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어려워 : 이발소에서 헤어 숍으로
이 동규
물방앗간 액자가 걸려있는 동네 이발소를 마치
꼭 보전해야 할 마을 문화재나 되는 것처럼 줄곧 다녔는데
그곳을 40년 넘게 지켜온 이발사 김씨의 이발소는 이미
노인들 막걸리 한 잔씩 기울이며 수다 떠는 사랑방이지만
내가 이발하러 문을 열면 바로 이발소로 변신하는
그런데 40년 관록의 김씨가 오늘은 헛손질을 했다.
안경을 안 끼고 가위질을 했을까
아니면 낮술이 조금 지나쳤을까
분명히 경쾌한 싹뚝싹뚝 소리였는데
거울 속 내가 생뚱맞게 상고머리로 쳐다보는 있구나
관록도 시력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가위도 낮술에는 맥을 못 추는 모양이다.
아내는 이번이 세 번째 실수라며 동네 이발소는 제발 끊으란다.
드디어 큰맘 먹고 헤어 숍으로 바꿨다.
눈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면 그만인 동네 이발소와 달리
들어서자마자 예약했는지부터 묻는다.
그냥 왔다는 대답에 다음부턴 반드시 예약하고 오란다.
으리으리한 장식과 화려한 조명에 잔잔한 음악까지 흐르는데도
낯설어서일까 안절부절못하는 내 꼬락서니가 우습기도 하고
다 처음에는 그런 거지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 이참에 이발소는 잊고 헤어 숍에 익숙해져야 한다.
다음번에는 꼭 예약부터 하고 올 거라고
몇 번 다니면 좋아질 거라고
그렇지만 과연 다음번에는 제대로 예약은 하고 올지
또 얼마나 자주 와야 이발소처럼 편안한 곳이 될지
새장 속이 더 편할까
이 동규
갑작스레 불려 간 프로젝트 심사에서
공정을 위한다며 휴대폰을 수거한다.
심사자를 불신하는 것 같아 당혹스럽지만
점심시간을 틈타 심사장 밖으로 나와 걷다 보니
내가 사는 곳이 아니어서 아는 사람도 없고
휴대폰이 없으니 다른 사람과는 완전히 단절된 처지라
무장이 해제되어 자유롭고 홀가분하긴 해도
군중 속의 고독처럼 조금은 허전하여 멍때림에 빠지면서
저 사람들은 이 시간에 어디를 저렇게 가는 것일까
버스 장 옆 애견 카페의 강아지들은 행복할까
도로를 꽉 메운 저 차들은 누구를 만나러 가는 걸까
새장 밖으로 나왔지만 날개만 한 번 펄럭이며 주위만 맴돌다 다시 새장 속으로 들어가는 앵무새가 그렇듯
일상에서 탈출한다며 훌쩍 여행을 떠났지만 내 집의 편안함을 그리워하며 어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렇듯
나는 서둘러 나의 새장인 심사장으로 돌아간다.
* 2002년 월간 한맥에 시 “살다 보면, 몸이 말을 하네, 산비탈 토란 밭” 등을 발표하며 등단, 네 권의 시집 네 권의 산문집, 세 권의 유머집 등 33권의 저서가 있음. 대전작가회의, 호서문학회, 대전문인총연합회, 별곡문학회, 한국해외문학교류회 회원, eastar5548@hanmail.net
첫댓글 옥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