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의 주인과 노예
연꽃잎 위의 물방울처럼,
바늘 끝에 올려진 겨자씨처럼,
감각적 쾌락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
나는 그를 진정한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숫타니파타 625, 바셋타의 경>-
수행자라고 쾌락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먹는 기쁨과 잠과 꿈의 편안함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이 진전됨에 따라 점점 상응도가 떨어지죠.
탐진치는 쾌락이 들러붙는 마그네틱입니다.
삼독이 강할수록 자력은 강해집니다.
가까이 왔을 때 붙는 것을 넘어
멀리 있는 것을 끌어오기도 합니다.
탐진치가 강할수록.
그런데 아시죠?
쾌락은 변신합니다.
첫 얼굴은 즐거움
중간 얼굴은 지루함
끝 얼굴은 고통입니다.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중독자처럼 다시 쾌락을 찾는 것입니다.
이 악순환에 빠지면 행복을 탕진합니다.
그래서 붓다는 쾌락의 길은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고 하셨죠.
탐진치 삼독은 쾌락을 끌어당긴다고 했습니다.
탐진치의 다른 이름은 파멸이라고 했었죠?
중간 과정을 찾았네요!
'탐진치 -> 쾌락 -> 파멸'
수행은 무탐무진무치를 추구합니다.
자력이 점점 약해지는 길입니다.
그럼 쾌락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될까요?
첫 얼굴인 즐거움을 즐깁니다.
이후 상응하지 못하고 곧바로 떨어지겠죠?
마치 바늘 위의 겨자씨처럼.
진정한 수행자는 세상의 쾌락이 즐겁습니다.
사실 즐겁기만 합니다.
중간과 끝 얼굴은 상응하지 못하니까요.
맛있는 음식을 정말 기쁘게 먹지만
못 먹는 상황에서 불쾌하지는 않죠.
쾌락이 들러붙을 탐진치의 자력이 약하니까요.
삼독이 있으면 쾌락에 지배당합니다.
삼독이 적으면 쾌락을 이용합니다.
주객이 바뀌는 것입니다.
당신은 쾌락에 끌려다니는 객인가요?
아니면 쾌락을 이용하는 주인가요?
쾌락이 아닌 안심과 상응하도록
마음의 물성을 변화시키시길.
"마치 푸른 연꽃이나 붉은 연꽃이나 흰 연꽃이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지만,
물 위로 솟아올라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는 것처럼,
여래(如來)도 세상에서 생겨나 세상에서 자랐지만 세상을 극복하여 세상에 젖지 않고 머문다."
-<상윳따 니까야 (S3:140), 꽃의 경(Puppha 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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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나, 자유롭기위해 수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쾌락이 아닌 안심에 상응하도록 탐진치 삼독을 다스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쾌락을 이용하는 주인일 수 있도록 수행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쾌락을 이용하는 주인으로 살아가며 안심과 상응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쾌락이 아닌 안심과 상응 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탐진치가 있는가?
늘 깨어 있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쾌락에 지배당하지 않고 쾌락을 이용하는 주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