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례(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베르나르도 성인은 1190년 프랑스 디종의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뒤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
수도원장)가 되었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저서도 많이 남겼다. 1153년에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1830년 비오 8세 교황은 성인을 '교
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그들은 불행하다고 질타한다. 양 떼
를 먹이는 임무를 잊고 자기들만 양을 잡아 배불리 먹으며 양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주님께서 그들과 대적하시어 당신의 양 떼를 구해 내실 것이다(제
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선한 포도밭 주인에 비유하신다. 주인은 각기
다른 시간에 일꾼들을 모아 일을 시킨 뒤 늦게 온 사람이든 일찍 온 사람이든 모두
똑같은 품삯을 준다. 이에 일찍부터 일한 사람이 불평하자 주인은 그에게 반박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복
음).
제1독서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언하여라. 그 목자
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
엘의 목자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
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
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그들은 목자가 없어서 흩어져야 했다. 흩어진 채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산마다, 높은 언덕마다 내 양 떼가 길을 잃고 헤매었다. 내 양 떼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찾아보는 자도 없고 찾아오는 자도 없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 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 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
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 떼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목자들은 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
그러니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그
목자들을 대적하겠다. 그들에게 내 양 떼를 내놓으라 요구하고, 더 이상 내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다시는 그 목자들이 양 떼를 자기들의 먹이로 삼지 못할 것
이다.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에제
34,1-11)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
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
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
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
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
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
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
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
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
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1-16)
오늘의 묵상
교회는 오늘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기념합니다. 시토의 수도자엿던 그는 중세
의 사랑의 신비 신학의 정점을 이룹니다. 중세 그리스도교 영성사에서 그의 업적과
위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베르나르도는 수도회 신학을 최고 수준으로 고양
시켰을 뿐 아니라, 인간의 개별성과 존엄성, 자기 성찰과 풍부한 감수성 등 12세기
적 심성의 여러 요소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명상과 기도를 뒷받침하는 계기로 정
립하였다"(클라우스 리젠후버, 「중세사상사」에서)>
특히 구약 성경의 '아가'에 대한 그의 해석과 통찰은 큰 중요성을 지닙니다. 그는
오리게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초기 교부들의 우의적이면
서도 신비적인 해석을 이어받아 꽃을 피웠고, 후대의 위대한 신비가들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그리스도인이 열렬히 추구해야 하는 신적 사랑과의 만남에 대해 이렇
게 가르칩니다.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면 자신의 시초로 되돌아가고,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서며,
자신의 원천으로 다시 흘러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항상 자신의 물줄기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많은 지향과 감정과 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피조물은 사
랑을 통해서만 창조주께 보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신랑의 사랑은, 곧 사랑이신 신
랑은 그 보답으로 단지 사랑과 성실을 찾습니다. 따라서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보
답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의 신부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잇겠습
나까? 사랑 자체께서 사랑받으시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사랑받는 존재로서 그 사랑의 원천으로 향하고, 그 사랑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고 사명임을 베르나르도 성인 과 함께
다시 한 번 새겨 봅니다.(매일미사에서 옮겨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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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 하느님,
복된 베르나르도 아빠스가 하느님의 집을 향한 열정으로 타올라
교회에 빛을 비추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불타는 열정으로 언제나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4. 8. 20.
Martinus
첫댓글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을 맞으며 우리도 사랑받는 자녀되고
행복한 사명임을 베르나르도 성인 과 함께 다시 한 번 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