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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본문: 창세기 9장 6절, 요한일서 3장 2-3절, 고린도전서 15장 48-49절
학문적·주석학적 과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교리가 단지 개인의 내면적 경건이나 고립된 영성에 머물지 않고, 타자를 향한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연대성, 그리고 창조 세계를 향한 청지기적 사명으로 필연적으로 확장됨을 규명한다. 헤릿 C. 베르카우어(G.C. Berkouwer) 교수가 강조한 형상론의 종말론적 차원을 해부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때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으로 완성될 '영화(Glorification)와 새 창조의 최후 승리'를 확증한다.
1. 고립된 개인주의의 파산: 형상론의 윤리적·사회적 확장
근대 이후 서구 철학은 인간을 '고립된 자아(Descartes의 코기토)'로 규정하며 개인주의적 자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신학계 일각에서도 구원을 단지 '내 영혼의 개인적 구원'으로 축소시키는 왜곡이 일어났습니다.
베르카우어는 이러한 닫힌 개인주의를 단호히 배격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태생적으로 '관계적(Relational)'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영원한 사랑과 교통 속에 존재하시듯,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공동체적 연대성' 속에서만 참된 존재 의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성도의 신앙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불의한 구조에 저항하며, 모든 인간 생명의 절대적 존엄성을 수호하는 거룩한 사회적 책임으로 발현됩니다.
2. 창세기 9장: 살인 금지와 인간 생명의 절대적 존엄성
노아 홍수 직후,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생명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 이유를 주석학적으로 명시하십니다.
창세기 9장 6절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살인 행위를 극형으로 다스리시는 근거는 사회적 계약이나 공리주의적 효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의 육체와 인격 속에 "하나님의 형상(Betselem Elohim)"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형상이 왜곡되었을지라도,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의 피조물적 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거나 살해하는 행위는 단순한 인간 대 인간의 범죄를 넘어, 그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정면 공격이자 신성모독'입니다.
이 원리는 현대 사회의 낙태, 안락사, 인종 차별, 인권 유린, 인간을 경제적 도구로 취급하는 자본주의적 착취를 분쇄하는 가장 강력한 신학적 방패입니다.
3. 고린도전서 15장과 요한일서 3장: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과 종말론적 완성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 지상에서의 불완전한 성화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완전한 영광(Glorification)으로 도달하게 됨을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8-49절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사도 바울은 인류의 두 계열을 대비합니다.
흙에 속한 자의 형상(Tēn Eikona Tou Choïkou): 첫 사람 아담의 타락과 죽음, 연약함을 물려받은 부패한 본성입니다.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Tēn Eikona Tou Epouraniou):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썩지 않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신체입니다.
성도는 장차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과 동일한 거룩하고 영원한 형상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될지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사도 요한이 선포한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Homoioi Autō Esometha)"은 신자가 신(God)으로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죄의 모든 오염과 왜곡이 완전히 씻겨나가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거룩과 사랑과 의의 형상으로 완벽히 일치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에덴동산으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닙니다. 타락 이전의 아담보다 훨씬 더 탁월하고 영광스러운 상태, 즉 다시는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하는 종말론적 승리의 극치입니다.
[강의 요약 및 신학적 결론]
이웃 사랑과 종말론적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개혁주의 형상론의 위대한 대단원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은 닫힌 개인주의를 넘어 이웃을 향한 윤리적 책임과 생명 존중의 사회적 연대성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둘째, 창세기 9장은 인간 존엄성의 절대적 근거가 모든 사람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셋째, 고린도전서 15장과 요한일서 3장은 재림의 날에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온전히 입어 부활과 영화의 최종 승리를 누리게 됨을 확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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