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과 아도니야
솔로몬의 이름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에서 기원합니다. 지혜롭기로 명망 높은 그였지만, 즉위 과정이 그리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형 아도니야와 벌인 경쟁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로(2사무 3,4) 태어났지만, 형들이 줄줄이 죽는 탓에 장남이 됩니다. 맏형 암논은 이복 누이 타마르를 욕보인 일로 셋째형 압살롬의 손에 죽고(13,32), 압살롬은 아버지를 상대로 반역하였다가 최후를 맞습니다(15-18장). 둘째형 킬압(3,3)은 존재감이 미미한데 어릴 때 죽었거나 강한 왕자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왕좌를 당연히 제 것으로 여겼고, 다윗의 신하인 요압 장군과 에브야타르 사제도 그를 지지하였습니다(1열왕 1,7-8). 그러다 다윗이 예언자 나탄의 설득과 밧세바에게 한 약속(1,11-31) 때문에 솔로몬을 택하자, 제단으로 가서 그곳의 뿔을 잡습니다(1,50). 옛 이스라엘에서는 위험에 빠지면, 도피 성읍으로 피신하거나 제단으로 나가 제단 뿔을 잡으며 주님의 보호를 청했던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명동대성당이 항쟁자들에게 피신처가 되어준 것과 비슷했다고 보면 됩니다.
제단 뿔이 피신처가 된 까닭은 이렇게 추정됩니다. 백성이 제물을 바쳐 속죄하는(레위 4,13-21 등), 경신례의 중심인 제단에서 주님의 힘과 자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은 뿔이었습니다. 제단에 뿔을 단 것은 하느님의 힘을 뿔 달린 짐승의 힘에 빗대려 한 것입니다(민수 23,22). 곧 제단 뿔이 힘과 신성이 깃든 중심으로 여겨졌기에, 그걸 잡으면 주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세바 유적지에서 발견된 제단이 그 뿔 달린 형태를 잘 보여줍니다(사진).
솔로몬도 아도니야가 제단의 뿔을 잡자 자비를 베풉니다. 단, 그가 악을 꾀하다 발각되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는 조건을 달고 말입니다(1열왕 1,50-53). 조건을 단 건, 아도니야의 일을 보고 압살롬과 아버지 다윗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압살롬은 맏형 암논을 죽인 뒤 아버지를 피해 도망갔다가 돌아오지만(2사무 14장) 그 뒤 아버지에게 다시 반역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봤던 솔로몬은 아도니야도 같은 길을 걸으리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의심은 현실이 됩니다. 아도니야는 아버지에게 훈계 한 번 받지 않고 자란 탓에(1열왕 1,6) 세상을 쉽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풀어준 뒤에도 아버지의 첩 아비삭을 달라고 청하는(2,13-25)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왕궁의 침소를 점령하는 건 왕위 찬탈 행위입니다. 반역한 압살롬 역시 궁을 차지하고선 옥상에 천막을 치고 아버지의 여인들을 취한 적이 있습니다(2사무 16,21-22). 아도니야의 청은 왕위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 것과 같았기에, 이제 솔로몬은 그를 처단하여 왕위를 견고히 합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지혜로운 임금으로 명성을 쌓아가는 과정에는 그가 극복해야 했던 우여곡절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