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달프고 지칠땐 배를 타야한다"
"물로 태어나 물로 돌아가는 인생을 알기 위해
한번쯤 배를 타고 떠나야 한다"
라고 말했던 위인.
사실 이 말을 한 사람은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에 나왔던 노인도 아니다.
헤밍웨이의 글을 읽고 반한 내가 한 말이다.
소설만큼이나 스펙타클하고 철학적인 요소는 없지만
부여에는 금강의 젖줄 중 하나인 백마강에서
'배'라는 유유자적을 느낄 수 있는 즐길거리가 있다.
<백마강 근처 구드레 선착장에 있는 백제문화 해설 쉼터>
바로 부여 백마강 황포돛배.
나는 이를 타고 인생을 엿보기 위해 부여의 구드레 선착장으로 왔다.
부여는 수도권에서 2시간, 충청도에서 약 1시간 정도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은 편이다.
<백마강>
부여는 서기전 2세기경부터 492년까지 북만주지역에 존속했던 여맥족의 국가다.
이 곳을 가로지르는 백마강은 '비단결 강물이 흐른다'해서 지어진 금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 이르면 '백마강'으로 불리며 백제의 가장 큰 강이란 뜻을 품고 있다.
강을 따라 낙화암과 왕흥사지, 수북정 등 부여의 다양한 명소들이 줄지어져 있다.
백마강의 자연은 아름답다.
특히 백마강에 바글거리는 '눈불개'라는 물고기는 잉어과의 물고기로
우리나라에 주로 서식한다.
구드레 나루터에서 2000원을 주고 강냉이를 사서
이 녀석들에게 던지면 사람처럼, 아니 강아지처럼 받아먹는다.
심지어 선착장 주변에는 "눈불개는 강냉이를 좋아해요"라는 문구도 붙어있을 지경이다.
우리가 오늘 타러 온, 인생을 느낄 수 있는 배는
바로 '백마강호!'
나무로 되어있는 이 배들에는 승객들이 차면 수시로 낙화암으로 드나든다.
포스가 넘치는 선장님이 마치 마도로스같은 포즈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구드레 선착장의 금액은 성인 기준 1인 왕복 7천원.
편도는 5천원인데 대부분 왕복권을 끊는다.
왕복이라함은 구드레 선착장을 지나 고란사 선착장으로 가는 코스다.
소인 또한 왕복 3,500원으로 나름 저렴한 편이다.
또한 황포돛배 백마강 일주 코스는 1인 13,000원인데 나름 코스가 길다고 한다.
드디어 황갈색의 포스가 넘치는 황포돛배에 사람이 슬슬 차기 시작하고...
봄이 느껴지는 살랑거리는 바람, 힘든 겨울을 지나 야외로 봄기운을 느끼러 온 사람들의 목소리...
모두 여유롭고 기분 좋은 분위기로 어우러진다.
우리는 바람을 가르며 부여의 백마강을 온 몸으로 느끼려는 기대와 함께 배에 올랐다.
모터 소리와 함께 배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살랑거리던 바람도 어느새 매서운 속도로 코 끝에 닿고.
멀리 보이는 백마강 유역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두 눈에 들어온다.
배는 내부와 외부에도 탈 수 있는데
함께 간 남편과 조카, 딸도 내부에 타지 않고
밖에서 배의 색다른 정취를 느낀다.
"엄마, 너무 재밌어!"라고 말하는 딸과 조카.
남편도 처음 타본 황포돛배가 싫지 않은 표정이다.
짜식들...내가 너희랑 같이 다니는 맛에 산다.
백마강은 생태계가 풍부한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단조로운 편이다.
천둥오리가 강 유역에 떠다니고 있는데
수심이 깊어서인지 얕은 물가에 사는 물새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상한 생명체가 백마강 위를 떠다니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바로 '버스'!!!!
세상에, 버스가 강위를 떠다니고 있다니.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엄마, 저거 뭐야?"
"저거 배야. 배인데 버스 옷 입혀놓은 거야"
하지만 다 틀렸다.
저 강 위를 떠다니는 버스같은 생명체의 정체는 사실 '수륙양용 버스'다.
백제문화단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수륙양용 버스는 시티투어와 함께 병행되고 있다.
한번 타는데 1인 약 3만원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아이들이나 색다른 체험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이 애용하고 있다고.
나도 언젠가는 타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이색적이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백마강과 황포돛배의 나무 재질...그리고 밧줄.
자연적인 것은 별것 아닌 풍경에도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
백마강 주변 곳곳에는 캠프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사실 캠프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는게 합법적으로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 욕망이 들게한다.
"거 앉아요 좀 앉아"
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선장님.
서있으면 위험하다고 앉아서 감상하라고 하는 것.
그의 탄탄한 모습이 마치 '마도로스'같다.
아니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에겐 마도로스였을수도 있다.
과한 해석일수도 있으나 왠지 모르게 헤밍웨이가 떠오르는 뒷모습이다.
배는 점점 낙화암으로 다가가고.
낙화암은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후궁들이
나라를 빼앗기는 것에 대한 굴욕으로 스스로 몸을 던진 곳이다.
몸을 던지는 모습이 마치 꽃 같다고 전해져서
이름이 '낙화암'으로 됐다.
사실 낙화암의 본래 명칭은 타사암이라고.
낙화암을 지나며 '낙화암'이라 쓰여진 새빨간 색의 글씨를 볼 수 있는데
이 글씨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 색이 칠해진 것은 아마 그 이후가 아닐까 하는데
저기를 어떻게 가서 어떻게 글씨를 썼는지...현대인인 내가 봐도 참 놀랍기도 하다.
가다보면 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도 있는데
이 위에는 '고란사'라는 절도 위치하고 있다.
배를 타고 가다보면
백마강 너머로 부여의 여유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갈수기에도 꽤 수량이 풍부한 강의 모습과
부여의 풍경이 어우러져 마치 과거로 돌아온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백마강과 부여의 풍경>
이제 돛없는 황포돛배는 고란사 나루터에 도착한다.
사실 배를 타는 시간은 약 10~20여분 정도로 길지 않으나
배를 타는 정취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고란사 나루터에 내려 올라가면 고란사라는 절이 나온다.
그곳에서 종을 치고 소원을 빌수도,
낙화암에 직접 올라가 내려다볼 수도 있다.
나라를 잃어 몸을 던진 백제의 후궁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의 강물과 바람따라
푸른색 연이 꼬리를 흩날리며 과거 백제의 시간을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