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인 애기똥풀
최정
노랗게 꽃을 피우면 아주 볼만하지
상처가 나면 흘리는 노란 피
건강하고 해맑은 애기 똥 빛깔이지
아무리 그래도 이름이 참 직관적이야
애기똥풀이라니!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지
나도 잊히지 않는, 아니 그보단
멋진 이름을 갖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
고작 6학년 때 최휘, 최빈 같은
좀 있어 보이는 필명을 궁리해봤으니
싹수가 노랬나 봐
최씨 집성촌이었던 동네 할아버지가
지어주었다는 내 이름은 정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죽은 십팔년 독재자 이름
결국 쓸모없는 희, 자를 버리기로 했지
빛날 희(熹)였다면 망설였을지도 모르지
내 이름은 여자 희(姬)야
이미 여자인데 굳이 또?
여자(姬)를 버리고 나니 글 쓰는 삶은 덜 뻔해졌지
애기똥풀에서 뻔한 풀을 빼면 애기 똥?
너무 노골적이라 풀을 버리기가 좀 그래
밭둑에 애기 똥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나도 같이 노랗게 물들곤 하지
애기 똥 빛깔로 환해져서
낫질을 하다 슬쩍 건너뛰곤 하지
― 문학웹진, 《비유》(2023 / 1월호)
최정
충북 충주 출생. 시집 『내 피는 불순하다』(2008)로 문단에 나옴. 현재 귀농 10년차의 1인 여성 농부. 시집 『산골 연가』『푸른 돌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