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의 물의 찬가(水宮歌)를 들어 볼까요.
“오색구름 서린 곳에 진주궁(眞珠宮)과 자개 대궐 반공(半空)에 솟았는데 일월이 명랑하다. 이 가운데 날마다 잔치요, 잔치마다 풍류로다. 연꽃 같은 용녀(龍女)들은 쌍쌍이 춤을 추며, 천일주(千一酒)와 포도주며 금강초(金剛草) 불사약을 유리병과 호박잔(琥珀盞)에 신선하게 담고 담아, 거북 등뼈 대모(玳瑁) 소반에 받쳐다가 앞앞이 늘어놓고 잡으시오 권할 제, 정신이 상활(爽闊)하고 심정이 황홀하니 헛장단이 절로 난다. 아미산(峨眉山)의 반윤월(半輪月)과 적벽강(赤壁江)의 무한경개며, 방장(方丈)·봉래(蓬萊)·영주(瀛州) 삼신산(三神山) 역력히 구경 산유(山遊)하고 돌아올 제, 채석강(采石江)1)·양자강·소상강(瀟湘江)·동정호·팽려택(彭蠡澤)2)·대동강·압록강을 임의로 왕래하니, 흰 이슬 강 위에 빗겨있고 물빛은 하늘에 접하도다. 한들한들 돛대는 만경창파(萬頃蒼波)를 업신여기는 듯3), 떨어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같이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빛이라.4) 삼강(三江)으로 옷깃 삼고 오호(五湖)로 띠를 하니, 오나라 초나라가 동남으로 터져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구나.5)”
註1) 采石江 : 원래 양자강의 지류로 이태백이 달을 건지려다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서린 강. 우리나라 변산반도에도 모양이 비슷해서인지 같은 이름의 강이 있음. 책을 포개놓은 듯하다 하여 冊石으로도 씀
註2) 팽려택(彭蠡澤) : 중국 최대의 담수호 파양호 또는 포양호(鄱陽湖)의 다른 이름. 중국 장시성(江西省) 북쪽 長江 변에 위치.
註3)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중,
白露橫江 水光接天 흰 이슬은 강을 가로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닿아,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갈대 같은 배 가는 대로 맡기니, 만경창파를 업신여기듯 아득히 가누나
註4)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 서문(滕王閣序)' 중 천하 명문으로 손꼽히는 구절
落霞與孤騖齊飛 떨어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같이 날고
秋水共長天一色 가을 물은 긴 하늘과 같은 빛이라
註5) 이백의 '악양루에 올라(登岳陽樓)'의 전반부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옛부터 동정호 명성을 들었는데,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네.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吳와 楚가 동남으로 갈라지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호수에 떠있구나.
하도 많은 고전 시가(詩歌)를 가져다가 이리 섞고 저리 버무려 놓았으니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헷갈립니다. 나의 어쭙잖은 한시 실력으로 주(註)를 달려 하니 머리에 쥐도 나고요. 이 소설을 쓴 이가 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 앎의 폭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으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기교에도 감탄을 금할 수 없네요. 쓰잘데 없는 사설은 이만하고 자라의 자랑을 이어가겠습니다.
“지극히 슬픈 퉁소로 어부사(漁父詞)를 화답하니, 깊은 구렁에 숨은 교룡(蛟龍)이 춤추고, 외로운 배의 과부를 울리는 도다.6) 달은 밝고 별은 드문드문한데, 까막까치 남쪽으로 날아 간다.7) 옛적 순임금의 아내 아황(娥皇) 여영(女英) 비파소리 울적함을 소창(消暢)하고8), 강 건너 장사하는 계집아이 부르는 후정화(後庭花) 곡조는 회포를 자아낸다.9) 한밤의 은은한 쇠북소리 한산사(寒山寺)10)가 그 어디며, 바람결에 역력한 방망이 소리11) 강촌이 저기로다. 금못과 옥섬에서 연 캐는 계집들은 상사곡(相思曲)을 노래하니 아마도 별건곤(別乾坤)은 수부(水府) 뿐이로다.”
註6)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중,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釐婦 깊은 구렁에 잠긴 교룡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의 과부를 눈물짓게 하네.
註7) 조조(曹操)의 시 '단가행(短歌行)' 중,
月明星稀 鳥鵲南飛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까막까치 남쪽으로 날아간다.
繞樹三匝 何枝可依 나무를 세 번 맴돌아도 앉을 가지 마땅치 않음에..
註8) 당나라 시인 전기(錢起)의 '소상강 혼령의 비파소리(湘靈鼓瑟)'의 뒷 부분
苦調凄金石 淸音入香冥 애절한 가락은 쇠나 돌처럼 처량하고, 맑은소리는 향긋하게 아득히 들려오네.
流水傳瀟浦 悲風過洞庭 가락은 물결 따라 소상강 포구에 전해지고, 슬픈 노래는 동정호를 건너네.
註9)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진회 물가에 묵으며(泊秦淮)'
煙籠寒水月籠沙 안개는 차가운 강물을 에워 쌓고 달은 모래톱을 두루는데,
夜泊秦淮近酒家 밤중 진회 물가에 묵으려니 주막이 가깝구나.
商女不知亡國恨 장사하는 여자는 망국의 한도 모르는 듯,
隔江猶唱後庭花* 강 건너에서 후정화 노래를 불러대네.
(*後庭花 : 일명 玉樹後庭花. 중국 남북조 시대 말 진(陳)나라의 후주가 나라가 망하는 줄도 모르고 궁녀들과 어울려 음란한 노래를 불렀다는데, 그가 지은 노래 중 절창)
註10)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의 '풍교에서 밤을 보내며(楓橋夜泊)'
月落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 울고 서리 가득한데,
江楓漁火對愁眠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에 잠 못 이루네.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 한산사로부터,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 종소리가 객선까지 들려오네.
*蛇足 : 과거시험에 3번 고배를 마시고 돌아가는 작자의 심정이 이해가 갈 듯.. 그는 작품을 거의 남기지 않았으나 이 시만은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한다고 함.
註11) 발해의 시인 양태사(揚泰師)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 지은' 밤중에 다듬이질 소리 들으며(夜聽擣衣聲)' 중,
厭坐長宵愁欲死 긴 밤 싫도록 앉아 죽도록 시름겨운데,
忽聞隣女擣衣聲 문득 이웃 아낙네의 다듬이질 소리.
聲來斷續因風至 바람에 실려 오는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며,
夜久星低無暫止 밤 깊어 별 기울도록 잠시도 멈추지 않네.
별주부전에는 중국과 한국의 옛 인물과 지명 그리고 고사가 무수히 나오지만, 시가(詩歌)는 위에서 보았듯이 토끼와 거북이가 처음 만나 자랑삼아 늘어놓은 뭍(靑山)과 물(水宮)의 찬가가 대부분인 듯 합니다. 다른 부분도 재미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전공과목(?)에서 벗어나고, 주를 달 실력도 모자란 바 이만 줄입니다. 기회가 되면 ‘장끼전’도 한번 도모해 볼까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