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31〉
■ 세밑에 오는 눈 (신경림, 1936~)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등과 가슴에 묻은 얼룩을 지우면서
세상의 온갖 부끄러운 짓, 너저분한 곳을 덮으면서
깨어진 것, 금간 것을 쓰다듬으면서
파인 길, 골진 마당을 메우면서
밝은 날 온 세상을 비칠 햇살
더 하얗게 빛나지 않으면 어쩌나
더 멀리 퍼지지 않으면 어쩌나
솔나무 사이로 불어 닥칠 바람
더 싱그럽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창가에 흐린 불빛을 끌어안고
우리들의 울음, 우리들의 이야기를 끌어안고
스스로 작은 울음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어서.
- 1998년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작과 비평사)
*2023년 12월도 어느덧 끝에 다다른 시점, 시간은 무심히 흘러 이제 올해도 마무리할 세밑입니다. 늘 그렇듯 이때쯤이면 부산하던 마음도 차분해지고 자신을 한번 돌아보고 반성을 하며 내년의 소원을 빌어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새해를 코앞에 두고 날씨가 이례적으로 포근해지며, 연말연시에는 눈이 제법 내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는 것이, 내년에는 기쁜 일들이 많을 듯한 기대감이 드는군요.
이 詩는 우리들이 그리하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성찰과 새해를 향한 희망찬 마음을 담고 있는 작품인데, 아마도 그 당시에는 실제로 눈이 펑펑 온 세밑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시인은 하얗게 쌓이는 눈이 너저분한 곳과 파인 길, 골진 마당을 깨끗하게 덮으며 밝게 빛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흠집과 상처를 덮어주는 하얀 눈과 같이 새해에는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치유해주고 우리들의 울음을 감싸주며 희망을 주는 밝은 세상이 올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 詩를 읽다보면, 매년 자기 자신과 가족, 가까운 지인들에 대한 기원에만 그치고 있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드는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