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을 바위를 깨고 법회에 입장하는 법 <법화경>의 3대 마인드셋
세계 속 한국은 현재 전성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중 단연코 BTS는 한국 문화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흔히 BTS를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꼽히는 비틀즈와 비교합니다. 그들은 1970년 전성기를 누리던 한가운데서 급작스럽게 해체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새롭게 선임될 매니저 후보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멤버들 사이에서 새로운 매니저를 둘러싼 의심으로 의견이 갈렸고, 이것이 트리거가 되어 결국 해체 수순을 밟게 됩니다. 이 하나의 의심이 그때까지 숨겨왔던 다른 불신들을 모조리 끄집어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의심은 배반자다. 우리가 시도조차 하지 않게 만들어, 마땅히 얻을 수 있었던 좋은 것들을 잃게 만든다."-윌리엄 셰익스피어
의심은 소화시키면 약이 됩니다. 건강한 의심이 발전과 도약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쌓이기만 하면 결국 독이 됩니다. 의심은 확신을 안에서부터 녹슬게 만드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한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금강경>의 대전제가 되는 질문입니다. 보살 수행을 할 때는 특히 끝없는 의심과 직면하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머물고 닦아 항복받을 수 있을지, 즉 주수단(住修斷)의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경전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한 3단계 준비 과정
경전을 공부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인문학처럼 자료를 분석하며 읽는 방법이 있고, 내가 경전 속 주인공이 되어 경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중 후자를 권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전 속 무대로 내가 직접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조건이 바로 '공감'입니다. 가르침을 내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경전은 옛날 옛적 남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순간 눈앞에서 펼쳐지는 직강이 됩니다.
<금강경>은 세계인의 마음수행 교과서로 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입니다. 하지만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아직 경전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선현기청분의 질문을 분석해보면 두 가지 조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선남자·선여인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어야 수행을 할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발보리심한 보살이어야 합니다. <금강경>은 보살이 보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의심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금강경학교의 교육 과정은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금강경> 법회의 청중으로 참석하여 안심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먼저 <붓다연대기>를 비롯한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이유는 베푸는 삶과 도덕적인 삶에 공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시계생천의 원리를 이해하고 실천할 때 선남자·선여인의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천수경>을 통해서는 일으켜야 하는 보리심의 목차를 배웁니다. 매일 팔단보리심에 따라 보리심을 일으키는 기도와 명상을 실천한다면 어느새 보살의 마음에 물들게 됩니다.
<입보살행론>은 원보리심을 넘어 육바라밀이라는 주제를 배웁니다. 팔단보리심으로 세운 뼈대에 살을 채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살의 마음에 입문하게 됩니다.
진리의 문 앞에서 주저하는 '거지 마인드셋' 부수기
'가는데 순서 없다.'
죽음에 순서가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죽음 앞에서 평등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죽을 수 있죠. 이 압도적인 진리 앞에 인간의 '수자상'만이 반대 의견을 내며 눈을 감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깨닫는 데는 순서'가 있을까요?
수행을 시작한 지 1일인지 10년인지는 관계가 없습니다. 깨달음의 문은 언제든 수행자에게 열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문을 알아보고 열고 들어갈지의 여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깨침의 기회는 마치 죽음처럼 언제 어디서나 주어질 수 있습니다.
"부처가 부처에게 절하는구나. 네 안의 부처를 중생이라 깎아내리지 마라." -선불교
문제는 수행과 진리, 그리고 깨침을 너무 어렵게 보는 오해입니다. 추상적으로 상상하고 그 수준을 너무 올려칩니다. 비싼 것이 귀해 보이듯 어렵게 평가해야 귀해 보이는 심리일까요? 그래서 부자 되는 타이밍을 '나중 일'로 치듯, 깨치는 일도 나중으로 미룹니다. 마치 <법화경> 속 궁자(窮子)처럼,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스스로 거지인 줄 알고 분뇨나 치며 진리의 문 앞에서 주저하는 것이죠.
'나는 아직 부족한데?'
<법화경>의 근거 있는 응원
금강경학교의 관점에서 <법화경>의 가치는 보살 수행자에게 올바른 마인드셋을 선물한다는 점입니다. <법화경>의 삼대철학은 중생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의심하는 수행자들에게 완벽한 논리 구조를 제공합니다.
첫째, 회삼귀일의 철학입니다. 많은 수행자가 스스로의 길을 성문이나 연각이라 한계 짓고 성불로 나아갈 수 없다고 여기지만, 보살을 포함한 삼승의 길은 일불승의 바다로 연결되는 강줄기일 뿐입니다. 수행의 목적지에 한계를 두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일대사인연을 해결할 미래의 붓다입니다.
둘째, 구원실성의 철학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싯다르타 태자 시절에 비로소 처음 깨달음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 아득한 과거에 이미 성불하셨다는 철학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6년의 고행과 보리수 아래의 성불은 사실 중생을 이끌기 위해 보여주신 '성불 2회차'의 방편 연기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법화경>은 묻습니다. 과연 부처님만 성불 2회차일까요? 아니면 우리 모두 다 성불 2회차를 걷고 있는 망각보살일까요? 용기를 가지세요.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래 갖추고 있던 기억과 깨침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구름이 걷힌다고 달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금광석을 제련하여 금을 뽑아내지만, 그 금은 본래부터 금이었다." -원각경
셋째, 행보리심의 철학입니다. 세상 모든 위대한 일들이 똑같습니다. 희망만으로 되는 것은 없고 반드시 실천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금강경학교의 교육 과정 속에서 보리심을 원하는 희망은 이제 충분히 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행보리심의 실천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법화경>에서는 상불경보살이나 관세음보살처럼 구체적이고 생생한 보살행의 롤모델을 제시합니다. 그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실천의 발걸음을 내딛도록 등을 밀어주고, 일상에서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보살행의 매뉴얼을 펼쳐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희망 품기는 충분하니 직접 실천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용해야 한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천해야 한다." -괴테
다시 금강경으로 — 의심을 마주한 순간, 비로소 열리는 법회
이 세 가지 기둥이 보살의 마인드셋을 단단히 받쳐줍니다. 용기 있는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실천을 지속해 나갑니다. 이때 보편적으로 마음속 장애물이 생긴다고 했죠? 바로 의심이라는 마음의 녹이 슬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금강경>의 선현기청분을 읽으면 가슴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막막한 상황을 거울로 보듯 꿰뚫어 본 수보리의 질문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어떤가요? 이쯤 되면 이미 부처님과 수보리 존자의 문답이 펼쳐지는 그 '일시(一時)'의 법회 한가운데에 당당히 앉아 있는 것 아닌가요? 이것이 바로 <금강경>을 올바로 공부하기 위한 진짜 준비입니다.
원빈스님의 <법화경> 수업 - 9월 11일 시작
https://cafe.daum.net/everyday1bean/TqU/2193?svc=cafeapi
첫댓글 일대사인연으로 연결된 모든 경험들이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_()_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용해야 한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천해야 한다." -괴테
정말 맞는 말이네요! 되뇌어 봅니다
희망만으로 되는 것은 없고 반드시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기며 행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
"구름이 걷힌다고 달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금광석을 제련하여 금을 뽑아내지만, 그 금은 본래부터 금이었다." 의심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 법회로.^^; 감사합니다. 스님_()_
감사합니다 스님_()_