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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석현리 표지석 → 석현1리 마을 회관 → 청천교 → 파랑 지붕 농가 → 형제봉 → 각화지맥 삼거리 → 944봉 → 끝봉 → 왕두산 → 태백산 사고지 → 각화산 → 각화사 → 주차장'의 12.14km, 5시간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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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산[覺華山]
높이: 1,177m
위치: 경북 봉화 춘양면, 소천면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를 이룬 각화산은 참으로 오지인 경북 봉화군의 산이다. 춘양목이라 불리는 재질 좋은 이 지방의 소나무를 군목으로 삼은 이 고장 사람들은 곧 자란 춘양목을 닮은, 곧 높은 기개를 자랑한다.
조선 초기부터 여러 지방에 분산 보관해 오던 왕조실록 왕실 족보 등의 사고본이 임진왜란으로 거의 소실되자 다시 펴낸 사고본을 좀 더 안전한 곳에 재분산 보관한 오대산, 마니산, 적상산과 더불어 태백산 사고지이기도 하다.
왕두산- 주 능선- 각화산 정상- 각화사를 잇는 낙엽이 무름을 덮는 등산로는 지금도 인적이 거의 없는 깊디깊은 심산이다. - 한국의 산하
해발 1,177m의 경북의 오지 봉화 각화산! 해발 1,000m 이상의 산을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상 반드시 올라야 하는 산이다. 그런데 접근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봉화 자체가 오지라 교통이 불편하고, 승용차는 주요 코스가 환 종주가 아니라면, 코스 제약이 심하다. 물론 각화산만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오지라는 무진장, 봉화, 영월, 정선, 평창에 있는 산은 거의 같다. 문제는 높은 산은 대부분 거기에 몰려있다는 거. 그래서 오지겠지만. 물론 그중에는 국립공원 등의 공원도 있고, 각 기관이 선정한 산도 있다. 운 좋게 선택받은 산은 찾는 사람이 많아, 교통도 좋을 뿐만 아니라, 안내산악회가 끊임없이 출발한다. 말인즉, 선택받은 산은 접근이 쉽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원하는 산을 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가야 할 산이 많았다. 다시 말해 선택받은 산 중에 높은 산이 많았다. 물론 대한민국 기준 높은 산이다. 그런데, 급격한 지질 활동이 발생하지 않는 한, 산의 숫자는 고정된 거라, 매주 산에 다니다 보면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바닥을 보는 순간 진정한 오지 산행을 위해 대중교통이든 승용차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라 최악의 가성비도 감수해야 하고. 마침 그때 안내산악회나, 아웃도어 업체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이 영업을 계속하려면 신규 고객이 끊임없이 유입되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럼 대안은 기존 고객이 계속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은 도전 과제를 계속 늘려가는 거다. 100 명산에서, 백두대간, 섬, 등대, 둘레길 등등에서 정맥, 이제는 지맥까지. 고로 대한민국 웬만한 산은 다 도전과제가 되는 거다. 환영하는 바다!
나만 모르고 있었지, 아웃도어 업체나, 안내산악회에서는 이미 진행하고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서둘러, 그동안 갈 방법이 애매해 뒤로 미뤄뒀던 산에 관해 다시 연구했다. 즉, 위치와 어느 정맥, 어느 지맥에 속하는지 파악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별 의미 없이 보아왔던 산경표, 산경도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게 의미하는 바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는 생각지도 못한 소득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각 산악회 산행 공지 게시판에서 정맥, 또는 지맥으로 검색해 그 구간에 원하는 산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바라는 산이 있으면 바로 그 산행을 신청했다. 한가지 유감이라면, 정보가 늦어 10월 말까지 산행의 많은 계획이 만원이라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는 거다. 즉, 안내산악회와 연대를 가진 꾼들(이들에 덕에 산행이 계획되는 경우도 꽤 있는 거 같다)이 산행 공지 이전에 거의 70% 이상 신청이 끝난 상태라, 정보가 늦은 사람은 아차 하는 순간 대기자가 된다. 하긴, 그런 선행 조건을 충족해야 안내산악회도 위험 부담 없이 교통편을 준비할 수 있으니 당연한 과정이다. 다른 의미에서는, 한번 산행을 놓치면 다시 진행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거다.
사실 그동안 다닌 대부분 산도 대간 또는 어느 정맥, 지맥에 속했을 거다. 당시에는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으나, 이제 상황이 변했다. 먼저 정맥, 지맥 산행을 찾는다. 그렇게 발견한 첫 번째 산이 이번 토요일에 탐험하는 봉화의 각화산이다. 여기를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후련하게 해결된 거다. 지난 상원산, 목우산에 이은 연이은 오지 산행인데, 산악회 계획을 보면 15km 거리에 5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거리보다 주어진 시간이 적다는 건 그만큼 산행이 쉽다는 얘기일 수도 있으나, 그동안 같이 다닌 대간 산행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코스와 무관하게 달리는 걸 강요할 확률이 높다. 고로 잘 달릴 수 있도록 가능한 한 가볍게 준비를 해야 한다. 어차피 먹거리는 늘 하던 대로고, 카메라는 단일 장비로 가장 무거운 거 대신 작고 가벼운 거로.
산행 사흘 전 산악회 환급 마감이 끝났음에도 대기자가 남아 있자, 산악회에서 기존 28인승 버스에서 36인승 버스로 변경해 그들을 흡수했다. 물론 자리를 다 채우지는 못하고 몇 자리가 비어 비록 산행 거리 15km에 주어진 시간 5시간 30분으로 휴식을 포함한다면, 3km/h로 달려야 하는 코스나, 혹시 동행할 동무가 있나 하고 등산방에 산행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흥수가 등산방에 이번에 '왕두산'도 가는지 묻는 글을 보고. 그가 신청한 걸 알았다. 물론 이번에 왕두산까지 달리면 좋으나, 이번 팀이 왕두산 직전에서 구간을 잘라, 왕두산은 2번째 구간 시작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물론 나는 왕두산이 포함된 10월 9일 각화지맥 2구간 산행도 신청했다. 그러자 흥수가 어차피 산악회 버스는 들머리에 승객을 내려주고 날머리인 각화사로 이동할 테니, 거기서 산행을 시작해 지맥은 무시하고 각화사를 중심으로 각화산과 왕두산을 다녀오자고 했다. 나가 원하는 바라, 처음에 고려했었으나, 경험에 비추어 날머리에 식당이 없는 경우 버스는 휴게소 등에 들러 점심을 먹고 날머리로 가는 걸 자주 봐서, 포기했었다. 혹시 모르니 현장에서 기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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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은 교대역에서 7시에 출발해, 평소 산행 출발지인 양재역 7시에 비해 5분 정도 여유가 있어, 새벽에 기상해 다소 여유를 부렸다. 그럼에도 점심 준비하고, 평소 가져가지 않았던 막걸리도 챙겨 배낭을 싸고, 누룽지로 아침을 먹는 등 모든 준비가 끝난 시각이 5시 40분경으로 집을 나서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해서 버스 앱으로 마을버스 운행 상황을 주시하며 패드로 책을 봤다. 그러다 마을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4분 전인 5시 50분경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6시 12분 오금행 전철을 타면 돼, 조금 여유가 있었으나, 역까지 걸어가기가 싫어 좀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섰다.
동명탕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해 5시 55분경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같이 내린 승객 두 명이 갑자기 역으로 뛰기 시작한다. 57분 전철을 타기 위함이다. 12분 차를 타면 충분한 나야 유유자적 역으로 내려가, 개찰구를 지나는 순간 전철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뛸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12분 차면 충분한데 57분 차를 타고 일찍 가봐야 할 일도 없는데, 굳이 저걸 타기 위해 뛰기까지 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유유자적 계단을 내려가자, 막 안전문이 닫히고 있었다. 서두를 것도 없어 한쪽에 있는 의자로 가 앉아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6시 6분이 가까워져 오자 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탈까 말까 고민하다가, 여기서 기다리기보다는 교대역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들어오는 차를 타려고 보니, 거의 빈자리가 없다. 대화에서 출발한 차다. 다음인 구파발 출발 차는 텅 비어 오는데….
6시 46분경 교대역에 도착해 산악회 버스가 정차할 9번 출구로 나가니, 이미 많은 관광버스가 정차해 승객을 태우고 있었다. 6시 50분에 이수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벌써 도착할 리는 없고, 도대체 어떤 버스인지 궁금해 배낭을 벗어 빌딩 계단에 놓아두고 앞에서부터 버스의 목적지를 훑어봤다. 산악회 버스는 아니고, 말 그대로 관광버스로 중견 여행사가 진행하는 국내 관광을 위한 버스로 7호 차까지 있었다. 주차해 있는 버스 행렬을 보며 내가 탈 버스는 어디에 정차할지 궁금해하며, 역 출입구 근처에 놓아둔 배낭으로 돌아가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옆을 보니 흥수다! 아니, 이수에서 타고 와야 할 친구가 왜 여기에?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수역까지 걸아가기가 싫어 바로 교대로 왔다고.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른 관광버스가 속속 도착하고 그 첫 번째 차의 목적지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각화산"이었다.
버스 내에서 필요한 물건만 들고 배낭은 짐칸에 넣고, 타려고 하는데, 문 앞에서 여성 승객 몇이 버스에 탔다가 내려서 앞 창문에 있는 목적지를 다시 확인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기사에게 ‘각화지맥’ 차가 맞느냐고 묻는다. 앞창에는 LED가 커다랗게 "각화산"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맥 산행이 목적인 맥꾼에게는 그 구간에 무슨 산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설명을 듣고 버스에 탄 후, 나도 체온 재고 내 자리로 가, 바로 슬리퍼로 갈아 신고 독서 모드로 돌입했다. 그런데, 버스 안이 시끌벅적하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승객은 서로 잘 아는 사이다. 물론 인솔 대장도. 의도한 건 아니나, 오가는 얘기를 들어보니, 오래전부터 같이 산행을 해온 팀이다.
8시 50분경 휴식을 위해 단양팔경휴게소에 들렀을 때, 마스크를 쓰고 버스에 앉아 있는 게 지겨워, 숲으로 가 마스크를 벗고 앉아 있다가 출발 3~4분 전에 다시 탔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떠나자, 인솔 대장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지도를 나눠준다. 별 필요를 못 느껴 지도는 받지 않고, 코스와 주의사항에 관해 설명을 듣고자 했으나, 원하는 얘기는 하지 않고, 익숙한 승객들과 대화만 나누는데, 와중에 이번에 각화지맥을 종주할 승객이 몇 명인지 확인했다.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각화지맥이 대략 36km 정도인데, 하루에 주파하겠다니. 하긴 46km가 조금 더 되는 지리산 화대종주도 하루에 하는데, 36km 정도야 뭐. 그런데 그걸 하겠다는 승객의 면면이 궁금해 둘러보니, 내 옆자리 승객을 포함 다 노년의 산꾼이다. 그리고 그 모두가 휴게소 화장실에서 2ℓ 생수병에 물을 담던 사람이다. 그 모습을 보고 뭐하러 물을 채우지 궁금했었는데, 종주 때 사용하기 위해서다. 지맥 종주라 당연 산에서는 물 구하기 쉽지 않을 거다.
결국 들머리와 코스, 날머리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듣지 못하고, 인솔 대장의 얘기가 끝났다. 별로 궁금할 것도 없어, 굳이 묻거나 하지 않고, 다시 독서 모드로 돌입했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지방도를 달리고 있었다. 들머리인 석문동이 멀지 않았다. 해서 등산화로 갈이 신고, 오지 산행에 맞게 미니 스패츠를 착용했다. 이후 차가 교행이 불가능한 산길로 접어들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종주나, 다른 이유로 귀경길에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지 않을 승객을 확인한 후 시계를 보더니, 산행 마감 시각은 3시 30분이라고 공표했다. 애초 산악회 계획은 산행에 5시간 30분을 주었으니, 3시 30분 마감이면 10시에 들머리에 도착해야 하는데, 마감 시각 공표 당시 10시 15분경이었다. 같이 산행하는 일행 중 끝으로 들어오지 않을 자신이 있어 마감 시각은 신경 쓰지 않았으나,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았다. 좁은 도로를 서행으로 10여 분이 달리자, 버스가 더 전진을 못 해 차를 세우고 승객을 내리게 했다.
지맥 꾼들과 같이 하차해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정상을 향해 움직이려고 하는데, 흥수가 '각화사로 갈 거냐?'고 묻는다. 물론 '갈 수 있으면 당연하지!'라고 답하자, 흥수가 기사에게 차가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날머리인 인솔 대장이 얘기한 각화사 주차장 아래 공터로 간다고 했다. 그럼 우리를 태워줄 수 있냐고 다시 물었고, 마음대로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더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버스에 타고 산악회 공식 들머리인 석문동을 떠나 산악회 공식 날머리인 각화사 주차장 아래 공터로 갔다. 10시 27분에 각화지맥에 도전하는 인솔 대장이 이하 지맥꾼을 석문동에 내려주고 들머리를 떠난 버스는 다시 국도로 접어들어 각화사를 향해 달렸다. 국도를 3km가량 달려 석현동 표지석에서 좁은 아스팔트 포장된 마을 길을 따라 200여 미터 올라가다가 더 올라갈 수 없어 우리를 내리게 했다. 각화사를 중심으로 한 각화산, 왕두산 환종주 연계 산행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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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면서, 그럼 어디에 주차할 거냐고 기사에게 물었다. 애초 계획한 곳에 주차를 못 하니, 새 위치를 알고 있어야 산에서 내려왔을 때 헷갈리지 않기 위한 당연한 질문이다. 그에 대해 기사는 계획한 위치까지 몰라가지 못해, 국도 한편에 세워두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버스에서 내려 마을 포장도로를 따라 각화사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시각이 10시 43분이다. 그리고 둘이 도로를 따라 올라가며 '우리는 날머리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나, 석문동에서 내린 지맥 꾼들은 그걸 몰라 우왕좌왕할 거 같다.'라는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그렇게 5분가량 올라가자 갑자기 넓은 주차 공간을 가진 과거 버스 정류장이 나타났다. 인솔 대장이 언급한 공터가 여기를 가리키는 거 같다고 둘이 얘기하고 앞을 보니, 국도에서 올라오는 길이 또 있었다. 즉 국도에서 각화사로 가는 포장 도로가 하나 더 있었고, 200여 미터 올라가자 다시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포장도로가 있었다. 고로 국도에서 각화사로 진입하는 포장도로는 3개로, 첫 번째가 아니라 국도를 따라 더 갔다가 진입했어야 했다.
기사가 버스 주차 위치가 바뀐 것에 대해 인솔 대장에게 알려주는 건 당연한 거라, 더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구경하며 빠른 속도로 각화사를 향해 올라갔다. 그런데 도로 주변뿐 아니라, 대부분 토지는 유실수로 사과, 밤, 대추, 호두 등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사과 과수원이 많은 걸 보니 주 생산물이 사과였다. 간혹 고추밭이 좀 보이고. 어느 정도 경사가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쫙 벌어진 호두가 막 내용물을 떨어트리기 전이라 그걸 손으로 받아 정상에서 막걸리 안주로 먹기 위해 배낭에 넣기도 했다. 그렇게 각화사를 향해 오르는데 밭에 채소나 과일보다 꽃이 더 많은 집이 나타났다. 뭘 하는 집일까 궁금했는데, 진입로에 "반가운 테마 농원'이라는 문패가 서 있었다. 테마 농원이다!
테마 농원을 지나 2분가량 급경사의 포장도로를 올라가자 왼쪽으로 주차장이 나타났다. 여기가 인솔 대장이 언급한 각화사 주차장으로 보였다. 그런데 대장이 공사 중이라고 했던가 뭐든 버스를 세울 상황이 안 되니, 아래 공터에 세운다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버스를 못 세울 이유가 없었다. 각화사에서 주차금지라고 막아 놓은 것도 아니고. 그걸 보고, '이리로 하산하는 지맥 꾼들 꽤 열 받을 거 같은데….'라고 흥수에게 한마디하고 땀을 삐질거리며 각화사를 향해 올랐다. 역시 산 중턱에 있는 절이라 부처님이 보우하사 사찰 직전에 약수가 있었다.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시원한 약수 한잔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니 왼쪽으로 커다란 비석이 서 있는 터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경북도 유형문화재다. 고려 전기 작품이라는 걸 보고 각화사가 대단히 오래된 절이라는 걸 알았다.
비석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太白山 覺華寺"라 쓴 현판이 걸린 건물이 나타났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주문을 본 기억 없다. 일주문이 없는 절도 있나, 혹시 놓쳤나 해서 이 글을 쓰며 "각화사 일주문"으로 구글링 해보니, '태백산 각화사' 현판이 있는 건물이 범종각으로 일주문을 대신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 범종각의 이름은 "月影樓"다. 월영루를 통과하자, 전면에 대웅전이 나타나고 좌우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 건물을 사진으로 남긴 후 대웅전으로 올라가 본존불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대웅전 뒤로 보이는 산신각으로 올라갔다. 늘 그랬듯이 꼭 닫힌 산신각의 옆문을 열고 산신도를 감상했다. 산을 탐방하든 탐험하든, 중턱에 있는 절을 찾아, 본존불과 산신도를 감상하는 것도 산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다. 사찰의 본존불이나, 산신도가 최근에 만들었거나, 그린 게 대부분이라는 건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쨌든 각화산 신에게 산행 중 사고가 없게 해달라고 인사하고, 산신각 옆이 등산로로 보여 그리로 갔다.
등산로라고 생각했던 곳으로 가서 보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해서 오르려고 하는데, 흥수가 폰의 등산 지도를 보며 오더니, 작은 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게 등산로라고 했다. 해서 폰의 등산 앱의 지도로 확인한 결과 흥수 말이 맞았다. 둘이 사용하는 등산 앱이 달라, 크로스 체크가 가능하다. 하긴 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곳으로 가기 위해 기성품으로 임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건 등산객을 위한 거겠지. 그 다리 앞에 '등산로'라 쓴 이정표라도 하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철골 임시 다리를 지나 산으로 올라가며 아래를 보니, 등산로는 잘 만든 돌다리가 놓여 있는 개울을 건너 좀 떨어져 있는 건물 앞마당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대웅전 기준 숲속에 고립된 건물인 걸 보면 정숙을 필요로 하는 시설이라, 별도로 등산객을 위해 임시 다리를 놓은 거 같았다.
오지임에도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 급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중에 좌우로 상처 입은 소나무가 보였다. 이런 상처가 난 소나무는 2017년 7월 봉화가 고향인 친구의 초청으로 친구의 고향 집에서 1박 후 청량산을 오르는 도중 처음 봤었다. 그때 거의 모든 소나무가 상처를 입고 있어, 의도적이라는 생각에 이유가 뭘까 궁금해 구글링했었다. 결과는 일제강점기에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왜놈이 소나무에 상처를 내 송진을 받은 흔적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경북지역 오지 산에 상처 입은 소나무가 많은 걸 보면, 당시 송진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소나무는 이 지역에 많았다는 방증? 아니면 다른 지역의 소나무는 다 잘려 나갔나?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각화지맥에 정상이 멀지 않았음을 기뻐하며 오르는 중에 곳곳에 갈림길이 있었으나, 오지 산답게 이정표 따위가 있을 리 없어, 폰의 등산 앱 지도에 의지해 길을 찾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수시로 폰을 꺼내 길과 고도를 확인하며, 급경사를 따라 올라 11시 40분에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각화사 입구 마을인 신현리에서 시작해 각화지맥으로 올라가는 산줄기로 그 아래 계곡 옆으로 각화사까지의 포장도로가 나 있다. 물론 포장도로로 각화사로 올라가며 흥수와 둘이 왼쪽의 능선을 보며 저기로 올라 바로 각화지맥으로 오르는 것도 하나의 코스라고 얘기했었다. 다만, 각화사가 궁금해 치고 올라가지 않았을 뿐.
능선에 올라선 이후 급경사와 완경사가 번갈아 등장하는 등산로로 30분가량 올라가자 바로 위로 각화지맥이 보였다. 물론 지맥에 오르는 남은 구간은 마지막 깔딱이고. 지맥에 닿기 위해 길을 따라 오르며 계속 왼쪽을 살폈다. 우리의 목표인 각화산은 각화사에는 오르는 기준으로 보면 왼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다. 고로 산꾼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 지맥에 닿기 전에 왼쪽으로 길을 만들며 올라갔을 거다. 역시다! 눈에 잘 안 띄는 갈림길이 나타났고, 왼쪽으로 난 희미한 길이 정상으로 향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나무에 빨간 리본이 보였다.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왼쪽 대각산으로 난 희미한 길로 지맥을 향해 올랐다. 그러자 지맥에서 내 움직임을 지켜보던 흥수도 방향을 틀어 각화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11시 23분 각화사를 떠나, 12시 19분경 주 능선에 올라섰으니, 각화사에서 각화지맥까지 56분이 걸렸다. 다시 각화사 갈림길에서 3분가량 백두대간을 향해 가, 12시 22분에 각화산 정상에 도착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석문동에서 출발한 지맥 꾼은 열심히 달려오는 중인 거 같았다. 해서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카메라를 두고 타이머 모드로 인증을 남겨야 했다. 점심시간이고 배도 고팠으나, 정상에 자리를 펴고 앉아 점심을 먹는다면, 석문동에서 출발한 지맥 꾼의 인증을 방해하는 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 각화지맥 1구간 하산지점인 999.2봉 갈림길을 지나서 먹기로 하고 바로 왕두산을 향해 왔던 길로 돌아갔다. 약간의 기복이 있는 각화지맥을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하늘에 먹구름이 껴 있는 게 보였다. 이 구간은 울창한 숲이라 시야가 트이지 않아, 보이는 게 없어 사진 찍느라 지체할 일도 없었으나, 먹구름에 빗방울도 떨어지는 상황이라, 급하게 다음 목표인 왕두산을 향해 갔다.
각화지맥을 따라 몇 개의 이름 없는 봉우리를 넘으며 왕두산을 향해 가며 느낀 건데, 오지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길 상태가 좋다는 거다. 백두대간 지맥 분기점부터 그리고 왕두산을 지나 지맥 끝까지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각화사를 중심으로 왕두산, 각화산 환 종주는 자차를 이용해 가끔 찾는 등산객이 있어, 길 상태가 좋을 수 있으나, 나머지 구간은 딱히 내세울 만한 산이나 봉우리가 없어, 그럴 거 같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간혹 울창한 숲사이로 보이는 왕두산을 감상하며, 비가 쏟아지기 전에 하산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지맥을 따라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가 어는 순간 999.2봉에 도착했다. 당연히 해발 999.2m의 봉우리다. 그 시각이 12시 54분이다.
각화지맥 종주 1기 팀 공식 하산 지점인 999.2봉을 지나, 왕두산으로 향하다가 등산로에서 왼쪽으로 약간 벗어난, 언덕을 보니, 앞선 등산객? 지맥 꾼이 식당으로 사용한 흔적이 보였다. 해서 앞선 산꾼이 넓적한 돌을 주워다 만든 식탁과 의자가 있는 그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시각이 1시 2분경으로 점심 먹기에는 약간 늦었다. 먼저 이번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막걸리를 꺼낸 후 나머지 먹거리를 배낭에서 꺼냈다. 우리는 둘뿐이라 의자가 멀리 있을 이유가 없어, 의자용 돌을 식탁 가까이 옮긴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장 먼저 꺼낸 막걸리로 축하주를 마시려고 보니 잔이 없었다. 마침 막걸리가 유리병에 담겨 있었고, 두 병이라, 한 병씩 들고 병나발을 불기로 했다. 각자 들고 온 점심거리와 비상식으로 가져 다니는 육포를 안주로 막걸리 나발을 불었는데, 산에 들고 가기까지 보관상에 문제가 있었는지, 완전히 숙성돼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각화지맥 최고의 산에 올랐다는 축하주 겸 정상주, 완전히 숙성한 막걸리를 반주로 대략 25분 정도 점심을 먹은 후 식당을 떠나, 바로 앞에 있는 왕두산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해 보니, 사용한 지 오래된 헬기장이다. 헬기도 등산객도 찾지 않는 정상이라, 허리에 육박하는 풀로 걷기도 쉽지 않은 가운데, 정상석을 찾았으나, 안 보이고, 누군가 나뭇가지에 매단 코팅한 이정표만 보였다. 정확한 건 아니나, 산행 전 본 각화산, 왕두산 연계 산행기에서 분명 왕두산 정상석을 본 거 같은데, 없었다. 해서 정상석을 찾아 조금 더 전진하자 나타났다. 왜 정상이 아닌 곳에 정상석을 세웠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각화산과 동일한 정상석이 있었다. 기억이 정확했다. 각화산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 인증을 부탁할 상황이 아니라, 정상석 앞에 있는 나뭇가지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사진을 찍은 후 각화산에서 왕두산으로 오며 가졌던 '각화산 이전 각화지맥과 왕두산 이후 각화지맥도 각화산과 왕두산 사이의 구간과 같이 길 상태가 좋은지?'라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정상석이 있는 곳을 떠나 각화지맥을 따라 조금 더 전진하며 길을 살폈다. 역시 예상대로 길 상태가 좋지 않은 게 각화지맥을 찾는 꾼이 많지 않아 보였다. 정상석이 있는 곳을 떠나, 정상으로 다시 돌아가 좌측으로 난 각화사 갈림길로 하산을 시작했다. 그 시각이 1시 46분이다. 갈림길 좌측으로 4분가량 내려가자 다시 안부가 나타났고, 오른쪽에서 흥수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정상에서 각화사 쪽인 좌로 내려가는 걸 봤는데, 오른쪽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당연히 그 친구가 길을 잘못 든 거라는 생각에 같이 큰 소리로 혹시 999.2봉으로 돌아간 거냐고 물으며 계속 직진하고 있는데, 흥수가 다시 큰 소리로 그게 아니라 그 안부에서 우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했다. 해서 폰을 꺼내 지도를 보니, 갈림길이다. 각화사로 가기 위해서는 안부에서 우로 내려가야 했다. 흥수가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코스로 내려갈 뻔했다. 돌이켜 보면, 그 코스가 더 나은 것도 같고.
각화사에서 각화산으로 오르는 등산길이 오지 산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좋아 놀랐는데, 왕두산에서 각화사로 하산하는 길은 더 좋았다. 울창한 숲 사이로 잠깐 각화산이 보여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거의 고속도로 같은 등산로로 내려가는데 왼쪽 아래로 지붕이 보인다. 위치상 각화사는 아니고, 그게 뭔가 궁금해하며 조금 더 내려가자, 금줄이 쳐 있고 "출입금지" 팻말이 금줄에 달려있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라, 금줄을 넘어 들어가 볼까 하다가, 꾹 참고 내려가며 왼쪽을 계속 주시했다. 분명 그 건물로 가는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상대로다, 주 등산로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해서 그 길을 따라 내려가 보니, 마치 별장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사유지에 무단 침입하는 거 같아 더 접근은 못 하고, 이 위치에 별장을 가진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하며, 내려왔던 길이 아니라, 이 건물로 오가는 길을 따라 내려가자 앞에 차단봉이 보인다. 그 차단봉을 넘어갈까 하다가, 도둑질하러 온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없어, 차단봉을 내리고 건너편으로 간 후 다시 차단봉을 올리기 위해 뒤로 돌아보니, "출입금지", "묵언"이라고 써 붙인 팻말이 보였다. 별장이 아니라, 묵언 수행장이다.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조심 차단봉을 원위치시키고 길을 따라 내려가자 왕두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하고, 저 앞서 가는 흥수가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자 각화사 바로 아래 포장도로다. 그 시각이 2시 17분으로 각화사를 중심으로 각화산, 왕두산 환 종주가 끝난 시각으로, 한 바퀴 도는데 대략 3시간이 걸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옆으로 난 오전에 올라왔던 포장도로로 내려가며 씻을 만한 곳이 있나 유심히 살펴봤다. 그런데 도로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아 결국 '반가운 테마 농원'까지 가야 했고, 그 농원에서 만든 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물론 주변의 돌로 만든 계단이고, 계곡 주변에는 표고 재배장이 있었다. 사진 몇 장 찍은 후 바로 웃통을 벗고 계곡으로 가 세수를 했다. 처음 생각은 등산 거리가 짧아 발은 씻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확히는 스패츠, 등산화 등을 벗고 다시 신는 게 번거로워, 그래도 발을 씻어야 할 거 같아 신고 있는 모든 걸 벗고 물로 들어가 발도 씻었다. 다시 옷과 양말 등을 챙겨 입고, 신고, 계곡을 떠나 도로로 올라가자, 위에 내려와 지나치는 지맥 꾼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따라 버스가 기다리는 국도를 향해 내려갔다. 그때 시각이 2시 42분경이고, 마감 시각인 3시 30분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유유자적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오전에는 오르는데 정신이 없어 보지 못했던 입을 쫙 벌린 밤송이가 보인다.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밤송이다. 맨손으로 방송이에 찔리는 고통을 참으며, 밤송이를 벌려 잘 익은 밤을 꺼내, 한 주먹가량의 밤을 챙겨 배낭 옆 주머니에 넣고 다시 버스가 기다리는 곳을 향해 갔다. 급할 게 없는 걸음이라, 내려가며 칼을 꺼내 밤을 하나 깎아 맛을 보기도 하고.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 버스가 서 있는 걸 보고 둘 다 놀랐다. 우리가 올라오며 봤던 그 과거의 버스 정류장 공터에 있었다. 추측건대, 후진해 다시 국도로 돌아갔던 버스가 국도로 내려가다가 다른 진입로를 발견하고 다시 올라온 게 아닐까? 어쨌든 우리야 국도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되니 반가웠다. 3시 11분에 버스가 기다리는, 과거는 버스 정류장, 이제는 공터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각화사를 중심으로 각화산, 왕두산 환 종주 산행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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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 지맥 꾼도 이번에 완주하기로 한 사람 중 한 명이라, 옆자리가 비어 배낭을 들고 버스에 타, 그 자리에 배낭을 두고 등산화 등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그리고 무더운 버스에서 내려 과수원 경계석에 앉아 다른 지맥 꾼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속속 도착한 지맥 꾼들은 산에서 밥을 먹지 못했는지, 싸 온 음식 들고 버스에서 내리더니,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는다. 문제는 3시 30분 마감 시각이 지났으나, 내 알 바 아니라는 태도라,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와중에 인솔 대장은 보이지도 않고. 와중에 갑자기 지맥 꾼 중 한 명이 전화를 들고 다시 각화사 쪽으로 50여 미터 올라가서, 국도 쪽을 보며 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버스 쪽에 있는 동료에게 큰소리로 알려준 소식의 골자는 대장을 포함 많은 등산객이 버스가 있는 공터로 오지 않고 위의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이 아니라 직진해 내려갔다는 거다. 아침에 올라오며, 아무래도 혼란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그대로다.
인솔 대장과 기사, 서로 잘 아는 지맥 꾼 사이에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된 결과다. 아니 정확히는 인솔 대장이 들머리와 날머리에 대한 파악이 전혀 안 된 결과다. 분위기상 4시 출발을 목표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배낭에서 사과와 물통을 꺼내 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 경계석에 앉아 반으로 쪼갰다. 그걸 보고 있던 흥수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말라'고 했다면서 사과 반쪽을 먹고, 그에 대해 "과전이하(瓜田李下)"라는 사자성어도 있다고 하며 나머지 반쪽을 내가 먹었다. 그렇게 노닥거리고 있는데, 4시가 넘었건만, 서로 잘 아는 사이인 지맥 팀은 우왕좌왕만 했지 어떻게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와중에 후미는 이제 각화사에 도착했다고 하고.
그냥 놔뒀다가는 언제 서울로 출발할지 알 수 없어, 주변에 있는 지맥 꾼들이 다 들을 수 있게, 기사에게 "시동 걸고 출발합시다!"라고 큰 소리로 얘기하며, 버스에 탔다. 주저주저하는 기사에게 자리에서 계속 소리치자 버스에 시동이 걸리고 밖에서 우왕좌왕하던 꾼들이 버스에 탔다. 그러는 중에 국도로 내려갔던 지맥 팀의 주력이 버스가 있는 공터로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낙오한 후미도 도착해 버스가 서울을 향해 출발한 시각이 4시 20분경이다. 애초 계획보다 50분이 늦었다. 처음 시간 계획에 오류가 있었던 거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마자 휴게소에 들러 급한 불을 끈 버스는 서울 향해 달려 7시 23분에 양재역에 도착했다. 버스 내에서 인솔 대장은 본인의 불찰로 인한 지체에 관해 공식 사과했고. 그런데, 처음 조사 때보다 3명이나 많은 9명이 완주에 도전했다는 얘기를 듣고 감탄했다. 아무나 지맥 꾼 하는 게 아니다!
산악회 각화지맥 1기 팀 계획과는 무관하게 '석현리 진입로 → 석현2리 노인회관 → 구 버스정류장 공터 → 각화산 힐링 숲 캠프 갈림길 → 각화사 갈림길 → 각화사 → 각화산 갈림길 → 각화산 → 각화사 갈림길 → 999.2봉 → 999.2봉 갈림길 → 왕두산 → 각화사 갈림길 → 각화사 → 구 버스정류장 공터'의 10.43km(트랭글), 4시간 31분 코스를 탐험했다. 이동 3시간 50분, 휴식 41분!
한 번에 두 개의 해발 1,000m가 넘는 각화산, 왕두산에 올랐으니, 대단히 만족한 산행이었다. 당연히 왕두산에 올랐으니. 왕두산이 포함된 10월 9일 각화지맥 2구간 산행을 취소했다. 오르지 못했더라고 취소할 예정이긴 했지만.
조망이나, 재미나, 지맥 종주 등 특정한 목적이 아닌 한 권할 만한 산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