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8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함께 있고 말동무라도 되어 드리기만 해도
많은 부모님들에게 ‘어떤 자녀들이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습니까?’라는 질문을 드리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말 잘 듣는 자식’이라고 대답합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말 잘 듣는 제자들이 가장 예쁩니다. 어떤 자식인들 예쁘지 않고 자랑스럽지 않겠습니까만 말 잘 듣고,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착실한 자녀가 더욱 예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합니다. 거의 모든 부모나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은근히 청개구리 근성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이라도 삐딱하게 거슬러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안 들어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이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가 되기도 하고, 또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잘못했다고 뉘우치기도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들입니다.
나는 아들로 살기 보다는 아버지를 대신한 형이나 오빠로 더 많이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 아들답게 아들로 살았습니다. 그 동안 어머니는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위해서 구십이 가까운 노인이 손수 밥을 지으시고 반찬을 만드시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매 식사 시간에 칠첩반상이 넘는 밥상을 차려 놓고 칠순이 가까운 아들을 기다리시며 식사를 맛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체중이 많이 늘어나셨습니다. ‘밥맛이 왜 그렇게 좋으냐?’고 매번 말씀하셨으니 어머니에게는 정말 괜찮은 식사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며느리도 마다하시고 큰 아들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혼자서 식사 하시게 할 수 없어 혼자서 외식을 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 친구들과 식사 약속이 있어 외식을 한다면 혼자서 식사도 거르시고, 대충 끼니를 때우고 마셨습니다. 외식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서둘러 집에 와서 어머니와 다시 밥상에 앉아 조금 요기를 하면서 어머니가 식사를 하는 동안 겸상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듣고 들었던 옛날 얘기, 시집살이 얘기, 애들 자랑, 손자 자랑, 사람들 얘기, 다른 사람 흉보는 얘기, 성경 얘기 등등 1시간은 질질 끌어야 했습니다. 급하게 잡숫지 못하게 아주 천천히 식사를 하시게 해야 했고, 그래야 나도 아주 천천히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일하시느라고 급하게 식사하시던 식습관을 몇 년 동안 그렇게 고치셨습니다. 아들 위해서 간도 싱겁게 맞추시고, 기름진 음식도 삼가시고, 메뉴를 매일 새롭게 만드시는 정성과 재미로 어머니는 매일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동안 동생들은 부지런히 음식 재료를 날라다 드렸습니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TV를 보면서 뉴스도, 연속극도 중계를 해 드리고 해설을 해 드려야 했습니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을 해 드리면서 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것이 내 일과였습니다. 그것이 암 수술 후 요양을 하면서 어머니께 해드린 마지막 일이었고 자식으로 드린 마지막 효도였습니다. 아들의 요양을 기꺼이 자청하신 어머니는 당신의 정성을 다 쏟으시는 것이 내게는 항상 마음에 짐이 되었습니다. 불효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곡히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어머니의 요양을 받은 것이 효도가 되었다면 천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함께 한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고통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자식을 보호자로 여기시며 사시는 부모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자식은 울타리라고 생각하시고 모든 노년을 의지하셨던 옛 어른들은 정말 욕심도 없으셨고, 소박하셨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의지하시면서 오직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셨지만 자식들에게 큰 폐를 끼칠까봐 큰 걱정을 하신 분들이 우리들의 부모님들이십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청개구리 근성으로 부모님들의 애를 태우면서 살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효성을 다하여 반포지효(反哺之孝 :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孝誠) 이라는 뜻으로, 자식(子息)이 자라서 부모(父母)를 봉양(奉養)하며 효성을 다한다는 고사성어)를 다한 자식들도 많이 있습니다. 부모들의 삶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며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이며, 봉사의 삶이라면 하느님의 뜻을 조금은 알듯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냥 함께 하기만 해도 효도가 된다는 것을, 말동무가 되어 드리는 것만 해도 좋아 하신다는 것을, 당신이 차려 놓은 식탁에 같이 않아서 맛있게 밥을 먹어 주기만 해도 좋아하시고, 다른 사람 흉볼 때 맞장구를 쳐 주기만 해도 효도라는 것을 이렇게 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나도 자식들에게 그렇게 할 일이 남았을 것입니다. 그게 신앙이라는 것도 알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