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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속의 불교 ▒▒ 스크랩 부처님경전 사경의 유래를 알고싶습니다 바로 부탁드립니다
달마 추천 1 조회 178 14.06.22 06:1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성불을 이루고자 하는 승속을 막론하고 할 수 있는
한국불교의 대표적 신앙 형태를 아래와 같습니다. 스님들을 제외한 현대인
들은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기에 적절히 자신에 맞은 수행법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1. 기본사항: 삼귀의(三歸依), 도량석(道場釋), 조석예불(朝夕禮佛), 수계(受戒)

2. 수행형태: 참선(參禪), 기도(祈禱), 염불(念佛),독경(讀經), 사경(寫經),
주력(呪力), 참회(懺悔)

========================================================================

* 삼귀의(三歸依)

불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의 대상은 바로 불(佛),법(法), 승(僧)의
3보(三寶)입니다. 모든 의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합장배례할 때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귀의불양족존: 歸依佛兩足尊)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귀의법이욕존: 歸依法離欲尊)
거룩한 승단에 귀의합니다 (귀의승중중존: 歸依僧衆中尊)

하고 소리 내어 외웁니다.

석존께서 부처가 되신 초기에는 많은 제자들과 재가신도들은 석존께 예를
드리며 이 삼귀의를 외우고 석존으로 부터 직접 출가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출가자와 재가신도가 점점 늘어나서 먼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야 하는 등 많은 불편이 있음을 아시고 불편과 무의미한 노력을 덜기
위해 제자들에게 그대들이 직접 출가를 허락하고 계를 주라고 이르시었습니다.

「비구들이여 먼저 수염과 머리를 깍고 가사를 입히고 그대들의 발에 예를
하고 합장하고 엎드려(저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저는 바른 법에 귀의합니다.
저는 상가에 귀의합니다)하고 세번 외우게 하고 출가를 허락하라.」

이것을 삼귀의례(三歸依禮)라고 합니다. 모든 불교도가 귀의삼보(歸依三寶),
즉 불.법.승 삼보(三寶)에 의지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믿는 것이 곧 불자로서
자각하는 제일조건이며 믿음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아무리 교리를 많이 알고
아무리 훌륭한 수행을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삼귀의의 정신이 없다면 아무
의의가 없습니다. 삼귀의례는 불자로서의 자각이며 신앙의 고백이며 계를
받는 작법(作法)으로써 설해진 것입니다.

첫번째의 불(佛)은 물론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여 부처가 된 석존을 일컫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밝은 지혜와 바른 길을 보여주고 고뇌에서 벗어난 참다운 행복을
일깨워 준 석존에 대한 지극하고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귀의란, 글자 그대로 되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대승불교 시대를 거쳐 후세에 내려오면서 과거불 , 미래불 등 佛의 개념이
복잡해지면서 귀의불의 불은 이런 모든 부처와 수많은 보살까지를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의 법(法)은 석존이 설한 가르침, 즉 바른 법(진리)을 뜻합니다.
이 법도 후세에 내려오면서 그 뜻이 확대되어 후세에 성립된 모든 경전,
논장(論藏)까지를 포함해서 일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진실한 가르침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세번째 승(僧)은 산스크리트어의 상가의 음역인 승가(僧家)를 생략한 말입니다.
즉 본래는 비구와 비구니들의 집단을 일컬었으나 재가신도까지를 포함한 사부
대중(四部大衆)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석존을 믿고 따르는 무리를
뜻합니다, 석존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출가승. 재가신도들이 서로 믿고
의지 함으로써 화합중(和合衆)을 이룩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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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량석(道場釋)

사찰에서 새벽에 치르는 의식의 하나.

사찰에서 새벽 예불을 하기 전에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다.
현재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새벽 3시에 한다. 새벽에 목탁을 두드리며 경내를
돌면서 찬가나 게를 읊는데, 이 때 읊는 것은 신묘장구대다라니와 사방찬(四方
讚)·도량찬(道場讚)·참회게(懺悔偈) 등이다. 또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
살을 염하기도 하고, 《금강경》 구절이나 조사(祖師)들의 게송을 외우기도
한다.
도량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 외에, 잠들어 있는 천지만물을 깨우며 일체 중생
들이 미혹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또 맺힌 것을 푼다는
의미도 갖는다. 이 때 목탁은 약한 음에서 서서히 높은 음으로 올렸다가 내리
기를 반복한다. 이것은 일체 중생이 갑자기 놀라지 않고 천천히 깨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의식이 끝날 무렵에는 법고와 목어·범종을 차례로 치며, 절
안에 있는 모든 대중이 법당에 모이면 아침 예불을 올린다.
명칭은 옛날 중국에서 스님들이 짚고 다니던 석장(錫杖)에서 유래한다고 해서
도량석의 ‘석(釋)’을 ‘석(錫)’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인도에는 현재 이런 의식이 없고 문헌 자료도 전하지 않으므로
인도보다는 중국에서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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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예불(朝夕禮佛)

절에서 아침과 저녁에 부처님께 예배하는 의식으로 수행의 공식적인 시작
이며 하루를 반성하고 마감하는 의식이다. 절의 모든 대중은 이 의식에
꼭 참석해야 한다. 구체적인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침예불 때에는 도량석을 돌 동안 대중은 모두 일어나 세면을 하고 법당에
들어가 우선 불전에 삼배를 드리고 조용히 앉는다. 도량석이 끝나는 것과
함께 낮은 소리로부터 종송이 시작되고 이어서 사물(四物)이 울린다. 대개
북을 치고 대종을 아침 28회, 저녁 33회 타종하고 목어와 운판을 친다.

부처님을 모신 불단의 상단에 예불할 때에는 차나 옥수(玉水)를 공양하고
다게례(茶偈禮)를 한다. 아침예불에는 차를 올리는 다게례를 행하고 저녁
예불에는 향을 올리는 오분향례(五分香禮)를 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요즘에는 아침예불에도 오분향례를 행하는 경우가 많다. 오분향례란 부처님이
갖추신 다섯 가지 공덕을 찬탄하는 의식인데, 향을 피워 공양을 올리면서
그 공덕을 다섯 가지 향에 비견하여 찬탄하는 의식이다.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광명운대(光明雲臺) 주변법계(周邊法界) 공양시방무량불법승(供養十方無量
佛法僧)

헌향진언(獻香眞言) 옴 바아라 도비야 훔

다게례나 오분향례를 한 다음에 온 대중이 함께 예불문에 맞추어 삼보에
귀의한다는 장엄한 예불을 드리게 된다. 예불문의 첫 문구인 '지심귀명례
(至心歸命禮)'는 지극한 마음으로 자기의 생명을 던져 귀의하는 예절이라는
뜻이다. 그 다음 예불문의 세부적인 내용은 삼보에 귀의하고,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에 귀의하고, 전등해 온 일체의 선지식들께 귀의하며,
그 덕을 찬탄하고 원을 세우며, 온 중생에 회향(廻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어 축원문을 낭독하게 된다.

불단의 바로 아랫단인 중단에는 대개 {반야심경}을 독송하여 끝나게 된다.
이후는 각 사찰에 맞게 참선과 정근 등의 일정을 진행한다.

<예불문>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무량불법승

헌향진언 - 옴 바아라 도비야 훔.(3)

지심귀명례 삼계대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지심귀명례 대지문수 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내지 천이백제대아라한 무량 자비성중.
지심귀명례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미진수 제대선지식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
유원무진 삼보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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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계(受戒)

수계의식은 승가의 계율을 받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의식으로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불교
에서 비구승이 되기 위해서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아야 한다.
흔히 행자(行者)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이는 속인으로 법복을 입고 삭발
하고 비구의 계를 받기 위해 수행을 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인데, 구족계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비구라고는 할 수 없고 비구승의
아래 단계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 정식으로 비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아보자.
승가의 실천 규범인 계율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는 책들을 율장(律藏)
이라고 부른다. 앞서 말한 행자가 수행 기간을 다 거쳤다고 바로 율장에서
규정한 구족계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으로 우바새계(優婆塞戒)와
사미계(沙彌戒)를 차례로 받은 후에야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 구족계를
받을 때에는 먼저 화상(和尙)을 정해야 한다. 화상이란 새로 수계자가 승가에
들어갈 때 그의 지도자를 말한다. 즉 승가에 새로 들어온 제자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사람이 화상이다. 이 화상이 되기 위해서는 비구가 된 지 10년
이상이 지나야 하며, 제자를 지도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수계를 할 때에 화상은 먼저 새로운 수계자에게 삼보(三寶: 佛, 法, 僧)에
귀의하게 하여 오계(五戒)를 받게 한다. 이 오계에 의해 우바새가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삭발을 시키고 오조가사(五條袈裟)와 칠조가사(七條袈裟)를
받고, 다시 십계(十戒)를 받아 사미가 된다. 이 때 우바새의 5계나 사미의
10계는 비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비구의 구족계는 개인적으로 받을 수가 없고, 5인 승가 혹은 10인 승가에서
받아야 한다. 그래서 화상은 새로 계를 받는 사람을 위하여 자기 외에 10인의
비구를 모셔다가 구족계의 수계식을 집행한다. 이 수계식이 경전의 가르침
대로 올바르게 집행되었을 때 드디어 그 사람은 한 명의 비구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며, 평생 불법을 수행하며 청정한 삶을 살 것을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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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선(參禪)

불교 수행법으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역시 참선이다. 참선은 전통적
으로 훌륭한 선사들이 이 방법을 통해서 도를 얻고 인격을 완성했다. 요즘은
많은 불자들이 참선을 자신의 수행법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이 참선에도 크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지관참선(止觀參禪法)이다.

이것은 마음의 온갖 산란한 번뇌를 그치고 고요하고 맑은 슬기로써 모든 존재
(萬法)를 비추어 보는 것을 말한다. 흔히 관법(觀法) 혹은 비파사나(Vipasyana)
라고 말하기도 한다.

둘째는 묵조선(默照禪)이다.

이것은 참선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묵묵히 앉아서 모든
생각을 끊고 행하는 것이라는 데서 나온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화두를 갖지
않고 참선을 하는 방법을 묵조선이라고 한다.

셋째는 간화선(看話禪)이다.

이것은 화두(話頭)를 근거로 하여 참선하는 방법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달마
조사로부터 전해 내려온 화두를 들고 좌선하는 방법이다. 간화선은 한국 불교
의 대표적인 참선법이다.

선은 우리의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켜서 일사불란한 상태로 몰입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은 인간의 실존과 만나는 일이다. 자신의 진실한 생명을 바로
보는 방법으로 참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선의 본래 목적은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있다. 자신의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는 것이 선의 목적이다. 마음의 본질을 깨닫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 바로
참선이다. 선은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이라고 해서 어떤 상황
에서든지 가능하다. 걷고 머물고 앉고 눕는 사람의 기본적인 동작에서부터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한 어느 상태에서도 참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앉아서 하는 선 수행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해서 흔히 좌선(坐禪)을
많이 행하고 있다.

참석의 방법 중 우리 나라에서는 화두를 들고 행하는 간화선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화두란 쉽게 말해서 하나의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간화선은 철저한 문제의식을 마음속에 새겨서 참구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속에 오로지 문제의식만을 남겨 놓고 다른 어떤 것도 떠올려서는
안된다.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든지 오직 자신의 문제 삼고 있는 화두
만을 새겨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새긴다는 말은 곧 의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선을 행할 때는 아주 고요하고 맑은 생각으로 몰입해야 한다. 참선은 인생의
근본 뿌리를 찾는 일이기 때문에 진지하고 철저히 행해야 한다. 전문적으로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삼 개월 혹은 일년 이상씩 철저히 모든 일상
사를 다 배제하고 몰입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마음을 집중
시키는 훈련을 계속 쌓는다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 기도

기도란 다겁생에 지은 죄업과 현생에 길들여진 잘못된 가치관과 습관을 부수고
자신의 업장을 소멸시키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원을 세우고, 세속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을 올곧게 살아가는 힘과 믿음을 키우는 것이 바로 기도다.

기도는 올바르게 살려는 자신의 의지에 대한 신념과 의지에 대한 신념과
불보살님에 대한 가피력을 입으려는 믿음의 표현이다.
불교의 기도는 다른 종교와 차이점은 무작정 절대자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발원(發願) , 즉 다짐의
의미가 강하다.

1. 기도는 업장을 소멸하는 것

기도는 중요한 수행법의 하나로서 매우 신비롭고 미묘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기도'라는 말은 그대로 빈다는 뜻이다. 중생들은 그 능력에 한계가 있으며
죄업은 무겁고 복덕이 엷은 관계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온갖 재난과 재앙이 그 뒤를 쫓고 있다. 이러한 고난, 장애,
재앙은 다 그가 날 적부터 지니고 태어난 전생의 업보(業報)와 업장(業障)
때문이다.

우리들은 기도를 통해서 불, 보살의 가피를 입게된다. 그리고 그 가피력에
의해 타고난 업보와 업장을 소멸하고 복덕을 성취해서 모든 고난, 장애,
재앙에서 벗어나 하는 일과 구하는 바를 뜻대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덕(福德), 지혜(智慧), 자비(慈悲), 만덕(萬德)의 무한한
능력을 갖추신 부처님과 보살님께 진심으로 귀의하여 예배, 공양, 참회,
발원함으로써 불, 보살의 가피력을 입고자 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염불과 주력도 그와 같이 죄업을 소멸하고 지혜 복덕을 성취하는 것이지만
기도는 보다 직접적으로 불, 보살의 가피력에 의하여 죄업을 소멸하고
복덕을 성취하는 길이다.

부처님의 자비는 우주에 충만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기도는 마치 텔레비전의 안테나처럼 우주에 충만한
부처님이 자비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성으로 염불을 하거나
기도를 하면 중생의 마음속에 겹겹이 쌓여 있는 어두운 먹구름이 걷치고
마치 태양과 같은 지혜 광명이 빛나는 것이다.

2. 기도의 방법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의식(삼귀의, 공양, 절, 참회, 염불)을
갖추는 것이 예로부터 전해 오는 통례이다.

(1) 불, 보살님께 지성으로 귀의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다.

어떤 하나의 불, 보살이나 또는 많은 불, 보살님전에 한 마음을 기울여
귀의한다.

(2) 두 번째는 공양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공양은 좋은 향을 사르고 등불을 밝히면서 청수다(淸水茶)를
올리며 꽃, 과일, 쌀 등을 불, 보살님 전에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향과 등과 차만을 공 양하거나 또는 향 하나만을 공양해도
무방하다.

(3) 세 번째는 예경이다.

어떤 하나의 불, 보살님이나 또는 많은 불, 보살님께 지극 정성으로 예배
하는 것이다. 3 배, 108배, 1,000배 이렇게 불, 보살님께 예배를 올려야 한다.

(4) 넷째는 참회하는 것이다.

이 참회 의식에는 비로자나 참법, 미타참법, 관음참법, 보현참법, 지장참법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기도법회에 참회법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참회는 진실로 업장을 소멸하고 복덕을 성취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이 참회법은 기도와 독립시켜서 실 행하는 것도 좋다.

(5)다섯째로 염송이다.

어떤 하나의 불, 보살이나 많은 불, 보살님의 명호를 지극정성으로 부르며
정근하는 것 이다.

=========================================================================

* 염불(念佛)

마음 속으로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등은 부처님을 염원하는 소리입니다.
즉 부처님께 귀의하고 모든 것을 부처님의 뜻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염불인
것입니다. 염불에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생각하는 법신염불과 부처님의
공덕이나 모습을 마음에 그려 보는 관상염불, 그리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염불이 있습니다.

≪아함경≫에는 염불의 종류를 세 가지, 여섯 가지, 열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
니다. 염불을 지극 정성으로 하면 번뇌가 사라져 극락세계에 태어나거나 열반
에 이를 수 있다고 하고, 대승경전에는 삼매에 들어 염불하는 염불삼매를 설
하고 있습니다. 염불은 죄를 없애고 삼매중에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은 물론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길 발원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난다고 합
니다. 그래서 ≪아미타경≫에서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도 죽음에
임박해졌을 때 하나의 마음(일념, 一念)으로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서방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염불은 중국에 이르러 그 방법과 내용이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모든 부처님을 마음 속에 떠올리는 통염불과 특정한 부처님만을 떠올리는
별염불로 구별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구분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고 신앙하는 일이 일반인들이 하기 쉬우므로 나중에는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는 것만을 염불이라고 했습니다.

염불은 쉽게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므로 수행법으로 호응이 높았고,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교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극락왕생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수행법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시대 원효스님이
무애박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지성으로 부르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친 이래 염불은 불교인의 일반적인 수행법입니다.

염불하는 방법은 부처님을 그리워하면서 지극히 부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하며 부처님과 함께 살기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염불에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염불을 하면서 자신의 소리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산란해져서 입으로는 염불을 하지만 마음속
으로는 마군, 외도, 잡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부르는 동작
하나에도 정신을 모아 흐트러짐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진정한 염불인 것입니다.

염불은 부처님을 염하는 것입니다. 이법(理法)으로서의 부처님을 염하는 법신
염불(法身念佛)과 부처님의 공덕이나 부처님의 상(相)을 마음에 떠올려서 보는
관념염불(觀念念佛), 부처님의 이름을 입으로 부르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있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예배 찬탄하며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면서 그
명호를 염불하게 되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마침내 열반의 도리를 얻게 되는
데 이것은 관념염불과 칭명염불을 합한 방법입니다.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에 왕생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칭명염불을 중시하나
역시 부처님 공덕에 대한 관념을 여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음에서 형상을
그리거나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마음은 수행에 큰 장애가 됩니다. 염불은
큰 소리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소리를 내어 염불하는 고성염불
에는 다음의 10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1. 수면이 없어지고 <일자공덕 능비수면(一者功德 能批睡眠)>
2. 천마가 두려워하며 <이자공덕 천마경포(二者功德 天魔驚怖)>
3. 염불소리가 주위에 퍼지고<삼자공덕 성변십방(三者功德 聲邊十方)>
4. 삼악도의 고통이 쉬며 <사자공덕 삼도식고(四者功德 三途息苦)>
5. 잡다한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며 <오자공덕 외성불입(五者功德 外聲不入)>
6. 염불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육자공덕 염심불산(六者功德 念心不散)>
7. 용맹스러운 정진심이 나며 <칠자공덕 용맹정진(七者功德 勇猛精進)>
8. 제불이 환희하시고 <팔자공덕 제불환희(八者功德 諸佛歡喜)>
9. 삼매력(三昧力)이 깊어지며 <구자공덕 삼매현전(九者功德 三昧現前)>
10. 정토에 왕생하게 됩니다. <십자공덕 왕생정토(十者功德 往生淨土)>

염불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염불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부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감사한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한 염불도 삼매에 드는데요. '염불삼매'라합니다.

염불삼매(念佛三昧)는 부처님을 염원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마음의 안락입니다.
평안과 안정된 마음으로 염불(念佛)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억념(憶念)
하여 마음의 통일·안정이 실현된 상태입니다. 또,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것입니다.

* 염불의 종류

1. 칭명염불(稱名念佛)은 입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며, 마음으로 부처님을
염(念)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정토 신앙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우는 것을
칭명이라고 하고 아미타불을 간절한 마음으로 상기하는 염불은 번뇌를 방지
하기 위한 대중적인 신앙 방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염불이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을 기억 또는 상기하는 것이며 부처님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처님에 대해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염불입니다.

'아미타경'에서 설하는 바에 의하면 아미타불의 이름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여 한 가지로 통일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죽은 후에 아미타불의 세계인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후의
왕생은 차후의 문제이고 마음이 통일된 그 자체로 이미 왕생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2. 천도염불(天道念佛)은 일명, 충송염불(? 送念佛)이라고도 합니다. 진수
(鎭守: 토지나 절을 지키는 신)의 사두(社頭), 절의 뜰등에서 우선 발원문을
읽고, 북을 치고, 징을 울리고, 염불을 하고, 함께 춤춥니다. 해가 돋음에
시작하여 일몰에 이르러 끝납니다.

이 행사는 벼 뿌리는 때이므로, 풍수의 어려움이 없도록 천도(天道)에 기원
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4월에 행하고, 노인이 무거운
상자를 지참하고, 벌레는 물러가라 라고 말하고, 징을 치며 들판을 뛰어 돌아
다니며, 수주(數珠)를 굴리며 백만편 염불을 하기도 합니다.

3. 타력염불(他力念佛)이란

(1)자력의 모든 행위의 반대로서 염불의 행은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는 대공덕을
성취한 부처님이 중생에 준 것이므로 이렇게 불립니다.

(2) 자력염불의 반대로서 염불의 공덕을 정토에 회향하여 왕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심을 얻어 불은(佛恩)을 감사하는 마음에서 입으로 나오는 염불을
말합니다.

4. 통염불(通念佛)이란?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널리 외치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을 간절한 마음으로 상기
하는 염불은 번뇌를 방지하기 위한 대중적인 신앙 방법입니다. 통염불은 모든
부처님을 기억 또는 상기하여 부처님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처님에 대해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염불입니다. '아미타경'에서 설하는 바에
의하면 아미타불의 이름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여
한 가지로 통일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리하면 죽은 후에 아미타불의 세계인 극락
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후의 왕생은 차후의 문제이고 마음이 통일된 그
자체로 이미 왕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5. 관상염불(觀想念佛)이란?

고요한 곳에서 정신을 통일하여 부처님의 단정하고 장엄한 상호의 모양 등을
연상하고, 거기에 깃들어 있는 공덕에 생각을 응집시키는 염불법입니다. 이렇게
염불하여 삼매에 들면 분명히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고, 부처님을 보게 되면 모
든 부처님을 볼 수 있으며, 일체의 업 장이 소멸되어 극락왕생한다는 것입니다.

6. 암실염불(闇室念佛)이란?

외계(外界)의 소리와 보이는 것을 끊고 어지러운 생각을 피하여 염불삼매를
닦기 위해 암실에서 큰 소리로 염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7. 고사염불이란?

조선시대 탁발 고사 소릿군이 마을을 방문하면서 부르던 것이 고사염불이었습
니다. 흔히 고사소리 또는 고사덕담으로 불리는 고사염불은 여러 작은 노래들
로 구성되는데 대개 앞 부분인 선염불과 뒷부분인 뒷염불로 나뉘어집니다.
시주집의 주인이 고사상을 차려놓으면 걸립승이 선염불을 불렀는데 선염불은
산세 풀이, 직성 풀이, 살풀이, 상재풀이, 호구역 살풀이, 과거 풀이, 농사
풀이 이상 8곡으로 구성됩니다.

북과 꽹과리의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데 장단은 자진모리에 가깝고 선율은
경드름에 가깝습니다. 고사염불이 끝나면 평조 염불과 비슷한 뒷염불이 이어
집니다. 흔히 덕담이라 하는 뒷염불은 집안의 번영과 자손의 부귀영화를 내용
으로 한 성주 풀이, 축원 따위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말로 엮어진 화청이나
고사염불의 전통은 불교의 대중화를 위하여 조선 후기로 부터 전승된 것으로
보입니다.

8. 정심염불(定心念佛)이란?

산란하게 움직이는 마음은 쉬고, 정심(정심)으로 하는 염불입니다. 염불을
할 때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환경을 놓아버리고 오직 독송이나 염불
그 자체에만 정신을 통일시킴에 의해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아 고요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9. 융통염불(融通念佛)이란?

내가 염불한 공덕으로 모든 사람에게 융통하고, 많은 사람들이 염불한 공덕
으로 나에게 융통함을 말합니다. 또는 염불의 공덕이 일체의 행(行)에 융통
하고, 일체 행의 공덕이 염불의 일행(一行)에 융통하여 일체의 공덕이 원만
하여서 서방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뜻합니다.

10. 용염불(踊念佛)이란?

원래 공야염불(空也念佛)을 가르침입니다. 북이나 징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
어 염불이나 그밖에 게송 화찬을 하며, 춤을 추며 법열을 맞보도록 하므로
이렇게 불리웁니다. 나중에 점차로 세속화하여 염불이 나중이 되는 염불용
(念佛踊)을 낳기에 이르지만 이와는 구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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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원(發願)

발원이란 스스로 어떤 원(願)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원(願)이란 '기필코 모든
중생을 다 건지겠다'는 것과 같이 대승 보살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하겠
다고 뜻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원은 단순히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복을
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사회가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어떤 일을 하겠
다든지,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한량없는 보시를 베풀겠다든지 하는 것이 바로
발원이다. 그래서 발원은 마음속에 원을 일으킨다고 해서 발원심(發願心), 뜻
있는 원을 세운다고 발지원(發志願), 가장 높은 원을 세운다고 해서 발무상원
(發無上願), 가장 큰 원을 일으킨다고 해서 발대원(發大願)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삶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자리적(自利的) 삶이 아니라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이타적(利他的)인 삶이다.
그래서 "나는 중생들을 위해서 이러 이러한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원을 세우
는 것이 바로 발원이다. 다시 말해 발원이란 자신이 어떤 보살행을 행할 것인
지를 마음속에 정하고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발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총원이란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
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이 총원은 불자라면
누구나 다 가져야 하는 원이다. 천수경에 나오는 사홍서원이 대표적인 총원
이다. 그래서 모든 법회가 끝날 때는 반드시 사홍서원을 부르는 것이다.

衆生無邊誓願度 - 중생이 가이 없지만 기어코 다 건지오리다.
煩惱無盡誓願斷 - 번뇌가 끝이 없지만 기어코 다 끊으오리다.
法聞無量誓願學 - 법문이 한이 없지만 기어코 다 배우오리다.
佛道無上誓願成 - 불도가 가이 없지만 기어코 다 이루오리다.

이에 비해 별원(別願)이란 한 부처님이나 한 보살님이 세운 개개의 원을 말한다.
아미타불의 48원이나 약사여래의 12원 같은 것이 대표적인 별원이다. 특히 아미
타불의 본원(本願)을 가리켜서 서원(誓願)이라고 한다. 그것은 널리 모든 것을
구원하고자 하는 원이고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맹세이기 때문에 서원(誓願)이다.
또 다른 말로 그 원이 한없이 넓고 크기 때문에 홍원(弘願), 홍서(弘誓)라고도
하며 중생들을 향한 자비심이 깊고 무겁기 때문에 중원(重願)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발원이란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고 원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남을 위한
일인 동시에 곧 자신의 깨달음(菩提)을 위한 것이다. 불교는 신앙적인 의지에
의한 구원보다는 자발적인 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불자에게서 발원이란 더 없이 중요한 것이다. 이제 불자들은 부처님께 복을
비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불자로써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저마다 발원을
하나씩 세워야 한다. 불자는 이 발원을 통해서 삶의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며 이 발원을 통해서 새로운 보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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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경(讀經)

독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깊은 믿음을 내고 감사하고 환희하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일심으로 불경을 외우거나 읽는 것을 말한다. 또한 독경은
법문을 굴린다는 뜻으로 전경(轉經)이라고도 한다.

경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으로써 불교에서는 보통 법보(法寶)라
하며 부처님과 같이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는 독경을 통하여 부처님의 교훈을 항상 되새기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바를 받들어 지키고 수행을 쌓아 생활에 밝은 지혜를 얻어 마침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성불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자가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은 일상 생활을 통하여 마땅히 해야
할 것 중에 하나다. 믿음의 마음과 정성스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항상 부처님
의 가르침을 읽고 외우면 자연히 그 마음이 깨끗해지고 안정되며, 또한 지혜가
싹트게 되므로 생활 속에서의

여러 가지 괴로운 일을 잘 해결해 나가는 힘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전을 읽으면 부처님이 영험을 보여 무조건 잘되도록 해준다던가
하는 따위로 단순한 생각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불자가 독경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신행상(信行上)의 일과인
것이며, 또한 수행 방법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하여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한 구절 한 구절을 공경심을 내어서 정성스럽게 읽되 경전의 뜻을 안답시고
글귀의 해석이나 하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속뜻은 모르면서 읽으면 오히려
뜻을 모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읽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물론 지혜가 있어서
경전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뜻을 알면서 읽는다면 이는 더욱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을 읽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읽혀서 잊어버리지 않고 항상
생활하는 가운데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커다란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불자는 한문, 또는 한글 경전을 주위 가까이에 놓고 수행일과 때나
기도할 때에 반드시 독경을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경을 읽고 외우면서
그 뜻을 관찰하면 절로 마음이 열리고 슬기로워 지므로 거친 번뇌 망상이
사라지고 보리(깨달음)의 씨앗을 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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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경(寫經)

사경(寫經)은 부처님의 경전을 베껴쓰는 것으로 유래가 매우 깊은 수행법이다.
거의 모든 경전을 통해서 써서 지니고 외우는 '서사수지독송(書寫受持讀誦)'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경은 마음을 집중해서 정갈한 종이에 경문을 한 자 한 자 쓰는 일을 말한다.
수행법에서는 일자일배(一字一拜), 또는 일자삼배(一字三拜)라고 해서 한 글자를
쓰고 한번 절하거나 세번 절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기도 한다. 사경은 단순히
경문의 뜻을 전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수행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경이 수행법으로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경을 씀으로써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되고 마음 깊이 와 닿게 되며 경을 쓰는 동안 정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행법으로써 사경은 더할 수 없이 좋은 방법이다.

특히 마음이 산란하고 집중력이 약한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서는 사경이 더할 수 없이 좋은 수행방법이다.

사경은 특별히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시작할 수 있다. 굳이 법당을 찾아야
한다거나 소리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큰 제약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기도나 독경의 수행법에 어색한 학생들이나 젊은 층에게 사경은 좋은 수행법
이 될 것이다.

사경을 할 때는 부처님의 마음과 가르침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가득 채우는
성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사경의 신앙은
경전의 뜻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의미도 크지만 자신의 원력과 신앙을 사경
속에 담아 신앙의 힘을 키워 나가는데 그 목적 있다. 사경을 통해 부처님의
마음과 자기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게 되면 지혜의 빛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경을 할 때의 순서와 주의점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얼굴과 이를 닦고 몸을 단정히 한 후에
사경을 시작해야 한다.
둘째, 환경을 정돈해야 한다. 환경을 정돈하는 것은 곧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
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이다.
셋째, 정좌해서 자세를 바르게 갖춘다. 이것은 곧 마음을 안정시키고 사경할
자세를 갖추는 단계이다.
넷째, 합장하고 사경의식 순서에 따라 의식문을 염송한다.
다섯째, 붓이나 붓펜을 잡고 사경을 시작한다. 사경에 사용하는 붓이나 붓펜은
사경 이외의 다른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섯째, 일자일배의 사경 신앙이 전해 오지만 그대로 따르기는 어려우니 한
줄을 다 쓰고 난 뒤 합장하여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경건한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사경이 끝나면 사경한 날자와 사경한 사람의 이름을 쓴다.
여덟째, 사경을 통해 가장 청정해진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위해 축원한다.
아홉째, 사경이 끝나면 손수 쓴 경전을 소리내어 한 번 독송한다.
열째, 사경 회향문을 읽고 삼배를 올린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사경을 할 때 마음이 한곳으로 모아져서 순일하게 되므로
뜻과 정신이 맑아져 삼매의 경지에 들게된다. 사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자세이다. 글자를 잘 쓰고 못 씀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경건한 마음 자세만
갖추어지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사경의 수행법이다.

사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옮겨쓰는 일이기 때문에 진리의 보석을 찾아내어
마음에 주워 담는 일이다. 마음의 종이에 진리의 말씀을 새기다 보면 어느새
지혜가 밝아져 무아의 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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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력(呪力)

주력은 불, 보살님의 명호나 진언(眞言)을 일념으로 염송하는 것을 말한다.
한역경전에서 주(呪)로 번역되는 산스크리트어는 만트라(Mantra)·다라니
(Dharani)·비드야(Vidya)의 세 종류가 있다. 물론 주(呪)외에도 만트라는
진언(眞言), 다라니는 총지(摠持)·능지(能持), 비드야는 명주(明呪)라고
번역되기고 한다. 이 세 종류의 말이 함께 주(呪)라고 번역되는 것은 이 말에
비밀어(秘密語)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 권 45에는 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무엇이 보살의 주다라니인가? 보살이 삼매자재(三昧自在)를 획득해서 이 자재
에 의해 중생의 재환을 없애는 주문에 가피를 입히면 그러한 주문이 최고의
신령스러운 영험으로 허무하지 않은 영험을 나타내어 모든 재난을 없앤다.
이것을 보살의 '주 다라니'라 한다." (유가사지론)

이렇게 재난을 없애고 복을 부르며, 어떤 재해로부터 몸을 지킨다는 진언 혹은
다라니를 마치 참선을 할 때 화두를 참구하듯이 항상 외우고, 이것을 수행의
요체로 삼는 것을 우리 나라에서는 주력(呪力)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한국불교에서 통용되는 것일 뿐,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진언을 외우는
수행법을 주력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원래 진언을 외우는 것은 밀교의
수행법이다.

밀교에서는 부처님의 삼업(三業) 즉 몸으로 짓는 행위, 입으로 짓는 행위,
뜻으로 짓는 행위는 중생으로서는 미치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것이라 하여
'삼밀(三密)'이라 한다. 중생의 삼업(三業) 또한 본성에서는 부처님의 삼밀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중생이 성불하기 위해서는 중생의 삼업이 부처님의 삼업
과 서로 걸림이 없이 융화되어 평등일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밀 교에서는
즉신성불(卽身成佛) 즉 현세의 이 몸 그대로 성불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부처
님과 중생이 서로 융합하는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생은 손으로 인(印)을
맺고(身密), 입으로 진언인 주문을 외우며(口密), 생각으로는 부처님과 중생이
하나임을 관(意密)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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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회(懺悔)

자신이 범한 죄과를 깨우쳐서 회개(悔改)하는 일.

참(懺)’은 산스크리트의 ‘크샤마(kama)’가 원뜻으로 ‘인(忍)’을 의미한다.
타인에게 자기 죄의 용서를 비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엄밀히 따지면 실수를
뉘우치는 ‘회(悔)’와는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점차로 ‘참’과 ‘회’가
동일시되어서 ‘참회’라는 말이 쓰여지게 되었다.

'참'이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란 미래의 닥쳐올잘못을 미리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참회란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악업과 교만,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아주 끊어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
다는 비장한 결의의 표시이다. 이러한 참회를 통해서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참회는 안일과 쾌락을 추구하는 오욕락에서 벗어나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올바른 삶의 가치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며, 가치관
의 전환, 생활의 변화가 없는 참회는 진정한 참회가 아니라 허구에 불과하다.

불교에서는 이미 석가 당시부터 잘못을 뉘우치는 법이 중요시되어, 포살(布薩)
및 자자(自恣)라고 불리는 참회법이 행해졌다. 포살은 보름에 한 번 계본(戒本)
을 외워 죄과의 수를 세고, 자기가 범한 죄가 있으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참회
하고, 연장의 승려로부터 용서를 받는다. 자자는 안거(安居) 동안의 마지막 날
에 승려들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며, 각자 참회 ·고백하는 방법이다. 이 밖에
참회의 종별로는, 예컨대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이 있다. 사참은 통상적인
참회와 똑같은 의미와 내용으로서, 과거와 현재의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일,
이참은 일체의 망상을 씻어버리고 자신의 마음속 본성의 공적(空寂)을 깨닫는
일로서, 모든 죄업도 역시 실상(實相)이 아닌 것임을 깨닫고 죄를 소멸하는
참회이다.

참회에 있어서는 마음속으로부터 그 죄를 뉘우치는 일과, 자기의 죄를 조금도
감추지 않는 마음가짐을 중요시하였다. 상위의 참회일 때에는 숨구멍이나 눈에
서 피가 나온다. 중위의 참회일 때에는 숨구멍에서 땀이 흐르고 눈에서는 피가
나온다. 하위 참회일 경우에도 전신에 미열이 나고, 눈에서는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불상 앞에서 자기 죄를 참회하고 죄를 멸하는 수행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참회멸죄(懺悔滅罪)’ 또는 ‘회과(悔過)’라 칭하고,
아미타불(阿彌陀佛)에게 회과하는 ‘아미타 회과’, 미륵블(彌勒佛)에 회과하는
'미륵 회과', 《법화경(法華經)》에 의거 참회하는 ‘법화 참법(法華懺法)’
등이 행해진다.

참회에는 사(事)참회와 이(理)참회가 있다. 사참회는 매일 짓는 죄를 모두 참회
하는 것이고, 이참회는 죄의 본성이 본래 공하여 죄가 붙을 자리가 없음을 확실
하게 깨닫는 것으로 이것을 진정한 참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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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6.23 05:42

    첫댓글 반가워요 좋은 글도요, 자주뵙길을요 ^^

  • 14.06.25 10:24

    좋 은 글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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