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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사상의 발생론적 토대와 계보
생명사상이 역사적인 맥락과 사상의 계보를 거느
린 내발적인 우리 사상이라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
진 사실이다. 생명의 이 내발성은 그것이 동학에
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함을 드러낸다. 동
학이 서학西學과 대응 차원에서 명명된 이름이라
는 것은 이 종교 혹은 학문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학의 이러한 방향성은 『동경대전』(1880)에 잘
드러나 있다. 『동경대전』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
우가 한문으로 작성한 동학 경전이다. 이 경전은
문과 시문詩文으로 되어 있으며, 그중 동학사상
의 주를 이루는 것은 문별이다. 이 문은 포덕문布
德文, 논학문論學文, 수덕문修德文, 불연기연不其然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덕문은 동학이
출현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당위성을 기술한 글
이고, 논학문은 서학과 동학의 차이와 도의 진정
한 본체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글이다. 수덕문은
동학과 유학과의 비교를 통해 동학의 핵심 논리를
기술한 글이고, 불연기연은 우주 만물의 이치를
불연과 기연의 관계 하에서 밝히고 있는 글이다.
동학사상의 발생론적인 근거와 다른 사상과의 차
이를 통한 정체성의 정립, 그리고 세계 이해의 방
식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네 경편은
동학의 핵심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동학의 핵심 가치로 이야기되고 있는 '시천
주侍天主’와 ‘후천개벽 後天開闢'의 이념이 경편
에 등장하는 '시', '지기 氣,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 ‘무위이화無爲而化’, ‘태극太
極’, ‘궁궁', ‘불이不仁’, ‘혼원渾元’, ‘동사同事, 불
연기연, 등에 내재해 있다. 이 각각은 동학과 다른
사상과의 차이를 드러내며, 그중에서도 시(侍)는
그것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비록한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
는 동학의 정체성을 포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동학의 생명사상이 이 한 글자에 응축
되어 있다고 해도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을 '시'에 대해 보인 생명담론 주창자들의 관심과
해석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각자의 입장에 따
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은 모두 시侍를 통
해 동학사상의 정체성과 지향성을 공유하고 있다
고 볼 수 있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
也 主者 稱其尊而與父母 同事者也 造化者 無爲
而化也 定者 合其德 定其心也 永世者 人之平生
也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
其道而受其知也 故明明其德 念念不忘則至化至
氣 至於至聖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는 '시자侍者'를 “內
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各知不移者也”라고 설
파하고 있다. 이것을 해석하면 “내 몸 안으로는 신
령 神靈이 있고, 내 몸 밖으로는 기회가 있으니, 이
렇게 모든 존재가 상호교섭되는 세계에 있어서는
당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서 소
외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각자 깨닫는다.”는 뜻이
될 것이다. 시侍에 대한 이러한 규정이 지극히 심
오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많은 해석의 여지를 드러
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생명사상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
는 장일순은 그것을 비유적인 화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시侍를 "자기가 타고난 성품대로 물가
에 피는 꽃이면 물가에 피는 꽃대로, 돌이 놓여 있
는 자리면 돌이 놓여 있을 만큼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가면 모시는 것을 다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시를 상대방이
있게끔 노력하는 것" 다시 말하면 “우주가 본원적
으로 가지고 있는 이치를 깨달”아 본인이 거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있다는 것
을 의미한다. 그의 이러한 해석은 시를 무위의 차
원에서 이해한 것에 다름 아니다.
생명사상의 또 다른 주창자 중의 한 사람인 윤노빈
은 "인내천 사상의 대종은 사람이 한울님을 모신
다부터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인내천이 곧 시천
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그의 논리는 동학의 사상적
흐름을 반영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그
의 논리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행
위'이다. 그는 “인간의 행위'를 신적 행위의 차원
으로 고양시켜 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것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혁명적 실천' 혹은 '혁명
적 통일'이다.
시侍의 이러한 해석은 서구적 세계관을 '야수적
세계관'으로 간주하고 여기에 대한 맹렬한 비판
과 그것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폭로하는 것을 서슴
지 않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생
'존철학자'로서의 그의 성격을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에 대한 장일순과 윤노빈의 미묘한 차이는 생명
사상의 여러 맥락들을 종합하고 체계화하여 그것
을 널리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상의 세계
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김지하에게서도 발견
된다. 그는 자신의 생명운동을 '죽임에 대한 살
림'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발생론적 토대를 수운
선생의 주문 중 맨 처음 시에서 구한다. 그는 “內
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를 '우
주진화의 삼법칙'으로 해석한다.
첫째가 내면 의식의 증대, 둘째가 외면의 복잡화,
셋째가 자기 조직화와 개별화를 통한 다학적 개체
속에서 전체적 유출의 고도한 질적 유기화복잡화
실현이다. 이 세계의 법칙을 그대로 자신의 운동
테마와 운동영역으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생명운
동인 것이다." 그의 시에 대한 해석에서 특징적인
것은 생명을 우주진화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는 점이다. 그는 인간내면에 모시고 있는 것이 '우
주생명'이라고 말한다. 우주생명에 대한 자각과
공경, 그것을 바탕으로 한 모든 생성활동을 생명
운동, 다시 말하면 '살림'으로 본 것이다.
그가 이렇게 생명을 우주생명으로 인식한 데에는
시천주侍天主의 ‘천天·을 “일체 설명하거나 규명
하지 않고 넘어가 버린 수운의 태도와 다르지 않
다. 그렇다면 수운은 왜 그것을 설명하거나 규명
하지 않고 넘어가버린 것일까? 어쩌면 이 물음은
우문일 수 있다. 만일 천에 대한 동양적(동아시아
적인 인식의 틀 안에서 바라보면 그의 이러한 태
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동아시
아적인 인식 틀 안에서 그것은 '태허, 태일, 무
극'(기학)으로 이해되거나 해석되기도 하고 또
‘공, 무, 허’(유·불·선)로 이해되거나 해석되기도 한
다. 이것은 천을 “끊임없이 창조하는 무, 활동하는
무, 창조적인 큰 자유를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인
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적인 인
식 틀 안에서 우주는 인간 혹은 인간이 거주하는
지상과 분리되거나 분할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투명하고 논증 가능한 인식 체계로는 온전
히 해명할 수 없는 무한한 변화와 생성의 과정으
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를 일컬어
‘현,’ ‘태허 太虛, '태극 太極 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것
들이 하나의 전체적인 유출 과정 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 소멸하는 공능의 상태를 드러낸
다. 하나의세계를 이렇게 공능, 다시 말하면 정체
공능의 차원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세계를 관념
이 아니라 실질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우주 혹은 우주생명
은 '기의 우주이면서 동시에 '정체공능으로서의
우주'가 되는 것이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이런 점에서 '우주생명학'이
다. 우주생명학의 토대 위에서 그는 자신의 사상,
철학, 미학, 사회, 역사, 문화, 예술 등의 원리를 구
축하고 또 해석한다. 이것에 기반하여 탄생한 대
표적인 미학원리가 바로 '그늘', '흰그늘', '율려'
등이다. 그는 그늘을 '활동하는 무無,의 차원에서
정의한다. 이 활동하는 무가 끊임없이 복잡화, 자
기조직화하면서 개별적인 우주실현의 전 생성 속
에서 움직일 때에 그늘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것은 움직임의 주체와 그가 모
시는 현실적, 이성적 인식주체 사이에서 움직이
며, 부침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이를테
면 "무의식과 의식 사이", "환상과 현실 사이", "깊
은 진리심과 자기 주체의식 사이", "인식주체와 끊
임없이 생성하는 인식내용 사이"에 움직이는 “미묘한 중간 의식이 바로 그늘인 것이다. 그래서 그
것은 “미추는 물론 이승과 저승, 지상과 천상, 기쁨
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성스러움과 통속함, 남성
과 여성, 젊음과 늙음, 이별과 만남 등 서로 상대적
인 것들을 하나로 혹은 둘로 능히 아우르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늘에 이르기 위해서
는 반드시 삭이고 견디는 인욕정진忍辱精進하는
삶의 자세 곧 시김새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 그늘이 우주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
늘만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서 탄생한 것이 바로 '흰그늘'이다.
이재복 비평집(2023)
김지하가 생명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