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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목간
―총 449점 가운데 판독 가능 총 117점
백제의 목간 1(1~60점)
나종혁
<목차>
1. 인천 계양산성 목간(총 2점)
(1)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1
(2)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2
2. 양주 대모산성 목간(총 2점)
(3) 양주 대모산성 부적 목간
(4) 양주 대모산성 기묘년 목간
3. 금산 백령산성 목간(총 1점)
(5) 금산 백령산성 목간
4. 장수 침령산성 목간(총 1점)
(6) 장수 침령산성 목간
5. 부여 관북리 목간(총 329점)
(7) 부여 관북리 편철 목간
(8)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 1
(9)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 3
(10)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 4
(11)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 5
(12)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 7
(13) 부여 관북리 지명 목간 19
(14)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 20
(15) 부여 관북리 지명 목간 21
(16)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 22
(17) 부여 관북리 지명 목간 23
(18) 부여 관북리 목간 27
(19) 부여 관북리 목간 28
(20) 부여 관북리 목간 36
(21) 부여 관북리 목간 37
(22) 부여 관북리 목간 58
(23) 부여 관북리 목간 63
(24) 부여 관북리 목간 283
(25) 부여 관북리 목간 285
(26) 부여 관북리 목간 286
(27) 부여 관북리 목간 288
(28) 부여 관북리 주도성 목간
(29) 부여 관북리 목간 289
6. 부여 구아리 목간(총 13점)
(30) 부여 구아리 목간 31
(31) 부여 구아리 사언시 목간
(32) 부여 구아리 목간 88
(33) 부여 구아리 목간 89
(34) 부여 구아리 목간 90
(35) 부여 구아리 목간 93
(36) 부여 구아리 적미 목간
(37) 부여 구아리 목간 109
(38) 부여 구아리 후부 목간
7.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총 8점)
(39) 부여 동남리 궁남지 49-2번지 목간
(40)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서부 후항 목간
(41)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목간 궁1
(42)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연습 목간 궁2
8. 부여 쌍북리 목간(총 27점)
(43) 부여 쌍북리 목간 316
(44) 부여 쌍북리 목간 317
(45)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5-8
(46)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7
(47)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1
(48)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4
(49)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5
(50)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6
(51)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105
(52) 부여 쌍북리 소작 장부 목간
(53)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22
(54)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4
(55)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7
(56) 부여 쌍북리 173-8번지-223
(57) 부여 쌍북리 목간 184-11-71
(58)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1
(59)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2
(60)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A
(61)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B
(62) 부여 쌍북리 구구단 목간
(63) 부여 쌍북리 뒷개 목간-112
(64) 부여 쌍북리 외량부철 목간
(65) 부여 쌍북리 정사년 목간
(66) 부여 쌍북리 여 목간
(67) 부여 쌍북리 대불호기 목간
(68) 부여 쌍북리 논어 목간
9.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총 2점)
(69)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 1
(70) 부여 석목리 143-16번지 유적 목간 2
10. 정읍 고사부리성 목간(총 1점)
(71) 정읍 고사부리성 상부 상항 목간
11. 남원 척문리산성 목간(총 6점)
(72) 남원 척문리산성 상항 목간
(73) 남원 척문리산성 중항 목간
(74) 남원 척문리산성 장덕 목간
1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총 29점)
(75) 부여 능산리 사지 남근형 목간
(7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6
(7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7
(7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8
(7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299
(8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0
(81) 부여 능산리 사지 육부오방 목간
(8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2
(8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3
(8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4
(85) 부여 능산리 사지 숙세가 목간
(86)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6
(8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7
(8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8
(8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09
(9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0
(9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1
(9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2
(93)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3
(94)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314
(95)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1
(96) 부여 능산리 사지 사면 목간
(97)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3
(98)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4
(99)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5
(100)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6
(101)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7
(102) 부여 능산리 사지 목간 능9
13. 나주 복암리 목간(총 60여 점)
―총 60여 점 가운데 판독 가능 총 30여 점
(103) 나주 복암리 목간 1
(104) 나주 복암리 목간 2
(105) 나주 복암리 모라 목간
(106) 나주 복암리 목간 4
(107) 나주 복암리 목간 5
(108) 나주 복암리 목간 6
(109) 나주 복암리 목간 7
(110) 나주 복암리 목간 8
(111) 나주 복암리 목간 9
(112) 나주 복암리 목간 10
(113) 나주 복암리 목간 11
(114) 나주 복암리 목간 12
(115) 나주 복암리 목간 13
14. 익산 미륵사지 목간(총 2점)
(116) 익산 미륵사지 목간 318
(117) 익산 미륵사지 목간 319
1. 인천 계양산성 목간(총 2점)
(1)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1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1면)
자천은 군자와 같은 사람이다
(2면)
저는 아직 믿지 못합니다
(3면)
염유가 인자한가 알지 못한다
(4면)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5면)
재여에 이르러 이를 고친다 <끝> <2026년 8월 2일>
* 4~5세기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일명 논어 목간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의 5각 다면 목간이다.
* 선문대 고고연구소 판독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윤선태 판독은 “(1면) 賤君子哉若人魯/(2면) 吾斯之未能信子說/(3면) 也不知其仁也求何/(4면) 也聞一以知十賜也/(5면) 於予與改是子曰吾”이다.
* 2006년 인천 계양산성 내부 저수 시설인 집수정에서 백제 한성 시대의 토기 ‘원저단경호’와 같이 논어 목간이 출토되었다. 같이 출토된 항아리가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의 전형적인 토기로 확인됨에 따라, 계양산성 목간도 백제 한성 시대로 추정되었다. 6세기 중반 계양산성이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기 신라에 의해 점유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신라가 백제 토기에 목간을 남긴 것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그러나 백제 항아리가 1~2세기의 시대적 격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 토기와 같은 시대로 목간의 연대가 추정된다. 주변에서 발굴된 나무 조각들의 연대 측정에서도 400년대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논어 목간은 400년대의 백제 한성 시대 목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목간은 현재 인천계양산성박물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목간의 길이는 13.8cm이며, 소나무로 만든 5각형 목간이다. 2004~2006년 3차에 걸친 선문대고고연구소의 조사에서 2006년 발굴되었으며, 당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이라고 발표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우리나라의 논어 목간은 이제까지 총 4점이 발굴되었으며, 평양 정백동 논어 목간, 부여 쌍북리 논어 목간, 김해 봉황동 논어 목간,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이 있다. 쌍북리 논어 목간은 학이 편이며, 봉황동 논어 목간과 계양산성 논어 목간은 공야장(公冶長) 편이다. 이들 가운데 계양산성 목간은 400~480년 4~5세기경으로 연대가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이다.
仁川桂陽山城論語木簡
作者 未詳
(一面)
子賤君子哉若人魯無
(二面)
日吾斯之未能信子說子曰
(三面)
也不知其仁也求也何
(四面)
何敢望回回也聞一以
(五面)
何行於予與改是子曰吾未 <끝>
* 원문 출전: 계양산성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7-31; 인천 계양산성,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18;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2)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2
작자 미상
□庚子書□ <끝>
* 4~5세기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인천 계양산성 논어 목간 2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일명 논어 목간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의 5각 다면 목간이다.
* 선문대 고고연구소,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윤선태 판독은 “□□子□□”이다.
* 출토지는 인천 계양구 계산2동 산 8번지외 14필지이다. 2006년 논어 목간과 같이 인천 계양산성 집수정에서 출토되었으며, 길이 49.3cm의 두 번째 목간은 중간에 ‘子’ 자 한 글자만 확인이 되지만, 첫 번째 목간과 유사한 논어 목간으로 논어의 내용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제2 목간은 상단부가 원통형이고, 하단부는 5각형 다면체로 되어 있다. 글자는 하단부에서 7자의 묵흔 사이에서 판독되었다.
* 같이 출토된 항아리가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의 전형적인 토기로 확인됨에 따라, 계양산성 목간 1과 2도 백제 한성 시대로 추정되었다. 4~5세기 백제 한성 시대 토기와 같은 시대로 목간의 연대가 추정된다. 주변에서 발굴된 나무 조각들의 연대 측정에서도 400년대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논어 목간은 400년대의 백제 한성 시대 목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목간은 현재 인천계양산성박물관에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2004~2006년 3차에 걸친 선문대고고연구소의 조사에서 2006년 발굴되었으며, 이 두 개의 논어 목간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인 것으로 주장되었다(김태식 기자, 「“계양산성 논어 목간은 400년대 백제 작품”」, 『연합뉴스』, 2008-11-12 참조).
* 원문 출전: 인천 계양산성,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18 참조.
2. 양주 대모산성 목간(총 2점)
(3) 양주 대모산성 부적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尸尸尸夫金 也 <끝>
* 5세기 439년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양주 대모산성 부적 목간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부적 목간
* 2025년 11월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이 경기도 양주시와 공동으로 양주 대모산성 내부 아래 저수지 백제 문화층에 대한 양주 대모산성 제15차 유적 발굴 조사에서 3점의 목간이 발굴되었다. 목간에 기묘년(己卯年)이라는 묵흔이 확인되어 439년경 백제 시대 비유왕 13년 목간으로 추정된다.
* 김예나 기자, 「양주 대모산성서 1500년 전 ‘기록’ 나왔다…“가장 오래된 목간”」, 연합뉴스, 2025-11-20 참조.
(4) 양주 대모산성 기묘년 목간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夫夫夫己卯年 夫夫夫白也 <끝>
* 5세기 439년경 백제 시대 한성 시대 양주 대모산성 기묘년 목간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
* 2025년 11월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이 경기도 양주시와 공동으로 양주 대모산성 내부 아래 저수지 백제 문화층에 대한 양주 대모산성 제15차 유적 발굴 조사에서 3점의 목간이 발굴되었다. 목간에 기묘년(己卯年)이라는 묵흔이 확인되어 439년경 백제 시대 비유왕 13년 목간으로 추정된다.
* 양주 대모산성 금물노 목간, 구글 Gemini, 2026-08-18; 김예나 기자, 「양주 대모산성서 1500년 전 ‘기록’ 나왔다…“가장 오래된 목간”」, 연합뉴스, 2025-11-20 참조
3. 금산 백령산성 목간(총 1점)
(5) 금산 백령산성 목간
작자 미상
去行二百
以傭 <끝>
* 538~66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금산 백령산성 목간
* 발굴지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건천리 사이 백령고개 산봉우리 백령산성이며, 소장처는 국립부여박물관이다.
* 2003년 충남 역사문화연구원이 금산 백령산성 1, 2차 발굴 조사에서 금산 백령산성 목관창고 내에서 출토되었다.
백제 금산 백령산성 목간은 총 1점이며,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은 “長二百/以滴”이고, 윤선태 판독은 “□行二百/以□”이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4. 장수 침령산성 목간(百濟長水砧嶺山城木簡)(총 1점)
(6) 장수 침령산성 목간(百濟長水砧嶺山城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별도 주재 촌락의 도사(道使) □□□□□□□ 68일 본인 <끝>
* 538~660년경 백제 사비기 작자 미상 원작 「백제장수침령산성 목간」(百濟長水砧嶺山城木簡)
* 2021년 2월 16일 ‘2020년 신출토 문자자료와 목간’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에서 조명일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연구원이 삼국 시대부터 나말여초까지로 연대가 추정되는 전북 장수 침령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하는 목간 명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도사’(道使)는 삼국 시대 촌(村) 단위 행정 구역에 파견된 지방관이라고 한다.
* 이기환 선임 기자, 「‘을사년’ 명문 토기에 담긴 백제멸망기의 6가지 비밀」, 『경향신문』 2021년 2월 16일자 보도 내용 참조.
長水砧嶺山城木簡銘文
作者 未詳
別(列)道中在道使村□□□□□□□六八日本人 <끝>
* 원문 출전: 이기환 선임 기자, 「‘을사년’ 명문 토기에 담긴 백제멸망기의 6가지 비밀」, 『경향신문』, 2021년 2월 16일.
5. 부여 관북리 목간(총 329점)
(7) 부여 관북리 편철 목간(百濟扶餘關北里編綴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4개의 공적을 쌓은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 편철 목간」(百濟扶餘關北里編綴木簡)
* 목간 길이 약 28cm
* 목간에 구멍을 내고 끈으로 묶어 책이나 두루마리처럼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편철 목간이며, 인사 문서로 해석된다.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편철 목간 6점의 하나
扶餘關北里編綴木簡
作者 未詳
功四爲小將軍刀足二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 17.
(8)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1
작자 미상
도독 무독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1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1
作者 未詳
都督 武督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9)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3
작자 미상
시덕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3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3
作者 未詳
施德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10)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4
작자 미상
서인 무독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4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4
作者 未詳
書人 武督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11)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5
작자 미상
좌군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5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5
作者 未詳
佐軍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12)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7
작자 미상
문독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7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7
作者 未詳
文督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13) 부여 관북리 지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地名木簡) 19
작자 미상
웅진군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19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地名木簡 19
作者 未詳
熊津郡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14)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20
작자 미상
도사
감라성 개비군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20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20
作者 未詳
道使
甘羅城 蓋比郡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15) 부여 관북리 지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地名木簡) 21
작자 미상
하서군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21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地名木簡 21
作者 未詳
河西郡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16) 부여 관북리 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22
작자 미상
나라성 <끝>
* 6세기 중반경 백제 시대 작자 미상 「백제부여관북리관직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22
* 목간 22 ‘나라성’(또는 감라성)은 삼국 시대 백제, 가야, 신라 사이의 접경 지역에 해당하며, 이 지역이 백제 관할임을 입증하는 사료이다.
*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된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관직명 목간
* 목간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
扶餘關北里官職名木簡 22
作者 未詳
那羅城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17) 부여 관북리 지명 목간(百濟扶餘關北里地名木簡) 23
작자 미상
인삼초
요비성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23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2026년 2월 5일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총 329점의 목간 중 지명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부여 관북리는 백제 사비 시대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扶餘關北里地名木簡 23
作者 未詳
人心草
徼比城 <끝>
* 원문 출전: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18) 부여 관북리 목간 27
작자 미상
庚申年十一月下部 <끝>
* 540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경신년 부여 관북리 목간 27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부여 관북리 경신년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19) 부여 관북리 목간 28
작자 미상
癸亥年正月送 <끝>
* 543년 백제 시대 사비 시대 계해년 부여 관북리 목간 28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부여 관북리 계해년 목간이라고 칭할 수 있다.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20) 부여 관북리 목간 36
작자 미상
여수백참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36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扶餘關北里木簡 36
作者 未詳
餘首白參 <끝>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21) 부여 관북리 목간 37
작자 미상
현곡개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37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扶餘關北里其他木簡 37
作者 未詳
玄曲愷 <끝>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22) 부여 관북리 목간 58
작자 미상
마삽이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58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扶餘關北里其他木簡 37
作者 未詳
馬卅二 <끝>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참조
(23) 부여 관북리 목간 63
작자 미상
인현 <끝>
* 54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58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부여 관북리는 백제 최후의 수도 사비의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23번 ‘인심초’는 약재와 관련되어 있으며, 37번 ‘현곡개’는 음악과 관련되어 있고, 63번 ‘인현’은 유교 경전과 관련되어 있다. 그밖에 절기와 관련된 ‘입동’(立冬), 시간과 관련된 ‘사시’(巳時), 질병과 관련된 ‘단온병’(斷溫病) 등도 발굴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扶餘關北里其他木簡 37
作者 未詳
仁賢 <끝>
* 원문 출전: 세상의 모든 역사, 「부여 관북리 목간 경신년 계해년이 540년, 543년이라고 댄 근거」, <http://historylibrary.net/>, 2026-08-24; 윤승민 기자, 「부여 관북리서 발견된 목간 329점, ‘백제 피리’만큼이나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26-02-17.
(24) 부여 관북리 목간 283
작자 미상
(一面)
攻自嵎城□尸民軍
以功夫成而□□□
(二面)
□□自中部□
南吉次中城自□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며,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목간 329점은 국내 최대 규모의 목간 발굴이다.
*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은 “中阝/本我自”이며, 윤선태 판독은 “攻舟嶋城 □城/ 攻負□城□□□/□/□自中□/□□久□ □城□”이다.
* 출토지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연지이며, 소장처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이다. 1982년 국립부여박물관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연지에서 출토되었다.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관북리 목간, 고대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25) 부여 관북리 목간 285
작자 미상
(前面)
中方向殳 □□
(後面)
二月十一日兵与記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6) 부여 관북리 목간 286
작자 미상
夷嵎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7) 부여 관북리 목간 288
작자 미상
下賤相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윤선태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28) 부여 관북리 주도성 목간
작자 미상
(前面)
攻舟嶋城中阝城軍
攻負□城中阝禾質
(後面)
馬吉次 本城自中可□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주도성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29) 부여 관북리 목간 289
작자 미상
丑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관북리 목간
* 백제 최초의 목간이다.
*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발굴보고 III 판독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출토,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소장
* 사적 428호이며, 백제 사비 시대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된다. 1982~1992년 사이 충남대박물관의 7차에 걸친 조사와 2001년 이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연차 조사가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백제 시대 여러 건축물과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백제 최초의 목간이 발견되었다. 목간은 연지(蓮池) 내부에서 발굴되었고, 같이 발굴된 개원통보(開元通寶)를 통해서 연지가 7세기 전반이나 중반 사이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부여관북리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 go.kr/>, 2026-07-17 참조). 부여 관북리 목간은 백제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발굴이며, 관직명, 지명, 그 외 절기와 시간 표기가 발견되었다.
* 부여 관북리 목간 가운데 284번, 287번, 289번, 291번, 292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관북리 목간, 고대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6. 부여 구아리 목간(총 13점)
(30) 부여 구아리 목간 31
작자 미상
(一段)
□□ □□ □□
(二段)
不戶
(三段)
□□服 □□□
(四段)
并監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卅枚/幷□”이다.
* 소장처는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며, 2010년 부여 구아리 유적 수로 유구에서 출토되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 총 13점 가운데 19번 목간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로 확인되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1) 부여 구아리 사언시 목간(扶餘舊衙里四言詩木簡)
나종혁 국역
사비인(泗沘人) 원작
보내신바 서신이 온
까닭에 삼가 수고했소
이 빈궁하고 천한 곳에서
하나도 가진 게 없이
일도 맡지 못했으니
좋고 그른 일 성내지 마소
번거로워도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아니하리니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사언시 목간
* 일명 서신 목간, 청탁 목간, 사언시 목간이라고 불린다.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所違信來以敬辱之於此貧薄/一无所有不得仕也 莫睄好耶荷陰之後/永日不忘”이고, 심상육, 김영문 판독은 “所遣信來 以敬辱之 於此貧薄 一無所有 不得仕也 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발굴조사로 출토된 백제 목간 13점 가운데 하나이다. 청탁 목간이라고도 하며 서신 목간이라고도 한다. 1,400년 전 백제 시대 최초의 답신 형식 서신문 사언시 고체시이며, 목간의 크기는 길이 25.2cm, 너비 3.5cm, 두께 0.3cm이다. 목간의 사언시는 전면 4언 3구, 후면 4언 5구, 총 4언 8구 32자이고, 이 가운데 앞의 5구는 큰 글씨, 뒤의 3구는 작은 글씨로 쓰였다(『한국사데이터베이스』 참조).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舊衙里四言詩木簡
泗沘人
(全面)
所遣信來以敬辱之於此質簿
(後面)
(一段)
一无所有不得仕也
(二段)
[左]
莫睄好耶荷陰之後
[右]
永日不忘 <끝>
* 원문 출전: 김태식 기자, 「벼슬자리 주십시오... 백제 편지목간 발견」, 『연합뉴스』, 2013-05-22, <https://www.yna.co.kr/>.
(32) 부여 구아리 목간 88
작자 미상
(前面)
□等 堪彼□牟
(後面)
□□□□□□□□□□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等堪波禮牟”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3) 부여 구아리 목간 89
작자 미상
見識耳者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見諸有者”이다.
* 소장처는 부여군문화유산보존센터 현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며, 2010년 구아리 유적 수로 최하층 유구에서 출토되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4) 부여 구아리 목간 90
작자 미상
(前面)
者 中卩奈率得進 下卩韓牟札
(後面)
各一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은 “者 中卩奈率得進/下卩韓牟禮/若”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9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5) 부여 구아리 목간 93
작자 미상
□□□□眞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
* 소장처는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며,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 유적 유구 웅덩이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13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6) 부여 구아리 적미 목간
작자 미상
太公西美前卩赤米二石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일명 적미(赤米, 붉은 쌀) 목간, 부찰 목간이라고 불린다.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太□□實前卩赤米二石”이다.
* 소장처는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다.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 유적 수로 최하층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9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7) 부여 구아리 목간 109
작자 미상
(上段)
文 雀麻石 牟多
(下段)
鳥□□ 鳥石渚 鳥兮管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판독이며, 한국목간자전 판독은 “□文烏/□省□烏石□/牟多烏兮留”이다.
* 소장처는 백제고도문화유산단이다. 2010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 유적 웅덩이 최하층 유구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9점이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38) 부여 구아리 후부 목간
작자 미상
(前面)
後卩□□□□□人
(後面)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구아리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319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구아리 유적지는 천황사터로도 알려져 있다. 1944년 천왕명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편이 발굴되었고, 1966년 동제귀형식판, 천왕사명 기와 등이 발굴되었으며, 1992년 수로와 우물터가 발굴되었고, 우물터 내부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문은순, 강성봉, 「부여 구아리 백제 유적」, 『민족대백과』, 2025년 7월 8일). 구아리 출토 목간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서신 목간 외에 적미(赤米) 목간과 지명(後部) 목간 등이 발굴되었다.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출토 목간은 총 9점이다.
7.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총 8점)
(39) 부여 동남리 궁남지 49-2번지 목간
작자 미상
(前面)
安□敬禾田犯□□兄□□敬事
(後面)
□ <끝>
*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동남리 목간
* 국립부여박물관/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宅敬禾田犯□兄者爲敬事”이고, 부여 동남리 216-17번지 유적 판독은 “ 宅敎和田犯必兄害爲敎事”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216-17번지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역사문화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1992~2002년 사이 8차에 걸친 조사로,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고, 그 외에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과 목간 24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에서는 백제의 관직명(대덕, 나솔 등), 사찰명(보희사, 자기사 등)이 확인되었다(부여능산리사지출토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2005년 충남 역사문화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 동남리 216-17번지 1차 석축 우물내부에서 출토된 부찰 목간이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0)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서부 후항 목간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서부 후항에 사는 사달과 사사가 장정 의활□□□ 장정 귀인 중구 4인 하구 2인과 매라성 법리원의 논 5형을 개간했다
서부 중부 이 <끝> <2026년 7월 14일>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宮南池) 117번지 서부 후항 목간
* 서부 후항 목간이라고 불린다.
* 길이 35cm 소나무 목간으로, 백제 시대 도량형 기준인 영조척(길이 약 35.05cm)과 일치한다.
* 국립부여박물관 판독은 “西阝後巷巳達巳斯丁依活□□後阝/歸人中口四 小口二 邁羅城法利源 水田校勘 五形/西阝中□夷”이며, 국립청주박물관 판독은 “西阝後巷巳達巳丁 依活 丁/歸人中口四 小口二 邁羅城法利源 水田五形/西阝中 阝夷”이고, 박현숙 판독은 “西部後巷巳達巳斯部依活□□□□/歸人中口四 下口二 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西部中部□”이며, 윤선태 판독은 “西ア後巷巳達巳斯丁依舌□丁/歸人中□四小□二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西□ ア利”이고, 이용현 판독은 “西ア後巷巳達巳斯丁 依舌□□□丁/帰人中口四 小口二邁羅城法利源畓五形/西□校勘 丁 校勘 ア夷”이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사적 135호)에서 출토되어, 현재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부여 궁남지는 궁 남쪽의 연못을 뜻하며, 634년 백제 무왕 35년에 궁의 남쪽에 연못을 조성했다고 한다. 신선이 사는 섬이라고 해서 신선정원(神仙庭園)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백제 부여 궁남지는 현재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궁궐 연못이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백제 시대 인명,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도량형의 기준 영조척에 대한 단서가 된다.
扶餘東南里宮南池西部後巷木簡
作者 未詳
(前面)
西阝後巷巳達巳斯丁 依活于□畑丁
歸人中口四 下口二 邁羅城法利源水田五形
(後面)
西千阝中阝夷 <끝>
* 원문 출전: 김길식, 「부여 궁남지」, 『민족백과사전』, 2026-07-14 참조
(41) 부여 동남리 궁남지 117번지 목간 궁1
작자 미상
(前面)
死所可依故背□作弓穀日間落
(後面)
蘇君蒔軍日今敵白隨之心□之刁 <끝>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적 135호이며, 백제 사비기 궁원지(宮苑址)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했으며, 궁남지 목간은 6세기경 인공수로와 목조 저수조 내부에서 발굴되었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42) 부여 궁남지 117번지 연습 목간 궁2
작자 미상
(一面)
□文文文文文文文文
(二面)
□進文之也也也也也也
(三面)
□□文之之文文之之之之
(四面)
書文書文文令令文也也也文也文 <끝>
* 538~663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궁남지 목간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번지 궁남지(宮南池)에서 출토되었으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6-1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적 135호이며, 백제 사비기 궁원지(宮苑址)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했으며, 궁남지 목간은 6세기경 인공수로와 목조 저수조 내부에서 발굴되었다.
* 1995~2003년 사이 6차례 조사에서 3~4세기와 6~7세기 유물이 발굴되었고, 목간은 6세기경 유적지의 인공 수로와 목조 저수조에서 발굴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사적 135호) 출토 목간은 2022년 동남리 49-2번지에서 목간 5점이 발굴되었으며, 동남리 117번지 일대에서는 서부후항 목간 등 3점의 목간이 공개되었다. 부여 동남리 궁남지 목간은 현재 총 8점이 공개되어 있다.
8. 부여 쌍북리 목간(총 27점)
(43) 부여 쌍북리 목간 316
작자 미상
(前面)
來時兄來
(後面)
□言以聞□成□□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이며, 윤선태 판독은 “<前面> □時□兄□□□□/<後面> □上部 □ □”이다.
* 1998년 백제문화유산연구원과 충남대박물관의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02번지 쌍북 주공아파트에서 출토되었다. 이후에도,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참고로 우리나라의 목간의 총숫자는 7백여(730) 점이며, 백제의 목간 총숫자는 1백여 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 1백여 편으로 추정되는 백제 목간 가운데 대표적인 목간은 향가계 백제 가요 「숙세가」 목간, 구구단 목간, 한시계 사언시 서신 목간, 남근형 목간이 있으며,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간으로 주장되는 논어 목간, 백제 최초의 이두문 목간 등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7-17 참조
(44) 부여 쌍북리 목간 317
작자 미상
那連公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나니와 목간
* 백제목간 소장품조사자료집 판독
* 고대 일본의 인명 나니와 무라지(那你波連, 이름 나니와(那你波), 성 무라지(連))가 기록된 백제의 나니와 목간이다. 부찰 목간이라고도 한다.
* 소장처는 국립부여박물관이다.
* 1998년 백제문화유산연구원과 충남대박물관 주관으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02번지 쌍북 주공아파트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02번지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부여 쌍북리 목간 총 27점 가운데 현내들 목간 현85-4번, 현내들 목간 현85-6번, 현내들 목간 현85-9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45)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5-8
나종혁 판독
작자 미상
(全面)
奈率牟氏丁一
寂一信不丁一
□及酒丁一
(後面)
□□□
実□□□北
実加來辶之東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나종혁 판독이며, 그 외에 윤선태 판독이 있다.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은 “1면 奈率牟氏丁一 寂信不丁一 □及酒丁一/2면 □□□ 吳□□ 吳加赤工已奈 ”이다.
* 소장처는 충청문화유산연구원이다.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이후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부여 쌍북리 목간 총 27점 가운데 현내들 목간 현85-4번, 현내들 목간 현85-6번, 현내들 목간 현85-9번, 현내들 목간 현85-10번, 현내들 목간 현86번은 묵흔이 없거나 판독 불가이다.
* 원문 출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 nrich.go.kr/>, 2026-07-17 참조
(46)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87
작자 미상
(前面)
水不好記上不在
(後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이 있고, 북포유적 보고서는 “大大好記一不在”이다.
* 소장처는 충청문화유산연구원이며,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47)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1
작자 미상
(前面)
德率首此
(後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이며,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은 “德中節比”이다.
* 부찰 목간이라고도 불린다. 소장처는 충청문화유산연구원이며,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8)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4
작자 미상
(前面)
爲丸□月□ □
(後面)
天□之□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
*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이후에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49)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5
작자 미상
□ 上ア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은 “上卩”이다.
*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 백제 시대 2층 2호 수혈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50)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96
작자 미상
(一面)
□春□□春 尙倩八官當津
(二面)
□春□丘春 □□□□□□
(三面)
當兩正經正□ □□
(四面)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북포유적 보고서 판독은 “1면 □春□尙高尙倩八/2면 □□□□/3면 /4면 漢卄中漢□比□ 尙面正䌹則□”이다.
* 소장처는 충청문화유산연구원이며, 2006~2007년 충청문화유산연구원 발굴 조사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현내들에서 출토되었다.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목간, 국가유산 지식이음, <http://portal.nrich.go.kr/>, 2026-08-25 참조
(51) 부여 쌍북리 현내들 목간 현105
작자 미상
漢 □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52) 부여 쌍북리 소작 장부 목간(扶餘雙北里小作帳簿木簡)
나종혁 국역
작자 미상 원작
(앞면)
무인년 6월 고순몽 3석 전마나 2석
상부 3석 상급 4석 비지 2석 상급 1석 미 2석
좌관 대식기 소작 목록의 2석 상급 2석 미 1석 습리 1석 5두 상급 1석 미 1
(뒷면)
소마 1석 5두 상급 1석 5두 미 7두 반 소작 수문 1석 3두 반 상급 석 미 석 갑 병 19석 금고 1석 3두 반 상급 1석 미 1석 갑 도기읍 좌관에게 3석을 주다 이득 11석 <끝> <2026년 8월 2일>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윤선태 판독, 부여 쌍북리 창고신축부지내 유적 판독
* 소장처는 백제문화유산연구원이다. 2008년 백제문화유산연구원 주관 부여 쌍북리 조사에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280-5번지 신성전기 창고에서 출토되었다. 이후로,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 있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扶餘雙北里小作帳簿木簡
作者 未詳
(前面)
戊寅年六月中 固淳多三石 佃麻那二石
上夫三石上四石 比至二石上一石未二石
佐官貸食記 佃目之二石上二石未一石 習利一石五斗上一石未一石
(後面)
素麻一石五斗上一石五斗未七斗半 佃首行一石三斗半上石未石甲 幷十九石
今沽一石三斗半上一石未一石甲 刀〃邑佐三石与 得十一石 <끝>
* 원문 출전: 「부여 쌍북리 목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s://db.history.go.kr/>, 2026-06-0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목간―나무에 쓴 백제 이야기』(도록)
(53)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22
작자 미상
(前面)
□部兮礼至文奴利□□
(後面)
□□利□去背□卄斗□□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54)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4
작자 미상
五石六十斤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55) 부여 쌍북리 목간 173-8번지-197
작자 미상
部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56) 부여 쌍북리 173-8번지-223
작자 미상
(前面)
□四斤一兩
□五斤四兩
(後面)
丁卅四
婦十三
洦一□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동방문화재연구원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173-8번지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57) 부여 쌍북리 목간 184-11-71
작자 미상
斤止 受子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58)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1
작자 미상
恍時予丁 彡□□
□□□丁 □珎久丁
□真相丁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59) 부여 쌍북리 목간 201-4번지-2
작자 미상
兄習利丁
□諸之□□臣丁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60) 부여 쌍북리 328-2번지-목간A
작자 미상
中□□子 三 <끝>
* 6~7세기 538~660년경 백제 시대 사비 시대 부여 쌍북리 목간
* 정훈진 판독
* 2011년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주택 공사장에서 출토된 6~7세기경 백제의 목간이다. 특히 2016년 정밀 판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구구단으로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쌍북리에서 목간 14점이 발굴되어 공개되었고, 이들 가운데 글자가 확인되는 것은 2~3점 정도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쌍북리 목간 가운데는 “전”(佃) 자가 기록된 소작 장부 목간이 있다.
* 원문 출전: 금석문·문자자료, 한국 고대 사료 DB, <http://db.history.go.kr/>, 2026-08-15 참조
<끝>
백제의 목간 2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