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3월27일(수)맑음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이제 떠나려 하니까 날씨가 맑아지네. 그래도 가는 세월이 아까운 봄 날이니 청명산수가 목전에 분명하게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 일인가!
조식 먹고 체크 아웃하다. 8:30 택시 타고 교토 역으로 가다. JR철도 티켓 판매처로 가니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 있다. 차례를 기다려 예약한 e-티켓(스마트 폰에 저장된 것)을 사무원에게 보여주니 내 스마트 폰을 창구 안쪽으로 가져가서 티켓 정보를 종이로 인출하여 서류 작업을 하는 모양새다. 한국이라면 즉석에서 바로 처리될 일을 이렇게 수작업으로 진행하다니, 창구 실무 직원들이 모두 청년인데도 불구하고 디지털 처리 방식에 익숙하지 않구나. 세계적 관광지의 교통중심인 교토 역에서 이렇게 업무시스템이 구식이라니 …기가 찬다. 일본의 일상은 아직 디지털 시대를 충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던 JR 하루카 기차 표를 얻어서 기차 타는 곳으로 걸어 갔다. 안내 표지판이나 안내문구가 친절하지 않아 이곳저곳을 쳐다보며 방향을 잡고 허위허위 걸어가 드디어 타고 갈 기차를 찾았다. 오전10시 출발(교토 역-오사카 간사이 공항 행) 4번 칸 5-A석. 좌석이 많이 비어 헐렁하다. 햇빛 밝게 쏟아지는 들판과 강을 지나치며 달린다. 한 시간 20분쯤 달려 간사이 공항 기차역에 내리다. 기차역에서 다시 공항 국제선으로 연결해주는 리무진 버스를 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눈치가 빠르지 않으면 좀 헤맬 수도 있겠다 싶은데. 국제선 공항 역사에 도착한 걸 확인하고 여유를 가지려는 데, 아이쿠, 공항검색대를 거치는 절차에 시간이 걸린다는 걸 몰랐구나. 빈둥거릴 새도 없이 급히 서둘러 검색대로 향했다. 긴 열이 뱀처럼 꿈틀대며 앞으로 움직여 간다. 검색 창구를 통과하고 이제는 좀 느긋하게 점심도 먹고 여유를 찾아야지 하면서, 일본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맛있는 점심이 어디 있을까,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다. 장어덮밥에 소바가 곁들인 메뉴가 있어 주문했더니 눈이 입을 속였구나. 보이는 것보다 맛이 없다. 입맛이 까다로워진 건가, 입맛이 떨어진 건가. 늙은 탓인가, 한국의 편리한 문화에 길들여진 것인가? 비행기 이륙시간이 오후 13:55이라,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출국장으로 걸어간다. 가는 길이 예상보다 훨씬 길고 굽돌아 가는 데가 여러 번이라 복잡하다. 중간에 면세코너를 거쳐 지나가야 하는데 구매충동을 자극하려고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호화사치가 삐까뻔쩍한 상품을 진열해 놓아 지나가는 욕계사람을 유혹한다. 여행객들을 원하지 않아도 상품 진열대 사이를 요리조리 거쳐가게 만들어, 어쨌든 한 개라도 사지 않고는 그냥 갈 수 없게 만든다. 소비지옥을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출국은 게이트 #2. 13:30에 비행기에 탑승하다. 13:55 이륙하여 이윽고 김해공항 도착하다. 입국심사 통과는 일사천리. 짐을 찾아 택시 타고 사상터미널에서 하동 가는 버스표를 사다(오후4:30). 택시 타고 오는 길에 밖을 보니 낙동강변 둑방 길에 벚꽃이 피었구나. 벚꽃 구경하러 교토에 갔으나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가의 가로수에서 환하게 핀 꽃을 발견하는 너는 누구냐?
송나라 때 도를 찾던 무진장 비구니(실제 인물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선종 문중에서 회자된다)가 꽃을 찾아다니다(이때 꽃은 도를 상징한다), 끝내 찾지 못하고 낙심한 채 집으로 돌아와 무심결에 뒤뜰이 보이는 봉창을 열었더니 한아름 가득히 묻어오는 꽃 향기에 마음이 밝아진다는 오도송이 전해온다.
온 종일 봄을 찾아다녀도 봄은 보이지 않네
짚신이 닳도록 구름 덮인 산마루까지 쏘다녔건만
돌아와 웃으며 집안에 핀 매화향기 맡아보니
가지 끝엔 봄은 벌써 하나 가득 와 있구나!
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芒鞋踏遍隴頭雲; 망혜답편롱두운
歸來笑拈梅花臭, 귀래소염매화취
春在枝頭已十分. 춘재지두이십분
버스를 타고 오면서 교토에서 삼일 여행 소감을 시로 읊조린다.
京都櫻春哲學道, 경도앵춘철학도
未踏一番恨不少; 미답일번한불소
冒雨尋春無一紅, 모우심춘무일홍
歸來路樹發花初. 귀래노수발화초
교토의 벚꽃 피는 봄 풍경과 철학의 길이여!
한번 가보지 못해 원으로 남았는데
비바람 무릅쓰고 봄빛을 찾았건만
한송이 붉은 꽃도 보지 못했지
고향집 돌아오는 길가에
벚꽃이 이제 피기 시작하는 걸!
버스출발 오후5시. 하동도착7:30. 택시 타고 처소로 돌아오다.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하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쉬다. 여행일지를 정리하며 다시 기록하다.
*영운(靈雲志勤,~866)선사 오도송: 복숭아꽃 핀 걸 보고 깨닫다.
三十年來尋劍客, 삼십년래심검객
幾迴落葉又抽枝; 기회낙엽우추지
自從一見桃花後, 자종일견도화후
直至如今更不疑. 직지여금갱불의
30동안 칼을 찾아 해맨 나그네여,
몇 번이나 낙엽 지고, 가지 돋는 걸 보았던가?
복사꽃을 한 번 본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
*복사꽃의 고사: 당나라 시인 최로(崔擄)라는 사람이 지은 인면도화(人面桃花)라는 시가 있다.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장안에서 머물 즈음, 때는 청명가절이라. 교외로 나갔다가 복사꽃이 만발한 어느 농가에 이르러 마침 갈증을 느껴 물 한 그릇을 청했다. 물을 갖다 주는 사람은 미모가 수려한 방년의 소녀였다. 낭자는 훤출한 외모의 선비를 보고는 가슴이 설레었다. 상큼한 미소를 띤 낭자의 얼굴은 복사꽃과 어울려 서로 분홍빛으로 어우러지니 하늘이 낸 풍류였다. 시인이었던 최로(崔擄)는 다음 해 복사꽃이 피자 지난 해 농가의 “인면도화(人面桃花)”의 정경이 떠올라 그 곳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대문은 굳게 닫혀 있고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니, 회한과 비감한 심정에 대문에다 시를 한 수 써놓고 돌아왔다.
작년 오늘 이 문 앞에서
사람 얼굴과 복사꽃은 서로 붉은 빛을 띠었지,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건만
복사꽃만 예전처럼 봄바람에 미소 짓네
去年今日此門中, 거년금일차문중
人面桃花相映紅; 인면도화상영홍
人面不知何處去, 인면부지하처거
桃花依舊笑春風. 도화의구소춘풍
최로는 그래도 마음에 지워지지 않아 며칠 후 다시 찾아갔다. 문 앞에 이르니 곡성이 들려오는데, 연유를 물어보니 그 낭자가 최로의 시를 보고 상사병이 들어 죽었다는 것이다. 이에 선비는 문 안으로 들어가 곡하며 “최로가 왔소!”라고 외치니 죽었던 여인이 천천히 눈을 뜨며 일어났다. 최로는 그 해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아가씨와 결혼하여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온다.
이 이야기는 중국에서 경극으로 공연되기도 한다.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운 대승행자]
복사꽃은 “생명의 부활”이나 “늙지 않는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대승행자에게는 보리심이 생명이니, 보리심이야 말로 생사를 넘은 참-생명이며 늙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일찌기 마왕파순과 염라대왕에게 자신의 전부인 불성과 보리심을 선물로 내어준 용자가 있었다. 그 대신 죽을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삶을 받았다. 그리하여 영면永眠, 영원한 잠에 들기를 포기하였다. 죽지 않고 이어 온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건지려는 보리심의 서원을 이루기 위해 10 바라밀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래서 중생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내가 있고, 내가 있는 곳엔 어디서든지 중생과 함께 있다. 모든 것을 ‘나’로 여기며 ‘나’인 것으로 영접한다면, 나의 것으로만 있는 ‘나’란 없는 것이니, 내가 일체-됨이요, 일체가 내가-됨이다. 꽃을 보며 봄을 감상하는 자는 누구인가? 텅 빈 영성靈性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존재가 너 자신 아닌가? 꽃을 피울 줄도 알고 꽃을 지게 할 줄도 아는 네가 봄바람이 아닌가? 시공을 접기도 하고 펴기도 하며, 사계절을 굴리며 만 생령을 거두고 펼치는 것은 무엇인가? 10현 화엄 중중무진 법계 만다라의 불가사의 해탈경계가 아닌가? 일진법계 만다라 중심의 제 자리에 앉아 있는 당신은 온 누리의 주인공이 아닌가? 너의 일상생활 즉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만다라를 중심으로 돌고 도는 '탑-돌이' 이면서 보리행이 아닌가? 순간에 영원을 살고, 영원을 순간에 포착한다. 시간의 강물을 밟아서 끊고 공간을 접어 귀 속에 넣는다. 무근저無根底에서 우주수宇宙樹가 우뚝 서고 허공계 밖에서 삼두육비三頭六臂가 떨어져 시장통을 지난다. 훔훔사바하
一花欲謝一花開, 일화욕사일화개
不關風雨隨緣行; 불관풍우수연행
驢事馬事家裏事, 려사마사가리사
但願衆生圓滿共. 단원중생원만공
꽃 한 송이 떨어지면 또 한 송이가 피어나니
비가 오든 바람 불든 인연 따라 행하라
나귀 일이든 말 일이든 모든 게 집안 일이라
일체 중생이 모두 함께 유가원만 하기를!
첫댓글 나귀 일이든 말 일이든 모두가 집안일 이니 모두가 원만 하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9.14 15:21
저는 88년도에 교토 다녀왔어요. 그때는 일본 버블 경제라 정말 신세계 같았는데.. 13년전에 시코쿠 순례 한다고 일본 갔을때는 오히려 퇴보한거 같더라구요. 스님 다음에는 일본 밀종의 본산인 고야산 꼭 가보세요. 오사카에서 고야산행 직행 기차도 있어요.
고야산 안내소에 가면 영어로 소통 되요. 저는 고야산이 넘 좋아서 두세번 갔는데, 맨 처음에 숙박했던 사찰이 스님들과 외국인 투숙객도 많았고 새벽 예불에서 화공의식 볼수 있었어요.
그 사찰 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다른 사찰들은 스님이 한두분 뿐이었고 새벽예불도 별거 없었죠.
고야산 박물관이 특별히 볼만 했어요.
제 블로그 뒤져보니 옛날에 기록 남겨 놨었네요 ㅎ 그 사찰 이름이 무료코인 (무량광원)이에요.
건물외관은 소박하지만 스님들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