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매일묵상 | 21.11.23(화)
욥기 9:17~24
갑작스러운 재앙으로 다들 죽게 되었을 때에도, 죄 없는 자마저 재앙을 받는 것을 보시고 비웃으실 것이다. 세상이 악한 권세자의 손에 넘어가도, 주님께서 재판관의 눈을 가려서 제대로 판결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렇게 하는 이가 누구란 말이냐?(23~24절)
욥기는 총 42장으로 된 구약의 지혜문학에 들어가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 긴 이야기 중에서 1~2장의 욥의 고난과 마지막 장의 욥의 신원회복에 대한 이야기만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욥에 대한 소개의 말을 보면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잿더미 위에 앉아 기와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되는데(2:8), 재산과 자식을 잃고 나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욥이 이 고통마저도 이겨내는(?) 경지에 이르자 그의 아내는 그를 비난하지만, 이 이야기를 성경으로 읽는 후대의 사람들은 그의 믿음과 경건에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42장, 다시 모든 것이 회복되는 욥에게로 훌쩍 뛰어넘어가서 그가 입술로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욥기는 사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3~41장은 앞 뒤의 장과 달리 그 형식에서도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데, 1~2장, 42장은 산문으로 3~41장은 시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친구들은 원래 고난에 처한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욥과 대화를 나누다 그만 욥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말하는대로, 욥이 그대로 그들의 생각과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가 당하는 모든 고난에는 원인이 있으니, 그 원인이 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욥은 끝까지 자신의 의를 주장하면서, 의로운 자에게마저도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을 모독에 가깝도록 비난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이 드러난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이 3~41장에 드러나는 욥의 모습은 모범적인 신앙인의 모습, 즉 흠이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 질문하고 의심하고 대드는 사람입니다. 친구들의 인과응보 사상을 부정하며, 시종일관 의인의 고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즉 의인에게 은혜를 악인에게 벌을 내리시는 신만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조리와 부조리를 초월한 존재로서 신을 욥은 발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경험이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경험입니다. 그 경험에 대한 일종의 해답으로서 욥기는 쓰여졌고, 지혜문학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야만족의 포로로 끌려가는 비극 앞에서 그들은 “야훼는 어디에 계시는가?”(욥의 이름 뜻: 아버지는 어디 계시는가?)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포로기 70년을 지나며, 그들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은 그 비극에 어떤 원인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38장 이후 야훼의 등장으로 욥의 의문에 대한 대답이 펼쳐집니다.(계속)
---------
생명의 길, 초록발자국 실천:김장쓰레기 분리배출
-일반쓰레기 봉투 : 흙이 묻은 배추 겉잎, 쪽파, 대파 등의 뿌리, 양파, 마늘 껍질, 굴, 게 껍데기, 고추씨, 마늘대
-음식물 쓰레기 : 양념하는 과정에서 남은 채소찌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