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
위치는 전주시 완산구 풍납동,교동 일원으로 면적 296,330평방미터다.인구는 2,202명(남1,097명/여1,105명) / 세대수 995세대이며
가구수는 708동(한옥 543동,비한옥 165동)이다.매주 차없는 거리 운영을 하고 있다.
전동성당
전주시 완산구 전동에 있는 전동성당은 서울 명동성당,대구 계산성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당에 들어가는 곳입다.
전동성당은 곡선을 강조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성다으로 영화 "약속" "전우치"의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성당이다.서울 명동성당을 지은 프와넬신부님의 설계로 보두네신부님이 1908년 성당건축을 시작하여 우여곡절
끝에 7년만인 1914년에 외형공사를 마쳤고,그후 모든 시설을 완비하고 축성식은 1931년에 했다고 한다.총 23년이 걸렸다고 한다.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전동성당,중국인 100명의 조적공이 붉은벽돌을 구워서 축조를 했다니 정성이 얼마나 들었을까?
서울 명동성당과 인천 답동성당이 고딕양식인 반면에 전동성당은 고풍스러운 로마네스크양식이다.
성수를 뭍힌 손에는 십자성호를 긋고 묵상을 한다.오랜 냉담자인 나도 모르게 한 행동으로 숙연해 진다.
주님,용서하옵소서...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님,저희를 도와 주소서...아멘!~
스테인드그라스에 비친 햇살이 크리스탈 벽등과 중앙 샹데리아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우아하고 웅장하여 경외심을 가지게 한다.
전주한옥마을 거리풍경...
서울 인사동과 비슷한 전통 거리지만 실제 건축물이 한옥으로 유지,보존된게 개량보다 더 많은게 전주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에는 각종 판매점들이 즐비하다.카페,음식점,기념품,악세사리,잡회류 등...
호주 민속악기 같다.연주에 몰두한 연주가가 참으로 선(善)해 보인다.
여기가 전주의 탑골공원인가?...
한옥의 기둥까지 없는 먹거리들과 판매점들이 한옥마을 이미지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외국인들에게 전통차 체험을 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복사꽃이라던가?...꽃의 색감이 너무 곱다.
촬영을 허락 받으려 하니,직접 폼까지 잡으시며...
한국전통 문살양식의 기성문짝이지만 그래도 이미지는 조화롭다.
평화롭고 한적한 한옥마을 골목길에 연인의 모습이 다정스럽다.
무료시음회라 한잔 시음을 하고나니,사가기를 권하지만 굳이 살 마음이 없어 미안해 하니, 두 아주머니께서 많이 홍보 해달란다.
친절한 안내...
한옥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두고서 가게를 어울리게 꾸밀수도 있었을텐데...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한옥의 실내에 노출된 대들보와 굵고 둥근 목기둥이 자리하고 담백하고 순수해 보이는 회벽 느낌의 아이보리 색을 바탕으로
전통다기들을 전시판매 하는게 참 품격이 있어 보여 좋다.
참 좋은 글이라서 한 컷!~
빨간 우체통과 목조 타고라가 인상적이다.
예전에 TV에 "전주대사습놀이"가 생각난다.전통과 예절의 도시라 할수 있다.
가게이름이 참 독특하다.손님들이 벌떼처럼 왱왱거리면서 달려온다고 "왱이집"이라 불러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24시간 육수를 끓여서 만든 시원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일품이라는...
콩나물을 따로 삶아 국밥위에 얹는 것이 특징인데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의 식감과
겉만 살짝 익힌 달걀을 국밥 뚝배기에 붓지 않고 따로 먹는것이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