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놈... 그 녀석... 그 사람...
글쓴이 : 유워레
“한보라선생님! 따라오세요.”
보라는 급히 수첩을 들고 자신을 담당하는 이진태를 따라 황급히 교무실을 나섰다.
수인이가 오른손을 모아 <화이팅>을 입모양으로 만들어주는 걸 보면서도 손흔들어 보일 여유조차 없었다.
그냥 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는 보라는 요즘 같이 청년실업이란 말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자격증 하나라도
더 있어야한다는 주변 친구들에 말을 따라 교직을 신청했을 뿐이고 제일 친한 수인이가 졸업 전에 임용고시를
보겠다며 함께 교생실습을 가자고 졸랐다.
기왕이면 편하게 여학교나 아니면 눈이라도 즐겁게 남자고등학교로 하지 수인이가 구해온 학교는
영양가 절대 없는 남자중학교다.
그리고 오늘은 교생실습 첫날이다.
사실 보라가 이 실습기간을 빼고나면 앞으로 누구를 가르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보라가 처음 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한동안 꽤 유명한 대학에 합격한 보라에게 엄마의 친구들은
개인과외를 봐달라며 의뢰를 해왔었다.
그리고 대부분 한 달 후엔 안면있는 사이에 딱히 뭐라 말하진 못하지만 돈이 아깝다는 표정으로
과외비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어디가서 성격 좋다는 소리 못들어 본 보라는 자기 성질을 못이겨 결국 그만 두었다.
그리고 절대 누군가를 가르칠 일은 앞으로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보라가 그래도 아이들에게 선생이란 이름으로 또다시 한번 서게된 날이 오늘이다.
담임이 대충 귀찮다는 듯 소개를 하고 보라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교탁 위에 가지런히 손을 얹은 보라가 최대한 환한 미소를 보내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런데 저 구석에 자고 있는 아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 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보라가 그 생각을 할 때 담임인 이진태가 그 아이에게 다가가 뒷통수를 사정없이 날렸다.
이것도 아니잖아... 뭐 저렇게 심하게 대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지면서 보라는 인사를 끝냈다.
복사 몇 번 하고 시키는 일 하고 몇 번 따라서 이교실 저교실 수업하는 모습 참관하고 보라는 녹초가 되어갔다.
입은 즐거운 듯 웃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 정말 오랜만에 입어보는 치마도 불편하고 엄마가 새로 사준
이 구두는 또 왜 이렇게 아픈건지 모르겠다.
백화점에서 신었을 때는 착용감도 좋았고 백화점 여직원들 대부분이 이걸 신고 근무를 한다며 불편하면
가져오라던 점원의 말이 생각났다.
편하긴 개뿔...
그나마 뭔가 할 일이 있었을 때는 좀 괜찮았다.
이젠 다른 교생들과 수인이 그리고 보라가 나란히 교무실 구석에 앉아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 대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퇴근 시간만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자니 시간이 정말 가지 않는다.
아까 학교에 도착해서 교감이라고 소개를 받았던 온화한 미소를 띄운 할아버지가 다가온다.
‘다들 힘드셨죠? 자 이제 그만 가시고 내일 봅시다.’
그 말이 ‘이제 너는 자유다’라는 선언인듯 속으로 만세를 외쳐대며 수인과 보라는 ‘내일뵙겠습니다!’를 외치며
교무실을 빠져 나왔다.
학교를 빠져나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치려는데 아까 엎드려 자다가 혼나던 그 학생이 보인다.
체육교사인듯한 운동복 차림의 남교사에게 또 머리를 몇 대 맞고 있었다.
“애들 머리가 무슨 치라고 있는 줄 아나... 남학교는 원래 이러니?”
보라의 얘기에 수인이도 뒷굼치가 벗겨지고 다리가 아팠는지 구두 뒷굽을 접어 다시 신으면서 고개를 들어
체벌을 받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글세, 남학교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그래도 내 담당은 여자라 그런지 애들 때리고 그러진 않던데...
왜? 너 담당은 애들 막 때려?”
“응, 좀 과한거 같아서...”
“근데 다리 진짜 아프다... 수인아, 우리 저녁 먹고 가자!”
수인과 보라는 식당을 찾아서 좀 큰 사거리를 향해 갔다. 어차피 지하철을 타려면 그 쪽을 이용해야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참 특이한 동네다.
사거리는 누가봐도 대로에 고층빌딩 투성이인데 조금 안쪽에 있는 저 중학교 주변은 또 고급빌라들 투성이다.
저런 빌라는 모르긴해도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보였다.
가끔 운전기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열어주는 자동차 문을 통해 내리는 있어 보이는 점잖은 분들도 좀 있는 듯 했다.
보라는 수인이에게 물었다.
“여긴 부자동네는 부자동네인가보다...”
“당연하지! 강남이잖아. 강남.”
강남... 보라는 강북도 아니고 분당이나 일산도 아닌 평범한 경기도민이라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의 상징 강남은 이런 곳이구나 생각을 했다.
수인이 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둘은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피자를 먹고는 싶은데 살찔까봐 고민인 수인과 보라는 직원이 추천해준 기름이 제일 적다는 얇은 도우에
소스와 치즈 그리고 허브만을 올린 다이어트용 피자와 다이어트콜라 그리고 섬유질 섭취를 위해 샐러드를 주문했다.
방금 전까지 피곤해서 집에가면 쓰러질거 같다던 둘은 신이나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보라는 다음 주에 수인이가 해준다는 s대 남학생과의 소개팅이 잘못 되었다는 소식에 기분이 좀 나빴졌다.
s대 남자친구라도 만들어서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은 옛 남자친구에 대한 복수는 물 건너간거 같다.
보라는 그 소개팅을 위해서 2주간이나 정말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언젠가 다시 약속을 잡겠다니 다이어트를 좀더 오래 해야 할거 같다.
샐러드가 문제였다. 다이어트에 적당한 음식을 주문했고 양도 적당히 적었다. 그런데 샐러드는 무한리필이었다.
그러다보니 본전을 넘어서 한정없이 먹게 되는게 진리이고 지나치게 많은 칼로리를 섭취했다.
오늘 다이어트가 망했다는 것과 다이어트는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하며 피자집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s대 남자친구를 사귀면 옛남자 친구에게 확실한 복수가 될 것이라는 수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서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자신만 믿으라는 수인이에게 보라는 가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벗어나자 마자 아까 체육교사에게 머리를 맞고 있던 그 학생이 보였다.
중학생이 왜 오토바이를 몰면서 배달을 하나 싶어서 한소리 할까도 싶었지만 요즘 어린 것들 무섭다는데
학교도 아니고 정식 교사도 아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또 같은 배달원끼리 서로 위하며 지내면 얼마나 좋은가...
최소한 고2는 되어보이는 녀석이 그 아이의 머리를 또 툭툭치고 있었다. 아... 진짜!
욱하고 보라가 그 남자에게 다가가 자꾸 그 중학생의 머리를 치는 손을 잡았다.
물론 보라는 자신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생각을 하며 저자세로 사과을 해야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생각대로 고등학생은 맞는거 같은데 눈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뭐야?”
“얘네... 얘 선생인데...요...”
“완전 어이없어... 어디서 사기를 쳐! 너 얘 반반하다고 나잇값 못하고 따라다니는 족속이지?
요즘 정신나간 것들 많다. 자식, 너 좋겠다. 지난주에도 누님들이 줄서서 기다리더만...
이젠 연식 좀 있는 분들도 생겼냐?”
“그만해 형!”
완전 어이없는게 누군데 지금... 보라는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그 남자를 쏘아봤다.
그때 보라는 몰랐지만 뒤에서 수인이는 112를 누르고 있었다.
‘저기요... 여기...’
보라가 쏘아보자 그 남자는 재수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전화를 하고 있는 수인에게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따 전화질이야!”
수인이가 너무 놀라 전화를 딱 끊었다.
보라는 여차하면 사람쳐본 적은 없지만 저 놈 코를 때리고 학생을 구해서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중학생에게 한마디 만을 남기고 떠났다.
“너 앞으로 조심해."
수인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게 우스웠는지 한심했는지
미소인지 조소인지 모를 표정을 잠시 지은 중학생이 돌아서서 가게로 향했다.
휴... 죽는 줄 알았다. 수인도 많이 놀랐는지 보라에게 다가와 뭐라고 야단이다.
그때 수인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여기 112입니다. 방금 통화 중에 끊겨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수인은 큰 일이라는 표정으로 전화를 귀에 대고 허공에 인사까지 하면서 사과를 한다.
‘아니예요. 죄송해요. 거리에서 시비가 좀 있었는데 다 끝났거든요...’
보라는 피자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중학생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저건... 구해줬는데 인사도 없어! 아 재수없어...”
보라가 집에 들어가자 오늘 어땠냐며 엄마가 난리가 났다.
“아... 엄마, 나 너무 너무 피곤해. 나 좀 쉴게요!”
그리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다다다 뛰어서 올라가가 자신의 방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수인의 집은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갖고 있는 집인지라 2층에 있는 수인이 방 천장도 그러했다.
침대에 눕자 보라의 머리 위로 별들이 비스듬히 보이며 반짝거리고 있다.
“나 오늘 진짜 힘들었어. 니들은 어땠니?”
별들에게 말을 거는 자신의 모습을 누가 보면 정신나갔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 집으로 이사를 왔던
고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보라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사를 결정한 부모님을 원망하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좋아한 한 살 위 준성오빠가 너무 그리워 늑대가 달을 보고 울부짖듯 보라는
별을 보며 재잘거렸다.
하지만 얼마 못가 고등학교 농구부원이던 김진우라는 잘생긴 2학년 선배를 보자 준성은 보라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잊혀졌고 진우선배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담아 별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보라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가장 생각나는게 준성오빠였다.
첫사랑에 대한 의리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저 별들은 보라의 비밀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
보라는 별들에게 오늘 있었던 기분 나빴던 만남에 대해서 세세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궁금해하는 엄마를 외면하고 침대에 누워서 별에게 이야기를 해주는걸
만약 엄마가 봤다면 배신감에 치를 떠실지도 모른다.
어제보단 낫겠지란 생각을 하면서 보라는 학교에 가기 위해 현관을 나선다.
어제 신었던 구두를 꺼내놓은 건 분명 엄마일 것이다.
그걸 또 신고간다면 보라의 발뒷꿈치의 반창고 2개 정도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게 분명하다.
보라는 신발장을 열어 굽이 없는 플랫화를 꺼냈다.
이걸 신는다면 키가 작은 보라는 자기보다 큰 중학생들이 더 늘어날거란 걸 알지만 어쩌겠는가...
발뒷꿈치가 벗겨지다 못해 진물이나고 피가 나는 것보단 낫다.
확실히 신발이 편해서 그런지 오늘은 좀 편하다.
정자세로 멍 때리던 어제와는 달리 소곤소곤 눈치껏 수다도 떨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어제는 담당교사와 어색한 식사를 했지만
오늘은 교생들끼리 급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편하게 교생들끼리 밥을 먹는다는 것도 어제와는 다른 기분 좋은 일이다.
급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은 보라는 콩나물국을 보자 그냥 두고 자리로 돌아온다.
보라는 어릴 적에 콩나물 반찬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서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 말을 빌면 식탐이 많아서 뭘 잘 집어 먹었고 그날도 엄마가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손가락으로 콩나물을 왕창 집어 먹다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식탐이 많았는지는 모르지만 너댓살 때 일인데도 그 때의 괴롭던 기분이 아직도 온전히 남아 있었고
그 후로 보라는 콩나물을 먹지 않았다.
“국은 왜 안 먹어. 니가 지금 편식할 때야? 시험을 그 따위로 보고!”
뒤를 돌아보니 어제의 그 중학생이 또 머리를 맞고 있다. 이번엔 또 무슨 과목 선생일까?
“콩나물 못 먹어요.”
“못 먹긴 왜 못 먹어. 먹으라고 나온 걸 왜 못 먹어. 콩나물 못 먹으니까 머리가 나쁘지.”
또 머리를 툭툭치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콩나물 못 먹어서 머리가 나쁘면 보라도 머리가 나쁘다는 소린가? 이거 은근 기분 나쁘네...
시선을 느꼈는지 그 교사가 보라를 보았고 ‘헤’ 하고 보라가 웃자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다가왔다.
“어떻게 식사는 맛있어요?”
‘지가 만들었나...’
“네, 맛있어요.”
“근데 왜 우리 한보라선생님은 국이 없나요? 제가 갖다 드릴까요?”
‘내 이름 벌써 외운거야? 누구 담당이지? 난 모르겠는데...’
“아니요, 감사합니다. 전 콩나물을 못 먹거든요.”
허헛 헛기침을 한 그 교사는 머쓱한 표정으로 급식을 받기 위해 급식대로 갔다.
보라가 뒤를 돌아보니 그 중학생이 쳐다보고 있다.
뿌듯한 마음에 미소를 보냈더니 쌩하다...
식사를 끝내고 수인이와 둘이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았다.
스탠드 뒤로는 장미넝쿨이 제법 멋지고 그 뒤로는 담쟁이덩쿨이 온통 휘감은 벽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중학교 남자아이들이 쓰기엔 아까운 경치다.
이 좋은 경치를 감상해주는게 교생 둘 뿐이라니...
운동장을 둘러보니 시커먼 사내녀석들은 전부 농구를 한다, 축구를 한다, 치고 박는다 난리다.
‘정말 아까운 경치야...’
수인이는 어제 같은 과친구이자 남자친구인 지훈이랑 뭘 했기에 식곤증이라곤 하지만 남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잘 수가 있을까?
이 좋은 경치를 봐주는게 이제 그나마 한 명이 줄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오른쪽을 보니 그 중학생이 장미꽃을 바라보고 있다.
살며시 미소까지 띄우니 저녀석 제법 잘생겼다.
그러고 보니 맨 뒤에 앉는 저녀석은 175는 되는거 같았다.
저대로만 자란다면 20대 쯤엔 180도 넘겠구나 싶다.
‘좋겠다. 어린 나이에 벌써 키 걱정은 없으니...’
키에 대해서 콤플렉스가 한가득인 보라가 그렇게 생각을 하자마자 그녀석이 장미 꽃을 꺽는다.
‘뭐야, 코 앞에 <자연보호>라는 푯말은 장식인 줄 아나?’
하긴 이 학교 학생들은 죄다 부잣집 애들이라 그런지 뭐든 갖고 싶은게 있으면 다 갖나보다.
보라보다 좋은 물건을 갖은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것도 남학생들이 보라가 갖고 싶어하던 브랜드의 가방을 들고 다니거나 휴대폰을 들고 다녔다.
무엇보다 그 비싸다는 김인성의 콘서트, 그것도 VIP 표를 갖고 있는 녀석을 보았을 때
진심으로 ‘부러우면 지는거다. 그리고 나는 졌다’를 외쳤다.
부자 부모 만나서 일찍부터 호강하는 녀석들이 정말 부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렇지 저것도 생명인데 지가 왜 꺽어!
“야, 너 뭐하는거야. 그건 왜 꺽어!”
‘어쭈... 대답도 없고 인사도 없고 사가지 없는 녀석...’
그 중학생이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기가막힌 보라는 쫓아가 뭐라할까 하다가 그래봐야 곧 떠나실 몸,
교생인데 무슨 소리를 하겠냐 싶어서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참았다.
‘한보라, 성질 다 죽었다.’
교생실습 두 번째주가 시작되었다. 곧 종례시간이다.
오늘은 보라보고 종례를 알아서 하란다. 특별한 전달 사항은 없단다.
‘아니, 특별한 전달 사항이 있어야지 내가 뭐라고 말을 하지...
아무것도 없다면서 왜 나보고 종례를 하라는거야? 그냥 잘가라고 말하면 될까?’
보라가 교실 앞에 도착해서 심호흡을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다 쳐다본다.
뭐 아직 보라의 성질을 모르는 아이들은 커다란 눈에 키는 좀 작지만 예쁘장한 보라가 자신의 반 교생이라고
처음 봤을 때 우렁찬 환호를 보내줬었다. 그 고약한 녀석만 빼고...
아이들에게 미소를 보이며 교탁 위에 섰다.
뭐 자동화 시스템이 작동한듯 반장이 벌떡 일어나 ‘차렷! 선생님께 경레!’하자 아이들이 일제히 딱 맞춘 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또 누구 하나만 빼고...
“음... 오늘 특별한 전달 사항이 없다네. 청소... 청소 어느 분단이 하는거지?”
저희요! 그 녀석 분단이 손을 흔든다.
저 녀석 이름이 뭘까? 그러고 보니 이반 담임은 출석을 부르는 꼴을 못 봤다.
대신 들고온 출석부를 펼치며 보라가 말을 잇는다.
“근데... 내가 너희들 이름을 모르잖아. 출석 한 번만 불러도 될까?”
“네!”
보라가 불러주는게 영광인 줄 아는 것들이 호응을 해준다. 이름이 궁금한 한 녀석만 빼고...
“고광현”
“네”
“구자정”
“네”
- - -
“정기성”
“네”
“정인준”
“...”
“정인준?”
“여기요!”
그녀석이 귀찮다는 듯 또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을 한다.
‘정인준이구나. 죽었어! 정인준... 출석 부르는 거에도 딱딱 대답 안해준다 이거지...’
“조범식”
“네”
- - -
“한현준”
“네”
“다 불렀네. 청소조만 남고 다 가봐.”
와--- 하면서 아이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리고 청소분단 아이들이 각자 맡은 청소도구들을 챙겨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역시 자동화 시스템이다.
나참... 한 녀석만 빼고...
교생실습 셋째주가 되가 되었고 오늘도 보라는 채점을 하고 있다.
언제나 자신의 교생을 달고다니는 수인의 담당과는 달리 보라의 담당은 엄청난 양의 쪽지시험 채점을 맡기지 않으면
방목으로 일관했다.
가끔 30점이나 40점은 있었지만 백지에 ‘정인준’이란 이름 석자만 쓴 간 큰 놈이 담임에게 얼마나 매타작을 당했을지는
안봐도 알만했다.
아침 교원조회에서 들으니 내일은 체육대회가 있단다.
그러고 보니 채점만 하던 보라가 창밖을 내다보니 지난주부터 수시로 체육시간도 아닌 아이들이 반별로 불려나가서
내내 운동장에서 뭘하나 했더니 그게 체육대회 연습이었나보다.
내일은 운동화를 신고 출근을 할 수 있다는게 기쁘다.
체육대회날 아이들이 가져다 준 음료수와 간식에 보라는 입이 찢어지게 좋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라면서 교사와 학생의 다리 묶고 달리기가 있다고 한다.
운동이라면 자신이 있던 보라는 역시나 귀찮으니 보라에게 나가라는 담당이 말에 씩씩하게 출발선에 섰다.
다른 교생들도 대부분 담당 대신 출전을 했다.
이 한보라와 짝이 되는 영광을 누릴 반 대표가 누굴지 궁금해하면서 빨리 튀어오지 어디서 뭐하나 싶다.
잠시 뒤 담임이 빽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이 빨리 나가라는 아우성을 지르자 정인준 그녀석이 나왔다.
저 녀석은 아까 100m 달리기에서 1등을 하지 않았는가...
아마 계주도 뛸거면서 왜 이것까지 저 녀석이 대표일까?
모르긴 해도 귀찮아서 담임이 여러 아이들에게 골고루 출전을 시키겠다는 의지가 없이 정했을게 뻔하다.
어쨌든 바람처럼 달려나가도 쫓아오지 못하진 않겠다며 왕년에 달리기 좀 했던 보라는 인준의 오른쪽 다리와
자신이 왼쪽 다리를 묶었다.
‘이녀석... 지가 묶어야 하는거 아냐?’
옆을 보니 다 학생이 묶고 있는데 짜증이 밀려왔다.
성질이 나서 확 묶고 일어나 인준이와 어깨동무를 했다.
자식이 빨랑 빨랑 어깨에 손을 얹으면 되지 굼뜨다. 어깨동무가 완성 되자마자 ‘탕’하는 총소리가 들렸고
보라는 뛰어 나갔다.
처음에는 잘 뛰어진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출반선에서 벗어나고 의욕만 앞서고 구령도 맞추지 않은 둘은 스텝이 엉켰고
보라는 금새 중심을 잃었고 넘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보라가 넘어졌고 인준은 그런 보라를 달랑달랑 매달고 서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중심을 잡아 다시 앞을 보고 앞으로 가려고 했지만 서너 걸음 뒤에는
또다시 보라가 인준에게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하나! 하나! 하나!’ 구령을 붙여가면서 달려나간 3학년 2반 남자교생이 1등이었다.
달리기는 진짜 싫다던 수인이도 보라보다 앞에 들어갔다.
보라는 그렇게 꼴지가 되어 반으로 돌아왔고 아이들은 <뭐예요~~ 선생님 실망이예요~~~>를 외쳤다.
짜증이 났고 넘어질 때마다 보라의 옆구리에 끼웠던 손에 힘을 주어 일으켰던 인준으로 인해
갈비뼈가 나갈 지경이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진 계주에서 인준이 엄청난 역전승을 해줄 때까지 아이들의 실망어린 눈빛을 감당해야 했다.
교생실습 마지막 주가 시작되었고 이번주는 보라가 혼자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첫시간이라 20분 정도 수인의 담당이자 이 반 담임인 이진태가 지켜보고 있을 때는 수업이 참 잘되는거 같았다.
그날 나가야 할 분량을 거의 다 했고 남는 시간은 복습을 시켜주면 될거 같았다.
‘나 좀 가르치는거 잘 하는거 같은데?’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담임인 이진태가 조용히 문을 열고 뒷문으로 사라지고 계단을 내려갈 정도의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이들은 소란스러워졌고 보라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몇몇은 아직 귀를 기울이지만 대부분 난리다.
구석에 가만히라도 있어주는 그 녀석이 다 고맙다.
보라가 어떻게 조용히 좀 시켜보려고 하자 이것들이 더 떠든다.
“야! 조용히해!”
반장이 아니었다. 그녀석이다. 아이들 반응은 한 술 더 뜬다. <오----> 이건 왠 감탄사?
아이들이 내는 ‘니가 왠 일이냐?’는 뜻의 <오---->를 조금 길게하자 그래봤자 콩알만한 중학생 주제에
그녀석이 카리스마 작렬하는 눈빛을 날렸다. 눈빛 한번 쐈을 뿐인데 정말 조용해진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은 결국 ‘개똥도 약에 쓰려고 마음 먹는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란
생각이 들면서 ‘저녀석도 개똥만큼은 쓸만하네’라고 생각했다.
“자, 설명 다했고 우리 복습하자.”
<에이...> <아아...>
실망한 아이들이 또 소란해진다.
한 아이가 손을 들자 또 뭔소리를 할지 걱정을 하면서도 보라는 일어나라고 손짓을 한다.
“선생님!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그래 왜 안나오나 했다... 다들 없으면 하나 만들어 가라고 하더라...’
“첫사랑은 무슨... 됐어. 복습하자.”
<아아...> <어쩌구 저쩌구...>
이러다가 옆 방 선생님 쫓아오면 망신이다.
“알았어. 알았어.”
<와와!> <와아!>
“조용히 해.
보자... 너희 만할 때 이야기로 해줄까?
선생님이 좀 인기가 있어서 남친이 많았거든. 헤헤.
선생님이 살던 동네에 조그만 산이 하나 있었어.”
<에이... 지어낸 이야기다... 선생님 뭐예요...>
“아니야, 진짜야. 들어보라니까... 근데 그 산에 잠자리를 잡으러 갔었거든...”
보라는 잠자리나 나비를 잡아오라는 생물시간 숙제에 친구들과 정말 동네 작은 산에 갔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교 2학년에게 그런 걸 잡아오라고 하는 선생님이 또 있을까 싶지만
일단 숙제니까 잡아보기로 했다.
옆집 초딩 꼬마녀석에게 잠자리채까지 빌려서 산에 올랐지만 여자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건지
잠자리를 잡는건지 모르게 슬슬 돌아다니기만 하고 있었다.
그때 투명한 날개가 반짝반짝 빛나는 제법 큰 잠자리 하나가 날라가는게 보라 눈에 보였다.
다들 나비를 잡겠다지만 보라는 그 잠자리를 잡고 싶어졌다.
“앗싸! 이번엔 성공할거야! 갔다올게!”
친구들을 뒤로하고 보라는 잠자리를 찾아서 달려나갔다.
‘이놈의 잠자리는 지가 헬리콥터인줄 아나... 진짜 빠르네... 어쭈... 근데 또 약을 올려요...’
빠르긴 해도 보라의 시야에서 벗어나진 않고 맴돌아 대는 그 녀석을 보니 오기도 생기고
조금만 잠자리채를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이, 5cm... 아니 3cm만 컸으면...“
휘이익.... 잠자리채 안으로 그 얄미운 잠자리가 쏘옥 들어갔다.
아쉽게도 보라의 잠자리채가 아닌게 문제였다.
보라 뒤에서 나타난 또다른 잠자리채였다.
‘누구야!’
고개를 확 돌리니 준성라는 우리학교에서 제일 멋진... 멋진 오빠가 있었다.
그 잘생긴 외모에 당시엔 더 작았던 보라보다 한참 올려다보아야할 큰 그 오빠는 지나만 가도 광채가 났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혼절하게 만들었다.
“잡았다!”
멍 때리며 준성을 바라보는 보라를 발견하자 준성이 씽긋 웃었다.
“5cm나 3cm가 부족해 보여서 말야. 놓치긴 아깝잖아.”
“네...”
“줄까?”
“네?”
준성이 물어본 말은 잠자리를 보라에게 건네겠다는 뜻의 아주 짧고 간결한 ‘줄까?’ 한마디였다.
그렇지만 보라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를 어느 나라 왕자님의 외국말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그저 아름다운 멜로디같은 낯선 말이었다.
“형! 빨리 줘!”
키는 커도 대충 10살쯤 되어보이는 딱 못된 장난꾸러기 같은 조그만 녀석이 나타나
이미 나비와 잠자리가 여럿 들어있는 빨간 뚜껑의 플라스틱 병을 열려고 하며 말했다.
“하하. 이건 얘 꺼야.”
보라를 가리키며 준성이 말했다.
그 동생은 심술이 잔뜩 난 표정으로 보라를 보았다.
“너도 숙제냐? 그럼 너도 이람초등학교 다니냐?”
아... 이 무슨 굴욕이란 말인가...
같은 학교 1년 선배인 준성이야 화장실 가려고 한번 일어나도 여학생들이 그림자처럼 감싸고 다녀서
자신을 못 알아본다고 치자.
감히 어디 새까맣게 어린 초딩이 반말을 찍찍하며 중학교 2학년 씩이나 된 나에게 초딩이냐고 묻는단 말인가...
그것도 내 사랑 준성선배 앞에서...
“초딩 아니거든!”
“헤헤. 그럼 유치원생이 나만하단 얘기냐?”
‘헐... 이젠 초딩도 아니고 유치... 유치원?’
무엇보다 당연히 보라가 초등학생일거라고 믿고 있었던 듯한 준성의 표정이 더 서운했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럼, 중학생이야?”
‘선배... 나 선배랑 같은 학교 다니거든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또 저 잘생긴 준성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아무 말도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보라는 큰 눈을 마구 굴리며 그저 준성을 볼 뿐이었다.
“보라야! 잡았냐?”
친구들이 쫓아왔다. 대부분 친구들은 보라보다 10cm 정도는 더 컸다.
그리고 유난히 어려보이는 보라와는 달리 그 중엔 우리반 여자 끝번호이고 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진희도 있었다.
더 슬픈 것은 준성오빠가 진희를 안다는 사실이었다.
“아... 너 우리학교 2학년이지?”
‘봐라... 봐라... 아주 입이 찢어진다 찢어져.’
준성의 한마디에 진희는 평소 보라가 들어보지 못한 높고 가는 목소리로 아까 순대를 우적거리던 그 입으로
보라가 세수 좀 하고 다니라며 눈꼽을 떼어준 그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어머, 준성선배, 저 알아요?”
게임은 끝났다.
나의 첫사랑 준성선배에게 나는 저 꼬마랑 똑같은 초딩으로 보였고 진희는 보라가 보기에도 중학생이 너무한거 아니가 싶은
쭉쭉빵빵 글래머였다.
거기다가 진희는 얼굴도 조숙해보였고 무엇보다 몸은 초딩이지만 마음만은 사춘기는 시작된 여자인 자기가 봐도
도톰한 그녀의 입술은 매력적이었다.
그 잘생기고 멋진 준성선배는 잠자리를 꺼내어 주머니의 비닐 봉지에 담아 보라에게 건넸다.
그 뿐이었다.
준성선배는 진희와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자신의 동생의 과제물로 잠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준성선배에게 말을 좀 붙여볼까 싶어서 다가갔고 보라는 그대로인데 다들 몰려가서
혼자 왕따처럼 서있는 꼴이었다.
눈 앞에 보라를 안봐줘도 되는데 봐주는 초딩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거 구멍 뚫지 않으면 잠자리 죽어.”
준성 선배의 말을 들으면 그래도 3~4학년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이 놈은 초등학교 2학년이다.
고작 9살 밖에 안된 녀석이 7살이나 많은 보라에게 반말을 하고 있는 있는 것이다.
‘이 놈이... 이게 어디서 반말이야?
지금 돌아가는 상황보면 몰라?
나 중학생이라고 중학생...’
이란 말이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면 자신의 모습이 더 초라해질거 같았다.
“너도 그냥 통에 담았잖아!”
뚱하게 대답하는 보라에게 그 거만한 초딩은 답답하다는 듯 또 반말을 지껄인다.
“답답하네. 봐봐. 난 뚜껑에 구멍을 뚫었잖아.”
‘우띠! 또 반말... 너 죽었어.’
“줘봐.”
초딩이 자신의 플라스틱 통을 허리와 팔사이에 끼우고 보라에 비닐봉지를 가져간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통에 구멍을 뚫을 때 썼던 것으로 보이는 송곳을 꺼내 ‘폭’하고 구멍을 낸다.
“됐다! 자 받어.”
끝까지 반말로 일관하는 이 싸가지 제대로 없는 초딩을 어떻게 죽여줄까 생각하고 있었다.
“가자!”
준성이 그 초딩에게 외쳤다.
좋아하는 준성선배의 목소리에 조건반사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기 위해 보라는 화를 내려던 것도 잊고
헤벌쭉 준성을 바라보았다.
“받으라니깐!”
보라의 손을 잡아 비닐봉지를 쥐어주고 그 초딩은 준성의 뒤를 쫓아 갔다.
그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면서...
그 짧은 다리와 보라의 다리 길이가 별 차이가 없다는 슬픈 현실 속에 보라를 남겨두고...
사실 보라가 준성선배와 사귄 것도 아니고 그 산에서의 대화가 전부였다.
마치 준성선배가 남친이라도 되는 듯 맘대로 이사를 결정한 부모님을 원망하며
별을 보고 부르짖었던 보라지만 사실 그게 전부이다.
그래도 잊지 못할 준성선배의 멋진 모습...
보라는 침을 꼴깍 삼키고 그 옛추억에서 나와야만 했다.
기대를 가득 담은 수많은 눈동자들이 보라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음... 그러니까 그 산이 있었는데 산책이 하고 싶어서 친구들하고 조용히 대화를 하면서 그 산으로 갔었어.
그때는 여름방학이라서 산에 꽃도 많았거든. 그 꽃을 보면서 산책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말이야.”
짜증난다는 표정의 인준이가 조그맣게 ‘산책 좋아하네’를 말하는 것을 보라는 보지 못했다.
“그 산에 올라갔다가 우리학교에서 제일 멋진 오빠를 봤어. 얼마나 설레이던지...
마침 그 오빠는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하늘을 보고 있었고 내가 다가가자 돌아봤어.”
이번에도 웃긴다는 표정의 인준이가 ‘우수에 젖어서 잠자리를 어떻게 쫓았겠냐? 저거 소설 쓰고 있네.’라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보라는 듣지 못했다.
“그 선배는 나에게 나비를 잡아 주었고 우린 그때부터 사귀게 되었지.”
진짜 잘 논다는 표정으로 인준이 ‘잠자리가 나비면 지는 선생이 아닌 학생이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보라는 듣지 못했다.
다만 인준의 잘 논다는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걸 본 보라는 가만보니 인준이 준성을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종이 울렸다.
방금 전까지 보라의 첫사랑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했던 15세 사랑스러운 제자들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와’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어쭈, 이것들 봐라. 감히 이 한보라의 아름답고 순수했던 첫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뭐 어쩌겠는가... 지금은 성질 다 죽이고 온화한 미소를 보여야할 교사가 아닌가...
비록 교생이라도 참아야지...’
보라는 미소를 지으며 반장을 쳐다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난 반장은 “차렷, 선생님께 경례!”를 외쳤고 보라가 그 교실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 난리를 친다.
오히려 조용히 보라를 바라보는 인준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보라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첫사랑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거였다.
담당하는 이진태교사의 수업을 모두 대신 들어갔던 보라는 그날 첫사랑 준성에 대한 그 보석같이 소중한 이야기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얘기해야만 했다.
3학년 5반에서 한보라가 첫사랑 이야기를 했다는 소문은 쉬는 시간 단지 10분 사이에 온 학교에 퍼져있었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반에서도 그 첫사랑 이야기로 꼭 시간을 떼워달라는 청원을 해댔던 것이다.
보라가 들어간 마지막 시간에는 준성과의 추억은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살이 붙고 로맨스가 더해져
실제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단지 여름 들꽃이 가득했던 그 동산만이 그대로 남아 있었을 뿐이다.
보라가 교무실로 들어서자 한시간 먼저 일과가 끝난 수인이도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괴롭힘을
당했는지 녹초가 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괜찮았어?”
보라가 묻자 수인은 교무실이란 사실을 망각할 순 없기에 최대한 낮추고 그러나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끔찍했어. 첫 시간에는 지렁이 모양 젤리가 교탁 위에 있더니 세 번째 시간엔 진짜 지렁이가 있었어.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는...”
“수고들 하셨습니다. 내일 마지막이군요. 내일은 우리 저녁 식사나 같이 합시다.”
다가와 온화한 미소로 말을 하시는 수인의 담당교사의 말에 보라는 뒷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도대체 교탁 위에 무엇이 있었을까?
학교를 나가면 수인에게 마지막 시간에 교탁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농구공이 또르르 굴러왔다.
3학년 5반 웬수들이다.
“선생님, 공 좀 던져주세요!”
보라가 농구공을 통통 튀기자 아이들이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니, 뭘 이걸 가지고...’
순간 으쓱해진 보라가 치마를 입은 모습 그대로 드리블을 해서 골대에 슛을 쏘자 공은 골대에 쏘옥 들어갔다.
사실 보라는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2년동안 부쩍 키가 컸었다.
중학교 2학년까지 145cm가 조금 넘던 보라가 160cm를 그나마 넘은건 그때 15cm를 커버렸기 때문이다.
운동을 좋아하던 보라가 농구에 소질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일주일에 한번 수업이 있는 농구부에
지원을 해서 들어갔었다.
남녀공학이던 고등학교의 감독과 코치까지 갖춘 진짜 농구부는 남자팀만 있었고 잘생긴 남학생들의 광산이었다.
체육관을 같이 사용했기 때문에 그들을 특별활동 시간이면 대부분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농구를 해서 대학을 간다던가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2부터는 1년에 1cm도 제대로 커주지 않는
키가 야속했다.
보라가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유난히 많은 것도 농구를 할때 아무리 환상적인 드리블을 해서 돌파를 해도
작은 키에 번번히 막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리블을 가르쳐 준 진우가 떠올랐다.
김진우...
보라에게 진우는 달콤한 첫키스와 배신감 그리고 드리블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아이들이 ‘와’하고 감탄을하며 이것저것 물어대는 통에 진우에 대한 추억에 빠질 틈이 없이 꽤 오래 잡혀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수인이를 보고 퇴근하려고 나왔던 체육교사가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줬고 둘은 학교를 벗어날 수 있었다.
“보라야, 저쪽으로 가면 너희집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던데 나도 오늘은 저쪽으로 가서 택시를 타야 할거 같아.”
교문 앞에서 평소 다니던 길과는 반대방향을 가리키는 수인을 보고 보라는 놀리듯 말했다.
“지훈이 보러 가는구나? 니들 요즘 진짜 진도 너무 나가는거 아니냐?”
사실 수인이와 지훈이는 캠퍼스 커플로 사귄지가 벌써 3년째 들어간다.
그래도 우르르 몰려다니던 친구들 틈에서 별 진전이 없던 둘 사이는 올해 초 보라에게 수인이가 볼을 붉게 물들이며
지훈이와 첫키스를 했다는 고백을 한 뒤로 수상해졌다.
더 이상 친구들과 함께 만나지도 않았고 학교에서도 자꾸 둘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이번에 같이 교생실습을 나오지 않았다면 수인과 붙어있는 시간도 아마 없었을 거다.
둘이 도대체 얼마나 깊은 사이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유... 그래 지훈이 보러 간다. 그러니까 저쪽으로 가자.”
보라는 집으로가는 직행버스가 있다는 소리에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수인과 대학교 입학 전에 안면은 없었지만 옆동네에 살고 있는 지훈이가 집까지 가는 직행버스를 알려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도인 보라의 집을 가기 위해선 총 1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지하철을 3번 갈아타고
마지막엔 집앞까지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해서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살자며 아버지가 고른 그 집은
공기도 좋고 예뻤지만 차가 있는 아빠를 빼곤 엄마와 보라에겐 문화와의 단절을 의미했었다.
수인과 수다를 떨면서 보라가 걸어가고 있는데 손수레에 하나 가득 파지를 실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보인다.
등도 굽고 나이도 많으신거 같은데 저렇게 큰 수레를 끄는게 얼마나 힘들까란 생각에 보라는 수레를 밀어드렸다.
그러자 수인도 곁에서 거들었다.
“놔둬요. 옷버려요.”
“괜찮아요. 저희가 저 앞 버스정류소까지만 밀어드릴게요.”
괜찮다고 몇 번 거절을 하시던 할아버지도 싫지 않은지 다시 묵묵히 수레를 끄셨다. 그때 그녀석이 나타났다.
“아, 이런거 끌고 다니지 말랬지?”
“인준아... 너 학교 끝나는 시간 되기 전에 빨리 가려고 했는데 저 앞 수퍼에 상자가 많이 나와서 말야. 학교 앞이라 창피하지?”
“누가 창피하데?”
인준이가 할아버지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가 보라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수레를 끌고 가버린다.
수레를 밀어주던 보라와 수인이 떨어져나갈 만큼 빠른 속도로...
키가 큰 인준이 옆에서 할아버지는 죄지은 표정으로 인준을 바라보다
돌아보며 잘가라는 듯 손을 흔드신다.
보라와 수인도 손을 흔들어보이고 멀어져가는 그 수레를 바라보았다.
“쟤 수업시간에 인사도 잘하고 친절하던 그 녀석이네...”
수인이가 말하는 친절한 아이가 설마 저 녀석이진 않을거라고 생각하며 보라는 수인이와 버스정류소를
향해 말없이 걸어갔다.
그곳에서 수인이가 택시를 타고 떠난 후 보라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고보니 이쪽의 풍경은 평소 보라가 다니던 반대쪽 사거리와는 사뭇 다르다.
보라가 살고 있는 동네처럼 오래된 작은 가게들이 즐비하고 사거리도 좁고 약간은 지저분한 분식집도 보인다.
그리고 방금 인준이 수레를 끌고 사라진 쪽에는 <파지, 고철>이라고 쓰여진 고물상도 보인다.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인준이 나온다.
할아버지 손에 주인이 건넨 지폐가 들려있다.
앞장 선 인준이 걸어 올라가는 언덕 쪽으론 아주 허름한 집들이 시작되었고 고개를 들어 더 멀리보자
한참 위쪽엔 정말 낡은 판자집들도 보였다.
“강남에... 이런 동네도 있구나...”
마침 도착한 타야할 번호의 버스를 타고 유리창 너머로 한없이 올라가는 인준과 그 뒤를 힘겹게 올라가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인준이 다시 내려와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을 했다.
집에 들어온 보라는 좀전에 본 인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강남에 그렇게 가난해 보이는 동네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밥 먹으라는 엄마에게 입맛이 없어서 씻고 먹겠다던 보라가 샤워를 하고 내려오자 아빠가 막 들어오고 있었다.
“아빠! 식사하셨어요?”
“아니. 우리 보라는?”
“아빠오면 먹으려고 안 먹었지.”
“그래? 아빠 밥 먹지 않고 오길 잘했네?”
“아유... 징그럽게... 빨리 손 씻고 들어와요.”
아빠에게 팔짱을 끼고 아양을 떠는 보라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핀잔을 주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보라는 이번엔 엄마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씻고 나니까 배고프네. 맛있는거 줘.”
“에유... 징그러. 빨리 앉아.”
말은 징그럽다면서 다 큰 딸의 아양이 좋은지 엄마가 웃으며 국을 뜬다.
보라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쏙 앉는다.
그러자 손을 씻은 아빠가 들어왔고 부녀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보라아빠는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이 집도 싸게 샀지만 벌써 두배가 훨씬 넘었고 서울 쪽에 있는 세를 놓고 있는 건물도 하나 있다.
“아빠, 강남에 승리중학교 알아요?”
“알지...”
“거기... 부자동네지?”
“승리중학교 주변? 글세...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왜요?”
“원래 거기가 이름만 강남이었거든.”
“앞에 엄청 번화가던데?”
“그러니까... 10년 전쯤에 개발을 했는데 그 쪽은 잘사는 동네가 맞지.
그리고 개발이 되지 않은 쪽은 땅값은 비쌀지 몰라도 누가 나서서 싹 밀고 다시 짓지 않는 한 엉망이지.
그러다보니 거기서 오래 산 사람들은 원래 돈도 없었고 어떤 사람들은 무허가로 살고 있고...
그러니까 거기 땅이 있는 사람도 땅만 있는 가난한 사람... 땅도 없이 사는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이지.”
“그렇구나...”
“근데 우리 보라가 왜 그게 궁금하지?”
“아, 우리 학교 애들이 다 부자는 아닌거 같아서요.”
“그렇겠지. 승리중학교는 위치가 그래서 그 두지역 아이들이 섞여 있을테니까...
아빠 친구도 그쪽에 살고 있는데 학교 문제 때문에 고민하더라고...”
“왜요? 가난한 애들이 뭐 어떻다고?”
“그러게 말야, 근데 부모는 또 그렇거든...
어쨌든 거기에 대학진학률도 좋은 강남에서 유일한 k외고도 있고 해서 거기 있고 싶은데
중학교가 영 아니라는거지...
그리고 k외고에 못 들어가면 일반고등학교를 다녀야하는데 주변 일반고등학교가 하나는 명문이지만
하나는 형편이 없다고 하더라고... 집 위치가 애매해서 재수없으면 똥통학교에 들어가게 된다나...”
아빠의 설명을 들은 보라는 생각이 많아졌다.
묵묵히 식사를 끝낸 보라는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창밖의 별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수레를 끌던 인준의 모습이 또 떠올랐다.
교생실습이 끝나는 날 회식자리에서의 일부 교사들의 변신은 놀라웠다.
나중에 일반 회사를 다니게 된 후 그게 그렇게 놀라울 변신은 아니란걸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보라의 눈에는 술먹고 잘 노는 아저씨 아줌마들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내일이면 저사람들이 학생들 앞에서 카리스마를 날리며 수업을 할거라는 생각에 웃음도 나왔다.
잘 못 마신다고 사실대로 말했지만 믿어주지를 않는다.
자꾸 주고 더 준다.
죽겠는데 술 한잔에 얼굴이 벌개진 수인이는 내버려두고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변한다는 건 모르는지 잘 마시면서 내숭이란다.
죽겠다.
화장실로 간 보라는 변기에 꾸역꾸역 먹었던 것들을 뱉어냈다.
그러고 보니 술...
이 죽일 놈의 술을 마지막으로 마신건 김현성, 그자식하고 헤어진 그 날이었다.
김현성을 생각하자 세상에 남자들은 다 죽일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첫사랑 준성선배를 빼고나면 보라의 남자친구들은 다 나쁜 놈이었다.
감히 순결한 보라의 첫키스를 가져간 고등학교 진우선배...
그 놈은 자기 이웃집 동생을 임신시키고 퇴학을 당했었다.
‘우린 아직 어리잖아’를 외치는 보라를 호시탐탐 넘어뜨리려던 그 쳐죽일 진우에게 입술만 준건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김현성...
김현성 그놈은 보라가 대학교 때 장난삼아 새내기 때도 나가지 않던 과미팅을 나갔다가 만난 경영학과 복학생이었다.
키가 좀 작긴 했어도 보라의 첫사랑 준성오빠를 꼭 닮은 모습에 첫 눈에 반했었다.
준성오빠가 목소리가 좋아서 노래를 잘 부를거라고 혼자 별들과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처럼 김현성,
그자식은 노래도 잘 불러서 보라의 마음을 다 가져가버렸다.
그리고 그자식은 키스도 잘했다.
그런데 석달 전에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헤어지자고 했다.
그래도 백일반지도 나눠끼고 곧 만난지 만으로 1년된다고 큰 이벤트는 아니어도 뭔가 이벤트를 해주겠지
기대를 하고 있던 보라가 혹시 주말인 오늘이 그 날인가 싶어서 신경써서 이쁘게 하고 나간 날이었다.
김현성 그자식 보라고 오글거려서 평소엔 절대 입지도 않던 프릴 잔뜩 달린 원피스를 입고
수인이에게 도움을 받아서 화장도 했었다.
그런데 커피숖도 아니고 종로 한바닥에서 그자식이 헤어지자고 했을 때 죽일 놈의 자존심 때문에 잡지도 않고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돌아왔었다.
돌아오는 길에 헤어지자고 말할거면서 종로까지 불렀다고 욕을 엄청 했었다.
그녀가 수업을 마치고 힘들게 집에 들어간걸 아는 놈이 최소한 헤어지잔 말은 그녀 집 쪽으로 와서 해주던가
전화로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허둥지둥 옷 빌리고 귀찮다는 수인이네 집까지 가서 화장하고 힘들게 시간 맞춰서 종로에 도착했었던게 억울했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렇게 이별을 통보 받고 보이는 술집에 들어가 혼자서는 처음으로 정말 죽지 않을만큼 술을 마셨었다.
경기도인 집까지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마당 한복판에 대자로 뻗어 자고 있던 보라였고 집에 들어가 엄마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었다.
그리고 더 끔찍한 숙취로 일주일을 고생했었다.
그리고 보라는 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아주 이 선생님들이 날을 잡았다.
-웩웩-
‘탁탁탁’
등을 두드려주는 손길이 고맙다.
‘탁탁탁’
보면 모르나... 토를 다했는데 이제 더 하려고 해도 나올건 똥물 밖에 없을텐데 그만 좀 치지...
멈추라는 말을 할 기운도 없고 그냥 손사레를 하며 보라가 돌아봤다.
‘헉! 정인준...’
“야! 너 여기서 뭐해! 여자화장실에 왜 들어왔어?”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인준이가 턱으로 가리킨 곳에는 남자 소변기가 있었다.
“남녀 공용이거든...”
‘어라, 이게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없다가 여기선 반말이네...’
소매로 입가를 쓰윽 닦자 더럽다는 듯 인준이 쳐다본다.
“야! 너 중학생이 왜 술집에 있어!”
“여기 바로 옆이 PC방이잖아!”
‘어라, 이게 계속 말이 반토막이다.’
“야!”
인준이 소변기에 쉬를 하러 돌아서자 보라는 뭐 저런게 다있나 하면서 그냥 뛰어나와 버렸다.
그러자 뒤로 혼잣말하는 인준의 소리가 들려왔다.
“더럽게 손도 안 씼냐... 진짜 더럽다...”
손을 씻고 인준이 나와 보라를 정말 더럽다는 표정으로 한번 더 보고 PC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뭐... 저런... 그럼 사내녀석 오줌 싸는데 그 옆에서 손 씻냐?”
보라는 신경질적으로 들어가 손을 씻고 자신의 옷에 밴 냄새를 킁킁 맡다가 헛구역질을 하고는
다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걸어가는데 제대로 걸어지지도 않고 술은 점점 올라서 보라는 미칠것만 같다.
그래도 저 안에 핸드백도 있고 수인이도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 정신줄을 부여잡고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여니 술이 올라서 얼굴은 벌겋지만 정신을 놓지 않고 있던 수인이가 보라를 보자마자 밀고 나온다.
“김수인선생! 어디가!”
평소 조용 조용하던 수인의 담당 교사가 술기운을 빌어서 평소와 다른 우렁찬 소리를 낸다.
“화장실요!”
보라를 끌고 나온 수인은 보라 손에 보라의 핸드백을 쥐어준다.
“야, 너 더마시면 죽을거 같아. 나도 죽겠고... 우리 튀자.”
고깃집 문이 열리자 수인은 ‘엄마야!’를 외치고 그대로 도망가 버렸다.
술에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보라는 벽에 턱 붙어버렸고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으로 고깃집을 바라보자
그냥 화장실을 향해가는 모르는 아저씨들이다.
“우띠... 아니잖아...”
다시 앞을 보니 잘생긴 준성선배가 서있다.
“준성선배....”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고 보라는 준성선배의 가슴팍으로 머리를 박고 정신을 놓는다.
몸이 붕 떠올라 준성선배의 등에 업혀졌다.
7년이 넘었건만 어떻게 하나도 변한게 없냐는 생각이 들게하는 그 잘생긴 목선...
오랜만에 옛교복에서 느껴지는 감촉...
그 감촉이 좋아서 준성선배의 등판에 얼굴을 대고 비벼본다.
“하지마!”
“선배 화났어요?”
“... ...”
얼굴을 비벼서 뭐라던 선배가 화났냐는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다.
아무말 없는 준성선배가 정말 화가 났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하는데 멈춰선다.
그리곤 무거운지 준성선배는 약간 수그리고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손에 다시 힘을 주어 보라를 올린다.
몸이 반동으로 좀더 올라가자 준성선배의 잘생긴 옆모습이 보인다.
“선배 정말 보고 싶었어요...”
“... ...”
“저 3개월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있는데 아까 그자식이 와서 나 좀 데려갔으면 했어요.
진짜 그자식 왔으면 선배 못 볼 뻔했다. 큭큭...”
“왜 헤어졌는데?”
“몰라요. 제가 싫어졌나보죠. 만난지 1년 밖에 안됐는데 싫증이 났나?
제가 키도 작고 별 볼일 없어서 그랬나?”
“니 키가 어때서? 니가 작으면 대한민국 여자들 다 거인이냐?”
“헤헤헤헤. 그래도 예쁘진 않잖아요. 선배도 진희만 좋아하고는...”
“너 이뻐.”
“... ...”
준성선배가 이쁘다는 말이 기분 좋기도 하고 술도 확 깬다.
가만... 지금 세월이 7년이다. 8년인가?
7년이든 8년이든 그만큼이 지난 지금 준성선배가 교복을 입고
예전 모습으로 관심도 없던 보라를 업고 간다는게 말이 되는가?
더구나 준성선배가 자신에게 이쁘다고 말을 할 일이 있을까?
“준성선배 맞아요?”
“... ...”
따지는 듯한 보라의 질문에 멈춰선 준성선배가 긴장한 듯 하다.
갑지기 등 뒤에 보라가 목에 손을 둘러 잡고 얼굴 높이로 기어올라온다.
“이거 꿈이죠? 꿈이 아니고서야 준성선배가 어떻게 날 업어주고 나보고 이쁘다고 해?
헤헤. 나 꿈꾸고 있는거구나. 이거 내 꿈이니까 내 맘이다.”
보라가 준성의 볼에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다시 축 늘어져 잠이 든다.
인준이 멈춰선 곳은 보라의 집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서는 정류장이다.
버스가 오자 인준은 보라를 업은채로 올라탄다.
학생교통카드를 대고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두장을 꺼내어 넣는다.
잔돈이 ‘또르르’하고 나왔지만 등에 업은 보라 때문에 꺼낼 수가 없다.
꺼내기를 포기하고 빈자리로 향한다.
보라를 창가 쪽에 앉히고 통로 쪽에 앉아서 보라의 얼굴을 바라본다.
‘속눈썹이 더 길어진거 같다. 입술이 더 붉어진거 같다. 가슴이...'
인준이 확 고개를 돌려버린다.
‘툭 툭 툭’
소리가 들려 보라를 바라보자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다.
잠시 망설이던 인준이 보라의 머리를 잡아 자신의 어깨 위에 놓는다.
편안한듯 비비적거리며 보라가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이다.
인준은 살며시 자신의 입술을 보라의 이마에 대어본다.
아침 햇살에 눈을 떠보니 보라는 또 자신의 집 안 잔디밭 위에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다.
엄마가 내려다보고 있다.
엄마 손에는 우유와 신문지가 들려있다.
튀어야 산다!
집안을 향해 미친듯이 뛰는 보라의 등 뒤로 우유팩의 모서리가 꽂힌다.
‘아악!’
북어국을 떠주는 엄마의 뒷모습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나타내준다.
그래도 석달 전 경험이 있어서인지 저번 보다는 낫다.
“너는 어떻게 여자아이가...”
“그래도 엄마 정신줄 꽉 잡고 있다가 대문을 들어선 순간 정신을 놓는다는게 기특하지 않아요?”
“너는! 하긴... 그거 하나 용하다. 빨리 먹고 올라가 자!”
“넵!”
보라는 시원한 북어국을 들이킨다.
살겠다.
그런데 어젯밤에 준성오빠가 데려다 주는 꿈을 꾸었다.
혹시 누가 데려다 주었나?
방으로 돌아온 보라는 수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란한 컬러링이 나오다가 전화가 연결된다.
“수인이니?”
-아, 보라야. 너 괜찮아?-
“괜찮아. 어제 니가 우리집에 데려다 주었니?”
-아니, 난... 그냥 일이 있어서 먼저 나왔어.-
“그래? 그럼 누구지?”
-선생님들이겠지.
지훈아, 하지마! 통화 중이잖아.-
“헐... 미안하다. 끊을게.”
-응... 다음 주에 학교에서 보자.-
보라는 징그럽다는 듯 휴대폰을 멀찍이 던진다.
수인랑 지훈이랑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큭큭 웃음도 난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 창 밖을 바라본다.
별들도 없는 그 환한 밖을 보면서 보라가 말한다.
“별들아... 나 어제 준성선배 봤다... 니들 자냐? 준성선배 봤다고...”
그후 보라는 꽤 괜찮은 대학을 심하게 아쉬운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아쉬운 성적과는 다르게 수인이와 결혼한 똑똑하고 잘난 지훈이 덕분에 꽤 괜찮은 회사에 들어왔다.
이 회사는 나름 대기업의 계열사이고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다 괜찮은 출신성분을 갖고 있는 남자들이다.
그러면 뭐하냐...
다 그림의 떡이다.
유부남 아니면 입사 전부터 여자친구를 옵션으로 달고 있었다.
간혹 아직 혼자인 남자가 있었지만 혼자인 남자에겐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s'대 남자친구는 둘째치고 보라는 그동안 쭈욱 혼자였다.
그리고 보라가 이 회사를 다닌지 벌써 10년이 다가오고 있다.
시집을 가면 수인이처럼 집에서 살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수인이는 올해 학부모가 되고 보라는 아직도 이 회사에 있다.
별볼일 없는 부서로 발령받고 4년동안 박혀 있다보니 위에 상사들이 수시로 날라갔다.
지훈이가 가끔 놀러를 와서 커피도 사주고 하는데 벌써 부장인 지훈이와 이제 막 주임딱지를 뗀 보라는 대리이다.
그 엄청난 신분차이를 극복하고 친구라고 커피도 사주고 선임과장에게 보라를 칭찬하고 있는 지훈이가 고마울 뿐이다.
오늘도 지훈이는 커피를 뽑아주고 갔다.
아침에 시작된 생리통이 밀려오자 들고 있던 종이컵을 살짝 으스리며 보라가 인상을 쓰고 있다.
회의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팀장과 눈이 맞자 고통을 참으며 씨익 웃어보인다.
“한대리?”
“네! 팀장님”
“우리부서에도 신입이 배정되었네.”
“신입이요?”
팀장이 서류를 보면서 말을 잇는다.
“k외고에 s대를 나온 친구구만... 어쩌다 우리 부서에 오는지 모르겠네...”
“제 밑으로 사람이 드디어 들어오네요.”
보라가 신이나서 말하자 어디선가 과장이 휙 돌아보며 한마디를 한다.
“그래서 한 대리가 진급 되었나보네.”
‘지훈이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지 저 과장 놈이 또 빈정댄다.
아, 진짜 짜증나서...’
처음부터 과장이 보라에게 까칠했던건 아니다.
보라는 4년이나 이 부서에 있었고 팀장을 빼고는 대부분 정리해고 대상자인 상사들이 수시로 이 부서로 왔었다.
그런 부서의 특성상 지나치게 많은 과장들이 있었고 지난 달에 발령 받아서 온 과장만 2명이다.
마흔이 넘어서도 미혼인 최과장이 1년 전에 이 부서로 왔을 때 눈에 보이는 흑심으로 엄청나게 보라에게 공을 들였다.
보라가 절대 마음을 열지 않을 듯이 보이자 그 친절과 배려는 잔인한 갈굼으로 바뀌었고 보라는 저 인간 때문에
사표를 쓴게 열 번도 넘는다. 그리고 저 독한 인간은 정기인사이동 때 살아남아서 여전히 보라를 갈구고 있다.
사표를 제출하지 못한 이유는 오직 아직 시집을 못간 딸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사랑으로 퍼부어대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지금은 회사 근처에서 따로 생활을 하지만 그녀가 사표를 썼다는게 알려지면 바로 경기도에 있는 집으로 끌려들어갈 것이고
그 엄청난 잔소리를 매일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잡아오는 그 많은 양의 선자리를 모두 빛내야 할 것이다.
그건 저 인간을 보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고 그래서 보라는 꾸욱 좀더 견디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정기 인사 발표에서 대리 진급 소식을 들은 월요일부터는 저 인간의 잔소리도 좀더 견디기 쉬워졌다.
사실 크게 기뻐하지도 못했다.
잠시 모시고 있던 과장이 둘이나 떠나갔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 동안 이 부서에 과장만 5명이었고 다들 누가 칼바람을 맞을건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과장과 김과장이 나란히 봉투를 받았다.
분위기가 그러다보니 진급 축하 회식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위에서 모임이 끝나면 10시에는 내려온다니까 한대리가 잘 좀 가르쳐 주도록...”
“네...”
보라는 9시 35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힐끔 바라보고 배가 너무 아파서
신입이 도착하기 전에 진통제라도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는 김에 화장실에 들러 양이 너무 많은 이 복통의 근원도 좀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지갑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그때 처음보는 잘생긴 얼굴 하나가 보인다.
아마 신입사원 들 중에 하나 일거 같다.
저렇게 잘생긴 신입이 밑에 있으면 일할 맛이 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던 중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었다.
벽을 붙잡고 보라는 ‘으윽...’소리를 내었다.
그 잘생긴 얼굴이 다가온다.
“괜찮아요?”
가까이서 보니 보라보다 아무리 줄여서 봐도 최소한 5살은 어려보인다.
눈이라도 호강하자 싶어 키가 큰 그를 보기 위해 고개를 올려들고 열심히 눈에 담는다.
그남자의 180은 당연히 넘을거 같은 길이감에 잘생긴 얼굴을 보자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 하다.
하긴 닮은 배우나 가수가 하나 쯤은 꼭 있을 법하다.
“괜찮아요. 신입사원인가 보죠?”
그남자는 신입사원 특유의 긴장감을 얼굴에 드러낼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여유있게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대답을 한다.
잘생긴 것들은 목소리도 좋더라...
“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보라는 씨익 웃어보이고 화장실로 향했다.
벽을 살짝 살짝 잡아가면서 걸어가고 있는 그녀 뒤로 기회가 있을 때 좀더 볼걸 그랬나 싶은
아쉬운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그 좋은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선배님...”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본 보라 앞에 생리대를 들고 그 잘생긴 얼굴이 천천히 다가온다.
‘망했다.’
일을 보고 자리로 돌아온 보라 옆 빈자리에 아까 보았던 그 잘생긴 신입사원이 앉아있다.
보라가 다가가자 벌떡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본다.
이 잘생긴 신입사원이 정녕 나의 후임이란 말인가?
지난 10년간을 이 회사에서 버티어낸 보람을 온 몸 구석 구석 세포 하나 하나가 만세를 부르며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다만 아까 그의 손에 들려있던 생리대가 마음에 걸려온다.
왜 그랬을까... 자학을하게 만든다.
과장이 일어나 귀찮다는 듯 두 사람을 서로 소개시킨다.
들어와서 인사할 때 받지 어디 갔다 왔냐는 표정으로 보라를 쳐다보고 그 잘생긴 신입사원에게 보라를 소개한다.
“이쪽은 보란지... 분홍인지하는 한 대리고...”
진짜 싫다 싫다 하니까 초딩들이나 하는 이름 가지고 장난질까지 하는구나 싶다.
“이쪽은 정인준...”
‘정인준?’
순간 그 잘생긴 얼굴이 낯이 익은 이유가 떠올랐다.
“정인준? 승리중학교 정인준?”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정인준입니다.”
보라가 반가운 마음에 팔도 툭툭치고 등도 툭툭치고 하자 인준이는 난처한 기색이다.
신입사원이 왔다.
당연히 회식이다.
이젠 제법 술도 마시는 보라도 즐겁다.
신입사원 노래 시켰더니 노래도 잘한다.
인준이가 저렇게 멋지게 컸다니 정말 누가 데려갈건지 아깝다, 아까워...
노래를 부르고 돌아온 인준이 보라 옆에 앉자 가슴이 떨리기까지 한다. 미친거다.
“너 근데 언제 k외고에 s대까지 간거야?”
“하하. 그냥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요.”
“에이... 어떻게 그냥 한번 해보고 싶다고 공부가 되고 s대에 들어가냐?”
“정말이예요. 저 그리고 공부 잘했었어요.
형 죽고 집도 망하고 엿 같았는데 모의고사 망치고 야단 맞으니까 정신 좀 들더라구요.
삐뚫어져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살다간 제가 좋아하는 사람도 못 만날꺼 같더라구요.”
“하긴... 얼굴만 잘생겼다고 요즘 아이들이 넘어오진 않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한 사람이란 뜻이야, 좋아할 사람이란 뜻이야?
뭐 어쨌든 정인준 진짜 제대로 컸는걸?”
“저 이만하면 괜찮은 남잔가요?”
“어머! 얘가 그걸 말이라고... 너, 완벽해!”
엄지 손가락까지 치켜올리며 보라가 웃는다.
그런 보라를 보며 칭찬받아 기분 좋아진 듯 보이는 인준이의 모습이 참 잘생겨보인다.
눈빛도 그윽해보이고...
아...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얼굴도 달아오르니 이대로 앉아 있을 순 없다.
인준을 환영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보라의 진급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 않은가...
오늘의 주인공인 보라도 노래 한 곡은 불러야겠다.
보라가 노래를 부른다.
최근 회식에서는 나이 서른 셋인 여자가 고래고래 불러대는 노래를 사랑스럽게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인준이 그런 비슷한 눈빛을 보라에게 보여준다.
보라는 드디어 자신이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주인공인데 우리 인준씨랑 한 대리 듀엣곡 좀 들어볼까?”
팀장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등을 떠밀어 함께 노래를 할 때는 정말 가슴이 떨리고 설레였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한참 어린 신입사원, 그것도 한 때 제자였던 인준이 아닌가...
보라는 술을 많이 마신 자신을 자책했다.
그리고 그 자책으로 좀더 많은 술을 마셨다.
보라가 희미하게나마 술이 깨었을 때 어떤 남자의 등에 업혀 있었다.
정신은 들어오고 있는데 입이 열리지가 않는다.
“걱정 마세요.”
“진짜 한 대리 집도 알아요?”
“예. 전부터 알던 사이라서요.”
“그래요, 그럼 부탁할게요.”
‘팀장님의 목소리다...
그리고 이 좋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지?
아무튼 참 따뜻하고 편안하다.
너무 졸리다. 좀 자야겠다.’
다시 스르르 잠이 들어버린 보라를 택시에 태우고 인준도 탄다.
기사에게 보라의 집 주소를 얘기하다가 ‘툭 툭 툭’ 소리에 보라를 보자 유리창에 열심히 머리를 박고 있다.
언젠가 보았던 그 모습에 미소를 지은 인준이 보라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로 가져온다.
보라는 인준의 팔뚝까지 잡고 얼굴을 부비며 더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인준은 살며시 보라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택시에서 내려진 보라는 누군가 자신을 앉히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모아 눈을 떠본다.
눈앞에 보라의 집 대문이 보인다.
그리고 그 대문 옆 담장을 잡고 키가 큰 남자가 휙하고 넘어가는게 보인다.
잠시 뒤 대문이 열리고 걸어나온 그 남자가 다가온다.
“정...인...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보라의 모습에 당황한 듯한 인준이 뒷머리를 만지고 서있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보라의 옆으로 천천히 벽에 기대어 앉으며 대답을 한다.
“깼어요?”
보라는 순간 잠자리가 담긴 비닐에 구멍을 뚫어주던 9살 꼬마가 떠올랐다.
자신을 보고 절대 말을 하지 않던 학교에서의 15살 인준이도 떠올랐다.
그리고 등을 두드려주고 말을 반토막 냈던 인준이가 떠올랐고 자신을 등에 업고 버스를 타던 인준이 떠올랐다.
“너... 너... 우리집 어떻게 알아?”
“우리집 기대주 형이 교통사고로 죽고 실망한 아빠가 회사를 제대로 간수 못해서 망하고 감옥에 가버렸어요.
홧김에 가출을 했었는데 일주일짼가...
종로에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는데 어떤 여자가 술이 떡이 되어서 기어다니고 있더라구요.”
“... ...”
“아는 여자라 가방을 열어보니까 신분증에 주소가 있더라구요.”
“... ...”
“10년이면 잊을만도 하지만 두 번이나 와본 곳이라 그런지 기억이 나더라구요.”
“인준이... 너...”
툭 한 대 치려는 보라의 손을 잡고 인준이 키스를 했다.
그 키스가 끝나고 고개를 돌렸을 때 열린 대문 앞에 서있는 보라의 엄마와 아빠가 서 있었다.
보라는 이제 막 생긴 어린 남자친구를 어떻게 부모님에게 소개를 해야할지 고민스러웠다.
첫댓글 아~~인준이 귀여워요~~<ㅡ<
결국... 잘됐다는 건가요??ㅋㅋ 훗날 번외가 있었으면 좋겠네요~~ㅋ 잘봤습니다~!!!
헐진짜쩐다 역시초짜가아니셨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떻게 이렇게 잘써요??ㅎㅎ완전짱이다>_<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멋진녀석이였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늦게나마읽고갑니다!!!!항상느끼는거지만너무잘쓰십니다!!!!> 0<
완전재밋는데댓글이없어서아쉬워서쓰고가요ㅠ_ㅠ완전짱 인준이멋잇당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