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선 프랑스 리그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르 샹피오나(Le Championat, 영어로 챔피언십 정도 되겠네요.)라고 부르는 프랑스 리그의 현재 정식 명칭은 리그 1, 2 (Ligue 1,2)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1부, 2부인데 각각 20개 팀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1,2부 총 40개 팀이 프로이고 그 다음이 3부 리그 격인 나쇼날National인데 한국의 K2리그정도의 세미프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전국리그이고 그 다음이 지역리그인 쎄에프아CFA입니다. 1,2부 소속팀의 2군도 여기에서 활동하지요.(얼마 전 안정환 선수도 2군으로 내려가서 이 쎄에프아CFA경기에 출전했었습니다.)
1 부 하위 3개 팀이 강등되고 2부 상위 3개 팀이 플레이오프 없이 자동 승격되는 기본적인 승강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1, 2부 리그 팀이 참가하는 리그컵, 라 꿉 드 라 리그La Coupe de la Ligue와 축구협회컵La coupe de France이 리그와 함께 펼쳐지고요.
유럽의 스포츠 유료채널 CANAL +(꺄날 플뤼스)와 얼마 전 천문학적 독점계약을 맺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프랑스 리그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수많은 아프리카 유망주들의 등용문이라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겠죠.
레 블뢰Les Bleus 군단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은 아무래도 프랑스입니다. 수많은 아프리카의 나라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고 실제로 프랑스 리그에 진출한 아프리카 선수들 대부분은 불어를 구사합니다. 그렇게 프랑스 리그에서 성장한 선수들 중 몇몇은 유럽 빅클럽으로 이적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선수가 첼시에서 뛰고 있는 디디에 드록바Didier Drogba이지요.
또한 프랑스 리그는 평준화가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매 시즌 막판이면 숨 막히는 강등권 탈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는 프랑스 리그입니다.(예를 들어 지난 시즌에 18위로 강등당한 껑Caen과 7위를 마크한 렁스Lens의 승점 차는 불과 10점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한국 팬에게 알려진 팀이라고 한다면 우선 리옹Lyon, 파리Paris, 모나코Monaco, 마르세유Marseille 정도 될 듯한데(안정환 선수가 진출한 메스Metz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사실 이 네 팀이 프랑스 리그의 강자라고 말하기엔 뭔가 허전한 감이 있습니다. 모나코Monaco는 원래 프랑스도 아닐 뿐더러 인기도 별로 없는 평범한 지역 팀이라는 인식이 있고 파리Paris는 한국에서 잘 알려진 것과는 달리 클럽 역사도 짧고 우승 횟수도 다른 팀에 비해 그다지 우월하다고 말하기 어렵지요.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생테티엔Saint-Etienne , 항상 상위권의 전력을 유지하는 보르도Bordeaux, 낭트Nantes, 렁스Lens, 옥세르Auxerre 등 전통의 강호들이 즐비해 있어서 딱히 누가 약자고 누가 강자인지 명확히 나누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실제로 그간의 우승 트로피들도 워낙 여러 팀들이 고르게 나눠가져가서 일부러 평준화 정책을 시행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70년대 생테티엔Saint-Etienne이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리옹Lyon이 독주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권력이 분권화되어 있는 프랑스 사회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매 라운드마다 박빙의 승부가 연출되곤 합니다. 혹자는 이러한 프랑스 리그의 구조가 건강한 것이라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그러한 이유로 매 경기 무승부가 많고 골이 잘 터지지 않는 지루한 경기가 반복된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전자와 같이 평준화에 따른 순기능에 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프랑스 리그에서 더비매치라고 한다면 우선 마르세유Marseille-파리Paris의 그것을 꼽을 수 있겠죠.
축구팀 그 자체의 역사와 전통으로만 보자면 파리Paris를 마르세유Marseille의 라이벌로 보기가 조금 힘이 들겠지만 이러한 구도는 두 도시의 라이벌 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Paris와 지방토호들의 맏형격인 마르세유Marseille간의 지역감정은 꽤 심한데 문화와 역사 자체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마르세이예Marseillais(마르세유 사람)들은 파리지앵Parisien(파리 사람)에게 '도도하고 건방지다.'고 욕하고 파리지앵Parisien은 마르세이예Marseillais에게 '천박하고 촌스럽다.'고 욕합니다. 특이한 것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팀은 마르세유Marseille라는 점인데 수도인 파리Paris로서는 조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외에 제가 있는 낭시Nancy와 안정환 선수가 활약하는 메스Metz간의 로렌Lorraine 지역더비도 있는데 차로 40분 걸리는 이 두 도시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합니다. 정말 매일 싸웁니다. 얼마 전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인데 낭시Nancy가 홈에서 승리를 해서 관중들이 기분이 좋은 상태였습니다. 장내 아나운서가 타구장 소식을 불러주는데 메스Metz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전 관중이 만세를 불렀습니다. 자신들의 승리보다 더 즐거워하더군요. 안정환 선수의 홈개막전을 보러 메스Metz에 갔었을 때는 몇몇 프랑스인이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낭시Nancy에서 왔다는 걸 이야기하고 말았지요. 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수근덕 거리고는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면서 하는 말, "낭시? 쓰레기야, 쓰레기."
둘의 차이가 있다면 메스Metz는 꾸준히 1부에 붙어있다는 것이고 반면 낭시Nancy는 미셀 플라티니Michel Platini가 활약하던 1978년 축구협회컵을 차지한 이후로 꾸준히 1부와 2부를 들락날락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겠죠.
이곳에서 프로축구는 사실 체감적으로 엄청난 열기를 동반한 사회현상이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따릅니다.
잉글랜드나 독일처럼 좌석점유율이 거의 100프로에 육박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라고 해봐야 1,2부 총 40팀인데다가 2부 리그의 경우 2만이 넘는 구장이 몇 개 없습니다. 만 명 규모의 구장도 몇 개 있지요.
시설 면에서는 2002 이후의 한국이 그다지 밀릴 것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회체육의 힘'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예컨대 이곳 낭시Nancy의 지도를 펼쳐놓고 축구장의 개수를 세려고 한 적이 있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동네마다 천연잔디, 인조잔디가 구비되어 있다보니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쉽지가 않은 것이지요.
그런 좋은 여건에서 어른들은 물론이고 동네꼬마들은 축구공을 들고 주말이면 삼삼오오 모여 게임을 즐깁니다. 이런 중소규모의 지방도시가 이 정도이니 프랑스 전역으로만 따지자면 그 수가 정말 엄청나다 할 수 있겠죠.
그 중 학창시절 이런저런 클럽에서 볼 좀 차봤던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작은 팀이 생겨날 것이고 그 중 몇몇 팀은 CFA2같은 지방리그에 출전하는 아마축구 팀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꼬마들 중엔 미래의 지단을 꿈꾸는 아이들도 많을 테고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조금씩 단계를 거치며 실제 프로선수로, 실제 지단Zidane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일 테지요. 축구를 보는 팬이자 축구를 하는 선수로서 유럽인들에게 축구가 가지는 의미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단Zidane이 뛰는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에게 지불해야 하는 연봉으로 우리 동네에 구장 하나 짓는 것이 낫다." 라던 지역신문 기자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프랑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좋지 않은 성과를 낸다 하더라도 전국 곳곳에 있는 동네 축구장엔 여전히 사람들이 붐빌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프랑스 축구에 심각한 리스크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피라미드형의 프랑스 축구의 힘은 꼭짓점에 있는 리옹Lyon이나 파리Paris 같은 거대클럽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탄탄한 하부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어쨌든 프랑스 리그는 이번 독점 계약을 계기로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리옹을 앞세워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호성적을 내고 있고 리그 자체의 파이도 꾸준히 넓혀가고 있지요. 높은 세금, 자국선수 보다는 아프리카계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유럽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종종 일어나는 인종주의나 폭력사태 등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도 많지만 현재 프랑스 리그가 완만한 상승세를 타고 있고 이런 흐름은 이변이 없는한 계속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여러가지 낙관론이 지배적이라는 점을 들어 볼 때, 프랑스 리그의 영향력은 점차 높아질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2005.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