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눈깜짝할 사이에 봄을 지나 녹음이 짙어지는 성하의 길목으로 들어섰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자 현충일을 맞이하여 우리 바이콜 전사 여섯 명은 뜻을 모았다. 나라를 위해 못숨 바친 순국선열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자, 양재시민의 숲에 자리한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으로 참배 라이딩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넷을 포함해 모두의 마음속엔 유독 각별한 애국심이 차올랐다. 여정의 시작점은 탄천과 양재천이 만나는 합수부였다. 푸른 하늘 아래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페달을 밟는 발걸음을 가볍게 거들었다.
탄천을 따라 나란히 내달리는 길, 주변으로는 2030년을 목표로 한 수변공사 조성이 한창이다. 멀지 않은 미래애 탄천과 잠실, 한강을 잇는 푸른 보행축이 완성되면 시민들의 삶도 한층 더 풍요해질 것이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싱그러운 녹색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나비와 새들이 어우러진 여름 풍경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그늘이 적은 탄천 자전거길을 한달음에 12km 달려 둔전교 쉼터에서 짦은 숨을 골랐다. 휴식은 언제나 지친 몸을 따스하게 다독여준다. 에너지를 채운 뒤 상적천 자전거길을 지나 나무데크길로 들어서니 대왕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늘 무심히 지나치던 곳이었으나, 68년만인 2026년 봄, 시민을 위한 수변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니 한층 더 반갑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청계산 옛골 등산로를 거쳐 여의천을 따라가니 마침내 나무가 울창한 양재시민의 숲에 도달했다. 숲의 안쪽, 정적 속에 서 있는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 앞에 다다라 경건한 마음으로 거수경례를 올리고 묵념을 드렸다. 유격백마부대는 6.25 전쟁 당시 계급도 군번도,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이 조국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일어선 26,00여 명의 반공 애국청년과 학생들이었다.
500여 회의 교전 속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렸으나, 그 과정에서 552명의 고귀한 생명이 이 땅에 피를 흘렸다. 그들이 남긴 호국정신과 목숨을 건 유격전의 유산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 제8240부대와 국방부 제8250부대를 거치며 정규군으로 편입된 유격대의 실전 경험은 1958년 대한민국 최초의 특수부대인 '제1전투단'을 탄생시키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이 뿌리는 오늘날 '안되면 되게 하라'는 슬로건 아래 조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의 모태로 찬란하게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 뒤에는 군번 없는 군복을 입고 이슬처럼 사라져간 백마부대원들의 숭고한 희생 숨쉬고 있다. 이름 모를 섬의 모래사장에 새겨졌던 그들의 발자국은 지워졌을 지라도, 특전사 대원들의 절도있는 검은 베레모 속에, 그리고 이 땅의 자유로운 하늘 아래 그들의 거룩한 넋은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들의 거룩한 희생 위에 자유와 번영이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과 숙연함이 가슴을 채웠다. 참배를 마친 후, 허기진 배를 달래려 '구이마마'로 향했다.
칼칼한 생고기김치찌개와 잘 익은 묵은지고등어조림을 호식하며 정겨운 웃음꽃을 피웠다. 정성 어린 집밥 한 그릇에 정과 온기가 가득했다. 식사를 마친 후, 구국활동에 열정을 아끼지 않는 든든한 벗 아스트라전(인구)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다시 양재천 귀갓길에 올랐다. 평화롭고 아늑한 오후의 양재천을 따라 달리며, 함께 했던 동료들과 차례로 작별을 고했다. 오후 2시경 청담역에 도착하여 7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는 것으로 오늘의 여정은 정점을 찍었다. 초여름 답지 않게 종일 불어주던 바람이 고마웠던 하루,
비록 세월이 흘러 몸은 예전 같지 않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청춘에 머물러 있음을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은 길을 바라보며 함께 달리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지나간 과거나 오지 않는 미래에 연연하기 보다, 서로를 보듬으며 오늘 이 순간을 감사히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