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집(安潗) 1派21世-참판공파
대사간(大司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공조판서(工曹判書) 판돈령부사
【생몰년】 1703(숙종 29)∼? 【본 관】 순흥(順興) 안(安) 【자·호】 덕취(德聚), 상산(橡山) 【시 대】 조선 후기 【성 격】 문신
안집(安鏶, 1703~?)의 영정 해동명신초상첩(海東名臣肖像帖))에 실린 상반신초상화
1703(숙종 29)∼?.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덕취(德聚), 호는 상산(橡山)이다. 진사 안수함(安壽咸)의 아들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영조 14년(1738) 도사(都事)로서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740년 지평(持平)이 되고, 이어 정언(正言)·장령(掌令) 등을 역임하고, 1746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수찬(修撰)·헌납(獻納)·승지(承旨)를 지내고, 1754년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 1757년 고부사(告訃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고, 1764년 대사간으로 빈대(賓對)에 불참하여 흥덕현감(興德縣監)에 좌천되었다. 1773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어 그 이듬해 등준시(登俊試)에 급제하고, 공조판서(工曹判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英祖朝)安 (安潗) 國朝人物志v3
字德聚號橡山順興人進士壽咸子與兄休聯璧進士英祖戊午以都事登文科以書狀官如燕京甲午登俊試擢工曹判書入耆社官至輔國判敦寧府事子聖彬字質文文科大司諫孫廷善字元長正祖己酉生員文科承旨[주:上同]安兼濟字達夫號八下順興人弼善時相孫父鍇官至都正娶監司完山李彥經女生兼濟英廟丙子生員進士兩試文科歷忠淸全羅二道監司官至大司憲丙申邊配[주:國朝榜目]兄寬濟字栗卿英祖己卯文科校理丙申屛裔放還仲兄大濟字聖叔丙子生員進士與弟聯璧丙戌文科承旨[주:上同]安廷玹字彥珍順興人同知聖希子參判宗道七代孫英祖乙酉生員文科歷檢閱癸巳卒官至大司諫
안집(安潗)에 대하여
부(父) 안수함(安壽咸)
조부(祖父) 안승(安陞) 증조부(曾祖父) 안응회(安應會) 외조부(外祖父) 이기서(李箕敍) 처부(妻父) 유천군 이정,이덕원(儒川君 李정,李德遠)
부(父)ㅡㅡㅡ>안수함(安壽咸) 자-일경(一卿), 거주지-경(京), 전력 : 유학(幼學) [생원진사시] 숙종(肅宗) 25년 (1699) 기묘(己卯) 증광시(增廣試) 진사(進士) 3등(三等) 1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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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子)--ㅡ> 안성빈(安聖彬) 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질부(質父). 공조판서 안집(安潗)의 아들이다. 1763년(영조 39)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66년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이듬해 예문관검열을 거쳐 다시 정언·지평을 지냈다. 1768년 세자시강원사서에 이어 1775년 사간에 올랐다. 1777년(정조 1)홍문관수찬을 지내고 이어 함평현감·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안응회(安應會)ㅡㅡ>안승(安陞)ㅡㅡ>안수태(安壽泰)안수정(安壽鼎)안수함(安壽咸),안수관(安壽觀)ㅡㅡ>안집(安潗)ㅡㅡ>안성빈(安聖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