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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Guru)이란 말은 흔히 넓게 사용되어, 영적인 도움말을 주는 사람이면 누구나 스승이라고도 하지만, 스리 라마나는 이 말을 상당히 제한된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스승이란, 진아를 깨달은 이로서, 자신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진아 깨달음(Self-realisation)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다. 스리 라마나는 종종 신, 스승 그리고 진아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즉, 스승은 인간의 형상을 한 신(God In human form)이며, 동시에 모든 헌신자(devotee)의 심장 속에 있는 진아이기도 하다. 스승은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으므로, 그의 힘도 두 가지 상이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외부의 스승은 가르침을 주며, 헌신자로 하여금 진아에 그의 주의를 집중하도록 한다. 그리고 내면의 스승은 헌신자의 마음을 그 근원으로 끌어당겨 진아 속으로 흡수하고, 마침내 그것을 파괴해 버린다.
진아의 영원한 자각을 향해 노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이, 스리 라마나의 가르침 상에서 하나의 기본 항목이다. (수행자의) 영적인 발전에 있어서 스승의 촉매적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아에 대한 무지가 워낙 뿌리깊어서 수행자 개인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리 라마나가 비록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스승이 꼭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기는 했지만, 그는 또한 스승이라고 해서 힘써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수행자가 진아를 발견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때에는 스승의 은총과 힘이 자동적으로 흐르지 시작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을 때에는 스승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스승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마하리쉬의 견해를 요약한다.
[ 문 ] 스승의 은총(Guru's grace)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떻게 제자를 깨달음에 이르게 합니까?
[ 답 ] 스승은 진아입니다(Guru Is the Self). 사람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때때로 불만을 느끼고 그가 가진 것들로써도 마음이 흡족하지 않을 때 신에 대한 기도를 통해 그의 바램을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은 점차 정화되어 신을 알고자 하게 되고,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만족시키기보다는 은총을 얻고자 하게 됩니다. 그때 신의 은총(God's grace)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신은 스승의 형상을 하고 그 헌신자에게 나타나서 진리를 가르치고, 나아가 그와의 친교를 통해 그의 마음을 정화합니다.
그러면 헌신자의 마음은 강해져서 내면으로 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명상에 의해 더욱 정화되어 작은 물결 하나도 일어나지 않게 고요해집니다.
그 고요한 세계가 진아입니다. 스승은 외부적인 동시에 내면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밖에서 제자의 마음을 안으로 향하도록 밀어 넣습니다. 또 그는 안에서 그 마음을 진아 쪽으로 끌어당기고 마음이 고요해지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이 스승의 은총입니다. 신과 스승과 진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 문 ] 신지학회(神智學會)에서는 그들을 인도해 줄 스승들(masters)을 찾기 위하여 명상을 합니다.
[ 답 ] 스승(the master)은 내면에 있습니다. 명상은 스승이 외부에만 있다는 무지한 관념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스승이 그대가 기다리는 어떤 딴 사람이라면 그는 또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잠시 지나가는 존재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대가 자신을 진아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육체라고 여기는 한, 외부적인 스승도 필요하며 그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자신을 육체라고 여기는 그릇된 동일시가 사라지면, 스승은 다름 아닌 진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문 ] 스승(the Guru)은 전수(傳授:initiation)를 통해 저희들이 진아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까?
[ 답 ] 스승이 그대의 손을 잡고 귓속말이라도 해준다는 것입니까?
그대는 스승도 그대와 같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자신이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도 역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그대에게 뭔가 구체적인 것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내면에서, 즉 영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 문 ] 스승을 어떻게 찾습니까?
[ 답 ] 내면에 있는 신은 그의 은총으로, 그를 사랑하는 헌신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헌신자의 발전 정도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나툽니다.
헌신자는 스승이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여기고 두 육신간의 어떤 관계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신 또는 진아의 화신(化身)인 스승은 내면에서 그의 일을 하며, 헌신자가 수행 방법상의 오류를 깨닫도록 도와주고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마침내 내면의 진아를 깨닫게 합니다.
[ 문 ] 진정한 스승(Sadguru)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답 ] 진아 안에 항상 안주하며, 언제, 어느 장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모든 것을 평등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 문 ] 여러 가지 길을 가르치는 많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를 자기의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까?
[ 답 ] 그에게서 내면의 평안을 얻는 이를 스승으로 삼으십시오.
[ 문 ] 그의 가르침도 고려해야 하지 않습니까?
[ 답 ] 열렬한 구도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지시하는 사람은 진정한 스승이 아닙니다. 구도자는 이미 자신의 행위들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으며 평안과 휴식을 원합니다.
다른 말로, 그는 자신의 행위들이 끝나기를 원합니다. 만약 가르치는 이가 그에게 그의 행위들에 추가하여, 아니면 그 대신에 어떤 것을 하라고 한다면 그것이 구도자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행위는 자신의 본래적인 행복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만약 행위를 하라고 가르친다면 그는 스승이 아니라 살인자(killer)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창조의 신(Brahma)이나 죽음의 신(Yama)이 스승을 가장하고 끼여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사람은 구도자를 해탈시킬 수 없으며, 속박만 가중시킬 것입니다.
[ 문 ] 저는 제 스승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 답 ] 집중적인 명상으로써 찾을 수 있습니다.
[ 문 ] 스승이 바로 자신의 진아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제자가 아무리 많이 배웠고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스승의 은총 없이는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다는 가르침의 본뜻은 무엇입니까?
[ 답 ] 절대적 진리의 견지에서 보면 스승의 상태가 자기 자신의 상태이지만 무지 때문에 개인(jiva)이 되어버린 자아로서는, 스승의 은총 없이는 자신의 진정한 상태 또는 성품을 깨닫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 문 ] 스승의 은총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답 ] 그것은 말과 생각을 넘어서 있습니다.
[ 문 ]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제자가 스승의 은총에 의해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깨닫는다는 것입니까?
[ 답 ] 그것은 마치 코끼리가 꿈속에서 사자를 보고 놀라서 깨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코끼리가 사자를 보자마자 깨어날 수 있듯이, 제자도 스승의 자비로운 은총의 눈길에 의해서 무지의 잠으로부터 진지의 깨어있음(wakefulness of true knowledge)으로 깨어날 수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 문 ] 진정한 스승의 성품은 바로 지고의 주(主)의 성품 그것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답 ] 우선, 신의 상태 또는 진지의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개인(individual soul)은 부단한 헌신을 수행합니다. 그의 헌신이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에 도달하면, 그 개인을 지켜보아 온 자로서 또한 그와 동일한 주(主)가 나타납니다.
그는 그의 세 가지 본질적 속성인 존재-의식-지복(Sat-chit-ananda)의 도움 하에, 형상과 이름까지 우아하게 갖추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는 제자를 축복하는 듯 하면서 제자를 자신의 안으로 흡수합니다. 이러한 이치에 따라서 스승은 진정 주(主)로 불리는 것입니다.
[ 문 ] 그러면 위대한 사람들은 어떻게 스승 없이 진지를 성취했습니까?
[ 답 ] 소수의 성숙된 사람들에게는 주(主)가 형상 없는 지(知)의 빛으로 나타나서 진리의 자각을 전해줍니다.
[ 문 ] 자기에게 맞는 스승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승의 진면목(swarupa:참된 성품 또는 진정한 형상)이란 어떤 것입니까?
[ 답 ] 그대의 마음이 동조(同調)하는 이가 그대에게 맞는 스승입니다. 만약 그대가 '어떤 사람이 스승이며 그의 진면목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평온(tranquility), 인내(patience), 관용(forgiveness) 기타의 덕(德, virtues)이 있어야 하고,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이 눈빛만으로도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하며, 모든 것에 대해 평등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덕목을 갖춘 이가 진정한 스승이지만, 그대가 스승의 진면목을 알려면 먼저 그대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의 참된 성품을 모르고서, 스승의 참된 성품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대가 스승의 참된 성품 또는 형상을 알아내려고 하면, 먼저 이 우주 전체를 스승의 형상(Guru rupam)으로 보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대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속에서 스승을 보아야 합니다.
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대는 모든 대상을 신의 형상(God's rupa)으로 보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진아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신의 진정한 형상 혹은 스승의 진정한 형상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그대 자신의 진정한 형상과 성품을 아십시오.
[ 문 ] 그것을 알기 위해서도 스승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 답 ] 맞습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그대의 마음이 동조하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십시오. 그대가 믿음(faith)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그대의 스승입니다.
[ 문 ] 해탈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스승의 은총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답 ] 해탈은 그대 바깥의 어디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내면에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벗어나기를 갈망하면, 내면의 스승은 그를 진아 안으로 끌어당기고 외부의 스승은 그를 진아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이것이 스승의 은총입니다.]
[ 문 ] 어떤 사람들은 스승께서, 스승이란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마하르쉬(Maharshi)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 답 ] 저는 스승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 문 ]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나 그 외의 다른 분들은 마하리쉬 님에게 스승이 없었다고 합니다.
[ 답 ] 그것은 무엇을 스승이라고 부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스승이 반드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닷따뜨레야(Dattatreya)에게는 지(地), 수(水) 등 5대 원소를 포함해서 스물 네 명의 스승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그의 스승이었습니다. 스승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오직 스승만이 사량분별(思量分別)과 감각 지각(sense-perceptions)의 밀림으로부터 인간을 건져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스승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 문 ] 제 말은 인간으로서의 스승을 의미합니다. 당신에게는 한 분도 없었지 않습니까?
[ 답 ] 내게도 한때 언젠가는 스승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저는 아루나찰라(Arunachala)를 찬송하지 않았습니까? 스승이란 무엇입니까? 스승은 신(神)이며 진아입니다. 처음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신에게 기원합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물질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 자신을 위해서 기원하는 때가 옵니다. 그때 신은 이런 저런 형상, 즉 인간이거나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기원에 응답하고 그의 필요에 맞추어 그를 자신에게로 인도합니다.
[ 문 ] 한 스승에게 헌신하면서 다른 스승들을 존경할 수도 있습니까?
[ 답 ] 스승(Guru)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는 육체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제자의 힘이 약한 한, 스승이 힘을 받쳐줄 필요가 있습니다.
[ 문 ] 크리슈나무르티(J. Krishnamurti)는 '스승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 답 ] 그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깨달은 뒤에는 그렇게 말할 수 있으나 그 전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 문 ] 저희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 답 ] 도움은 항상 있습니다.
[ 문 ] 그러면 제가 이렇게 질문을 드릴 필요가 없겠지요. 저는 항상 있는 그 도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 답 ] 귀의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 문 ] 저는 항상 당신께 귀의하고 있습니다. 제가 따를 얼마간의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600마일이나 떨어진 데 사는 제가 어떻게 도움을 받겠습니까?
[ 답 ] 참된 스승은 내면에 있습니다.
[ 문 ] 제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해 줄 참스승이 필요합니다.
[ 답 ] 참 스승은 내면에 있습니다.
[ 문 ] 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스승을 원합니다.
[ 답 ]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스승이 자기는 내면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문 ] 수행의 성공 여부는 스승의 은총에 달려 있습니까?
[ 답 ] 예, 그렇습니다. 그대의 수행 자체가 그런 은총의 결과입니다. [카이발야]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오, 스승이시여, 당신은 항상 저와 함께 계셨고, 여러 생을 통해 저를 지켜보셨으며, 제가 해탈할 때까지 저의 길을 정해 주셨습니다."
진아는 필요한 때가 되면 외부적인 스승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항상 내면에 있으면서 필요한 일을 합니다.
[ 문 ] 쉬르디 사이 바바(Shirdi Sai Baba)의 어떤 제자들은 그의 사진을 숭배하면서 그것이 그들의 스승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들은 그것을 신으로 숭배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그들의 스승으로 숭배한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 답 ]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집중하는 힘을 얻습니다.
[ 문 ]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느 정도 집중하는 훈련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집중을 위해서도 스승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답 ] 물론입니다. 그러나 결국 스승(Guru)이란 집중(guri)을 의미할 뿐입니다.
[ 문 ] 생명 없는 사진이 어떻게 깊은 집중을 계발하는데 도움이 됩니까?
깊은 집중은 그것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스승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 같으시면 아마 살아있는 스승 없이도 완전에 도달하겠지만, 저 같은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 답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생명 없는 사진을 숭배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까지는 마음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탐구에 의해 자신의 진아를 알지 못하면 그러한 집중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그 탐구를 위하여 스승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 문 ] 스승이 자신의 힘을 제자에게 전해줌으로써 제자가 진아를 깨닫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 답 ] 사실입니다. 그러나 스승이 깨달음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깨달음의 장애물을 제거할 뿐입니다. 진아는 항상 깨달은 상태입니다.
[ 문 ] 깨달음을 구함에 있어서 스승을 갖는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까?
[ 답 ] 그대가 깨달음을 구하는 한 스승은 필요합니다. 스승이 진아입니다. 스승을 진정한 자기(진아)로 본다면 그대의 자아는 개인적 자아입니다. 이 이원성의 느낌(sense of duality)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무지의 소멸입니다. 그대에게 이원성이 지속되는 한 스승은 필요합니다. 그대는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스승도 역시 하나의 육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육체가 아니며 스승 또한 육체가 아닙니다. 그대는 진아이며 스승 또한 진아입니다. 이러한 앎은 이른바 깨달음에 의해서 얻어집니다.
[ 문 ] 어떤 특정인이 스승의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답 ] 그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마음의 평안과 그대가 그에게 느끼는 존경심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 문 ] 만약 그 스승이 자격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를 절대적으로 믿었던 제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됩니까?
[ 답 ] 각자가 그의 복력(福力: merits) 나름입니다.
[ 문 ] 제가 당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 답 ] 은총은 항상 있습니다.
[ 문 ] 그러나 저는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 답 ] 귀의하면 은총을 알게 될 것입니다.
[ 문 ] 저는 혼신을 다해 귀의합니다. 저는 제 양심을 누구보다도 잘 판단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은총을 느끼지 못합니다.
[ 답 ] 만약 그대가 진정으로 귀의했다면 그런 의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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