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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4일 종려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18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요15:1-11절(신173)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참 포도나무와 농부의 비유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종려 주일입니다(12:12-16). 그는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를 아셨습니다. 13: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것은 그의 제자들과 이별의 순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꼭 알아야 할 진리들을 12장에서 17장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앞으로 보고 경험할 그의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이 떠나가실 그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참 포도나무와 농부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는 이 비유(1-2)를 먼저 말씀하시고 그것을 그의 제자들에게 적용과 설명하십니다(3-11).
먼저, 참 포도나무와 농부의 비유입니다(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모든)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여기서 ‘에고 에이미(나는 ~이다)’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표현(출3:14)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끗하게 하신다’(2)는 ‘가지치기’를 의미하는데, 상징적으로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거나 속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참 포도나무요, 그의 아버지는 농부’라고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 안에 두 종류의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열매를 맺지 못하여 제거되는 모든 가지’이며, 다른 하나는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함을 받는 모든 가지’입니다.
여기서 번역되지 않은 ‘모든’은 농부의 이 행동에 예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이 비유(1-2)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참 포도나무를 심고 좋은 열매를 위해서 가지치기를 하는 농부와 같이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안에서 만물(특히 사람)을 창조하셨고, 창조 언약에 따라 열매 맺지 못하는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열매 맺는 사람(무조건적 선택)들을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의 선택이 없다면, 그의 창조는 헛된 일?). 요1:3-4절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영생)은 사람들의 빛이라.” 여기서 ‘생명’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사람들의 빛, 즉 하나님을 알게 하는 사람들의 생명입니다(요17:3). 이처럼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창조된 존재가 우리 인간의 진짜 모습(참 인간)입니다.
이 비유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들’(2)은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들, 즉 그들죄의 깨끗함을 받지 못하는 자들을 상징하며, ‘열매를 맺도록 깨끗함을 받은 가지들’(2)은 그를 영접하는 자들입니다. 1:10-13절입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여기서 ‘세상’은 그의 세상이며(10), ‘땅’도 그의 땅이며, 땅에 속한 ‘모든 사람’은 그의 소유입니다(11). 만물이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요1:3, 골1:16).
또한 이것(1-2)은 참 포도나무의 농부와 같이 하나님이 ‘옛 언약(율법) 언약’으로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세우신 것을 상징합니다(출19:5-6).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의 포도나무로 자주 비유되었습니다(사5:1-7, 렘2:21, 겔15:1-5, 시80:8-18). 그러나 모든 경우에 그들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기에 율법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이스라엘은 세상에 속하였습니다(15:18-19, 16:2-3). 그러므로 이스라엘 중에서도 예외 없이 열매 맺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에 의하여 제거되며, 열매 맺는 자는 그의 깨끗함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시며 적용하십니다(3-7).
먼저, 3절입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이것은 열매 맺는 가지에 대한 아버지의 깨끗하심(2), 즉 의롭다 하심(칭의)에 대한 설명입니다.
‘내가 일러준 말’(3)은 13:8-10절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여기서 ‘그의 세족’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세상의 죄를 근본적으로 씻는 ‘그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창세 전에 삼위 하나님이 세우신 ‘구속 언약’에 근거하여 열매 맺을 가지들을 대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그의 죽음으로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세족(죽음)’을 통한 깨끗하심(칭의)은 ‘그와 상관이 있게 한다’(13:8), 즉 ‘성령 세례’(1:33)를 통하여 그와의 연합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12:32).
그래서 4-6절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내 안에 거하라’(4)는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3), 즉 칭의의 결과로 그와 연합된 사실에 근거한 명령입니다. 15: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여기서 어디에요? ‘그 안에’입니다. 그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5)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근거한 ‘내 안에 거하라’(4)라는 무슨 명령일까요? 그가 구속 언약에 따라 우리를 위하여 창조(율법) 언약을 그의 죽음으로 다 이루심에 근거하여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셨고 그와 연합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믿음으로 그 안에서 살라. 즉 이신칭의를 받은 자로서 그(주님)를 믿음으로 함께 살라는 것입니다(골2:6).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4)는 조건적이라기보다 ‘내가 너희 안에 틀림없이 있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한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하는 약속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가 열매를 맺지, 떨어진 가지는 절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과 같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5)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그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알고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와 연합하신 그를 전적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의 아버지에 대한 절대 의존과 그와의 단절의 무능력에 대한 말씀과도 같습니다(5:19, 30).
그러므로 ‘그 안에 있다’라는 것은 곧 열매를 맺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그가 우리 저항까지도 이겨서 반드시 열매 맺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능력이요,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살라’는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는 무엇일까요? 포도나무는 사과나 배가 아니라 포도나무 안에 있는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지는 포도나무의 생명을 받아 포도 열매를 맺습니다. 이같이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도 그 안에 있는 생명(1:4)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 생명의 열매이므로 사랑이라는 특성을 더욱 나타내는 성화와 영화이며, 또한 전도를 통하여 그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리고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서는 ‘그’ 대신에 ‘그의 말씀’입니다. 그가 성육신하신 말씀이시며(1:14), 그의 말씀과 일치하시기 때문입니다.
4-6절에서 그와 연합된 사실에 근거하여 그를 믿음으로 살라는 명령이라면, 여기서는 이 연합에 근거하여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명령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는 응답의 약속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그와 연합한 사실에 근거하여(그와 하나가 되어) 구하라, 즉 그의 말씀(복음)에 근거하여 구하라는 것입니다. 14:12-1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성도 여러분, 그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그와 연합의 삶, 즉 그가 우리를 통하여 열매를 맺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갈2:20).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이 연합, 즉 열매의 결과들을 설명하십니다(8-11)
첫째로 그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여기서 ‘열매를 많이 맺은 것’과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의 제자라는 증거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마7:20절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포도나무의 풍성한 열매를 기뻐하는 농부와 같이 예수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의 창조 목적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서로 사랑하라’(12)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9-10).
먼저 9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가 그에게 연합되어 하나가 되는 것을 사랑으로 표현하십니다. 즉 ‘그 안에 거한다’는 즉 ‘그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그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9)입니다.
이 사랑의 연합에서 나오는 결과는 두 가지입니다. 순종(10)과 기쁨(11)입니다.
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언뜻 보면, 그의 계명에 순종이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조건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순종은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본능이요, 그 사랑의 표현이요, 성령의 열매이기에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약속입니다. 이는 새 언약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그의 계명에 순종, 즉 그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롬14:7-9). 이것이 복음의 계시입니다(고후4:5).
셋째로 우리도 그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는 것입니다(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랑의 관계는 최대의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것을 경험하셨는데, 심지어 십자가의 끔찍한 순간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제자들이 그와 동일한 기쁨을 가지도록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한 구속 언약에 근거하여 창조(율법) 언약을 이루신 그의 죽음을 통한 죄 사함(칭의)과 부활과 성령강림을 통하여 우리와 연합하신 그를 믿고, ‘서로 사랑하라’라는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우리가 서로 사랑의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그의 기쁨을 풍성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기쁨’이 창조의 목적이요, 참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성도 여러분, 포도나무에서 가지는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가지는 죽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우리 관계(연합)도 한순간도 떨어지면 안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참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안에 거하라’(4), 즉 한순간도 그와 떨어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참 숨이 막히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의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 즉 그의 복음을 바르게 알면, ‘이것이 우리에게 가능하다’라는 것을 알며 믿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포도나무를 열매만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열매 외에는 땔감을 제외하고 다른 데에 사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는 것만이 우리(참 인간)의 존재 목적입니다. 어떻게요? 그의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 즉 그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 주간과 부활절에 그의 복음을 깊이 알고 믿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찬송 288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