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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 9 물로 된 포도주 - 요 2: 11 영광을 나타내시매
요 2: 9 물로 된 포도주 -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
혼례식에 참석한 손님들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지금까지 마셔본 어떤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불러 칭송하였다.
1]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예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그것은 맛이 좋은 포도주였다. 그것은 그 하인들과 제자들이 본 기적이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욥은 주께서는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 고백하였다.
* 욥 42: 2 -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자연법칙은 그가 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소가 풀을 뜯어먹고 우유를 내며, 포도나무가 비와 땅의 양분을 섭취하여 포도송이를 맺히며 사과나무가 똑같은 조건에서 사과를 맺히는 이치를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신비이다.
인간으로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 자는 아무도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이 기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이다.
2]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주님의 기이한 역사의 유래를, 사람마다 알지 못하나 오직 주님께 충성하는 종들만은 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다음과 같다.
(1) 복종의 원리.
마리아는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4절), 침묵하며 순종한 후 하인들더러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다(5절). 이것은, 무조건 순종을 말함이다.
무조건 순종은 하나님께만 하는 법인데,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 대우를 받으신 것은 당연하다.
과연 하인들은 조금 후에 그렇게 순종하였다(7-8).
루터(Luther)의 말과 같이, 참된 신앙의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무슨 일을 지정해 드리지 아니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복속시킨다(Wahrer Glaube schreibt Christus nicht vor-wad er tunsoll-,sondern weiss sich darin zu schicken.-Evangelien Auslegung, 4, P.93).
(2) 변화의 원리 (6-9).
결례의 항아리 물의 포도주로 변화된 것은, 예수님의 권능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이적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서 죄인들이 변화되어 성도가 될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악한 사람이라고 변화시킬 수 있다. 1733년부터 선교사들이 5년 동안 창세기 1장을 가르쳤어도 하나님의 인상도 받지 못하던 에스키모족 중에서도 마침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생겼다.
루터(Luther)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또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말하였다(Evangelien Auslegung, 4,P.98).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은 죄인들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3]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잔치에 참여한 손님들은 한 목소리로 물로 된 포도주를 칭송하였다. 그러므로 나다나엘은 신랑을 불러 잔치를 성대하게 치른 것에 대하여 칭찬하였다.
요 2: 10 취한 뒤에 -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
취한다는 것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1]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여기 이른 바 "좋은 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되는 구원의 기쁨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 "좋은 포도주"는 취할 수 있는 강한 술을 의미한다고 하나,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이적으로 만든 술인 만큼 취하게 하는 성분이 강하지 않고도 좋은 술일 수 있다.
Ⓑ 어떤 학자들은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만드신 술은 발효(醱酵)하지 않은, 취하지 않는 술이었을 것이라고 하나, 그렇게 주장할 만한 본문의 증거는 없다.
설혹 예수님께서 만드신 술은 취할 수 있는 성질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을 절제 있게 마시는 사람들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절제"의 덕을 가르친다.
* 갈 5: 22-23 –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금주(禁酒)를 규칙으로 가지는 한국 교회에 있어서, 예수님의 이 이적이 문제될 것 없다. 한국인의 특수한 사정(술에 취하기 잘하는 한국인)으로 보아, 금주는 당연하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친 "절제"를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는 진짜 포도주이었다. 그것은 맛이 좋은 포도주이었다. 예수께서 술을 만드셨는가? 그것은 재미있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로 깨닫는다면 그것은 당황스러운 문제는 아니다. 성경에서 술은 좋은 의미로 쓰일 때가 있고 나쁜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
성경은 술을 한두 잔 마시는 것을 정죄하지는 않으나, 술취하는 것은 지옥에 던지울 만한 큰 죄이다.
* 고전 6: 10 -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술 취함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다. 술은 몸에 나쁘고 재정 지출이 크고 중독성이 있고 술 취함은 큰 죄이며 오늘날 술의 알코올 농도가 매우 높다는 것 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술을 안 마시는 것이 유익하다. 완전 금주는 우리가 지켜야 할 교회의 좋은 전통이다.
2]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기독교의 복음은, 사람들을 이 세상보다 선미(善美)한 내세(來世)로 인도하는 것이다.
요 2: 11 영광을 나타내시매 -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은 예수께서 행하신 처음 표적이었다.
그는 갈릴리 가나에서 이 기적을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셨고 제자들은 그를 믿었다.
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여기 "표적"(*)이란 말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리는 신령한 증표라는 뜻이다.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라는 것은, 메시야의 증표로서의 권능을 나타내셨다는 의미이다.
2]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기적의 목적은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요, 또 그것을 통해 우리로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은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을 보았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은 결코 단순히 사람일 수 없고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제자들은 그 사실을 깨달았고 예수님을 믿었다. 기적은 믿음에 도움이 되는 보조물이다.
* 출 4: 8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 막 16: 20 -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 히 2: 4 -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3] 포도주의 변화 ( 2: 9-11 )
혼인집 사람들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마셨을 때 그 포도주의 맛이 이전의 것보다 더 좋았다고 칭찬하게 되었다. 이 같은 역사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이런 기적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분이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 3). 주님은 바로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기 때문에 돌 항아리에 든 물 뿐 아니라 흥해 전부를 포도주로 만드실 기적의 능력이 있는 분이다.
(1) 첫 이적의 의의
예수님의 첫 이적이 왜 물이 포도주로 변화 받는 것으로 나타났느냐는 문제는 주님의 하시는 구원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변화를 말해 준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 그리스도의 말씀의 능력 안에 사는 사람들은 물이 포도주가 되듯 새로운 변화가 따르게 된다.
*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마치 무미건조했던 물과 같은 것으로 세상에 얽매었던 지난날의 육신적인 생활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것이란 완전한 변화를 통하여 중생하여 영적인 생활로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는 나, 소망으로 살아가는 나,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① 물은 육신의 열매를 의미한다.
물은 물 이상의 가치를 나타낼 수 없다. 인간의 육신의 열매는 썩어질 것을 거둔다.
* 롬 8: 6-8 –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에 속한 사람은 변화를 받아야 한다. 변화가 없는 사람은 이름만 그리스도인일 뿐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생활을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② 포도주는 영의 열매를 의미한다.
포도주는 완전한 변화를 상징한다.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변화 받은 사실을 의미한다. “육과 영과는 그 가치의 차이가 분명하다. 이 같은 일에 대하여 갈라디아서에서는 이처럼 말씀하고 있다.
* 갈 6: 7-8 –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리스도인은 포도주로 변화 받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언제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생활을 버릴 수 없다.
(2) 변화의 비결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변화의 비결을 가나 혼인 잔치의 경우를 들어 배울 수가 있다.
① 혼인집 주인이 자기 집에 초청했다.
혼인집은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한다. 혼인집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어린 양의 잔치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처럼 초청의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 마 11: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사 1: 18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그러나 사람이 초청을 받아도 그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② 돌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채웠다.
혼인집 마당에 돌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이 돌 항아리란 우리의 굳은 심령,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가리킨다. 세상에 살아가고 있었을 때 손이나 발을 씻었던 물그릇이다. 더러운 것들이 담겨져 있었던 그릇이다.
그 속에 새로운 물로 가득히 채워야 한다. 새 물이란 우리가 세상에서 길어 먹는 그런 물이 아니다. 예수님의 명하신 바에 따라 길어온 물이다. 마치 이 물은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으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시게 한 생수를 말한다.
* 요 4: 13-14 –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의 심령 속에 성령이 임하셔야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된다. 성령은 변화시키시는 영이시다.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변화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이 성령으로 채워져야 한다.
③ 연회장에 갖다주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 이유는 내 인생 속에 새로운 기쁨, 새로운 평안, 새로운 소망을 주시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생수를 그 마음에 받은 사람은 그 생수로 말미암아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을 따르는 순종의 생활이다.
포도주는 우리 가정에 기쁨을 선사한다. 하마터면 즐거운 흥이 깨어질 뻔한 혼인집에 더 좋은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먼저 내 가정에 축복받도록 한다.
포도주는 다른 이에게도 기쁨을 준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와 생명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쁨을 주게 되는 것이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은 기적을 창조하는 생활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보고 믿자.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그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처음 나타내신 일이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구원을 얻었다.
신약성경의 첫 번째 목적이 여기에 있다.
* 눅 1: 1-4 -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 요 20: 30-31 -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둘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을 알자.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그 유여치 못한 집의 혼인 잔치를 배려하신 일이었다.
주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기쁘고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구원은 내세의 천국과 영생뿐 아니라 현세에서의 평안과 기쁨도 준다. 예수님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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