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카는 주관적 역사관을 가진 인물이고, 유물론 사학에도 조예가 깊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까? 그와 상반된 입장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실증사학의 대부인 독일의 랑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랑케는 역사를 과학이라고 칭했고, 철저한 3자 입장에서 역사를 써야 한다고 했죠. 그리고 모든 역사에 증거, 즉 실증이 잇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직 실증주의 사학이 우세해서, 사학하시는 분중에 그런 입장을 취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는 잘모르겠군요..
밑의 자료는 책에 나온것을 요약한 부분입니다. 잘보세여..
객관적 연구 : 사료를 통해 파악되는 사실의 객관적 인식 ⇒ 엄정한 과학적 인식의 토대
예) 랑케 -- "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어떠했는가를 밝히는 것을 그의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하고, 이 때 오직 역사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 사실로서의 역사(객관적 측면=실증주의 사관)를 강조
주관적 측면 : 주관적인 역사 의식이나 사관에 따른 해석 ⇒ 역사의 진실을 오도해서는 안 됨.
예) E.H. Carr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존재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이 없는 무의미한 존재다. 결국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 기술로서의 역사(주관적 측면=상대주의 사관)를 강조
[사료탐구 1.] 랑케의 역사 인식
역사가는 마치 사람이 꽃을 볼 때 린네나 온켄의 식물학적 분류를 생각하지 않고 기쁨을 느끼듯이 개별적인 生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외에 다른 아무런 목적도 가지지 않고, 다시 말해 어떻게 전체가 개별 속에 반영되는가를 생각함 없이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나의 자아(自我)를 소거해서 다만 사물로 하여금 말하게 하며 강대한 모든 힘을 눈앞에 나타나게 하려고 할 뿐이다.
역사와 사회를 구성하는 경이로울 만큼 복잡한 전체 속에서 상호 작용하는 단위는 개체들이다.
⇒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를 중시하는 랑케의 역사 인식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역사가가 보편적인 원리를 추구하거나 일체의 목적 의식 또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되며, 오직 개별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료탐구 2.]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두 가지 타당하지 못한 이론 사이에서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두 가지 이론이란, 역사를 사실의 객관적 편찬이라 보고 해석보다 사실이 무조건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이론과, 역사상의 사실을 확립하고 해석 과정을 통해 이를 지배하는 역사가 마음의 주관적 산물을 역사라고 보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앞의 이론은 무게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이고, 뒤의 이론은 무게 중심을 현재에 두는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역사가는 잠정적인 사실 선택과, 그러한 선택을 이끌어 줄 잠정적인 해석의 두 가지를 가지고 일을 시작한다. 일이 진행되면서 해석이나 사실의 선택 및 정리는 다같이 상호 작용을 통하여 미묘한, 어쩌면 반쯤은 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역사가는 현재의 한 부분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 작용에는 현재와 과거의 상호 관계가 아울러 있게 된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실은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존재로 열매를 갖지 못한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이 없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이리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최초의 대답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 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 랑케 이후의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는 사관에 반대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의 주관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에 의하면 쓰여진 역사란 곧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이었다. 그것은 사실(事實)을 망망 대해에서 해엄치고 있는 고기에 비유하는 것과 같았다. 즉, 장소나 도구의 선택이 무슨 고기를 잡으려는가에 따라 결정되듯이 역사가가 원하는 종류의 사실만이 손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쓰여진 역사는 현재의 요구나 상황을 반영하므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 역사가 부정되고 역사란 역사가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논리적 회의주의에 빠질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위치에서 E.H. 카는 객관적 사실로서의 사료의 의미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료가 가지는 객관성의 한계를 지적하여 역사가의 올바른 해석이 가지는 중요성을 잘 나타내었다. 즉,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