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봉 멧돼지
주중 연사와실에 머물면서 퇴근 시각이 다가오기 전 두 가지를 구상해 놓아야 한다. 일과를 끝내고 교정을 빠져나가면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느냐가 첫 번째 생각해 둘 일이다. 도서관이 가까이 없고 텃밭을 돌보거나 만날 지인도 없다. 그 다음으로 저녁밥은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다. 저녁은 학교 급식소에서 먹거나 거리가 좀 떨어지긴 해도 식당을 찾거나 와실서 손수 지어 먹는다.
말복이 지난 팔월 둘째 월요일이다. 아직 맹위를 떨치는 더위가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일과를 마치고 와실로 들어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배낭엔 얼음생수를 한 병 챙겼다. 연사삼거리에서 들녘 들길을 지났다. 들판의 벼들은 포기마다 볼록볼록 배던 이삭이 나오고 있었다. 연초천을 가로지른 쇠줄다리 연효교를 건너 효촌마을로 향해 골목길을 빠져 산기슭으로 들었다.
지난 봄 올라봤던 길이다. 등산로는 사람이 다니지 않아 묵혀졌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산소로 가는 자손들이 그랬는지, 임도를 관리하는 행정당국에서 그랬는지 등산로 길섶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까 골목을 지나온 효촌마을엔 의령 옥 씨와 밀양 손 씨가 모여 사는 듯했다. 그걸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지 않고 알 수 있음은 마을 뒷산 무덤 앞에 놓인 상석에서 드러났다.
효촌마을 지명 유래는 이곳의 전주 이 씨 ‘돌대(乭大)’의 효성을 경상 관찰사 김안국이 장계를 올려 중종실록에 실리게 되고 효자비와 정려각이 내려졌다. 이돌대 효자비는 연초삼거리에서 마을로 드는 어귀에 세워졌다. 효촌마을 뒤에서 가파른 산비탈을 올랐다. 지난 봄날 올랐을 때보다 날씨가 무더워 힘에 부쳤다. 그나마 위안은 매미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청아한 풀벌레소리였다.
아직 여름 햇살이 남아선지 숲길이지만 비탈을 오르니 땀이 흐르고 숨이 차 발걸음을 천천히 뗐다. 인적 드문 계곡에 거제 섬에서 보기 드물게 맑은 물이 흘렀다. 장마철 내린 비가 그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가 싶었다. 비탈을 얼마간 오르니 산마루가 나왔다. 동으로 가면 와야봉이고 서편으로 가면 약수봉이었다.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나는 두 곳 다 등정한 바 있었다.
서쪽으로 난 약수봉을 향해 나아갔다. 산등선을 한참 타고 약수봉에 이르면 누군가 간절한 염원을 담아 원근의 자연석을 주워 쌓아올린 탑이 수 백 개였다. 진안 마이산에서나 마산 팔용산에서 봄직한 경건하고 신비한 돌탑이었다. 산주의 허락을 받지 않고 탑을 쌓고 꽃을 심었기에 임자가 허물라면 언제든지 치울 각오가 되어 있다는 순진한 안내문을 비닐 코팅해 걸어 놓았더랬다.
산마루를 따라 걸으니 활엽수림이 우거져 산 아래 들판과 마을이 보이질 않았다. 숲 바닥엔 가랑잎이 삭아져 부엽토가 켜켜이 층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 부엽토를 사람이 호미나 괭이로 파 일굴 일도 아니고, 경운기가 갈아엎을 일도 아님에도 샅샅이 뒤집어져 있었다. 호젓한 산길을 자주 걸어본 나는 그 로터리를 친 작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다. 그 녀석은 다름 아닌 멧돼지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나아가던 바로 앞 인적 없는 숲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색 줄무늬가 그려진 새끼멧돼지 서너 마리가 잽싸게 스쳐 지났다. 녀석은 귀여우나 그 곁에 있을지도 모를 어미 멧돼지가 신경 쓰였다. 덩치 큰 어미가 모성 본능으로 공격해 올지도 몰라 나는 멈칫 놀랐다. 약수봉으로 나아가던 발길을 돌려 등산로도 없는 산비탈에서 효촌마을 방향으로 내려섰다.
숲을 헤쳐 나가 마을이 보이니 마음이 놓였다. 참깨가 꽃이 지면서 꼬투리가 영그는 마을 안길을 지났다. 마을 바깥은 들판이라 벼논이었다. 그 자투리 고구마이랑 밭뙈기에 대나무 울타리를 둘러놓고 땀을 후줄근히 흘린 농부가 투덜거렸다. ‘허, 거 참! 웬 여기까지 멧돼지가 들쑤셔 놓는가!’라 했다. 지나던 한 아낙은 ‘된장이 효험 있디요! 그걸 봉지에 걸어 놓아 보세요.’라고 거들었다. 1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