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의림사
팔월 초 개학을 하여 주중 거제에 머물다 창원으로 복귀한 팔월 둘째 토요일이다. 엊그제 입추였고 내일이 말복이다. 전국은 가마솥더위가 가시지 않아 폭염 특보가 내려져 온열질환자가 나온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일본 남쪽과 동지나 해상에선 대형 태풍이 발생에 인접 국가에선 향후 진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를 스쳐간 태풍은 위력이 약해 마음이 놓였다.
새벽녘 약차를 달여 놓고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올 여름은 산행다운 산행을 나서질 못했다. 더워서가 아니라 틈을 내지 못해서다. 고작 용제봉이나 불모산 숲을 찾아 계곡에서 더위를 잊은 정도다. 발품을 팔아 창원 근교로 나가면 호젓한 숲길을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나갔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변에는 푸성귀를 비롯한 잡화들이 보였다.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마련했다. 배낭에 얼음생수를 넣어가기에 김밥이 상할 걱정은 없다. 가뜩이나 어렵다는 재래시장에서 내가 김밥 한 줄이라도 팔아준다면 지역 경제에 도움이 좀 되려나. 김밥은 내가 사는 아파트상가나 반송시장 노점에도 마련할 수 있으나 거기는 이른 아침엔 가게 문을 열지 않아서다.
구산면과 삼진으로 가는 노선 가운데 74번을 골라 탔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둘러 밤밭고개를 넘어갔다.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 환승장에 들렸다가 진북 면소재지를 지나 골짜기로 들었다. 진북 지명에는 유교 덕목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음에 놀라웠다. 인곡(仁谷)이고 예곡(禮谷)이고 지산(智山)이다. 의(義)가 붙은 지명은 없어도 그곳은 삼일 만세운동 때 여덟 분이 장열하게 순절했다.
내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인곡 의림사 절간 앞이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이 숲을 이룬 절이라고 ‘의림(義林)’이라 붙였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탔던 절이 근년에 와 중창이 되었다.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염불당’이라는 당호가 인상적이다. 염불당 앞에는 불교가 남방에서 왔음을 보여주는 높이 자란 파초가 있다. 수형의 균형이 잘 잡힌 노거수 모과나무는 경상남도기념물로 정해져 있다.
사명대사가 잠시 주석하기 전 봉국사였다. 사적기에는 의상대사가 부처님의 힘으로 왜구 침략을 물리치려고 세운 절로 기록되어 있었다. 남해안 곳곳에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창건된 절을 더러 보았다. 창원 불모산 성주사나 성흥사도 신라 하대 무염국사가 부처님 원력으로 왜구 침탈을 막으려고 세운 절이다. 일주문 지나 차피안교를 건너 절간으로 올라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았다.
이른 아침이라선지 스님 독경소리도 들리지 않고 공양간에서 보살 움직임만 보였다. 너른 마당은 빗질이 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발자국소리를 죽여 해우소를 지난 수리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들었다. 소나무 숲 바닥엔 마삭이 넝쿨로 뻗어나가 덮여 있었다. 한여름에 보라색으로 피는 맥문동 꽃이 간간이 보였다. 등산로는 사람이 다니질 않아 묵혀져 있다시피 했다.
어느 해 겨울 수리봉 정상에 올랐던 적 있다. 서북동과 학동이 발아래 굽어보이고 건너편은 여항산이 광려산과 대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산세가 훤히 드러났다. 바위봉우리를 타야 하기에 고소공포가 있는 나에겐 아찔한 등정이었다. 나는 수리봉 정상까지 오를 생각 없고 산기슭 우거진 숲을 거닐며 삼림욕을 누렸다. 활엽수림 속에서 영지버섯을 찾아보았으나 수확은 별로였다.
등산로를 벗어나 산자락을 넘었더니 인곡저수지 퇴수로가 나왔다. 등산화를 벗고 너럭바위로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이마의 땀을 씻었다. 신우대 숲을 헤쳐 나가니 대웅전 뒤였다. 아까는 고즈넉했는데 법회가 열리는지 두런두런 스님 법문소리가 들려왔다. 절간을 나오니 신도들이 타고 왔을 차들이 보였다. 차피안교 건너 일주문 축대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흰 구름이 떠갔다. 19.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