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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응원하시는 하나님 (베드로전서 5장 7-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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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합을 잘 이루는 모양새를 ‘캐미’가 좋다고 표현합니다. ‘캐미’는 영어의 ‘Chemistry(화학, 궁합, 공감대)’의 약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캐미가 좋아야 일의 능률도 오르고, 원하는 만큼 성과도 얻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는 전혀 캐미스럽지 못한 구성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만큼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이 공존하는 곳도 없을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통분모 아래 모여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전혀 캐미스러울 것 같지 않은 교회 구성원들을 ‘하나의 지체’라고 정의 했습니다.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된 완벽한 캐미가 연출되는 곳이 교회이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서 찰떡처럼 하나가 된 캐미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캐미로 따지자면 성도들(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의문의 1승을 거둔 셈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초반부에는 교회 안에 캐미를 이룬 두 집단이 나옵니다. 하나는 ‘장로들’이고, 또 하나는 젊은이들로 설명 된 ‘성도들’입니다. 먼저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무리들을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고, 더러운 이득들 취하지 말고, 기꺼이 하고, 주장하는(지배하는, 강요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목자장이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영광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다음, 젊은이들로 대변되는 모든 성도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겸손으로 허리를 두르라(겸손의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이러한 장로들과 성도의 모습이 곧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의 장로들과 성도들이,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연합, 좋은 캐미를 보임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이 땅에서는 복을 받고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도 모든 교인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누구라도 다 오고 싶어 하는 교회, 한 번 교회를 방문하면 치유와 회복으로 온전케 되며,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는 교회로 소문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데 한 마음,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권면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권면의 내용보다는, 설교의 제목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응원의 말씀으로 선포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 주시는 힘찬 응원의 음성을 귀 담아 들어 보십시오. 날도 점점 더위지고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계절이기에 더욱더 응원이 필요합니다. 삶에 지쳐 몸과 마음과 영혼에 낙심이 오신 분들은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몸이 고단하고 피로하거나 건강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은 말씀으로 회복을 이루시고, 이것저것 다 귀찮아서 아무 생각 없이 무기력하신 분들은 말씀으로 다시 움직일 새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우리를 응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표준새번역에서는,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라고 했고, 공동 번역에서는,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는 첫째 응원은, 우리의 몸과 마음, 곧 육신에 평안을 주시는 음성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7절의 말씀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본적인 신앙태도가 염려, 걱정, 근심을 버리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 합니다. 우리보고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 맡기라” 주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면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맡기고, 버리고, 해결해 주실 곳이 있는데 왜 염려 하십니까? “염려, 걱정, 근심 다 내게 가져 와라” 하나님의 응원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가져가면 어떻게 됩니까?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돌보아 주신다는 것은, 관심을 가지고 말끔하게 해결을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시는 도중에 큰 광풍이 일고 물결이 배에 부딪쳐서 물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외칩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왜 돌보아 주지 않으십니까?”(막 4:38) 이때 돌보다는 말이 오늘 말씀과 동일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상황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돌보실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외치고, 부르짖으면 주님의 손길이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돌본다는 말이 다른 곳에서는 양 무리를 돌보지 않는 삯꾼을 비유할 때 쓰이기도 했고(요 10:40), 많은 무리들이 한 사람을 마구 때릴 때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둔다고 했을 때(행 18:17)도 쓰였습니다. 주님을 의지 하는 사람은 돌보심을 힘입어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주님의 돌보심을 거절하는 자는 거짓말을 일삼는 자가 되어버려서 오히려 험악한 일을 당해도 버림을 받는 신세가 됩니다. 여러분 많이 힘드시죠, 이럴 때 일수록 내가 지고 가는 고난과 고민의 짐들을 버리는데 집중하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서 하셨던 위로의 말씀이 오늘 베드로 사도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들려졌습니다.
7절은 응원인 동시에 명령입니다. “맡겨 버려라” 명령 하셨으니, 맡기고 가십시오. 저도 부탁드리는데, 예배에 나오셨으니, 각자의 근심, 걱정, 염려, 제발 이 시간에 주님께 맡기고 가십시오. 다 맡기십시오. 시원하게 다 버리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주님의 응원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대로 실천하셔서, 평안한 마음으로 더위를 이겨내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나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우리를 응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8, 9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응원하시는 둘째 음성은, “근신하라 깨어라!, 믿음을 굳게 하라!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또한 응원의 말씀이자 명령의 말씀입니다. 첫째 응원은 우리의 몸과 마음, 곧 육신의 평안을 주시기 위함 이었다면, 둘째 응원은, 영혼의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탄, 마귀, 귀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영적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더러운 영적 존재들이 많습니다. 너무나도 숫자가 많아서, 마치 굶주린 사자떼가 우글거리는 흉폭한 광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런 사탄, 마귀, 귀신의 무리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전혀 위기감이나 경계감 없이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 마귀, 귀신이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무리들은 우리가 세상일에 온통 관심을 가지도록 부추겨서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도록 어둠속에 정체를 숨기고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탄을 우습게보고 무시하고 살다가는 굶주려서 으르렁 거리면서 삼킬자를 두루 찾아다니는 대적 마귀의 한낱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근신하라”는 말은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이고, “깨어라”는 말은 잠에서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사탄의 무리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정신 줄 놓고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는 말씀은, 성령 충만으로 영적 지각능력을 가지라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마귀의 존재를 간파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근신하여 깨어나야 비로소 마귀의 무리를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라”는 말씀은, 영적무장을 하여 싸울 준비를 하라는 말입니다. 마귀의 무리가 보였으면 싸워 물리쳐야 하는데, 믿음 없이는 싸움 자체가 안 됩니다. 믿음은, 싸움에 임하는 군인들이 준비하는 전쟁 무기와도 같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는 말씀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최종 목표입니다. 우리 스스로 분별하고, 우리 스스로 무장하고, 우리 스스로 싸워 승리하게 하시려는 것이, 주님이 우리를 응원하시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우리 육신이 아무리 평안을 얻어도 영혼이 피폐해지면 우리는 영원히 소생하지 못하는 시들어가는 불꽃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영혼의 평안을 염려하시고, 우리의 영혼이 안전하도록 응원해 주십니다. 사탄, 마귀, 귀신이 무섭고 두렵고 힘이 쎈 존재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상대하기 벅찹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과 견주어 보면 이런 어둠의 존재들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면, 사탄의 무리들이 아무리 떼거리로 몰려와도 한 방에 물리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응원 하시면서, 마귀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가지고 우리 자신의 영혼을 성령으로, 믿음으로 지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더 이상 마귀들에게 내 소중한 인생을 점령당하고 빼앗기지 마십시오. 마귀의 간악한 흉계에 휘둘려서 곤고한 인생을 살아가지 마십시오. 근신하고(정신 차리시고) 깨어서 분별하십시오, 믿음으로 굳건해지도록 영적 무장의 힘을 갖추십시오.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의 무리들을 물리쳐 승리하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응원해 주시기 때문에 승리는 반드시 우리의 것입니다. 이제는, 보이는 세상보다, 마귀들이 우글거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상에 눈을 뜨십시오.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응원에 힘입어서 영혼을 지키는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우리를 응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10절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응원하시는 셋째 응원은,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고 이끌어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자녀가 된 우리들이 애송이 철부지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장성한 어른으로서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전인적인 성장을 이루어 가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이러한 성장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지혜와 지식과 사랑이 자라나면서 믿음이 동반 성장하게 되고, 믿음이 성장 하는 것에 비례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은 커져 갑니다. 점점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의 맞춤형 모습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과정의 일체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신다는 응원의 음성을 10절에 압축하여 놓았습니다.
10절의 전반부에 근거해서 보면, 우리의 현재 모습은 두 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상태이고, 또 하나는, 주님이 이미 들어가 계신 영원한 영광(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에 우리를 불러 주신 모습입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을 두 단어로 압축하면, 구원과 영생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육체로 이 땅에 사는 것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주님도 이러한 세상 환경을 고난의 장소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세상 고난은 “잠깐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강하게 응원하시는 음성입니다. 고난은 지나갑니다. 잠깐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인생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잠깐”은 무게가 가볍다, 양이 적다, 길이가 짧다 등에 쓰이는 말로, 앞의 “영원”이라는 말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를 뒷받침 하는 말씀이 로마서 8장 18절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 영생을 누리는 영원에 대한 소망을 품어야 지금 당장의 크고 작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잠깐”으로 인식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응원하시면서, 고난은 잠깐이니 그냥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10절 후반부에 네 가지의 동사가 나옵니다. 이 동사들이 잠깐 고난을 당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시려는 우리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배려입니다.
온전케 한다, 굳건하게 한다, 강하게 한다, 터를 견고하게 한다, 비슷비슷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인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세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에 네 가지 동사는 헬라어 문법적(직설법 미래시제)으로, 반드시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표현입니다. 주님이 우리 각자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시면서, 온전케 만드시고, 굳건하게 만드시고, 강하게 만드시고, 터(기초)를 견고하게 만들어 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겁니다.
거저(공짜로) 다 주신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닌가요? 불려 주셨죠, 영원한 나라의 약속 주셨죠, 이 세상 고난을 이겨내고 넉넉히 살아갈 인격체로 만들어 가신다고 하죠.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이 상황에서, “돈 주세요, 먹을 것 주세요”라고 떼를 쓰면 정말 눈치 없는 철부지가 됩니다. 이 상황에서, “그럼 나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네, 다 알아서 하세요”라고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하는 냉혈한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절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강하고 확실한 응원의 음성을 다 받으십시오. 이렇게 하실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신 속에 세상 고난이 평안으로 바뀌는 은혜를 받고, 힘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의 용사로 날마다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준비 된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세 가지 주님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힘이 나십니까? 마음을 여시면, 생각했던 것보다 10배 100백의 은혜가 임하실 겁니다. 다시 한 번 세 가지 주님의 음성을 들려 드립니다. 아멘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는 응원의 말씀입니다.아멘.
둘째, “근신하라 깨어라!, 믿음을 굳게 하라! 마귀를 대적하라!”는 응원의 말씀입니다.아멘.
셋째,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나를 온전케 만드시고, 굳건하게 만드시고, 강하게 만드시고,
터(기초)를 견고하게 만들어 가시겠다는 응원의 말씀입니다. 아멘
이 세 가지 응원의 말씀이 00교회 모든 성도와,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과, 자녀 손들과, 우리의 모든 일생 위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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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응원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 가지 응원에 힘입어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가는데 온 힘과 마음을 다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이 세상을 이겨낼 힘주시고 용기 주시고 지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