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광복절 행사를 친일 매국 종자들이 국민을 속이며 저들끼리 숨어서 하고있고 광복회장을 포함 진정한 독립운동 후손들이 윤가의 광복절행사를 꾸짖으며 별도로하고있는 현실을 보고
선무원종7공신의 후손으로 기가막혀 넉두리를 하고있다 이해해주십시오]
참의공의 현손이신 설장산 승지공 휘 진기님의 모든 손자 다섯분과 증손 두분 모두 일곱분이 왜놈들을 죽여 나라의 원수를 갚으려다 모두 순명하셨으니 이는 멸문지가의 희생을 자발적으로 감수하신것이지요.
조선조를 통털어 종형제 다섯분 몽땅과 손자 두분, 씨를 모두 바친 문중은 오직 보성선씨 참의공파 한집안 뿐이고 모두 공신으로 책훈된 건도 오로지 “선진기 일문”뿐이였지요.
”爲國一死是 我職分“ (나라 위해 한목숨 버림은 나의 직분이다)
이때 우리들 (조)부 께서 (핑갱쟁이?)에서 출정전 피눈물을 뿌리시며 외치던 말씀이 족보에 있으니 참으로 일곱분의 충성심을 우리 후손들이 어찌 잊을수 있겠습니까?
다행이 어린 몇분의 후손들이 계셔서 지금의 3파의 명맥이 가날프게 유지될수 있었음은 하늘이 내린 복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조선을 통털이 일문7공신을 남긴 문중은 설장산의 승지공 문중 하나뿐이니 그 후손들이 서글프고 안타까운 어마어마한 충절의 선대들을 어찌 잊겠어요. 참의파 어느 한사람도 일문칠공신 후손의 영예를 거부할수 없고 망각해서는 아니된다봐요.
유교에서도 “君子报仇,十年不晚”이라했어요. 부모의 원수는 시기 한정말고 갚아라로 생각해도 되고
“遇诸市朝,不反兵而斗” 거리에서 만날시 도망에 대비 무기를 들고 다니다 싸워 죽이라 했지요.
일본놈들을 죽여 우리 부모들 원수를 갚지는 못할망정 그 기막힌 역사를 후손들의 뇌리속에서 지워서는 아니되지요. 후손들이 대충 경박하게 이해하고 누구 얘기인가 물움표를 달면 우리들 선대 공신들이 지하에서 너무 서운하실것입니다.
선씨문중의 공신도 맞지만 설정상 휘 진기조 아래 7공신임을, 그 후손들이 지금 참의공 후손 모두임을, 이런 일문칠공신은 우리 가문외에 전무후무함을 다시 이해해야해요. 보성선씨가 양반가임은 이런 희생을 기초로 한것인데 둘로 쪼개젔으나 1829년 병사공 7대손 시교님의 더이상 거론마라 모두 한핏줄이다라는 유지를 (저는)따르렵니다. 모든 씨족들이 그리 쪼개지고 역사 또한 그리흘러 가지요.
선무원종공신록권은 확실한 역사이며 “공신”은 벼슬이 있는분들 중 선정되니 7공신 모두 벼슬을 하시었고 (녹권에)전사하신 분들은 한자급씩 올려라했는데 그런 기록이 없음을보아 족보와는 달리 순망하시지 않으신분들도 계셨을수도 있습니다.
오늘 광복절 참의공 후손 모두는 나라가 어려울때 특히 전라도 남쪽 사람들은 병졸로 전장에 나간 사람들이 아니면 목숨 부지할수 있었는데 구지 임금 지티겠다고 근왕병이 되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무서운 결기를 후손들에게 보여주셨으니 한편 생각하면 (죄스럽지만)참으로 쉽게 문중과 내 가족을 버리시기도 한샘입니다.
병사공은 당시 상중이고 3년 벼슬을 쉬어야 하니 전장에 나갈일 없었는데 동생들을 데리고 저발적 근왕병이 되시어 (평양)성수성병사로서 두드러진 전과를 올리셔서 선거이님보다 1등공신 서열이 8위가 더 높았으니 선씨 최고의 무장이 아닐수 없지요. 슬프고 안타깝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손들의 자부심이 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