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커튼이 내려오는 지금,
..그때 빗속에서 울부짖던
..푸른 눈동자의 그녀가 다시 보입니다.
..작별의 키스와 함께 헤어지면
..이제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요.
..불꽃이 사그라져 가는 장작불처럼
..재만 남기듯,
..지난 추억만을 남기고 떠난,
..잊을 수 없는
..빗속의 푸른 눈동자 였습니다.
..언젠가,
..저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손잡고 함께 거닐고 싶습니다.
..결코 이별이란 없는 그곳이라면 말입니다.
..내 머리칼이
..이젠 몽땅 하얗게 바뀌어져 있는데,
..생애를 통하여 사랑했던
..모든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지금
..그녀가 있는
..하늘만을 쳐다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때 빗속에서 울부짖던 그녀를 말입니다. (JK)
.
☆아래 글을 읽어 가시면, 가사에 얽힌 사연을 짐작하시게 됩니다.
■이 노래는 단순한 이별 노래처럼 들리지만, 팝과 컨트리 음악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품고 있는 명곡입니다.
▪︎이 곡에 얽힌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1. 작곡가와 컨트리 전설들의 대물림
많은 분이 이 곡을 미국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윌리 넬슨(Willie Nelson)의 자작곡으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 이 곡은 1945년 프레드 로즈(Fred Rose)라는 작곡가가 만든 곡입니다.
■무명의 윌리 넬슨을 유명 가수로 만들게한 작곡가 로즈(Fred Rose, 1897~1954)는 미국 대중음악계, 특히 컨트리 음악 역사에서 '내슈빌의 대부(Father of Nashville Music Business)'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발자취를 남긴 거물입니다.
▪︎단순한 작곡가를 넘어 오늘날 미국 컨트리 음악 산업의 기틀을 세운 그의 인생과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독학으로 이뤄낸 천재 음악가
▪︎프레드 로즈는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철저한 독학파 뮤지션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자란 그는 십 대 시절 시카고로 넘어가 바와 클럽 등에서 팁을 받으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했습니다.
▪︎타고난 멜로디 감각 덕분에 1920년대부터 이미 팝 음악 작곡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뛰어난 피아노 실력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했습니다.
2. 내슈빌 최초의 컨트리 음악 출판사 설립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1942년, 유명 컨트리 가수인 로이 에커프(Roy Acuff)와 함께 '에커프-로즈(Acuff-Rose)'라는 음악 출판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당시 미국 음악계의 중심은 뉴욕이었고, 컨트리 음악은 시골 음악이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프레드 로즈는 내슈빌에 최초로 전문 음악 출판사를 세워 시골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정당한 권리와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회사를 시작으로 내슈빌은 전 세계 컨트리 음악의 메카(Music City)로 성장하게 됩니다.
3. 전설 '행크 윌리엄스'를 키워낸 위대한 멘토
▪︎컨트리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로 꼽히는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를 발굴하고 대스타로 키워낸 인물이 바로 프레드 로즈입니다.
▪︎로즈는 행크 윌리엄스의 거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의 음반 프로듀서이자 매니저, 그리고 공동 작곡가로서 그를 전력으로 지원했습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하거나 다듬어지지 않은 행크의 노랫말을 천재적인 감각으로 편집해 주며 수많은 클래식 명곡을 함께 탄생시켰습니다.
4. 명예의 전당 최초의 3인
▪︎그는 음악 산업에 헌신하다가 1954년, 5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1961년, 미국 컨트리 음악 협회(CMA)가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Country Music Hall of Fame)'을 처음 만들었을 때, 역사상 최초로 헌액된 단 3명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 (당시 최초의 3인은 컨트리 음악의 시조 '지미 로저스', 그의 제자 '행크 윌리엄스', 그리고 '프레드 로즈'였습니다.)
▪︎"우리 문을 두드리는 그 어떤 음악가도 단 1센트조차 사기당하지 않게 하겠다."
▪︎그가 출판사를 세우며 남긴 이 신조처럼, 프레드 로즈는 돈만 밝히는 사업가가 아니라 진정으로 음악과 음악인들을 사랑했던 따뜻한 예술가이자 멘토였습니다.
▪︎그가 남긴 맑고 쓸쓸한 멜로디의 <Blue Crying Eyes Rain in the>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윌리 넬슨등 여러 컨트리 가수들을 통해 여전히 전 세계 음악 팬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습니다.
○1947년 로이 에커프(Roy Acuff)가 처음 녹음한 이후, 컨트리 음악의 시조새라 불리는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 등 수많은 가수가 불렀던 옛날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이 오래된 노래의 진가를 세상에 제대로 증명한 인물이 바로 윌리 넬슨이었습니다.
2. 무명 가수로 주저앉을 뻔한 윌리 넬슨을 구한 노래
▪︎1970년대 중반까지 윌리 넬슨은 다른 가수들에게 좋은 곡을 주던 작곡가(펫시 클라인의 'Crazy' 등)로는 유명했지만, 본인이 부른 노래는 번번이 실패하며 가수로서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습니다.
♤1975년, 그때 Willie는,
▪︎아내를 죽이고 도망치는 탈옥수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콘셉트 앨범, 《Red Headed Stranger》를 기획하며 이 앨범의 핵심 트랙으로 <Blue Crying Eyes Rain in the>을 리메이크했습니다.
◇음반사의 반대:
▪︎당시 대형 음반사(콜롬비아 레코드) 간부들은 이 녹음을 듣고 경악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나 코러스가 전혀 없이, 윌리 넬슨의 낡은 어쿠스틱 기타 한 자루와 하모니카, 그리고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음반사는 "이건 완성된 음악이 아니라 데모 테이프(가녹음) 수준"이라며 발매를 반대했습니다.
◇배수의 진과 대역전:
▪︎하지만 윌리 넬슨은 자신의 음악적 직감을 믿고 편집권을 고수하며 발매를 밀어붙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화려함에 지쳐있던 대중들은 이 미니멀하고 쓸쓸한 사운드에 열광했고,
▪︎이 곡은 윌리 넬슨 생애 최초의 빌보드 컨트리 차트 1위 곡이자 그에게 첫 그래미 상을 안겨주며 그를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3. 엘비스 프레슬리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노래'
▪︎이 곡에는 전설적인 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에 얽힌 가장 슬프고도 유명한 사연이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평소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해서 1976년 자신의 앨범에 리메이크 버전을 싣기도 하고, 사석에서도 자주 불렀습니다.
▪︎1977년 8월 16일, 엘비스가 자택인 그레이스랜드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시간 전,
▪︎그는 집 안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지인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을 연주하며 불렀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Blue Crying Eyes Rain in the>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곡은 '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라는 슬픈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빗속에서 우는 푸른 눈동자,
..그리고 소낙비
.."황혼의 불빛 속에 나는 보았네,
..빗속에서 울고 있는 그 푸른 눈동자를.
..우리가 키스하고 헤어질 때, 나는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을 알았네."
▪︎윌리 넬슨이 나지막이 읊조리듯 부른 이 쓸쓸함에 가슴이 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