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 한옥마을을 떠나 가까운 도로변에 나타나는 송광사 사찰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 작은 고을에 아름다운 사찰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움이랴. 그것도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길 옆에 있다. 단아하면서도 웅장한 사찰이다. 사찰은 어느곳이던지 분위기가 엄숙하여 숙연해진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만 하는 그런 자세로 돌아간다. 흩어진 마음을 모으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춘다.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세속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상으로 들어간 기분, 그래서 더욱 자신을 가다듬는 그런 자세로 돌아간다면 자주 갈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한바퀴 쭉 둘러보고 중심이 되는 대웅전의 웅장함에 도취되다 보면 세상 번뇌 사라지는 순간이다. 송광사는 완주군 소양면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체징이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다. 옛 풍경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한옥에는 한복옷 대여점으로 거의 전환되어 있었다. 공예품, 한지, 서예 도구를 취급하던 가게들이 폐업을 하고 한복 대여점으로 전환된 한옥마을 풍경이 아쉽기만 했다.
소비자들의 수요에따라 공급이 맞추어져야 하지만 전주의 한옥마을의 독특하고 다양한 전통의 모습이 전해지는 곳으로 지원과 원칙이 따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임실 옥정호의 '하루'를 향하여 출발이다.
하루는 한옥 찻집이다. 이곳에 반해 몇 번을 찾았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마음을 간결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복잡한 마음을 단촐하게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십여 년전부터 이쪽 방향의 여행에서 꼭 들리곤 하는 한옥 찻집이다. 단정하고 간결하다.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 나의 마음도 그렇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옥정호라는 호수와 한옥, 호수 언덕위의 자연이 주는 조화라고 본다. 한옥과 초가는 우리들의 옛고향 같은 정감을 안겨 준다. 고향을 찾아온 평온한 느낌을 준다. 호수는 어떤가? 물은 불을 식혀 주는 최고의 약이다. 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사가 불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모두 불이다. 이들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은 물이다. 물을 보면 편안해 진다. 자연은 어떤가? 자연은 모난 곳이 없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은 직선이 없다고 했다. 자연히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고 평안해진다. '하루'가 그런 곳이다.
송하정에 들어서는 순간, 한 사람의 인연을 만났다. 서로는 아, 하고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두베카페에서 스님과 함께했던 여인이었다. 그때까지는 서로 여행객이었을 뿐이었다. 그때가 12시 무렵이었고, 지금은 석양의 시간이니 꽤 오랜 시간이다. 여기서 또 뵙습니다. '제가 두 분 사진 한장 찍어드릴게요' 그렇게 해서 부부의 사진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전주에서 가끔 온다며 두 분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주고 떠났다.
송하정은 고창군의 송계정이라는 유서 깊은 정자를 옮겨온 것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松霞亭은 소나무와 노을이란 뜻이다. 송하정은 서향이다. 옥정호에 내려 앉는 노을이 일품이 아닐 수없다. 오늘은 노을의 시간에 자연적으로 맞추어졌다. 정지용 호수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얼골 하나야/손바닥 둘로/폭 가리지만/보고픈 마음/호수만 해/눈 감을 밖에... 그런 순간이다.
송하정 앞뜰 잔디 아래쪽 호수로 내려가는 텃밭은 녹차밭이다. 이곳 녹차가 바로 찻상 테이블에 나올 차다. 호숫가로 내려가면서 차와 호수 석양으로 눈부시다. 그렇게 한바퀴 돌아 송하정 앞뜰 잔디 위에 놓인 탁자에 자리한다. 오늘은 찻집 안에 들어가 차 한잔을 하기보다. 잔디밭 위에서 호수와 석양을 바라보는 장관만 느끼기로 했다. 조용헌의 백가기행에서도 소개한 송하정은 이렇게 표현됐다. '호수와 석양은 최상의 궁합이 아닐 수 없다' '서방극락을 보기 위해서는 평소 명상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명상습관 16가지 중에서 제일 첫번째 관이 저녁 석양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석양을 보면 분노가 사라지고, 인생 헛 헛살았다는 자책감과 무상감도 어느정도 보상 받는 것 같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다. 송하정은 중년과 노년에 맞는 찻집인지도 모른다. 인생이 무엇인지 깊은 사념에 빠지는 그런 시기에 깨달음을 주는 곳.. 그래서 편안한가?
그렇게 호숫가에 내려 앉는 석양을 보면서 자리를 뜬다. 오늘 밤은 곡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