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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사랑하는 마음
종말의 훈화 : 양과 염소 비유(마25:31-46)
성경 본문이 말하는 의미는 하나이다.
이는 당대의 백성들에게 성경 본문은 하나의 의미로 들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 본문은 하나의 의미로 해석되어서 선포되어야 한다.
그러면 각 개인의 삶 가운데서 여러 형태와 모습으로 적용이 된다.
이는 각 개인의 삶의 현장과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신구약 백성의 삶에서도 알 수가 있다.
이스라엘은 모세율법을 따라 성전에 계신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복음을 따라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직접 대면하고 교제하지 못하는 종(머슴)이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하나님 아들(자녀)로 살아간다.
왜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는가?
이스라엘이 아래로부터 나서 몸의 할례를 행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늘에 속하지 못하고 땅에 속한 백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종말에는 하늘에 계시면서 믿는 자들을 하늘에 속한 백성으로 세우신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로부터 나게 하셔서 하늘에 세우신다.
이처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은 한 영역에 위치한다.
하나님과 한 곳에 거함이 신구약 백성의 구원이며 생명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신구약 백성의 본질과 신분에 맞춰서 함께 사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기업은 가나안땅이며
우리의 기업은 하늘에 속한 기업이다.
이스라엘은 모세율법에 부착하여 다윗왕국 백성 신분으로 살았으나
우리는 그리스도 복음에 부착하여 천국 백성 신분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천국을 도입하신 분이 하나님 아들 예수이시다.
하나님 아들께서는 이전에는 가나안땅에 세워진 세상에 속한 성소에 계셨으나
공생애 당시에는 사람으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사셨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는 부활의 영으로 교회와 함께 사신다.
종말이 이르러서 여호와의 옛 처소인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여호와의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그리스도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면,
예수께서는 모든 천사와 함께 다시 오실 것이다.
그때에는 처음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인자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을 분별하실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만유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져서 구원역사가 완성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가르치실 때 ‘그때’라고 언급하신다.
‘그때’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는 때이며(마25:1-13),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의 충성을 판단하는 때이고(마25:14-30),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오셔서 모든 민족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심판하는 때이다(마25:31-46).
‘그때’는 인자가 모든 천사와 함께 오셔서 모든 민족을 심판하는 때이다(마24:31).
이는 해가 지면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여 각각의 우리로 들이는 것처럼,
세상 끝날에 인자께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세우는 때이다.
왕이신 인자의 오른편은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는 복된 자들의 자리이며
왕이신 인자의 왼편은 저주를 받은 자들의 자리이다.
이처럼 모든 민족을 양과 염소로 구분함은 구약의 지혜문 형식에 따른 것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악한 자들을 염소나 살찐 양으로 비유하고
연약한 백성은 파리한 양으로 하신 비유가 배경일 것이다(겔34장).
왕의 왼편에 있는 자들은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는다.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은 근거는
인자께서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입혔고 병이 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기 때문이다(마25:35-36).
이러한 덕목의 배경은 신명기 율법이다.
왕의 우편에 앉은 자들이 보살피고 돌아본 사람들은 그들의 형제이다.
그런데 인자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형제로 여기신다.
따라서 형제를 돌아보고 살핌은 곧 천국 왕에게 행한 일이다.
믿는 자에게 행한 것이 그들의 왕 예수에게 행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신다(마10:40-42).
그러나 인자의 왼편에 있는 염소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인자를 떠나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간다.
이는 천국 백성을 보살피지 않음이 천국 왕에게 행하지 않음이기 때문이다(마25:41-46).
예수께서 언급하신 인자는 누구인가?
이는 다니엘서 7장에서 약속된 인자이다.
다니엘서 7장은
“내가 또 이상을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나라와 영광을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라”
고 기록한다(단7:13-14).
이처럼 다니엘서는 인자가 세상의 권세를 이기는 나라를 상속받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이러한 약속을 따라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유대 사회에 보내신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께서는 다윗왕국 백성들을 부르셔서 천국 백성으로 세우신다.
다니엘을 통해서 약속되었던 일들은 예수의 사역을 통해서 성취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니엘을 통한 하나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약속의 성취가 종말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이다.
천국은 율법의 나라와는 다르게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통하여 직접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통치는 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하나님 통치이다.
이러한 새로운 하나님 통치의 나라가 종말의 천국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종말의 천국 왕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올 때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할 것이다.
그때에는 그 오른편에 앉은 자들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가 된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마25:31-34).
양과 염소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임금과 일치시키며
오른편의 양을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와 일치시키신다(마25:34).
그런데 예수께서 언급하신 오른편, 왼편이라는 말은 모세 언어이다.
이는 모세율법을 토대로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언약언어이다.
이스라엘의 언어와 가치관과 사고방식, 세계관은 모세율법에 기초한다.
모세 언어라고 함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상을 규정한 언약언어라는 말이다.
이러한 언약언어에 의하면 오른편은 항상 대표와 권세의 자리이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피를 바를 때에도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에 바르라고 명한다(출29:20).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른편은 몸 전체를 나타낸다.
모든 민족을 판단하시며 분별하는 예수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으며
나그네가 되었을 때 영접하였으며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이 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본 것이다(마25:35-36).
믿는 형제 중에서 작은 자를 보살피고 돌아봄으로 판단하고 분별하신다.
형제를 돌아보고 보살핌은 그들의 왕이신 예수에게 행한 것이다(마25:40).
이처럼 형제를 돌아본 자들에게는 어떤 복을 주시는가?
창세로부터 예비가 된 나라가 주어진다(마25:34).
창세로부터 예비가 된 나라는 종말의 천국이다.
이처럼 천국은 종말이 되어서 나타나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설립되어서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율법 아래에서 예수께 나아와서 믿고 따르는 자들이다.
이는 율법의 통치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로 옮김을 받은 자라는 말이다.
이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인 다윗왕국 백성의 신분에서
종말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 백성의 신분으로 구원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율법 아래의 관헌들인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처럼,
재물이 많아서 근심하며 예수를 떠나간 부자 청년처럼(마19:22),
율법 아래의 삶을 고수하고 예수께 나아오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19:23).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감이 율법을 고집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감보다 쉽다(마19:24).
이처럼 창세로부터 예비가 된 나라는 종말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이다.
종말의 천국은 예수의 말이 시행되는 나라이다.
이는 천국 왕이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말의 천국에서는 모세가 명한 성전제사나 십일조의 자리가 없다.
이는 천국 백성은 율법의 나라인 다윗왕국 백성의 신분을 버리고
예수께 나아와서 천국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천국 백성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로 구성된다.
이처럼 종말의 천국은 구약에서는 감춰졌으나 종말에 예수를 통해서 설립된 나라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이 너희 보는 것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고 말하며(마13:16-17)
바울도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고 말한다(골1:26-27).
종말의 천국은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된 나라이다.
이스라엘과 그들의 조상들은 약속은 받았으나 누리지 못한 나라이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는 누리지 못한 나라이다.
이스라엘이 누린 하나님 나라는 가나안땅에 세워진 다윗왕국이다.
다윗왕국은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율법의 나라이다.
이는 죄가 지배하는 가나안땅에 세워진 세상에 속한 나라이다.
따라서 다윗왕국은 죄 아래에 세워졌다는 점에서는 이방 나라와 50보이며 100보이다.
단지 다윗왕국은 세상 나라 가운데서 하나님과 가까운 제사장 나라로 구별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통치질서는 이방 나라의 통치질서와 같다.
크고 먼저 된 자가 작고 나중 된 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통치질서이다.
율법의 통치질서는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실 때까지,
유대 땅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직접 새로운 통치를 시행할 때까지,
이스라엘과 옛 세상에 과도기적으로 시행된 통치질서이다.
따라서 율법은 개혁신학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지고한 뜻이 아니다.
율법은 휘장 밖에 세워진 이스라엘의 완악한 수준,
이스라엘의 종과 어린아이와 같음에 맞춰진 여호와의 옛 뜻과 경륜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나라인 다윗왕국은 창세로부터 예비가 된 나라가 아니다.
다윗왕국은 이스라엘 조상들 안에서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비된 나라이다.
창세로부터 예비가 된 나라는
종말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통해서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창세로부터 예비가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말씀하신다(마25:34).
창세로부터 예비가 된 나라는
종말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이 설립하신 나라이다.
이 나라는 율법과는 다른 하나님의 참되고 온전한 뜻이 시행되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다윗왕국과는 전혀 다른 영역인 하늘에 속한 나라이다.
이 나라 백성의 신분도 하나님 아들(자녀)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주어진 구원도 다윗왕국 백성이 누린 것과는 다른 온전한 구원이다.
이는 천국 백성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구약백성들에게는 감추어진 구원이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니엘과 세 친구는 누리지 못한 구원이다.
이처럼 종말의 천국은 아들의 말이 시행되는 아들의 나라이다.
따라서 종말의 천국에는 모세의 말이 설 자리가 없다.
모세가 명한 성전제사나 성전제사를 위한 제사장 제도,
제사장과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의 자리가 없다.
어떻게 창세로부터 예비가 된 나라를 상속받는가?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내가 주릴 때에... 내가 헐벗었을 때에,,, 내가 목마를 때에,,. 내가 병들었을 때에...”
라고 말씀하신다(마25:35-36).
이는 모세의 언어 개념에 따라 언급된 표현방식이다.
이 말의 핵심은 고난과 핍박이다.
왜 믿는 자들이 고난과 핍박을 받는가?
모세율법과 예수의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이단의 무리이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는 모세율법을 부인하고 거절하여 유대 사회를 망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24장에서
“세상 끝이 되면 미혹이 많고 핍박이 많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이 나를 미워한 것처럼 나에게 속한 너희도 미워하리라”
고 말씀하신다(요15:18-120).
따라서 본문에서 언급되는 목마르고 옥에 갇히며 병들고 굶주림은
예수를 믿고 따름 때문에 주어지는 고난과 핍박이다.
이는 유대인 사회는 율법 사회이고 그리스도 복음은 율법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형제를 돌아보고 살핌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다.
이는 천국 왕이신 예수와 그의 백성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마25:40).
이처럼 예수께서는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형제를 자신과 일치시키신다.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형제를 보살피고 돌아봄은
단순히 한 개인에게 행한 일이 아니라 천국 왕에게 행한 일이다.
우리는 형제에게 행한 도움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기억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형제를 살피고 돌아봄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형제가 서로를 돌아보고 살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러한 행동과 삶이 종말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산 제사이다(롬12:1).
종말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과 예물은 돈이 아니다.
신약시대에서 하나님께서는 돈과 같은 물질을 받지 않으신다.
돈과 같은 물질은 옛 언약의 법인 율법 아래에서 명하신 일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 흠향하시는 제물은 살아있는 제물이다.
살아있는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산 자인 우리 자신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우리의 삶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말한다(롬12:1-2).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받으신 제물과 예물은 죽은 것들이다.
죽은 제물과 물질은 휘장 밖의 영역인 땅에 속한 것들이다.
죄가 지배하는 가나안땅에서 생산된 짐승이나 곡식, 화폐들이다.
그것들은 죄 아래에 속하였기 때문에 짐승 제물은 죽어야 하고
곡식은 불로 태워야 하며 이방 돈은 유대 화폐로 바꿔야 하였다.
이는 거룩한 가나안땅에서 생산된 제물과 예물이라고 할지라도
휘장 밖의 영역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물과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면 반드시 죽음과 불을 통과해야 하였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는 죽은 제사이다.
그러나 종말에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제사는 산 제사이다.
산 제사는 산 제물로 드리는 제사이다.
산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는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
고 말한다(롬12:1). 종말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산 제사이다.
산 제사를 위하여 드리는 제물과 예물은 돈이 아니다.
이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따라
궁핍한 형제를 돌아보고 교회의 경비와 복음전파를 위하여 협력하고 부조하는 삶이다.
이러한 삶이 종말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과 예물이며
이것이 인자의 오심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깨어있는 삶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