할 때는 억제인자의 형태가 바뀌어 전사를 개시하고 라톡스 소화 단백질을 만들게 한다. 지금은 사람의 세포를 둘러싼 환경도 세포 속 유전자 활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다. 비록 그 매커니즘은 세균에서 발견된 것과 다르지만 말이다(예컨대 사람의 유전자에는 작동유전자가 없다) 그러나 더 단순한 생물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이런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환경에 따라 DNA부호화 부위의 전사를 촉진하거나 종결함으로써 단백질 생산을 촉진하거나 종결할 수 있는 DNA 비부호화 부위의 존재다.
비부호화 DNA가 유전자 조절에 기여하는 또 다른 빙식은 갖고 잇는 서열 정보를 전사하여, 단백질로 번역되지는 않더라도 홀로 다른 특정 임무를 수행할 수 잇는 비부호화 RNA 분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기능을 지닌 RNA 분자를 부호화하는 DNA는 단백질을 부호화하지는 않기 때문에 여전히 비부호화 DNA라고 불린다. 비부호화 RNA 중에서 마이크로 RNA는 DNA 분절에 달라붙음으로써 유전체의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록 그 기능의 상당부분이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 암, 알츠하이머 병, 프레더윌리증후군, 기타 신경질환 등 여러 질병이 비정상적인 비부호화 RNA 와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 분자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고전적 유전자 개념의 종말)
[6] 조절,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일
분화가 끝난 정상적 세포들은 다능성을 잃는다. 뉴런이 된 세포는 계속 뉴런으로 남으며, 저절로 간세포나 다른 어떤 세포로 변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말이다. 이 점이 좀 수수께끼다. 예컨대 성숙한 뉴런과 간세포가 둘 다 똑같은 줄기세포로부터 발달한 것이라면, 왜 성숙한 뉴런은 성숙한 간세포로 바뀔 수 없고 성숙한 간세포는 성숙한 뉴런으로 바뀔 수 없는 걸까? 이렇게 잠재력을 상실하는 이유에 관한 한 가지 tfj명은, 세포들이 성숙하고 분화하는 동안 다른 종류의 세포가 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잃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1958년에 프레더릭 스튜어드가 성숙한 식물에서 채취한 뿌리 세포 하나로부터 새로 완전한 식물이 생성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모든 생물의 분화된 세포들은 원래의 정보를 전혀 잃지 않는다. 이리하여 생물학자들은 우리 서재의 읽지 않은 책들 속 정보처럼, 모든 종류의 세포가 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분화된 세포들 속에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과학자들은 배아줄기세포가 다능성을 갖추려면, 한 세포에서는 한 가지 유전자 무리가 한 가지 종류의 일을 행할 수 있고, 다른 세포 속에서는 다른 종류의 유전자 무리가 다른 종류의 일을 행할 수 있게 하는 모종의 매커니즘이 필요한 것임을 알았다. 다시 말해서 똑같은 줄기세포 두 개가 뇌 속의 세포와 폐 속의 세포처럼 전혀 다른 세포들로 발달하려면, 한 세포는 정보의 한 가지 특정 부분을 사용해야 하고 다른 세포는(서로 중첩될 가능성은 있더라도) 다른 부분의 정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세포들이 정보를 이렇게 선택적으로 사용하게 해주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그렇게 다능성-분화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X 더하기 X 가 X라고?)
(DNA의 측근들)
사람 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DNA를 모두 펼치면 2미터가 넘는다. 이 커다란 DNA 분자들을 세포핵이라는 정말로 작은 공간 속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히스톤이다.
(출처:labclinics.com, DNA메틸화, DNA methylation)
염색체가 DNA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염색체 안에는 DNA 외에 히스톤이 함께 존재한다. 실제로 염색체를 이루는 물질, 즉 염색질에는 DNA 보다 두 배 많은 단백질이 포한되어 있으며, 이 단백질은 주로 히스톤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행동 후성유전학 연구가 초점을 맞추는 대상은 염색질 중에서도 DNA 가 아닌 이 분자들이다. 염색체의 비DNA 요소들은 실제로 우리의 DNA, 다시 말해 유전자와 물리적으로 접촉하고 있으므로, 글자 그대로 유전자 위에 있다. 라는 의미에서 후성유전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체를 갖고 있는 것처럼, 우리 세포의 특징을 만드는 모든 후성유전적 특징의 총체인 후성유전체도 갖고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유전체가 지닌 독특한 특성이 그러듯이, 후성유전체의 독특한 특성도 그 사람의 형질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한 사람의 후성유전체는 모든 면에서 유전체에 맞먹는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후성유전체가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까닭은 히스톤에 꽁꽁 감겨 있는 DNA를 후성유전체가 효과적으로 침묵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스톤은 DNA를 잘 꾸려 넣는 역할 때문에도 중요하지만, 유전자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봐도 중요하다. DNA분절에 담긴 정보는 ,DNA를 해독하는 생화학적 장치가 그 정보를 읽을 때(전사)만 사용될 수 있다. 히스톤 자체가 DNA의 정보를 읽히지 못하게 하는 힘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떤 DNA 분절이 히스톤 실패에 너무 단단히 감겨 있어서 그 분절 속 정보에 접근할 수 없을 때는 전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유전자에 담긴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는 말은 그 유전자와 관련된 단백질을 생산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후성유전체는 바로 이렇게 해당DNA 속 서열 정보를 실제로 바꾸지 않으면서도 염색질이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를 침묵시키거나 활성화하는 후성유전 메커니즘)
DNA를 침묵시키거나 활성화할 수 있는 몇 가지 후성유전메커니즘이 있는데, 이 메커니즘들은 대부분 히스톤에 영향을 주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DNA와 직접 상호작용한다. 이중 우리가 현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메커니즘이 DNA메틸화이다. DNA메틸화란 그림에서 보듯이 DNA 한 가닥에 메틸기라는 분자 하나가 달라붙는 과정이다. 마치 스파게티 접시 위에 뿌린 후추 입자가 파스타 가닥에 달라붙는 것과 비슷하다(하지만 메틸기는 훨씬 강력한 힘으로 DNA에 부착된다) 일단 메틸기가 DNA 가닥에 달라붙으면 이 메틸화된 부분은 확실히 닫혀버려서, 메틸화되지 않았다면 그 부분과 상호작용했을 생화학적 장치와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게 되며 이 상태에서는 그 부분이 전사될 수 없다. 따라서 과메틸화(DNA 가닥에 메틸기들이 추가적으로 더 달라붙는 것)를 일으키는 과정은 그 가닥에 있는 유전자의 발현을 감소시킨다. 반대로 저메틸화(DNA 가닥에서 메틸기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로 이어지는 과정은 그 가닥에 있는 유전자가 발현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여기서 꼭 챙겨야할 메시지는 DNA 메틸화는 유전자를 침묵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DNA메틸화가 유전자를 항상 침묵시키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침묵시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유전자 활동 조정)
후성유전학은 현재 뜨거운 분야다. 최근 연구들이 밝힌바, 후성유전체는 히스톤과 DNA 변형에 관한한 대단히 잘 조직되어 있고 아주 놀라울 정도로 무작위성이 없다고 하니, 우리의 후성유전체를 구성하는 후성유전적 표지들의 패턴은 어떤 우주적 우연의 결과는 문명 아닐 것이다. 더욱이 이 연구에서 나온 중요한 결론 하나는, 몸속의 특성 유전자들이 영구적으로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염색질에는 어떤 유전자들은 활성화하고 다른 유전자들은 침묵시키는 염색질 리모델링이라는 변화 과정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후성유전의 중요성을 파악하려면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거나 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DNA메틸화는 유전자를 침묵 시키고 히스톤 아세틸화는 유전자를 활성화한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해서, 후성유전적 조절이 반드시 그렇게 양자택일적으로 켜거나 끄는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유전자가 전등 스위치처럼 항상 켜진 상태 아니면 꺼진 상태이기만 한 것인지, 조도 조절 다이얼이 전등의 밝기를 조절하는 식으로 유전자의 활동 정도도 조절할 수 있는게 아닐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7] 심층 탐구 : 조절
(모계 DNA와 부계 DNA를 구별 짓는 후성유전적 각인)
2부. 후성유전학의 기본 개념들
[8] 몸과 행동을 바꾸는 후성유전
현재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무엇이 쌍둥이 발생을 초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쌍둥이들의 존재는 일종의 자연 실험을 제공한 셈이었고 심리학자들은 대대로 본성과 양육 중 인간의 특징에 더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과정에서 쌍둥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본성과 양육 둘 다 우리의 형질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한다.
2005년, 마드리드 소재 스페인 국립암센터는 일란성 쌍둥이 40쌍의 후성유전적 상태에 관한 중요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이 쌍둥이들의 유전체 전체에서 일어난 DNA 메틸화와 히스톤 아세틸화를 모두 검토하여 젊은 일란성 쌍둥이들이 서로 극히 유사한 후성유전적 표지 패턴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쌍둥이들이 나이 들면서 각자 삶에서 서로 다른 경험이 쌓일수록 그들의 후성 유전적 상태도 서로 달라졌으며, 나이가 더 많고,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영위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쌍둥이에게서는 유전체 전체에 나타난 DNA 메틸화와 히스톤 에틸화에서 현저한 차이의 증거가 보였다.
후성유전적 변형이 유전자의 발현 방식을 변화시키므로 일란성 쌍둥이를 포함한 모든 개인이 각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은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서로 다른 여러 경험을 하며 그러한 경험은 몸을 이루는 세포의 조성과 화학을 변화시키는(그럼으로써 몸 자체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유전자 활동에 영향을 준다. 두 사람이 똑같은 DNA를 공유하는 드문 상황에서조차 각자 유일무이한 개인의 모습과 행동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똑같아야 할 일란성 쌍둥이가 실제로는 똑같지 않은 이유다.
(후성유전의 놀라운 효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와 대조적으로, 다른 생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은 후성 유전의 효과가 유전의 효과만큼 뚜렷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대게 사람들은 경험이 생각과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은 편하게 받아들이지만, 몸의 형태나 열굴 구조 등 신체적 외양에 나타나는 분명한 차이는 기본적으로 유전적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단정한다. 어쨌든 고양이와 개가 서로 그렇게 달라 보이는 건 유전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임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식물과 동물의 후성유전적 효과(정의상 유전자 서열 정보에는 변화를 주지 않는 효과)에 관한 여러 연구는 후성유전적 표지가 물리적 구조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99년에 주목할 만한 증거가 하나 나왔는데 영국의 과학자 세 사람이 공개한 좁은 잎해란초 사진이었다. 좁은잎해란초 꽃은 보통 자연 상태에서는 노란색 금어초와 비슷하게 생겼다. 연구자들은 보통 좁은잎해란초 꽃 사진 옆에 완전히 다른 종처럼 보일 수 있는 이른바 펠로리아 변이 좁은잎해란초 꽃의 사진을 나란히 배열했다. 사실 형대 생물 분류학자의 아버지인 린나이우스가 1749년에 이 자연발생 변이의 특징을 설명한 바 있으므로, 이 변형이 좁은잎해란초가 어딘지 잘못된 결과라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이 논문이 유럽의 저명한 과학 저널인 <네이처>에 실릴 만큼 놀라움을 자아냈던 이유는 좁은잎해란초의 일반형과 변이형 사이의 차이가, 유전적 차이가 아니라 엄밀히 후성유전적 차이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변이형 꽃의 특이한 형태는 정상적으로는 일반형 R초을 발달시킨 유전자가 메틸화되어 있음을, 즉 침묵화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후성유전적 변형이 한 유기체의 형태에 근본적 영향을 미쳐 유전자 변이로 보일 만큼 현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몇몇 동물 종에서도 이처럼 뚜렷한 후성유전적 효과가 신체 형태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생 인류와 네안타르탈인의 외양 차이를 후성유전적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지 확실히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최근의 흥미로운 연구는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잇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환경을 몸속으로)
섭식 경험이 꿀벌의 유전자 발현을 바꾸는 것처럼 우리의 유전자 발현 방식도 바꿀 수 있을까? 섭식이 후성유전을 통해 꿀벌의 몸을 바꾸는 것처럼 포유류의 몸도 분명히 바꿀 수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특정 품종의 생쥐에 관한 연구에서 나왔는데, 후에 다룰 것이다.
환경이 후성유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발견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제기한다. 바로 환경 요인이 어떻게 우리 내부로 들어와 유전자 활동에 영향을 주는가 하는 질문이다. 꿀벌의 예는 로열젤리 속 특정 단백질이 꿀벌의 몸속 호르몬 농도를 높인다. 이와 비슷하게 포유류의 경험, 그러니까 우리의 경험은 몸속 호르몬 방출을 부추기고, 그 호르몬 분자들이 DNA 근처로 이동해 후성유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환경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함으로써 우리 내부 상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둘 다 우리 몸속에 후성유전적 효과를 이끌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환경에서 생겨난 자극은 감각기관의 뉴런, 혈류 속 호르몬, 세포핵 속 유전자 등 여러 측면에서 생물학적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언제나 우리가 무엇을 경험했는가,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 몸, 세포, 기관, 유전자가 어떤 맥락에 처해 있는가 다.
하루주기리듬의 영향력이 큰 이유는 우리 유전자의 10% 이상이 하루 24시간 중 특정한 시기에만 전사됨으로써 하루주기에 맞춰 발현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시계는 DNA가 결정하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과학자들은 40여 년 전부터 초파리에게 하루주기리듬 유지에 일조하는 DNA 분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은 포유류에게도 비슷한 DNA 분절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유전자들은 우리 몸 전체에 고루 분포하는, 하루주기리듬에 관여하는 생물학적 시계를 이루는 매커니즘의 구성 요소다. 개별 세포들은 각자 시계와 유사한 자체의 리듬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 리듬은 시상하부라는 뇌 영역의 특정 뉴런에 의해 규칙적으로 동기화 된다. 이 뉴런은 24시간마다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세포 속 특정 단백질의 수치를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식으로 박동 조율기 같은 기능을 한다.
생체 실험에서 밝혀진바 포유류의 하루주기리듬은 다양한 유전자를 켜고 끄는 일을 통해 유지되며, 이로써 하루 24시간이 정확히 돌아가는 시간 패턴이 만들어진다. 요컨대 유전자를 켜고,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단백질 농도가 높아지고, 유전자를 끄고, 단백질 농도가 떨어지는 과정을 매일 새로이 반복하는 것이다.
※시차증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3시간 비행하면 시차증이 생기지만, 북쪽에서 남쪽으로 3시간 비행할 때는 시차증이 생기지 않는다 .
우리는 시차증을 어떻게 적응할 수 잇는 걸까?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생 24시간 사이클로 돌아갈 생물학적 시계를 과연 무엇이 재설정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빛인 것 같다. 연구자들은 사람과 상당히 비슷한 하루주기 시계를 지닌 햄스터를 이용해 이 질문의 답을 탐색했다. 햄스터가 밤이라고 여기고 있는 시간대에 햄스터를 빛에 노출하면 시상하부 박동조율기 뉴런들에서 유전자 활동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 뉴런들이 눈으로부터 빛 노출에 관한 정보를 받는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이 비정상적인 시간대에 빛을 보면 그 빛이 눈으로 들어가 망막의 세포들을 때리고, 이 세포들은 시상하부의 박동조율기 뉴런들에게 신경 신호를 보낸다. 이 뉴런들 속 유전자는 그 신호를 받자마자 단백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고 이것들이 쌓여 연쇄효과를 일으켜 하루주기 시계를 재설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게 후성유전과 무슨 상관일까?
이 메커니즘은 생물이 융통성 있게 자신의 행동을 태양의 맥락에 맞추도록 돕는다. 그리고 후성 유전적 변화도 그 메커니즘의 일부일 수 있기 때문에 뇌과학자들은 후성유전이 생물학적 리듬과 천문학적 리듬을 조화시키는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탐구했다. 실제로 우리에겐 하루주기 시계와 관련된 유전자들의 활동을 조절하는 DNA 분절들이 존재하며, 이 분절들과 관련된 히스톤 아세틸화가 그 시계 관련 유전자들의 활동에 영향을 준다.
학습과 기억은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에 반응하여 뇌에 변화를 일으키는 심리적 과정이다.
후성유전적 변형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 자손 대대로 대물림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까지 아직 엄청난 양의 연구가 필요하다.
[9] 심층 탐구: 후성유전
후성유전적 변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유전자 전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전사는 전사인자라는 분자들이 DNA 조절부위라는 곳에 달라붙을 때 시작된다. 조절 부위 자체도 DNA 분절이므로 조절 부위는 전사인자와 결합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전사 인자가 부착될 수 있는 특별한 뉴클레오타이드 염기서열로 이루어져 있다. 전사인자가 조절 부위에 결합하면 그 부위와 관련된 유전자의 전사가 시작된다.
어떤 조절 부위들은 조절하는 유전자 가까이에 있지만 일부는 DNA 가닥 상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기도 하다. 놀랍게도 어떤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들은 다른 염색체상의 조절 부위와 짝을 이뤄 조절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때로는 한 염색체에 있는 조절 부위가 완전히 다른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염색질 리모델링의 기본 작동)
자 이제 히스톤 아세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간략히 살펴보자. DNA는 음전하를 띠는 반면, 히스톤은 양전하를 띤다. 반대 전하끼리는 서로 끌어당기므로 DNA는 자신이 감고 있는 히스톤 실패에 대체로 단단히 달라붙게 된다. ~~~이런 이유로 전사인자들은 DNA속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진다. DNA 가 둘둘 감고 있는 실패 하나하나는 서로 다른 히스톤 네 쌍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히스톤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히스톤을 이루는 아미노산 대부분은 동그란 구와 비슷한 형태로 실패의 한 부분을 형성하지만, 실패 속 히스톤 여덟 개 각각에는 꼬리가 달려있고 이 꼬리들은 실패를 감고 있는 DNA 가닥 바깥으로까지 한참 길게 뻗어 나와 있다. 이 여덟 개의 꼬리가 중요한 이유는, 각각의 꼬리가 다양한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아미노산들이 아세틸기나 메틸기, 인산기 같은 다른 화학물질들과 강력하게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스톤 부호 가설)
(후성유전의 프리마돈나)
특정 영역의 메틸화 정도는 개인의 경험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무작위적인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10] 경험은 어떻게 뇌를 바꾸는가
생애 초기의 경험이 특정한 발달상의 결과와 관련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도 가치 있지만, 그 경험이 어떻게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밝혀내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생애 초기 경험의 물리적 결과)
발달 심리생물학자인 마이클 미니와 생화학자 모셰 스지프가 이끄는 연구팀이 발견한 시스템은 거의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 보였다.
쥐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더디게 성장한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 또한 쥐의 신경계는 사람의 신경계와 매우 비슷하다
(엄마의 양육이 만드는 유전자 침묵화)
태어난 후 낮은 수준의 LG(털고르기 같은 애정표현)를 경험한 쥐들은 뇌의 특정 영역에 있는 세포들의 유전체 영역에 메틸화가 더 많이 일어났다. 그 결과 이 쥐들의 뇌 속에서는 특정 종류의 단백질이 더 적게 생산된다. 이 단백질은 스트레스 상황에 반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글루코르티코이드 수용체 단백질, 줄여서 GR 단백질이라고 부르며, 낮은 LG 경험에서 영향을 받는 세포는 바로 해마 영역에 있는 세포들이다.
[11] 심층 탐구: 경험
(스트레스 반응 고리)
(없어서는 안 될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
(양육과 후성유전적 메커니즘)
LG수준이 높은 어미 쥐의 새끼가 성장하면 이들의 해마 세포에 GR이 더 많이 만들어져 글루코코르티코이드 되먹임 민감성을 더욱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식으로 초기 경험은 이 쥐들이 자기 몸속에 존재하는 코르티솔에 더 민감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위협이 제거되면 곧바로 스트레스 반응을 더 효과적으로 가라앉힐 수 있게 한다. ~~~이는 초기 경험이 이후 삶의 심리적 특징에 영향을 주는 정교하고 기계적인 방식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다.
LG 가 낮은 양육을 받은 쥐들이 LG 가 높은 양육을 받은 쥐들에 비해 DNA 메틸화가 유의미하게 더 많이 일어났음을 발견한 것이다.
해마에 GR이 적은 쥐는 스트레스를 겪을 때 혈류 속 코르티솔에 반응하는 능력이 떨어져 있고, 따라서 시상하부가 계속해서 CRH를 쏟아내는 바람에 스트레스 상황에서 회복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스트레스가 설치류에 미치는 효과)
[12] 영장류 연구
(자살 연구, 인간의 행동 후성유전학으로 들어가는 입구)
연구팀들은 뇌에서 가장 최근에 진화한 바깥쪽 층이자, 고도의 인지 기능에 관여하는 대뇌피질의 세포에서 추출한 DNA를 조사했다. ~~~~연구는 자살자들이 다른(질병 이외의)원인으로 갑자기 사망한 사람들과 미틸화 프로필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살 행동과 관련 있다고 여겨지던 특정 DNA 영역에 더 많은 메틸화가 일어나 있었다.
아동기에 학대받은 자살자들은 사망 원인과는 무관하게 학대당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GR 촉진 유전자가 심하게 메틸화되어 있었다. ~~~~오래전 나쁜 양육을 경험한 사람들은 뇌에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단백질들이 덜 발현되어 있었다.
(혈액이라는 유망한 후보)
(지배 서열이 유전자 발현에 미치는 영향)
좋은 방법은 한 사람의 경험을 조작한 다음 그 경험이 과연 그 사람의 혈액세포 속 DNA의 후성유전적 상태에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간 혈액 연구의 가능성)
비극적인 일이지만, 학대는 심지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다고 해도 한 사람의 후성유전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외로운, 가난, 악압)
몇몇 종류의 경험은 사람에게 분명히 후성유전적 영향을 준다. 아동 학대 경험은 GR 촉진유전자와 세로토닌 수송체 촉진 유전자의 메틸화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태내에 있을 때 가정폭력에 노출된 것은 GR촉진 유전자의 메틸화 증가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참가자들의 생애 초기 사회 경제적 지위가 그들의 유전자 발현 패턴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했다.
[13] 기억의 과학
지난 20년간 기억의 과학은 워낙 빠른 속도로 발전해서 일부 뇌과학자들은 특정 기억의 선택적 삭제가 실제로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뉴욕대학교의 조지프 르두와 함께 일하는 연구자들은 특정 실험 프로토콜의 맥락 속에서 특정 시간에 쥐의 특정 뇌 영역들에 특정 약물을 주입한 후, 나머지 기억은 그대로 남기고 특정 기억만 지운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얻었다.
(유전자와 장기기억의 내밀한 관계)
켄델(에릭 켄델) 연구실은 기억이 형성될 때, 다시 말해 신경계가 어떤 동물의 과거 경험을 기록할 때, 유전자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냈다. ~~~~켄델의 연구에서는 군소의 몸 한 부분에 전기 충격을 주고 잠시 후 다른 부분을 건드렸다. 전기 충격을 받은 적 없는 군소라면 건드려도 놀람 반응을 일으키지 않지만, 먼저 전기 충격을 받은적 있는 군소는 그냥 건드려도 놀람 반응을 보인다. 캔델은 이런 점이 그 동물이 전기 충격을 기억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연구팀은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는 항생제를 사용하여 군소의 뉴런이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 수 없게 되었을 때조차 군소가 1회의 충격 경험에 관한 단기기억을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 항생제는 군소가 여러 차례의 충격에 반응하여 장기기억을 형성하는 것을 방해했는데, 이는 장기기억을 확립하는 데는 새로운 단백질의 생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소에게 4~5회 충격을 가하는 행위는 군소의 감각 뉴런이 주위의 다른 뉴런과 새로운 연결을 맺도록, 즉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도록 이끈다. 새로운 단백질 생산이 있어야만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는, 강화되지 않더라도 몇 주 동안은 지속될 수 잇으므로 이를 장기기억의 물리적 예시로 이해할 수 있다.
장기기억이 형성되려면 새로운 단백질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발견은, 우리 뇌에 장기기억을 새기는 메커니즘에 관한 중요한 뭔가를 알려준다. 그건 바로 메커니즘에서 윶너자가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소에게 4~5회 전기충격을 가하면 군소의 감각 뉴런 속 특정 분자들이 활성화되며, 이어서 이 분자들이 뉴런의 핵 안으로 들어가 DNA에 달라붙어 전사기구를 작동시키면서 유전자 발현(결국에는 단백질 생산)과정을 개시한다.
(기억과 후성유전)
(해마, 기억의 대장간)
(생쥐의 기억 만들기)
(DNA 메틸화도 역동적일 수 있다)
해마는 기억 형성에는 관여하지만 그 기억들이 최종적으로 보관되는 장소는 아니므로, DNA메틸화가 해마에서 일어나는 경우에는 내내 안정적이라는 평판과 달리 분명 일시적일 것이다.
DNA 메틸화는 우리가 수정될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하는 경험들을 반영할 수 있는 듯하다.
[14] 심층 탐구: 기억
(기억을 개선하는 화학작용)
신경전달물질이 감각 뉴런을 자극하면 뉴런의 수용체들이 긴 연쇄 작용을 개시하면서 수용체 단백질들이 다른 화학물질에 영향을 주고, 이 물질들이 또 다른 단백질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계속 영향이 이어진다. 이 연쇄 작용의 말단 쪽에 자리한 단백질들은 뉴런의 핵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또 다른 단백질들과 상호작용하여 장기기억 형성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전사인자를 활성화 한다. 이 전사인자는 일단 DNA에 달라붙고 나면 CREB결합단백질 CBP이라는 또 다른 단백질을 불러와서 CBP와 함께 장기기억 형성에 필요한 유전자 전사를 시작한다.
CBP 가 장기기억에서 필수적인 이유는 두 가지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CBP는 전사기구를 DNA로 끌어올 수 있다. 둘째로 CBP는 HAT, 즉 히스톤 아세틸 전이효소이기 때문에 히스톤을 아세틸화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유전자 발현을 촉진하는 식으로 염색질을 수정할 수 있다. CBP 단백질은 장기기억 형성에 참여하는 것 외에 몸속에서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정상적인 CBP 생산을 방해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에게는 골격 이상과 인지 결손을 특징으로 하는 루빈스타인-테이비증후군이라는 병이 생긴다. CBP를 만드는데 쓰이는 유전자의 정상대립유전자 중 하나만 없어도 아예 생존이 불가능해지는데, 이것만 봐도 CBP는 매우 중요한 단백질임이 틀림없다.
(잃어버린 기억 되찾기)
현재 과학자들은 HDAC이 최소한 11가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이제는 그것들이 모두 똑같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알츠하이머병 치료법을 찾아서)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은 후성유전 메커니즘이 알츠하이머병 관련 신경 퇴행과 연관된 인지 저하에 실질적으로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HDAC들의 기능은 정상으로 남겨둔 채 HDAC2만을 선별적으로 억제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화치료는 항우울제와 상당히 비슷한 방식으로 뇌 기능에 영향을 준다.
(용서는 지혜, 망각은 현재)
[15]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다
임신기 내내 영양이 부족한 엄마가 낳은 자녀는 대개는 지속적으로 저체중을 유지한다. 그런데 쥐 실험을 해보니 임신기의 처음 두 삼분기(초기와 중기)동안 영양부족을 겪은 쥐가 낳은 수컷 새끼 쥐는 정상 체중으로 태어나지만 약 5주 후부터 폭식을 시작했다. 결국 이 새끼 쥐들은 임신기에 정상적으로 먹이를 먹었던 어미쥐가 낳은 쥐들보다 체중이 더 무거워졌다.
(건강과 질병의 발달상 기원)
20세기가 끝날 무렵 영국의 임상역학자 데이비드 바커는 출생시 체중이 낮은 아이는 관상동맥성 심장질환 및 연관 질환, 뇌졸중, 고혈압, 인슐린 비의존성 당뇨병의 발병률이 높은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잘 입증되어 있던 사실에서 출발하여, DOHaD를 출생 전 자궁 내 경험이 표현형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연구하는 분야로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 ※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양상태가 저조한 임산부 어머니는 뱃속 아기에게 아기가 곧 혹독한 환경으로 들어가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기는 그 신호에 반응하여 몸의 크기를 줄이고 대사를 변화시키는 적응하며, 이는 아기가 출생 후 식량 부족에도 살아남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식으로 가소성은 한 종이 한 세대 안에서 단기적 적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과식과 뚱보 유전자“를 넘어서)
음식 섭취가 후성유전 상태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DNA를 메틸화하는 메틸기를 우리 몸이 어디서 얻는지 생각해보면 명백해진다. 메틸기는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온다. DNA메틸화가 진행되는 동안 메틸기를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물질은 S-아데노실메티오닌, 일명 SAM이라는 분자다. 궁극적으로 SAM은 메틸기 대부분을, 그러니까 DNA 메틸화 동안 DNA에게 내어주는 바로 그 메틸기들을 비타민 B2, B6, (엽산 또는 폴산이라고도 하는) B9, B12 그리고 콜린을 함유한 식품에서 얻는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섭취하는 식품에 이 영양소들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메틸기 공급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 영양소들은 그 화학적 조성에 힘입어 몇 가지 생물학적 과정에 필요한 원재료를 공급하는데, 시리얼에 이 영양소들이 보충되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엽산은 정상적인 태아의 발달에 필수적인 비타민이기 때문에 흔히 의사들은 가임기 여성에게 엽산 보충제를 복용하고 계란, 간 그리고 아스파라거스나 시금치 같은 짙은 녹색 채소를 먹도록 권한다. 임신 전후 한 달 정도 시기에 엽산을 너무 적게 섭취한 여성은 선천성 이상이 있는 아기를 출산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계란, 육류, 맥아, 콜리플라워, 우유 등에 들어 있는 콜린 역시 태아의 정상적 발달에 중요하며, SAM 생산과정에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리고 SAM 생산에 붖어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 결국 후성유전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사람의 섭식 경험이 끼치는 영향)
주목할 점은 후성유전적 변화가 성인의 다양한 표현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몇 가지 표현형만 꼽아 보면 신체 크기 같은 신체적 상태, 당뇨병 같은 대사 상태, 조현병 같은 심리적 상태를 들 수 있다.
현재까지 몇몇 연구가 비타민 B군과 콜린 외에 다른 식이 인자들이 내는 후성유전적 효과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인도 요리에서 즐겨 쓰이며 생강과에 속하는 향신료인 강황의 특정 성분은 히스톤에 아세틸기를 전달하는 단백질들(히스톤 아세틸 전이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유사하게 녹차 등 다른 몇몇 식품은 DNA에 메틸기를 전달하는 단백질들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 그밖에 알코홀이나 아연처럼 우리가 섭취하는 다른 물질들도 SAM형성에 사용되는 몇 가지 메틸기에 영향을 줌으로써 DNA메틸화에 영향을 미친다.
(잘 먹는 게 최고의 복수)
몇몇 자연식품도 히스톤 아세틸화를 촉진하고 그럼으로써 유전자 침묵을 막는다. 예컨대 브로콜리 새싹을 먹고 나서 겨우 3~6시간 후에 특정 백혈구 세포들에서 히스톤 아세틸화가 증가했음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발견은 관상동맥질환이나 신경성 질환 그리고 인간의 노화에까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는, 미래에 아빠가 될 사람이 무엇을 섭취하는가도 이후 자녀의 특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6] 심층 탐구: 영양
히말리아 토끼의 털색은 온도의 영향을 받는데, 이 토끼들은 흰색 바탕에 귀, 발, 코, 꼬리 등 말단 부위만 검은색이다. 히말라야 토끼들의 이런 털색 패턴은 처음에는 환경과는 무관하게 유전적으로 부호화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정도로 아주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토끼뜰의 말단 부위가 검은 것은 이 부위들이 몸통 중심부에 가까운 다른 부위들과 달리 더 차갑기 때문임이 밝혀졌다. 이걸 어떻게 알게 됐을까? 히말라야 토끼의 등에 난 털을 밀어버리고 그 부위에 냉찜질 팩을 붙여두면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의 털이 자라기 때문이다.
(털색이 변화무쌍한 생쥐)
(식생활의 힘)
식이 요소는 DNA메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알코홀과 비스페놀A)
임신한 생쥐가 임신기에 알코홀을 섭취 하는 것은, 자궁 속에서 발달 중인 생쥐의 후성유전적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잇다. 아마도 이 영향이 발생하는 이유는 알코홀 섭취가 메틸 공여자 SAM의 가용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 효과를 발견한 연구에서 알코홀을 섭취한 암컷이 낳은 생쥐 중 일부는 머리와 얼굴이 더 작거나 이상한 모양으로 발달했는데, 이는 태아 알코홀 증후군을 연상시키는 이상이었다.
또 하나 염려스러운 물질은 일부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비스페놀A(BPA)라는 화학물질이다. 몇몇 연구에서 비스페놀A가 포유류 내분비계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한다는 증거가 나왔다.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같은 일부 국가에서 아기 젖병에 비스페놀A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이 물질은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식품 용기와 플라스틱 병에 존재한다.
3부. 대물림의 의미와 메커니즘
[17]후성유전의 효과는 대물림된다
어떻게 자기 부모, 조부모, 혹은 더 먼 조상과 유사한 특징들을 갖게 되는지는 언제나 사람들을 사로잡는 듯하지만, 1859년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 후로는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됐다. 그 대작에서 다윈은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경향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진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며, 종들이 서로 다르고 각자 자신들의 자연 서식지에 잘 적응되어 있는 이유를 일부 설명해준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세기에는 이 과정에 관한 인류의 이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생명의 풍성한 장관의 기원을 밝혀내고 왜 그리고 어째서 개체의 특징들이 가계의 내력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후성유전 표지는 때로 세대와 세대를 건너 전달되기도 하며, 형질이 대물림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키는데, 후성유전 표지가 대물림될 수 있다는 주장과, 그 표지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발견을 하나로 합하면, 조상이 살아가는 동안 획득한 형질을 후손이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부 후성유전적 표지들이 대물림될 수 있다는 탄탄한 증거가 존재하며 획득된과 대물림된(유전된) 이라는 단어들의 특수한(그러나 완벽히 합리적인) 정의를 고려할 때, 획득 형질도 대물림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현대적 대물림의 간략한 역사)
획득 형질의 유전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적인 주제이며, 따라서 경험으로 유도된 후성유전적 표지 중 자손에게 대물림되는 것이 있다는 발견 역시 논쟁적이다.
유전자gene란 단어는 1909년에 덴마크의 생물학자 빌헬름 요한센이 만든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이 널리 퍼지게 된 이유)
(환경의 대물림)
(라마르크주의로 가는 문을 다시 열다)
적응에 유리한 형질들은 특정 환경 안에서만 발달한다. 한 번 생겨난 그 형질들은 이후 후손에게도 한결같이 정상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유전적 요인과 비유전적 요인 둘 다의 세대간 이동을 반영한다.
경성유전이란 경험과 무관하게 이뤄지는 유전, 즉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유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경험에 의존하는 형질의 대물림은 연성 유전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뜻일까?
유전의 개념은 단 하나이며, 그것은 유전적 발달 자원과 비유전적 발달 자원 모두의 대물림을 포함한다. 다윈도 인정했듯이, 특정 형질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결같이 복제된다면,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든 간에 그 형질은 비유전적 요인들에 의존해 발달한 것이라 해도 유전될 수 있다.
[18] 다양성의 바다에서
(표현형을 물려주는 몇 가지 방식)
(행동을 통한 후성유전 상태의 대물림)
(후성유전적 표지 지우기)
30년 전, 생물학자들의 상식은 이랬다. 첫째, 후성유전적 표지는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완전히 지워지므로 세대 간 후성유전적 대물림은 불가능하다. 둘째, DNA 서열정보만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대물림될 수 있다. 셋째, 따라서 경성 유전만이 유일한 유전이다. 이런 상식에는 라마르크주의를 향한 바이스만의 불신이 잘 담겨 잇다. 바로 부모는 자기가 살면서 한 경험의 결과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1997년에 생쥐의 생식계열을 통한 후성유전적 대물림이 발견된 뒤 이 이야기에는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해졌다.
(라마르크 되살리기)
추가적 연구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사이에 일어나는 지우기 두 단계를 다 거치고도 DNA 메틸화가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다.
DNA 메틸화가 생식계열을 통해 대물림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여전히, DNA 가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이동할 때 대부분의 후성유전적 표지가 지워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19] 경험이 유전된다는 증거
(생식자를 통한 세대 간 후성유전적 대물림)
Avy생쥐라 불리는 이 생쥐들 중 일부에게는 노란 털이 있고, 노란 Avy 생쥐들은 비만인 경향이 있으며 당뇨병과 암이 생길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또 다른 Avy 생쥐들은 노란털 형제자매들과 정확히 똑같은 유전체를 갖고 있는데도 갈색이 도는 털이고 보통 마른 몸에 건강하다. 이 생쥐들의 털색은 유사 아구티 색이라고 한다. 노란 Avy 생쥐와 유사 아구티 Avy 생쥐의 차이는 후성유전에 의한 것이다. 그체적으로 말하면 유사 아구티 생쥐의 Avy유전자 근처의 DNA영역은 심하게 메틸화 되어 있고, 노란 Avy 생쥐의 같은 영역은 비교적 메틸화가 덜 되어 있다. 이 영역의 메틸화 정도는 어느 정도는 무작위적 과정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실험 연구들은 임신한 생쥐의 먹이도 새끼 생쥐의 그 위치에 있는 DNA의 메틸화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밝혀냈다.
연구자들은 1990년대 말에 이미 Avy 생쥐들의 털색이 어미의 털색과 어떤 식으로인지 연관되어 있음을 알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통통하고 털이 노란 Avy 생쥐는 더 마르고 유사 아구티색인 쌍둥이 자매Avy 생쥐들에 비해 털이 노란 새끼를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같은 Avy 유전자를 물려주더라도 유사 아구티 어미들과 달리 노란 어미들이 낳은 새끼들의 털에는 어느 정도라도 항상 노란색 털이 섞여 있는 경우가 눈에 띄게 많았다.
(경험의 직접적 영향 알아보기)
DNA 메틸화는 분명 생식자를 통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대물림될 수 있다.
(획득 형질의 유전)
(오염된 환경, 혼란에 빠진 진화)
후성유전적 정보의 세대 간 대물림에 관한 연구에서 환경 독소 영향에 관한 무시무시한 데이터가 나왔다. 2005년에 미국의 생화학자 마이클 스키너가 이끄는 연구팀은 임신한 쥐들을 빈클로졸린이라는 화학물질에 노출하면 그 쥐의 고손주 세대에서 탐지 가능한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불행히도 빈클로졸린은 포도 과수원에서 곰팡이를 죽이기 위해 그리고 복숭아, 양상추, 딸기 등을 감염시키는 균류를 죽이기 위해 흔히 사용한다.
빈클로졸린은 테스트스테론을 비롯한 남성호르몬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하며, 임신 초기에 암컷 쥐에게 주입하면 수컷 새끼는 정자 수가 적고 불임률이 높은 쥐로 자란다. 그런데 딱 이 부분에 이상이 있을 뿐 나머지 다른 면들은 정상이다.
빈클로졸린에 노출된 쥐의 후손들에게서 발견된 이상 중에는 정자세포의 DNA 분절 15군데에 일어난 비정상적인 메틸화가 포함된다.
[20] 조부모 효과
(스웨덴에서 나온 놀라운 이야기)
과학자인 라르스 올로브 뷔그렌은, 스웨덴 최북단에 위치한 외베르칼릭스라는 외딴 마을에서 자랐다. 뷔그렌은 외베르칼릭스를 이렇게 묘사했다. “무척 아름답고 (...)추운, 작은 숲 지역입니다. 우리 집은(...)북극권에서 안쪽으로 16킬로미터나 들어간 곳에 있었죠.” 그에 비하면 앵커리지와 알래스카조차 열대처럼 느껴질만한 위도다! 외베르 칼릭스는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었지만, 1799년부터 공동체 구성원 수와 연간 곡물 수확량을 빈틈없이 기록해 두었다. ~~~19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외베르칼릭스의 곡물 수확량 편차가 극도로 컸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 것은 조상들의 발달 시기 중 특정 시점의 영양 환경이었다. 그 시점은 보통 청소년기의 긊어장기에 돌입하기 직전 찾아오는 이른바 느린 성장기였다.
이 연구에서 나온 첫 결과는 꽤 놀라운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특정 남성의 느린 성장기에 식량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미래 그의 아들은 심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더 낮다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였다. 이와 유사하게 미래 그의 손주들은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더 낮았다. 이와는 충격적일 만큼 대조를 이루는 결과는, 식량이 남아도는 시기에 느린 성장기를 보낸 남성의 손주들에게서는 당뇨병 관련 원인으로 사망할 위험이 네 배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아버지들이 느린 성장기에 식량 과잉을 경험한 일이 아들들의 사망 위험 증가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남아가 느린 성장기에 흉년을 겪으면, 그의 미래 후손은 늘 풍요로운 시기를 살았더라도 더 건강하리라는 말이다.
(조상의 경험은 어띠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외베르칼릭스에서는 친할아버지가 느린 성장기에 굶주림을 경험했을 때 손자들은 유의미하게 사망 위험이 감소했으며, 그 결과 수명이 많게는 30년까지 증가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친할머니가 느린 성장기에 굶주림을 경험했을 때는 손녀들의 사망 위험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빈랑 열매와 대사증후군)
(그 유전은 특별하지 않다)
지금은 생식계열 세포들을 통해 DNA뿐 아니라, 표현형과 연관된 후성유전적 표지들도 일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자녀를 학대하는 양육 행동은 원숭이와 사람 모두에게서 대를 넘어 전달되는데, 이는 특정한 경험의 전달을 통한 것이지 생식계열에 담긴 특정한 정보의 전달을 통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경험은 생식계열에 영향을 주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의 후손들에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심리적 특징과 생물학적 특징은 우리가 성장하는 맥락에서 깊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부모에게 일어났던 일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반향을 일으키며 그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사회적 학습을 통해 전달되는 행동도 진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띨 수 있다. ~~~세대 간 표현형의 전달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만 진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부 숨은 의미 찾기
[21] 경계해야 할 것
(결정론의 위험)
20세기가 끝나가던 무렵에는 유전자가 결정론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분명해졌고 경험이 유전자를 침묵화하거나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모두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언론은 환경적 요인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특정 질병 상태나 작은 키 같은 표현형을 독자적으로 초래할 수 있다고 암시함으로써 후성유전적 결정론으로 슬그머니 빠져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식의 글은 수십 년 동안 생물학에 들러붙어 있던 한 표현형을 담당하는 유전자라는 식의 착각, 즉 특정 표현형을 지시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가정과 똑같은 착각을 영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키 같은 특정 표현형이나 질병은 유전자나 유전자 스위치 같은 단 하나의 요인으로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간 상호작용을 통해 단계적으로 발생한다.
어떤 종류든 생물학적 결정론은 옳지 않다. ~~~~아이가 앞으로 어떤 일은 절대 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 아니가 결국 어떤 일을 할지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어른에게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출산하는 순간부터 갖난아기와 유대를 형성하는 게 절대적 원칙이라고, 그래야만 아기가 애착 문제가 없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고 믿는 여성은 만약 출산 후 입원하게 되어 아기와 시간을 함께 할수 없게 되면 걱정으로 몹시 심란해질 가능성이 크다. 다행스러운 점은, 갖난 생쥐에게 어미 분리가 스트레스 심한 일일 수 있다는 증거는 있지만, 갖 태어난 아기가 제일 먼저 처음 한 경험이 엄마와의 관계에 영원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다.
(양날의 검)
인간의 발달은 결정론적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렇듯이, 후성유전적 요인이 일부 질병 발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발견 역시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 어떤 사람은 그 발견에서 건강이 실제보다 더 통제 가능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자기계발서들은, 병리적 상태에 시달리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인지나 태도에 변화를 줌으로써 후성유전적 과정을 작동시켜 스스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현존하는 후성유전학 데이터를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후성유전에 영향을 주어 암이나 기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은 분명 과도한 해석일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몸의 스트레스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기는 하지만, 나는 세포 속 후성유전 활동을 의식적으로 통제 할 수 있다는 증거는 본 적 없다. 어떤 이유로든 효과를 내는 치료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열린 마음의 의료 접근법을 나는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새로운 문 앞에서)
[22] 근거 있는 희망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그 두 가지 사안, 그러니까 빛이 우리의ㅐ 일부 뉴런 속 DNA의 기능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접촉의 감소가 백혈구의 유전자 발현에 미치는 영향이 지금 쓰고 있는 책에 담길 내용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후성유전학의 병리학적 역할)
후성유전학의 여러 함의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기억을 만들며, 하루주기리듬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스트레스를 처리하고, 어려서부터 이러저러한 성격의 양육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 모두에게 보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후성유전학이 이 영역들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비정상적 병증의 발생에 관해서는 대부분 덮어두고 지나쳤다.
최근 후성유전학자들은 마치 폭설처럼 수많은 연구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으며, 이 책에서 내가 다룬 것은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낯선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 비행기를 타고 집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가면 저녁 8시에 잠이 드는 이유, 또는 위험하다고 학습했던 상황에 처했을 때 특정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후성유전학을 들어 설명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후성유전 상태가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반대, 그러니까 우리의 행동이 후성유전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도 그만큼 흥미롭다. 만약 행동이 촉발시킨 우리의 경험이 후성유전을 변화시킨다면, 이 주제 역시 행동 후성유전학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행동이 정확히 어떻게 후성유전적 상태에 영향을 미쳐 병을 초래하는지에 관해서는 비교적 아는 게 적다. 하지만 우리의 후성유전적 상태가 특정 종류의 질병과 관련이 있고 그 특정 질병이 경험과 관련이 있으며, 경험은 또다시 우리의 후성유전적 상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후성유전학의 가장 두드러진 연구 대상은 아마 암일 것이다. 이는 현재 과학자들이 암세포의 DNA가 일반적으로 정상 세포의 DNA에 비해 메틸화가 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암이 DNA 저메틸화와 관련이 있다는 말은 직관과 반대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른다.우리는 쥐들의 핥기와 털고르기 행동이 GR 유전자의 저메틸화를 유도한다는 것, 또 이 후성유전적 상태가 더 건강하고 겁이 없는 쥐와 관련된다는 것을 알고 잇으니 말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메틸화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DNA분절이 메틸화되는가이다.
(노화도 어쩌면 하나의 질병)
DNA 메틸화의 변화가 암 환자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우리 유전체의 메틸화 정도도 변화하며, 어떤 사람은 겨우 10~15년 사이에도 DNA 메틸화 정도에 충격적일 만큼 광범위한 변화가 생긴다. 이 발견은 여러 흔한 질병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처음 발병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뿐 아니라, 노화 자체를 후성유전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화는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므로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노화를 정상적 과정이라 생각했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노화란 어쩌면 하나의 질병일지도 모르며, 그것도 잠재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병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데이터로 밝혀진 후성유전적 효과들은 텔로미어라는 DNA분절이 자리한 염색체의 끄트머리에서 일어난다. 염색체에서 텔로미어는 신발 끝부분을 감싸 올이 풀어지는 걸 막아주는 플라스틱 싸개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싸개들이 노화와 관련이 있는 까닭은 하나의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세포 속 염색체의 텔로미어들이 조금씩 짧아지기 때문이다. 한 세포 안의 텔로미어들의 짧아진 길이가 임계치에 도달하면 그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할 수 없고, 이 시점이 되면 세포는 노화하고 비활성화되거나 사멸한다. 세포들은 대부분 분열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고, 그 후로는 텔로미어가 너무 짧아져 더 이상 복제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전체의 수명에 한계를 짓는다.
이스라엘의 한 연구팀이 유전자를 조작하여 시르투인6를 과발현시킨 생쥐를 만들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유전자가 조작된 수컷 생쥐는 일반 생쥐에 비해 유의미하게 수명이 더 길어졌다.
(중독, 알츠하이머병, PTSD)
(조현병과 양극성장애 그리고 자폐)
(우울증과 후성유전학)
(1세대 후성유전 약물: 암 치료제)
(후성유전 의학의 미래1: 기억장애 치료)
(후성유전 의학의 미래2: 우울증과 불안증 치료)
(행동 후성유전학의 법적. 윤리적 함의들)
[23] 행동 후성유전학의 핵심 교훈
(교훈1: DNA혼자 형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형질들은 유전과 후성유전, 환경이라는 다양한 요인들이 통합된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작동하며 상호작용한 결과 발달한다.
유전자는 주위 환경에 따라 반응하며, 그러므로 내가 갖고 태어난 유전자는 결코 내 이야기의 전부가 될 수 없다.
(교훈2: 신다윈주의 종합설은 수정돼야 한다)
(교훈 3: 후성유전 상태는 역동적이다)
(교훈 4: 유전자에 관한 은유는 부정확하다)
(행동 후성유전학의 핵심 메시지)
독자들마다 행동 후성유전학이 지닌 함의에 관해 서로 다른 결론들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과학자와 비 과학자는 이 책에서 서로 다른 방식의 안내를 받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이 책에서 챙겨 갈 가장 중요한 충고는 발달을 탐구하라이다. ~~~표현형들이 주오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지닌 과학자는, 전통적으로 행동 유전학자들이 해왔던 쌍둥이 연구, 그러니까 어떤 표현형이 환경의 조작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어떤 표현형은 그럴 수 없는지를 밝혀준다고 착각해왔던 그런 연구 쪽으로 이끌 수 있다.
우리가 지닌 모든 특징은 DNA를 포함한 유전된 요인과 환경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결과로 발달한다. ~~~~경험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발견은 우리의 특징들을 만들어내는데 발달이 담당하는 역할을 강조한다.
비과학자들이 후성유전학 연구에서 챙겨갈 수 있는 실용적 메시지는 이보다는 덜 명확한데, 이는 행동 후성유전학이라는 과학이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나와 있는 데이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조언들은, 후성유전학에 관해 전혀 몰랐을 때도 들었을 법한 조언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생물학적 과정들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도 바뀔 수 있다. ■
[Review]
젊은 당대표가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문제를 제기하자 노인회에서 발끈하고, 급기야는 노인회 대표와 당대표가 토론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젊은 당대표가 노인들이 할 일 없이 지하철을 타고 경마장에나 가면서 국가 재정을 탕진한다는 식의 말을 했다는 보도를 듣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오죽 심심하면 건전한 취미가 아닌 줄 알면서도 젊을 때 모르고 지내던 경마장을 갈까! 라는 생각이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어서 더 그랬다.
유전자 과학의 발달로 인간은 세포의 분자 화학적 비밀을 밝혀냈고, 어느 정도 노화 과정의 메커니즘도 윤곽이 드러났다. 이제 우리 일상에서 줄기세포, 염색체, 게놈, DNA라는 용어는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후성유전’이라는 과학은 생소하다. 후성유전은 진화생물학의 분야이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세포분열 유전학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에서 ‘후성‘의 의미는 “유전자 위에 있다”라는 뜻이다. 즉, 세포분열의 기본적 패턴에서 외부 환경이 가해질 때 나타나는 현상(변화)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후성 유전학의 출발은 DNA 사슬에 붙어있는 ‘메틸기’와 ‘히스톤’의 작용이다. 세포에는 세포핵이 있고, 세포핵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가 들어 있다. 염색체에는 유전 정보가 담겨있는 DNA가 이중나선의 긴 사다리 모양으로 있는데, 길이는 약 2미터에 달한다. 이처럼 긴 DNA는 작은 세포핵 안에 마치 실타래처럼 ‘히스톤 단백질’에 의해 단단히 뭉쳐 있다.
세포 분열은 DNA가 둘로 갈라지면서 시작되는데, 이때 히스톤 단백질이 ‘아세틸화’되거나 ‘탈아세틸화’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이와 마찬가지로 ‘메틸기’에서도 같은 작용으로 DNA 분열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후성유전의 개념은 ‘히스톤’과 ‘메틸기’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을 때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며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연구된 최신의 자료가 있다. 특히 노인성 질병, 암, 정신질환, 줄기세포의 변이와 기억이 어떻게 유전자에 각인되는지 등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서 흥미롭다.
이 책은 어떤 이들에게는 어렵기도 하지만 별 흥미롭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인간의 발달이 유전이냐? 환경이냐? 에 대한 의문에서 독자 스스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지식이 들어있다. 타고난 유전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운명론적 관점에서 이 책은 더욱 진취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또 후손에까지 전해진다는, 보다 열린 마음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후성유전학은 아직 뱃속에 있는 태아의 수준이기에 결정적으로 어떤 한 가지 정보에 의존해서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젊은 날에는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책을 통해 생명의 메커니즘을 접하면 젊음과 노령이 결국은 얼마나 미미한 차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특히 부모들이 자녀를 대할 때의 사소한 태도가 유전자의 변이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충격적이다. 뿐만 아니라 태아를 잉태한 사람들 그리고 모든 일반인들도 삶의 태도를 보다 진지하게 대하여야한다는 교훈을 준다.
저자는 발달 및 인지 신경과학자이며, 피처 대학 및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교수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좀 어려운 책이지만 이해하기 쉽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흥미가 있는 독자에게는 대부분 이해가 가능한 책이다.■
(본문)
“환경이 후성유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발견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제기한다. 바로 환경 요인이 어떻게 우리 내부로 들어와 유전자 활동에 영향을 주는가 하는 질문이다. 꿀벌의 예는 로열젤리 속 특정 단백질이 꿀벌의 몸속 호르몬 농도를 높인다. 이와 비슷하게 포유류의 경험, 그러니까 우리의 경험은 몸속 호르몬 방출을 부추기고, 그 호르몬 분자들이 DNA 근처로 이동해 후성유전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환경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함으로써 우리 내부 상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둘 다 우리 몸속에 후성유전적 효과를 이끌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학습과 기억은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에 반응하여 뇌에 변화를 일으키는 심리적 과정이다.”
“후성유전 표지는 때로 세대와 세대를 건너 전달되기도 하며, 형질이 대물림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키는데, 후성유전 표지가 대물림될 수 있다는 주장과, 그 표지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발견을 하나로 합하면, 조상이 살아가는 동안 획득한 형질을 후손이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부 후성유전적 표지들이 대물림될 수 있다는 탄탄한 증거가 존재하며 ‘획득된’ 과 ‘대물림된’(유전된) 이라는 단어들의 특수한(그러나 완벽히 합리적인) 정의를 고려할 때, 획득 형질도 대물림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20세기가 끝나가던 무렵에는 유전자가 결정론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분명해졌고 경험이 유전자를 침묵화하거나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모두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키 같은 특정 표현형이나 질병은 유전자나 유전자 스위치 같은 단 하나의 요인으로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간 상호작용을 통해 단계적으로 발생한다.”
“어떤 종류든 생물학적 결정론은 옳지 않다. 아이가 앞으로 어떤 일은 절대 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 아이가 결국 어떤 일을 할지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
“현존하는 후성유전학 데이터를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후성유전에 영향을 주어 암이나 기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은 분명 과도한 해석일 것이다.”
“암이 DNA 저메틸화와 관련이 있다는 말은 직관과 반대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른다. 우리는 쥐들의 핥기와 털 고르기 행동이 GR 유전자의 저메틸화를 유도한다는 것, 또 이 후성유전적 상태가 더 건강하고 겁이 없는 쥐와 관련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메틸화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DNA분절이 메틸화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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