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절 후 첫 번째 주일
2012년 12월 2일 주일 대예배 설교문
<대강절: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
오늘은 강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강림절, 대림절, 대강절, 다 똑같은 말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성탄절을 앞두고 4주 동안 기다리는 절기이지요.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리며 영적으로 준비하는 계절이 대강절인데, 특히 두 가지 방향에서 그렇습니다.
먼저 과거를 돌아볼 때 초림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온 세상이 한숨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 죄인의 모습을 입고 우리 곁에 오신 것이지요. 대강절 기간 동안 우리는 이천년 전에 메시아의 탄생을 갈망하며 목말라 기다렸던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며 우리 역시 그런 갈급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에 지키는 대강절은 이제 미래를 바라보며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의 재림(PAROUSIA)을 기다리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재림’(second coming)이라는 말보다는 ‘재현’(再現, reappearing)이라는 말이 훨씬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강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타나신다는 말이지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셨다고 해서 완전히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은 아닙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다만 하늘과 땅을 갈라놓는 베일에 싸여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때가 되면 마침내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그 베일이 활짝 열리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 두 눈으로 생생하게 주님을 뵈올 날이 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예수님의 이름 앞에 절을 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새 날이 옵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떻게 그 날이 도래할지 모르지만 그 예수님의 재현, 우리 눈앞에 완전히 다시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준비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대강절은 과거의 사건으로서의 예수님의 초림을 기억하고 미래의 사건으로서의 예수님의 재림, 혹은 재현을 기다리며 영적으로 깨어서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우리는 네 개의 초를 준비해서 매주 하나씩 밝혀나가려고 합니다. 한 줄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이 초가 하나씩 밝히 켜질 때마다 여러분의 마음도 소망과 설렘으로 가득차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구원이 가까웠으니 일어나 머리를 들라!>
오늘 대강절 첫 번째 주일에 우리는 눅 21: 25-36절 말씀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25-28절 말씀을 보면 종말의 때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가장 먼저 자연세계에서부터 놀라운 종말의 징조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해와 달과 별들과 땅과 바다와 같은 우주 전체에 놀라운 영향을 미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사람들이 무서워 기절할 정도로 온 우주만물에 놀라운 징조들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29-33절 말씀을 보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종말의 징조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무화과나무를 비롯한 모든 나무들을 관찰해보면 계절의 순환을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나무에 잎이 돋으면 우리는 금방 여름이 가까이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30-31절을 보세요.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여기서 중요한 말이 “see and know,” “보고서 안다”는 말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이파리만 보고서도 계절을 예감할 수 있듯이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기만 해도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쉽게 눈치 챌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 다음에 세 번째로 34-36절은 세상의 종말, 다시 말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모름지기 깨어서 근신해야 합니다. 특히 방탕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 등으로 마음이 짓눌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대강절 첫 번째 주일에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첫 번째와 세 번째입니다. 온 우주에 신비한 징조들이 나타날 때 사람들이 두려운 나머지 기절하는 일이 속출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홀연히, 그야말로 전혀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순식간에 구름을 타고 영광과 권능으로 오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수님의 재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8절 말씀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로, 또 어떤 이들에게는 속량의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과 저주의 날이 아니라 속량과 구원의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어나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마치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굴이 무너져 갱도에 매몰된 상태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갱도가 갑자기 무너져 지하 깊은 곳에 갇혔습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아보지만 바깥에서 구조대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도무지 살아날 방도가 없습니다. 어두컴컴한 암흑 속에서 매몰된 광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누군가 구조하기 위해서 곧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서서 때로 구조가 늦어질 경우 절망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구조대원들이 도착해서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구조대원들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리면 구조대원들이 올 거야!” 이런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실제로 몇 년 전 칠레에서 광산이 무너져 33명의 광부들이 지하 700미터의 갱도에 매몰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은 어두운 갱도 안에서 장장 69일을 버틴 끝에 마침내 33명 전원이 다 구조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기 때문에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이들은 구조에 대한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희미한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뛰었겠습니까? 갱도의 벽을 부수는 망치소리, 흙을 파내는 곡괭이 소리, 구조대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려왔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요? “아,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나도 살 수 있겠구나!” 모든 두려움과 절망이 사라지고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슴은 금방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주님이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 오시기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이와 같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우리 예수께서 가까이 오고 계십니다.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 우리 곁에 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며 낙심하는 분들은 일어나 머리를 드십시오!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건지기 위해 가까이 오고 계십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갱도에 갇혀 사방이 칠흑같은 어둠 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희망을 갖고 기다립시오! 오늘 우리 앞에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촛불 하나가 환히 켜져 있듯이 예수님은 한 줄기 빛으로 홀연히 우리 곁에 오실 줄로 믿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죄수가 온갖 굴욕과 학대를 당한다고 할 때 언젠가 정의가 실현되어 석방될 것을 믿고 오로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때가 되면 감옥에서 풀려나 모든 억울함을 풀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 누구도 모르지만 도둑과 같이 갑자기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가운 감방에서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이와 같이 언젠가 오실 것이기에 일어나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던 환자에게 어느 날 의사가 말합니다. “오늘 퇴원해도 좋습니다. 당신의 병은 다 나았습니다!” 그 때 낙심천만했던 환자가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고개를 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일어나 머리를 드십시오! 우리 예수님이 오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여러분을 속량하기 위해서 가까이 오고 계십니다!
대강절의 진정한 의미는 갱도에 갇힌 광부들처럼, 감옥에 갇힌 억울한 양심수들처럼, 불치병으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처럼, 사정이 절박한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주님이 문밖에서 두드리면서 우리를 애타게 찾으십니다. 처음에는 희미했는데 그 노크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있지요. 그러므로 일어나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맞을 채비를 하십시오!
오늘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런저런 일로 의기소침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자녀문제 때문에,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어서, 감당 못할 죄책감 때문에, 뼈를 깎는 고독 때문에 주저앉아 낙심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 고개를 드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 점점 가까이 오고 계십니다!
막장의 갱도가 무너져 지하 깊은 곳에 매몰된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원들이 기어코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듯이, 희미한 망치소리, 곡괭이소리, 구조대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 가듯이 우리 예수님이 점점 더 가까이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의 음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여러분, 용기와 담력을 갖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맞을 준비는 어떻게?>
이제 이와 같이 우리를 속량하고 구원하기 위해 우리 곁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강절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시간”(spiritual wake-up time)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34-35절을 다함께 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막 살아서 안 됩니다. 모든 일에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34절을 보면 주님이 오실 세상의 종말은 마치 덫과 같이 닥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덫에 빠지는 짐승이나 사람은 자기가 덫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덫인 줄 모르고 조심하지 않고 태연하게 걸어 들어가다가 순식간에 덫에 빠지게 되지요. 주님이 오시는 것도 마찬가지로 조심하지 않다가 갑자기 덫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염려와 걱정으로 짓눌려서 안 됩니다!
예수님의 성탄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좀 더 경건해져야 합니다. 방탕해서 안 됩니다. 흥청망청 과소비를 해서도 안 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세상적인 염려에 압도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한 여름이라도 겨울처럼 춥게 살고자 하는 매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는 기도하며 깨어있는 것입니다. 3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게 될 때 두 가지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세에 일어날 모든 징조를 피할 수 있고, 둘째는 인자, 즉 예수님 앞에서 자신 있게 설 수 있습니다.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며 깨어있는 이들은 반드시 주님이 오실 때 일어나는 모든 환난과 재앙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떳떳이 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 동안에 여러분 모두가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하면서 큰 믿음과 희망 중에 기다리고 준비하는 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