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고 죽었으면
아프지 않고 죽는 사람 있을까요?
다들 아파서 죽는 게 정답이지요.
아프지 않고 죽겠다고 노력하다 보니 요즘 이런 말이 유행합니다.
구구팔팔 이삼사.
제가 아는 어르신 어느 분께서도 아프지 않고 자는 잠에 돌아가시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
가끔 전화로 안부인사 올리면서 백수하세요 우리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르신.
그러면 차라리 악담을 해라 백수 살아 뭐 하려고 그래.
이젠 정이 들어 오래도록 지금처럼 깔끔한 모습으로 사시길 원한다고 하면 얼른 죽어야 할 것 같다고 하십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요?
너도 오래 살아 봐라 사는 게 지겹고 뚜렷이 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내일이라도 나를 데려가 달라고 저승 가신 할멈에게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있습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시어 러닝머신과 맨손 체조를 하신다고 합니다.
내일이라도 죽길 원하는 양반이 운동을 뭐 하러 그렇게 합니까?
가만히 있어야 돌아가시지 운동하면 오히려 오래 사시는데요.
나도 생각이 있다. 갑자기 죽고 싶어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어르신의 일상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초저녁 잠이 많으시고 새벽 3시면 어김없이 기상해서 운동을 하십니다.
아침 7시면 시간 맞춰서 조식을 손수 끓여서 드시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신답니다 .
놀라고 대단하신 건 금년 93세 이 시니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늘 출근하시듯 복지관엘 가셔서 놀이문화를 익히시고 시간을 보내시지요.
정말 놀라운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장수의 비결 사교댄스.
어르신께서 늘 저를 보면 이래 봬도 내가 춤춘 지 50년 경력이라며 자랑하십니다.
저보고 너 춤 아무리 잘 춰도 나만 못 하다고 합니다.
속으로 웃음이 나오지만, 춤추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가 잘 추는데 상대가 따라오질 못한다고 합니다.
가끔 집으로 인사차 가면 너도 춤배워라 하시면서 덧버선을 꺼내서 신기는 것이었습니다.
카세트를 틀어놓고 한 발 두 발 가르쳐주셨는데, 그때가 이십 년 전이었습니다.
골방 춤을 배워서 골방 춤을 전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을 배우고 이만하면 콜라텍 가서 놀만하다기에 모 콜라텍 가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부킹에게 돈 만원을 쥐어 주면서 여기서 춤 제일 잘 추는 분을 붙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잠시 후 미모의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저를 보더니 깔끔하고 인상 좋은 분이라 춤 선생님 같아 보인다며 기대된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십 분 내에 들키고 말았습니다.
손 느낌으로만 봐도 춤 실력이 느껴지는 춤 세상인데, 고수를 만났으니 십 분 내에 손을 놓고 나가면서 실망했어요.
춤선생같이 생겼는데 생짜 뵈기라며 춤을 어디서 배웠느냐며 시간 있으면 자기한테 배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망신이 있는가!
이건 느낌표를 붙였지만 쥐구멍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 후 망신을 뛰어넘기 위해 춤교실을 전전하며 보낸 세월이 이 십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상 물 밑에서 흥행하던 춤세상이 수면 위로 등장해서 어느 장소에 가서도 뜨뜻하려면 나 지신부터 건전해야 하겠다는 사고로 변했습니다.
춤이 어느 정도 성숙해 질 때 주위에서 이제 그만 하산해도 되겠다며 내 몰 무렵 콜라텍엘 갔었습니다.
부킹을 통해 내 앞에 선 여인은 저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리드하고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참을 추면서 황홀한 멋을 내고 있는데, 여인께서 정말 멋지다며 추켜세우다 말고 외마디 소릴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던 여인이 야! 너 누구 아니냐?
순간 속으로 이 아줌씨가 왜 이래 어디 맛이 갔나?
듣자 하니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토끼눈을 뜨고 가만히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사촌 누님이었습니다.
첫마디가 우리 가문 다 버렸다.
그렇게 착하고 범생이 같았던 네가 천하의 한량이 되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습니다.
선비고 양반 집안인데 큰 아버지가 저승에서 노하실 일이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너 당장 나와.
맥주를 한 잔 하면서 너의 식구도 아니? 예 누님 저희들 같이 배우면서 약속을 했습니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면 일으키는 사람이 홀랑 벗고 쫓겨나기로 언약을 했습니다.
누님은 춤추는 거 매형이 아세요?
알다 말다지.
아주 개방적이라고 하면서 오늘도 같이 와서 따로 논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찍 시집가시어 사촌 동생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범생이고 착하게만 알고 양반집안의 체면에 젖어사는 줄만 알았습니다.
저도 제게 이런 예능 끼가 다분하다는 걸 춤을 추면서 알았습니다.
춤을 춰 보니 운동엔 이보다 더 좋은 전신 운동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어르신이 오래 사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가끔 어르신 찾아봬면 거실에서 카세트 켜 놓고 춤을 춥니다.
이젠 제가 여자 스텝도 밟을 줄 알아 할아버지의 현란한 끼를 다 받아줍니다.
이십 년 전 한 발도 못 놓던 놈이 선생이 되었다며 농반진반으로 웃으십니다.
춤 대회 나갔을 때 응원하러 오셨던 존경하는 어르신 백 수 하시길 진심으로 빌면서 이 글은 여기서 내려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